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5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 선생들이

 

방과 후 학교 주변 오락실을 돌며 오락을 하고 있는 학생들 이름을

 

적어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복 형사들 같았습니다.

 

이름을 적고 조용히 속삭였죠. "너 이 새끼 내일 죽었어."

 

이름이 적힌 학생들은 다음 날 옥상에 끌려가 빠따를 맞았습니다.

 

수십 명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뻐쳐를 하고 있으면 선생님 4-5명이

 

각목, 당구 큐대 등으로 빠따질을 시작했죠.

 

오락실에서 담배를 핀 학생들은 따로 학생과에서 다뤘고 단순히 오락을

 

한 학생들은 빠따 40~50대씩 맞았습니다.

 

맞으면서 이렇게 복창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오락할 시간에 단어 한자 더 외우자!"

 

"오락을 하면 대가리가 나빠진다."

 

그렇게 맞으면 허벅지가 새카매졌죠. 멍이 2-3주씩 갑니다.

 

아침 7-8시에 등교를 해서 오후 5시 30분 쯔음에 수업이 모두 끝납니다.

 

잠시 저녁을 먹고 밤 10~11시까지 자율학습? 명목으로 학생들을 모두

 

잡아둡니다.

 

다행히 11시에 귀가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또 그 시간에 학원을 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월..화..수..목..금.. 이렇게 철저히 노예처럼 공부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당시 오락실 최고의 인기였던 더 킹 오브 파이터즈가 얼마나 하고 싶던지

 

방과 후 오후 3시 쯔음에 친구랑 몰래 오락실을 들어갑니다.

 

그 30분 게임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던지 1주일의 피로를 전부 날려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만 그 날도 역시나 사복 선생들에게 걸려 이름을 적혔죠.

 

그 주는 순찰을 안 도는 지역이라 들었는데 급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새끼는 상습범이네. 너 저번에도 걸렸지."

 

"옙.."

 

"넌 다음 주에 옥상에서 봐."

 

친구랑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겁이 얼마나 나던지, 이거 즐거운 주말을

 

두려움에 떨며 보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게 빠따 50대를 맞을 정도로 중죄인가..

 

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거지.

 

일주일 내내 공부에 묻혀 살다가 주말 잠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용하는

 

오락실이.. 그렇게 나쁜 곳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이 뭔 줄 아십니까

 

낭만의 캠퍼스? 미팅? 아닙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해도 안 맞는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들.

 

오락실을 가면 대가리 나빠진다. 단어나 더 외워라

 

만화가가 꿈이라고? 굶어 죽고 싶냐? 공부나 해라

 

스트레스? 편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무슨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하는 어른들이나 받지

 

학교. 빠따. 학원. 학교. 빠따. 학원. 학교. 빠따. 학원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흑역사가 있던 나라에게 훌륭한 게임을 만들길 바라는 것은

 

많이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산 게임들을 전부 싸잡아 욕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를

 

원망했어야 했다. 아이들을 그 좁디 좁은 교실에 하루종일 가둬두고 공부 이외의

 

것들은 하지도, 보지도, 묻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했던 그 고지식하고 꽉 막힌 세대.

 

그래. 우리 세대까진 좋은 게임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에서 세뇌를 받으며 자랐다 치자.

 

앞으로의 신세대들은 다르겠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신세대가

 

물질만능주의 양산형들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

 

모습 꼭 보고 싶습니다.

 

수천 대 빠따를 참아가면서도 게임을 사랑했던 우리 아재들 세대를 위해서라도

 

언젠간 꼭 대업을 이루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