래더2 시즌
즐겁게 하드코어 액트2까지 왔습니다.
파밍하러 바위무덤을 털러가는데 입구쪽이 드로그난 쪽이라 그쪽으로 갔는데
드로그난이 갑자기 마법 주문을 읽더군요



야 익스 이그나이 헵슨 인 민너하~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읊조리는데 꼭 스크롤을 들고서 말을 합니다.

근데 제가 요즘 배경음이 하도 지겨워져서 다 끄고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음성 역재생시 특유의 마디 끊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

그래서, 어? 이건 뭔가 이스터에그다! 하고 직감하고 
어도비 오디션을 사용해 역재생 해봤습니다.



자료는 어떤 외쿡인이 올린 영상인데
알고보니 저같이 생각했던 외쿡성님이 계셔서 그 분도 돌려봤더군요.

대략 들어보면

Oh honey makes new spread out against the sky 라고 하는 듯 들립니다.
허니라그러길래 처음엔 무슨 빵에 꿀발라먹는 요리법인가? 했는데

확실하게 들리는 spread out against를 검색해보니


(좌측이 토마스 엘리엇)

해당 문장은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즉, 20세기 당시 철학가이자 시인 Thomas Stearns Eliot 이라는 (1888.09.26 ~ 1965.1.4)의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시 일부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품 내용을 일부 발췌해보자면

ㅡㅡㅡㅡㅡㅡㅡ

Let us go then, you and I, 

When the evening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Let us go, through certain half-deserted streets,

The muttering retreats

Of restless nights in one-night cheap hotels

And sawdust restaurants with oyster shells:

Streets that follow like a tedious argument

Of insidious intent

To lead you to an overwhelming question . . .

Oh, do not ask, "What is it?"

Let us go and make our visit.

ㅡㅡㅡㅡㅡㅡㅡ

이렇게 있는데 해석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뭔가 러브송치고는 사랑과는 동떨어져있는 내용입니다...
(생각해보니, 세계대전을 참혹하게 겪어온 철학가 작품이 달달한 러브송일리가 없지!)

이도 그럴 것이 토마스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영미권에서 매우 유명한시를 쓴 장본이기도 한데
해당 시의 내용은 

'종교적 신앙을 잃고, 생식의 기쁨을 잃고, 썩어서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 서구문명의 비극성을 노래한다' 

'20세기의 영국의 몽롱하고 활기없는 공허한 상황을 표현했다'

이라는 평가를 비평가들로부터 얻었던 작품입니다.

근데 뭔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종교적 신앙을 잃다 - 자카룸 교단
생식의 기쁨을 잃다 - 악마들로 인한 파괴의 연속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 - 언데드의 출몰
게다가 액트2 로키'황무지' 바로 앞에 있는 드로그난

억지라면 억지일 수 있지만 현재 디아블로 세계관과 많이 맞아 떨어지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를 좀 더 해석해보자면

Let us go then, you and I, 

When the evening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그러니 너와 나, 함께 가자

하늘을 배경으로 저녁이 펼쳐질 때

마치 테이블 위에 마취 된 환자처럼


To lead you to an overwhelming question . . .

Oh, do not ask, "What is it?"

Let us go and make our visit.


압도적인 질문으로 그대를 이끌 길로
오, "이것이 무엇인가?"라 묻지 마라.
가자, 그리고 찾아 방문하자.

심오하긴 한데 해당 시를 끝까지 읽어보면 여기서 '너와 나'는
다중인격, 즉 또다른 자아가 함께한 인물이 화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 뭔가 또 이질적이지 않은 부분인 것 같죠?



맞습니다 액트3 초반입구를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어둠의 방랑자 Dark Wanderer, 
즉 영혼석을 머리에 박는바람에 디아블로에게 잠식된 아이단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였던 것입니다.
드로그난은 그런 아이단을 지칭하는 멘트를 주문으로 거꾸로 읊조리고 있던 것이죠.



제작된지 무려 20년이 훌쩍 넘은 게임인데도 이런 치밀한 이스터에그가 숨어있었다니
역시 블리자드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디아블로4에도 이런 소소한 재미들이 얼마나 숨어있을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