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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01:36
조회: 10,553
추천: 5
[전설의 추억]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의 소개 및 후기안녕하세요 종종 자잘한 글로 인사를 드리는 육점이입니다. 이번 글은 리버풀의 오래된 팬으로써 남기는 짧게나마 강렬했던 기억 마이클 오언 선수의 후기글 및 소개 정도로 글 시작을 알리면 되겠군요.
잉글랜드 국대에서의 활약상입니다. 1966년 잉글랜드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을 이후로 월드컵에선 이렇다 할 성적을 못내는 삼사자 군단의 현재를 잉글랜드 축구의 몰락이다라며 이야기하며 삼사자 군단을 까내리기 바쁘지만 리버풀에서의 단짝이었던 헤스키와의 빅 앤 스몰 조합에 스몰의 오언의 임팩트는 잉글랜드 축구에게 추억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안주거리지요. 특히 아르헨티나전 중앙선 부근에서부터 드리블에 이은 솔로골은 많은 이야기들을 양성하며 오언은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사나이다 라는 말도 많았지요. 저 키에 100m 10초면 얼마나 빨라야하는건지... (유언비어란 말도 많아요 ㅎㅎ그래도 속력은 엄청났습니다.)
일대기 정도로 만든 영상이겠군요. 리버풀에서의 임팩트만 담은 영상입니다.
※밑의 소개글은 마이클 오언의 일대기? 에 대해서 상세하게 써준 블로그글 발췌입니다. (블로그 주인이 상당히 글솜씨가 좋고 지식 수준이 상당히 높아 저는 즐겨찾기 해놓고 자주 가서 글을 보고 있습니다.) 역대 최연소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한 때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입니다.
축구계에는 글로벌한 인기와 규모 만큼이나 여러 시상식이 존재합니다.
이제 곧 다가오는 월드컵에서는 MVP를 나타내는 골든볼,
각 대륙이 주관하는 최우수 선수상 [그 중 가장 권위있는 상은 유럽 축구 협회(UEFA)가 수여하는 최우수 선수상이죠]
각 국가마다의 리그와 대륙별 클럽 대항전이 끝나고 난 후 정해지는 MVP등이 그 중에서는 가장 굵직한 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축구 관계자들과 축구 팬들이 주목하는 시상식은 따로 있습니다.
프랑스 풋볼이 주관하며 유럽 선수에게만 수여(2007년부터는 국적 제한 폐지)했던 발롱도르와 가장 큰 축구 협회이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FIFA 올해의 선수상이 그 주인공이죠.
현재는 FIFA와 프랑스 풋볼이 '세계에서 No.1 선수는 한 해에 한 명만 존재해야하지 않겠느냐'는 팬들의 질문에 화답하며 그들이 주관했던 시상식을 FIFA 발롱도르로 통합(2010년 7월)했지만
과거에 이 상은 따로따로 시상되었고 이 때문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가를 가르는 팬들 사이에 거센 충돌도 일어나기도 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어찌 됐건, 현재는 호날두와 메시의 양강 체제로 굳혀진 지금은 한 명의 파트너가 로테이션으로 바뀌는 양상으로 변해
절대자 2명과 1명의 경쟁자 경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최우수 선수상 시상과는 달리 너무 당연하게 3명의 후보자 중 2명의 후보자가 미리 결정되다시피 하다보니 시상에 대한 긴장감과 재미는 과거보다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마치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인 것을 알고 보는 것과 같달까요?? (스포 ㅈㅅ....)
하지만 과거의 저명한 시상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매 해 누가 후보에 오를 것인지 많은 기사와 추측들이 난무하며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었고 팬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그 최우수 선수 선정 후보에 오르는 것을 지지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하였죠.
'뭔가 현재와는 다른 낭만이 있는 축구계'인 듯 하네요 ㅎㅎ
그리고 2001년, 세상은 한 소년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됩니다.
1957년 개최 이후로 유럽 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인 발롱도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22살)로 유럽 내 최고의 선수로서 수상한 이 소년의 이름,
[마이클 오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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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수상 내역
[원더 보이]라는 별명으로 너무나도 유명했던 이 소년은 영국 내에서 베컴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축구 선수였습니다.
키는 작았으나 곱상한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어 영국 내의 많은 여성 팬들과 아이 팬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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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을 하였기에 영국 내의 어떤 사람이라도 [마이클 오웬]은 절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가 18살(+59일)이라는 약관의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입성한 날은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20세기에 있었던 영국 신인들의 국가대표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데뷔를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후에 루니가 17세에 데뷔를 하며 오웬의 기록을 깼습니다.)
당시의 영국 대표팀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어서 오웬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센세이션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그저 어린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전통적인 축구 스타일, 킥 앤 러쉬(나쁘게 말하면 뻥축구)와 빅 앤 스몰 최전방에 투 톱을 가동하고 양 윙에 정확하고 간결한 크로서를 배치시키는 가장 단순한 전략이지만 투 톱의 존재감 여하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공격 루트를 개척하는 전략으로도 유명합니다.
한 자리는 에밀 헤스키나 피터 크라우치 등과 같은 거대한 덩치와 키를 자랑하는 빅 스트라이커에게 주고 다른 한 자리는 루니와 같은 순발력있고 엄청난 가속력을 자랑하는 스몰 스트라이커에게 주죠. (물론 앨런 시어러와 같이 두 가지를 모두 다 갖춘 괴물도 있습니다)
오웬은 감독들이 이 스몰 스트라이커에게 기대하는 바를 100% 만족시켜주는 선수였습니다.
영국이 빅 스트라이커를 통해 포스트 플레이를 시작하면 그는 2선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가 전방 패스의 기회나 헤딩을 통한 루즈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리고 공이 수비 뒷공간이나 자신의 앞에 떨어지게 되면 지금의 메시 못지 않은 가속력과 유연함으로 순식간에 수비 라인을 돌파합니다.
거기에 정교한 마무리를 통해 승부를 결정지으며 여유로운 골 세레머니를 펼치죠.
정말 단순하지만 위의 영상을 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원더 보이]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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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전성기 때 클럽이었던 리버풀 FC에서의 활약은 지금의 메시 못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팀이 그에게 기대하는 플레이나 전체적인 전술 활용도는 다르지만 오웬을 통해야만 골이 만들어졌고, 그가 마무리짓는 경기의 빈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리버풀에서만 297경기를 뛰며 158골)
'킹' 케니를 잊게 해줄 만큼의 완벽한 활약을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00-01시즌,
리버풀은 오웬의 활약을 통해 FA 컵, 리그 컵, UEFA 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트로피를 가져오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고
특히 2001년 FA컵 결승전은 오웬에게 있어 최고의 날로 기억될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의 상대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맨유와 리그 타이틀을 끊임없이 나눠먹었던 아스날 FC이었습니다.
앙리, 피레스 등 무지막지한 선수들이 즐비했던 아스날을 상대로 오웬은 2골을 몰아넣으며 리버풀이 왜 전통의 명문인가를 증명하였고
이런 미친듯한 활약으로 인해
영국인으로서는 케빈 키건(1979년) 이후로 유럽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2001년)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인 오웬과 베컴 등은 폴 스콜스, 로비 파울러 등의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영국의 황금 세대를 구축하는 등
그들이 염원해 마지 않던 월드컵 우승의 꿈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웬은 앨런 시어러의 완벽한 대체자가 되어 영국의 간판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은 그렇게 다가왔죠.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영국은 8강에서 당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을 만나 오웬의 선제골을 가져가고도 호나우지뉴의 1골 1어시에 눌려 패배하였고
스콜스는 이에 분개하며 '아시아에서 열린 이 대회는 역대 최악의 대회였다'라는 독설을 날리며 분한 마음을 표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월드컵이 끝난다 한들 그들의 활약이 끝난 것은 아니죠.
소속팀으로 돌아간 오웬은 팀의 우승을 위해 착실히 골에 관여하며 리버풀을 도왔고 팬들은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던 오웬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그를 응원하였습니다.
그런데 2004년,
영국을 발칵 뒤집는 갑작스런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오웬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오피셜입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의 별들을 끌어 모으는 '은하수(갈락티코)' 정책을 내세워 전 세계의 거물들을 영입하였고 오웬은 라울과 호나우두와 함께 공격진의 옵션으로서 영입되었습니다.
그의 국가대표 파트너, 데이비드 베컴이 얼마 전에 이적하였기에 새로운 환경 적응에 자신있었던 오웬으로서는 리버풀에서 못다 이룬 리그 우승을 경험하기에 좋은 장소였죠.
첫 출발은 산뜻했습니다.
디나모 키예프와의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골이자 이적 후 첫 골을 박아넣으며 1:0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고
며칠 뒤, 발렌시아를 상대로 리그 첫 골 역시 성공시키며 1:0 승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의 골은 마치 짠 듯이 결승골이 되었고 그 임팩트 또한 엄청났습니다.
첫 시즌에 리그 13골과 당해 시즌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로도 기록되는 등 리버풀을 떠난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죠.
그러나 레알의 상징이었던 라울과 황제 호나우두의 자리를 뺏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리버풀의 제라드 / 첼시의 램파드 / 바르셀로나의 푸욜을 그저 타국의 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팬들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기량과 퍼포먼스를 자랑하였지만 기회를 받지 못했던 그는 점점 벤치에 앉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하더니 시즌 막판에는 그다운 모습이 실종되게 되었고
결국 경기에 나서기 위해(또는 월드컵을 위해) 이적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의 전성기를 이끈 클럽인 리버풀과 그들이 저주하는 지역 라이벌, 에버튼이 오웬에게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그들의 제안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충분한 유혹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컸던 오웬은 결국 2005년, 뉴캐슬과 1680만 유로에 4년 계약으로 도버 해협을 다시 건너게 됩니다.
고향팀은 아니지만 자신을 지지해주는 팬들로 가득했던 뉴캐슬에서 그는 점점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전통적으로 킥 앤 러쉬를 지향하는 줄무늬 클럽은 그에게 너무도 딱 맞는 옷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뉴캐슬은 과거의 위용을 잃어버리고 2부 리그로 강등하였다가 이제 막 1부 리그로 다시 올라오는 등의 불명예를 겪으며
선수층이 빅4 클럽들에 비해 약해졌기에 오웬을 받쳐줄 스타급 선수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팀은 오웬을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리버풀에서와 달리 혼자 만들어내는 골의 빈도가 많았죠.
거기다가 자동문 3B로 일컬어지는 뉴캐슬의 수비진은 10위 이상을 못가는 클럽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윽고 오웬은 뉴캐슬과의 4년 계약을 연장 없이 모두 채우고 FA 신분으로 리버풀의 저주하는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 등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퍼거슨의 지휘 아래, 우승을 밥먹듯이 했던 맨유는 오웬이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던 클럽이라 생각하였고
그는 호날두가 떠난 이후로 빈 자리가 되었던 팀의 상징, 7번을 달며 OT에 입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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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오웬은 '뉴캐슬에서의 추억은 끔찍했다', '뉴캐슬의 수준은 맨유에 비해 형편없다'는 등의 디스전을 펼쳤고 뉴캐슬은 거액을 들여 그의 재활을 도왔다는 이유로 오웬을 비난하는 트러블이 생기는 등의 사건도 있었죠 ^^
하지만 오웬은 7번의 자리가 무색하리만치 평범한 활약을 하였고 재계약 실패로 인해 스토크 시티로 이적, 1년 후 은퇴로 다사다난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비록 그 끝은 빛나지 못했지만
최연소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빛났던 원더 보이의 존재는 현재 신계의 주인인 메시, 호날두와는 다른 무언가의 추억으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
게임상에서의 오언의 모습입니다 ㅎㅎ 참고로 저는 라커룸 기능으로 오언선수가 즐겨신던 엄브로사의 축구화를 착용시켜놨습니다.ㅎㅎ
그 선수가 임팩트 있었던 팀을 대부분은 뻔히 아는데 캐미적용까지 해줬으면 하는 것을 조금 아쉽죠 ㅎㅎ; 피파 돈벌이에도 도움이 될텐데 ㅎㅎ;; 엔드컨텐츠면서 ㅎㅎ;; 오언 선수는 매우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속도를 가지고 있는건 뻔히 아실테구요. 가장 장점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도 정확한 슈팅을 날려 원더골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부드러운 골결정력이 장점입니다. 특수해설도 있어요. 2개쯤 있는데 좁은공간에서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난다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네요 ㅎㅎ 암튼 해설대로입니다 ㅎ 겉으로 보여지기에도 아실 수 있는 피지컬 적인 한계는 있습니다만 등을 어느정도 내준 상태의 경합에 이은 속도전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ec c 드리블을 즐겨하는데 뒷공간을 잘 허무는 오른발의 메시처럼 느껴집니다. 피지컬이 어느정도 보완된 그만큼 매우 부드러운 드리블링으로 좁은 공간에서의 부드러운 터치 후 슈팅이 장점이구요. qw같은 패스에서는 피지컬적인 한계탓인지 볼을 내리는 속도가 다소 느려 뒤에서 따라온 수비에게 쉬이 밀리기도 합니다. 토레스처럼 수비라인을 따라다니다가 뒷공간을 허무는 타입의 옵뚫 형태는 아니구요.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가는 타입인 거 같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치는 않네요.) 단점을 얘기하자면 연계 플레이에는 그리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소 낮은 패스 능력치가 그 이유겠지요 ㅎㅎ 끝으로 능력치를 보여드리고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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