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샤 인근의 한적한 숲 속 딥디르비의 작업장, 평소라면 찾아오는 손님이라고 해봐야 숲속의 새나 다람쥐 정도겠지만, 오늘은 독특한 손님이 한명 찾아왔다.

 

온몸을 덮는 긴 가죽 코트, 어깨위에 앉아있는 까마귀, 짚고 다니지는 않지만 손에서 떠나질 않는 지팡이까지, 며칠 전 오르샤로 찾아온 플레이그 닥터였다.

 

플레이그 닥터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지만, 그 생각은 플레이그 닥터의 질문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아름다운 조각상이네요, 전부 직접 만드신건가요?"

 

"여신님의 은총입니다."

 

"여신상을 조각하는 모습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딥디르비는 흔쾌히 승낙하고 통나무를 세운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깊은 눈망울과 청아한 목소리에 혹해 승낙했지만, 여신상을 조각할 때에 사심이 들어가면 안될 일이다.

 

딥디르비가 조각을 시작하자 플레이그 닥터는 옆에서 자리를 잡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딥디르비의 손길이 한번 갈 때마다 조각상은 모습을 갖춰갔고, 정성스럽게 여신상을 조각하는 딥디르비의 손놀림을 플레이그 닥터는 흥미로운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딥디르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조각상은 여신의 은총이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완성되었습니다."

 

플레이그 닥터가 집중해서 보고있느라 조각이 끝난줄도 모르자 완료되었음을 알려준다. 어느새인가 플레이그 닥터의 왼손 검지손가락에 핏방울이 한방울 맺혀있었다.

 

"손은 괜찮으신가요?"

 

"여기까지 찾아오다가 살짝 긁혔나보네요."

 

플레이그 닥터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답하며 팔목 안쪽부터 흐른 피를 닦으며 새로이 입을 열었다.

 

"혹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흔쾌히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돌아섰지만, 딥디르비의 머리속에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플레이그 닥터가 이 마지막 작업을 알고있는 거지?

 

의문을 뒤로 한 채 여신상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자, 여신상이 은은한 빛을 내며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딥디르비가 돌아서자 플레이그 닥터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도 훌륭한 딥디르비군요"

 

플레이그 닥터가 말을 함과 동시에 어깨에 조용히 앉아있던 까마귀가 불길하게 한번 까악거리고 날아올랐다. 플레이그 닥터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있었지만, 갑자기 돌아서서는 새부리가면을 꺼내 썼다. 그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낀 딥디르비가 급히 따라나가면서 본 것은 플레이그 닥터가 가면을 쓰기 직전, 환하게 웃는 모습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웃음으로 변해있던 얼굴이었다.

 

"괜찮으신가요?"

 

딥디르비가 다급히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존에 만들어놓은 조각상에 불틀 붙이는 모습 뿐이었다.

 

"그만둬!"

 

플레이그 닥터를 막기 위해 조각칼을 들어 찔러보았지만, 돌처럼 단단한 피부에 번번히 튕겨나갈 뿐이었고, 간신히 상처를 내도 그 상처는 곧바로 회복될 뿐이었다.

 

딥디르비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플레이그 닥터가 모든 조각상에 불을 붙이고 나자 갑자기 돌아섰다. 딥디르비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도망치려 했지만, 플레이그 닥터가 내뿜는 화염은 딥디르비를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온몸에 불이 붙어 나뒹구는 딥디르비를 바라보며 플레이그 닥터는 손을 뻗어 까마귀를 불러들였다. 가면을 쓰고 바닥에서 불타는 딥디르비를 보던 플레이그 닥터는 소각기를 다시한번 딥디르비에게 들이댔다. 딥디르비가 죽음을 실감한 순간, 소각기의 끝에서 나온 하얀 연기는 오히려 딥디르비의 몸에 붙은 불을 꺼주었다.

 

"창궐"

 

새부리가면을 벗고 딥디르비를 내려다보면서 내뱉은 플레이그 닥터의 목소리는 방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차가웠다. 플레이그 닥터의 주문으로 인해 까마귀가 가지고 있던 역병이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딥디르비는 속수무책으로 역병에 감염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뒤, 플레이그 닥터가 온뭄에 붕대가 감기고 얼굴에는 새부리가면을 쓴 딥디르비를 수레에 실어 오르샤로 들어왔다. 무슨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드이 몰려들자 플레이그 닥터는 외쳤다.

 

"물러서세요! 역병입니다. 이 딥디르비의 집이 어디죠?"

 

몰려든 사람들은 놀라서 거리를 벌리면서도 딥디르비의 집을 알려주었고, 플레이그 닥터는 딥디르비를 그의 침대에 옮겨놓았다.

 

"무앙무앙"

 

딥디르비가 깨어났지만, 얼굴에 씌여진 가면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꼼짝할 수 없었고,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럴수가 역병이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죠?"

 

"아직 초기니까 주변 사람들은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는요?"

 

"어쩔 수 없습니다. 슬프지만..... 태워버려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플레이그 닥터는 그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자신의 지팡이로 문을 가로질러 열리지 않도록 봉했다. 자신을 태워버린다는 소리를 들은 딥디르비가 고통에 몸사리치면서도 급하게 뛰쳐나와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허사에 불과했다.

 

"더이상 지체하면 안됩니다. 그가 이 문을 뚫고 나온다면 온 오르샤에 역병이 퍼질겁니다!"

 

플레이그 닥터의 강한 어조와 확신에 찬 말투에 경비병들도 수긍하는 눈치였고, 결국 딥디르비의 집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날 밤, 자신의 여관방에서 플레이그 닥터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첩을 펼치자 딥디르비들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고, 펜을 들어 이번에 처리한 딥디르비의 얼굴에 엑스자를 칠한다.

 

"하나 더 처리했고, 다음은 페디미안인가."

 

 

며칠 뒤, 오르샤 광장에서는 오르샤 영주에 의한 훈장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선제적인 방역으로 역병에 의한 오르샤의 피해를 최소화 한 공로를 치하하여 이 훈장을 수여한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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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회예고(안나옴)

 

 

"이 여신상은 주신 아우슈리네의 여신상이죠. 기도를 드리면 여신의 은총으로 모든 피해를 막습니다."

 

반격의 딥디르비! 과연 플레이그 닥터는 딥디르비를 제압할 수 있을것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딥디르비가 주로 걸리던 '역병'이라는것, 전부 그 플레이그 닥터가 관련되어 있더군."

 

꼬리가 길면 밟히는가? 서서히 조여드는 수사망!!

 

 

 

"테슬라... 당신을 잊지 않아."

 

플레이그 닥터는 딥디르비를 왜 불태우는가? 테슬라와 엮인 충격적인 과거 공개!!

 

 

 

"내가 봤어! 딥디르비는 역병이 아니라 살해당한거야!!"

 

은신한 스카웃에게 모습을 보였다! 폭로되는 진실!!!

 

 

 

"후하하하하하하하!!! 그래, 내가 모든 딥디르비를 불태웠다! 그래서 날 심판하려는건가? 오르샤의 구원자, 클라페다의 구세주, 페디미안의 정화자를?"

 

플레이그 닥터는 궁지에 몰린것인가?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전개!!

 

 

 

"마지막으로, 당신을 한번 더 볼 수 있기를....."

 

- 예고편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