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는 쓰러졌다. 

 

 

 

" 오늘따라 스프가 맛있는... "

 

 

 

쿵. 

 

 

 

그것도 같은 파티원들에 의해서. 

 

 

 

" 약효는 확실한 거지? "

 

 

 

" 물론입니다. 오크가 먹어도 6시간은 쓰러져 있을 만큼 수면제를 투여했습니다. "

 

 

 

" 용사님 다시 깨어나시는 건 맞죠...? "

 

 

 

"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

 

 

 

위로부터 장난스러운 엘프 궁수, 냉철한 마탑의 마법사, 자비로운 빛의 사제, 마지막으로 왕국의 여기사까지. 

 

 

 

짧게 울려 퍼진 궁수의 손뼉 소리가 파티원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 안 일어나면 정화 주문이라도 쓰지 뭐. 아니면 이대로 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아? "

 

 

 

" 파렴치해요! "

 

 

 

" 제일 불순한 녀석이 말은 많아. 자 그럼 이제부터... "

 

 

 

모두의 시선이 용사를 향했다가, 궁수에게로 돌아왔다. 

 

 

 

" 제 1회차. 용사의 동정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 ... 이런 걸로 논의를 한다는 게 난 이해 가지 않아. "

 

 

 

어두운밤. 작게 피어오른 모닥불 하나와 쓰러진 용사를 두고 기묘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 우선은 나부터. "

 

 

 

회의의 주최자로 보이는 궁수가 능숙하게 첫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 너희들 말이야.. 애초에 자X를 본 적은 있어? "

 

 

 

궁수의 직설적인 말에 마법사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저었고, 사제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이어나갔으며, 여기사는 마시던 물을 뿜었다. 

 

 

 

" 이거 봐. 여기 다섯 사람 중 섹스를 해본 건 나밖에 없잖아? 무턱대고 눈 맞아서 하다가, 어느 구멍에 넣을지도 모른 채 갈팡질팡 첫날밤을 보내는 것보다... 능숙한 나랑 경험을 쌓은 뒤 너희들이랑 하는 게 더 괜찮지 않을까? "

 

 

 

길고 긴 엘프의 수명. 용사는 모르고 있지만 왕국의 왕이 바뀌는 걸 4번 이상은 본 엘프가 첫 경험이 아직 없을 리가 없었다. 없는 것을 넘어 경험이 너무 많은 게 흠이었지만. 

 

 

 

" 불합리합니다. 거기에 성적 지식이라면 저도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

 

 

 

" 뭐? 너 마탑에서 연구만 하다 처음으로 마탑 밖으로 나온 게 아니었어? "

 

 

 

" 맞습니다. 하지만 제 보안등급은 1등급. 금서로 지정한 도서들에도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

 

 

 

" 너 설마... "

 

 

 

처음 입을 열었을때만해도, 자신의 승리임을 확신하듯 당당한 태도로 말하던 엘프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 섹스의 방법은 물론, 어떤 식으로 해야 남성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도 충분합니다. "

 

 

 

마법사는 차분히 손으로 동그란 구멍을 만들어 반대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구멍을 왕복하더니, 이내 구멍을 입가로 옮겨 그 사이로 혀를 살짝 집어넣었다. 

 

 

 

"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말이죠. "

 

 

 

" 이... 이건 불공평해요! "

 

 

 

비정상적인 얘기가 오가는 것에 정신도 못 차린 채,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있던 사제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제가 제일 오래 용사님을 알고 지냈고, 제일 먼저 좋아했단 말이에요! "

 

 

 

용사와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지냈던 사제는 억눌린 것을 토해내듯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뭐라고요!? 제가 자X도 못 봤다고요!? 아니에요! 마법사님이나 엘프님은 그림으로든 다른 사람 것으로든 본 적 있어도! "

 

 

 

한창이나 열변을 토해내던 사제는 잠시 숨을 고르며, 큰 결심을 내린 듯 눈을 꼭 감은 채 외쳤다. 

 

 

 

" 저... 저는 용사님의 것을 직접 봤거든요! "

 

 

 

" 그만! 다들 그만해! "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한 여기사가 자신의 칼집으로 바닥을 쳤다. 

 

 

 

" 지금 이게 전부 뭐 하는 짓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누가 지나가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

 

 

 

" 하지만... "

 

 

 

잠깐의 정적. 모두가 스스로의 추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침묵을 지켰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 그럼 그쪽은 용사의 동정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

 

 

 

" 뭐, 뭐? "

 

 

 

" 그런 것이라면 대화에서 잠시 빠져주시기를 요청합니다. "

 

 

 

" ... "

 

 

 

" 마,맞아요. 엄청나게 중요한 이야기라고요! "

 

 

 

셋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해 모이자, 뻘쭘하게 고개를 돌린 여기사가 작게 대답했다. 

 

 

 

" ... 아, 아니... 뭐... 제자가 굳이 나랑 하고 싶다면야 내가 그걸 거부할 이유는... "

 

 

 

" 똑바로 말해! 할 거야 안 할 거야! "

 

 

 

" 그러니까... 굳이 제자가 원한다면... "

 

 

 

다시 한번 소란스럽게 변해버린 주변을 멈추게 한 것은 용사의 신음 소리였다. 

 

 

 

" 으음... "

 

 

 

모닥불 주변을 가득 메우던 목소리가 일순 멎어버렸다.

 

 

 

타닥, 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만이 주변을 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용사의 신음은 잦아들었고, 파티원들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6시간은 푹 잘 거라며? "

 

 

 

" ... 몸 안에서 자체적인 해독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니, 차라리 잘 됐습니다. "

 

 

 

불안한 표정으로 궁수가 묻자, 마법사는 짐 사이에서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 들고 왔다. 

 

 

 

" 이렇게 약에 취해있는 동안이라면 간단한 최면 마법은 쉽게 통과할 겁니다. 그러니 이걸로... "

 

 

 

쓰러진 채 숙면에 빠진 용사를 나무에 등을 대고 앉게 만들더니.

 

 

 

" 직접 물어보죠. 이중 누구와...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지. "

 

 

 

" 좋아, 난 찬성이야. "

 

 

 

" 정말 진실만 말하는 게 맞겠죠? "

 

 

 

" 그런 거라면 공평하겠어. "

 

 

 

" 마나에 맹세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모두의 동의를 얻은 채 스태프를 용사의 머리에 가볍게 붙이고는, 마법사가 짧은 주문을 시전했다. 약간의 움찔거림 이후, 입만 최면에 걸린 듯 움직이는 용사. 

 

 

 

" 좋습니다. 그럼... 당신의 파티원 중 동정을 누구와 떼고 싶으시죠? "

 

 

 

사실 검증을 위해 짧은 질문 시간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질문을 꺼내었다. 

 

 

 

하지만, 용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이 자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 

 

 

 

" ... 나 동정 아닌데? "

 

 

 

"""" ? """"

 

 

 

순간. 모닥불의 불길이 주춤할 만큼이나 차가운 기운이 용사 주변을 감쌌다. 

 

 

 

" 그, 그럼 대체 누구랑...!? "

 

 

 

당황한 사제가 마법사를 제치고 물어보자 모두가 몰랐던 비밀이 용사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 일주일 전에 지낸 도시에서... 돈만 주면 밤에 찾아오는 서큐버스가 있다길래... "

 

 

 

" .... "

 

 

 

이제껏 열변을 토하며, 용사의 입에서 나올 달콤한 승리만을 기대하던 파티원 모두가 죽은 눈으로 용사를 바라보았다. 

 

 

 

" 어쩐지 박쥐 냄새가 난다 했더니... "

 

 

 

" ... 정화. 정화해야해요. 용사님부터 그 도시 전부... 모두 불태워야... "

 

 

 

" 위치 추적 중입니다. 일주일 전 도시라면 하루 안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

 

 

 

" ... 서큐버스면 마족. 토벌해야겠지. "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얼굴도 모르는 서큐버스를 향해 살기를 내뿜던 중 용사의 혼잣말이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 그래도... 첫키스는 아직이야... "

 

 

 

다시 한번 정적. 한 목표를 향해 단결했던 파티원들은 어느새 떨어져 서로를 경계했다. 

 

 

 

"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