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라는 사냥은 안하고 스토리만 진득하게 파고드는 유저 일수가방입니다.


차원의 도서관 ep4 [설원의 음유시인]을 보면서 평소에 주워 들은 지식이 많아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제가 느낀 바를 이 자리에 적게 되었습니다.

다소 긴 글일 수도 있으시겠지만 부담없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된 시선은 배제하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1. 원죄


<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 미켈란젤로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성경입니다. 몇 천 년간 이어진

히브리인들과 사도들의 전승을 엮어놓은 책이죠. 이 책의 시작을

이루는 부분은 창세기(Genesis)입니다. 어렸을 적 교회 한 구석의

동화로 된 성경을 흘깃 보신 분들이라면 감이 잡히실텐데요.


여기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신이 먹지 말라 하는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은 후,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맙니다.

아담은 죽을 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브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운명에 시달리게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를 일컬어 원죄(Original Sin)이라고

부르고, 모든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므로 인류 전체가

연좌제 격으로 원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들은 원죄로 인해서

모든 인류는 죽을 운명이며, 누구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원의 음유시인 초반부에서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메이플 월드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검은 마법사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메이플 월드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음을 나타내죠.


세계수 알리샤는 이러한 현상이 지적 생명체만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방주 '더 시드'에

인류를 제외한 생명체만을 받아들이기로 생각합니다.


게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뒷받침되지는 않았지만,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자기들끼리 분열과 전쟁만을 반복하여

생명의 초월자로부터 버림받은 인간들의 모습은, 원죄로 인해

신으로부터 미움받은 기독교 사상 속의 인류의 모습과 많이 겹칩니다.


2. 속죄


하지만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메이플 월드의 운명은

한 용병대장 출신 음유시인에 의하여 바뀌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류드, 세계수 알리샤와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어

그녀의 생명체 수집 작업을 돕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죠.


류드는 알리샤에게 인간도 하나의 생명임을 강조하고,

비록 엇나갈 수는 있어도 어머니를 갈망하는 아이 중 하나임을 드러냅니다.

모두에게 검은 마법사의 위협을 알리기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려는

류드의 모습을 보고 알리샤는 '더 시드'로 올 것을 권유하지만,

류드는 용병으로서 피를 뭍히고 다닌 삶에 대한 반성으로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다 사망합니다.


결국 류드의 희생으로서 온 세상에 검은 마법사의 위협이 전달되었고,

영웅들이 모여 검은 마법사를 봉인할 수 있었던 씨앗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류드의 헌신적인 모습을 인상깊게 바라 본

알리샤는 영웅들을 도와 검은 마법사를 봉인하는데 큰 힘을 보태줍니다.


<그리스도 모자이크>, 성 소피아 성당


예수는 오늘 날의 시선으로 보자면 성직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운동가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그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신 앞에서의 평등을 주장하며 폐습을 부정하고 이웃의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고위 사제들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고,

바라빠라는 한 죄수의 형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시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라는 존재가 한 죄수를 대신하여서만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를 확대 해석하여 인류가 가지고 있던 원죄와

많은 죄악을 짊어지고 스스로 희생한 것으로서 간주합니다. 


3. 대속자(Redeemer)

<거대 예수상>,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


-원 명칭은 Christ the Redeemer로서, 대속자 예수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류드의 캐릭터성에서 '대속자'라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속자'라는 말은 원래 영어 단어 Redeem(죄인의 죗값을 대신하다)에 -er를

붙인 말로, 남의 죄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고 희생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예수를 뜻하는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류드는 본인이 얘기한대로 군단장, 초월자, 영웅 이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무력이 조금 뛰어난 일반인에 불과한

수준이었고, 사자왕과 호각으로 맞붙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군단장인

반 레온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용병단장으로서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류드는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동족들의 잘못을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있었고, 용병단장을 그만 둔 이후로는 속죄와

반성으로 일관된 구도자의 삶을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궁극의 속죄로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검은 마법사로 인해 파멸할 수 있었던 세계를

구원하는 첫 번째 불씨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간을 등졌던 초월자 알리샤에게서


모든 생명의 어머니로서, 나 초월자 알리샤가 말하노라. 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용서한다.


라는 인정을 받으므로서, 간접적으로 알리샤가 인간을 용서하고

그들을 도와 검은 마법사에게 대항할 수 있게 만든 계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메이플 월드를 구원하게 되죠.

이러한 점에서 류드에게서는 기독교적인 '대속자'를

연상케 하는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메이플스토리 시나리오팀에서 이런 것들을 생각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만일 이런 요소를 감안했다면 정말로

놀랍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세 줄 요약

1. 필자는 성당 다니지만 종교 강요 안 합니다

2. 류드는 일반인, 어쩌면 범죄자에 불과

3. 그러나 류드는 인간의 죄를 속죄하므로서 그들을 구원하였고

이로 인해 '대속자'적 속성을 가지게 되었음


비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