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무 스님 (출생 미상. 1921.01.17) 순국


승려 박무는 만주방면 출생으로 전해지나 생년월일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는 승려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이 당시 많은 승려들이 독립운동가들을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산사의 일들을 증명할 만한 자료들이 발굴되지 않아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승려들은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을 독립군의 연락처 및 근거지로서 이용하도록 했고 후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무 스님의 경우 「독립신문」에 행적이 기록되어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불교계 항일운동의 일단면을 살필 수 있는 사례로 전해진다.


박 무는 평안북도 영변군의 오봉사 주지로 있으면서 절 내에 독립군의 교통기관을 마련하고 수시로 독립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21년 1월 17일 밤에 운산 북진경찰서 수사대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7촌 길이의 추도로 일경을 찌르고 총기를 탈취하려다 총에 맞아 43살의 나이로 피살 순국하였다.



1921. 1. 17. 平北 寧邊에 있는 五峰寺의 住持로 있으면서 獨立黨과 연락을 통하여 절안에 交通機關을 두고 활동하다가 雲山北鎭警察署 搜査隊의 습격을 받았으나 칼로 日警을 베고, 銃器를 탈취하던 중 총에 맞아 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 1921.02.25일 독립신문 >


1995년 승려 박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