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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 14:22
조회: 12,254
추천: 165
14년 중국에 거주한후 느낀점 #4
원래 중국인들 매너에 대해 글을올릴라다가 어제 조선족이라는 명제가 또 신경을 박박 긁어놔서 심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오늘은 그 조선족, 그냥 싫기만 조선족을 우리가 왜 싫어해야 하는지 좀 알아보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입 냄새가 난다는 등의 인신공격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팩트만을 갖고 글을 써보겠습니다. 흥미 진진하겠군요. 물론 여러분들이 만나는 조선족이 다 나쁜 사람은아닐 겁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만나고 겪어본 조선족들 100 명중에 95 명은 도둑놈이었고 3 명은 사기꾼이었으며 1 명은 미친놈이었습니다. 그럼 갤러들이 한국 길거리를 지나가면서만나는 수 많은 조선족은 어떤 사람일까요.
제가 올렸던 조선족 관련 링크달아둡니다. 조선족을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약간은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833101?my=post
한국에 병상이 부족하자 같이울어주는 짱깨들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834386?my=post
우크라이나 도와주자 극찬하는짱깨들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834911?my=post
코로나 풍토병 격하, 짱깨들의 진심어린 걱정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834928?my=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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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앞서
1) 이글은 내 경험담이며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실제 사실이 아닐 수 있음. 2) 난 역사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님.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판단하는 것이므로갤러들과 의견차이가 당연히 있고 난 그 의견들을 존중함. 그러므로 님들도 날 존중해주길 바람. 3) 이 글은 갤러들을 “설득”하기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힘. 4) 난 공산당을 싫어하고 독재체제를 싫어하는 아재이며, 그런아재가 중국에 오래살면서 중국이바뀐 점,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실제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서술.
상대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하고넘어가겠음.
<브리핑>
일단 조선족은 흑룡강과 연변(연길, 화룡, 도문 등) 두 곳 출신으로 구분이 됨. 편가르기는 여기서도 보이는데 흑룡강 애들은 연변 애들보고 짼내비 (조선족말이며 뜻은 원숭이)라고 부르며 비하하고 같이 어울리거나 놀아주지않음. 이 둘의 주 활동 무대는 한국인들의 활동무대와 겹치는데 한국인들이 중국 통역 등의 업무를 주로맡기 때문임. 광동(심천,광저우, 동관 등), 혜주, 천진, 상해, 난징, 산동 (연태, 청도, 청양 등지) 등등 전국적으로 골고루 퍼져있으며 항상 떼를 지어 서식함.
항상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사는 폐쇄적인 구조라서 중국에 살면서도 중국어를잘 못하거나 못배운 사람이 많음. 다른 민족 특히 한족과 결혼하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음. 한족과 연애라도 하는 날에는 지저분한 떼놈들과 무슨 연애냐며 (지도 떼놈이면서 안그런 척) 그렇게 만날 사람이 없냐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함. 하지만 한국 사람과 결혼하거나 어울리는 것은 매우 좋아함.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중성을 띄며 그 속뜻을 알기 어려워 어울리기 쉽지 않다. 같이 술 마시며 웃다가도 조금만 방심하면 등에 칼 꼽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의 이주를 꿈꾸며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중국으로 여행와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음. 항상 남을 이용해 날로 먹으려는 습성을 갖고 있어 취급시 매우 특별한 주의를 요하며 마음을 열지 말고 쉽게 다가가지 말아야 함.
간단하게 브리핑을 끝마쳤다. 이제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시간순으로 적어 볼 테니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람.
< 중학교 시절>
그때 당시 마당딸린 단독 주택들을 빌라 형식으로 올리는게 유행이었는데, 그때 우리집도 단독 기와집이었던 것을 1,2 층은 세를 주는 목적으로올리고 3 층과 옥탑방은 우리가 살 목적으로 집을 새로 짓고 있었음. 그때가 막 한중 외교가 수립되고 한족들과 조선족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남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작한 때였음. 집을 새로 지으면서 조선족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기억나는 건 새카만 얼굴을 한 아저씨들이 이상한 한글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던 모습이었음. 일을 열심히 했는지 어쨋는지 모르지만 맨날 저녁마다 술마시고 우리집에서 기르던 개 훔쳐다가 잡아 먹고 시치미떼던건 분명히 기억남. 용철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 중이셨는데 그때 당시 국내에 거의 없던 NCT 라는 설비가 아버지 회사에 있어 마사회 함체 만들고 매일 매일 바쁘고 한참 돈 버실 때였음. 그때에도 조선족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커플로 아버지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월급이 80 만원인가 그랬음. 어머니가 해외에 나와서 일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 더욱 각별히 잘 대해줬던 것으로 기억함.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회사 직원들 50 여명 정도를 점심 저녁 챙겨주셨는데 조선족들이 집에 먹을 쌀이 부족하다고 해서 어머니가 쌀 퍼주고 불고기 남으면 싸주고 그랬음. 웃긴건 옆 회사에서 85 만원준다고하니까 일하던 중간에 급여 계산해 달라고 하고 다음날 바로 옆 회사로 출근했던 기억만 난다. 일당도 아니고 월급 5 만원에 같이 웃고 먹고 일하던 그런 관계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먼 곳도 아닌 바로 옆으로 이직한 거임.
<대학교 입학 후부터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
99 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왔음. 언어가 안되니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조선족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그들과 어울려 1년 정도 지낸 것같음. 매일 저녁이 술이었고 이상하게 술만 마시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건 술 마시러 조선족 술집에 들어가면 항상 그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불만의 오오라가 뿜어져 나와 식당을 감싸고 있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그런 분위기였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게다가 한국 사람이 한국말 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고 진짜 아닥하고 술만 마시고 분명히 농담인거 같은데 진담 같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놀았음. 이때 정말 많은 조선족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음.
일단 조선족들은 부모들이 대부분한국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음. 부모님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면 거의 100에 90 은 다들 한국에서 일한다고 들었고 식당, 노가다 순으로 많았음. 부모가 없다 보니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자라는 아이들이 많았고 한국으로 넘어간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돈에 대해 부족함 없이, 쓰고 싶은데로쓰고 사고 싶은데로 사는, 그렇게 살고 있었음. 이때의 조선족들 이름을 보면 무슨 매화, 홍매, 해연 이런 꽃이나 바다 제비같은 작고 아담한 사물 이름이 많음. 내가 만났던 여자는 처음에 자기 이름이 리나 라고 그러더니 신분증에는매화라고 써 있었음. 자기들 이름이 촌스러워서 그랬겠지.
돈 이야기로 되돌아 와서, 그럴 능력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대부분 나쁜 길로 빠지게 됨. 어려서부터 마약을 접하고 여자는 술집에서 아가씨를 한다던지 몸을 판다던지 했고 남자들은 한국인 작업장을 도와준다던지 남의 돈을 뺏는다던지, 싸움 좀 할 줄 아는 놈들은 돈 있는 한국 사람 보디가드를 하거나 체육관에 들어가서 사범을 한다던지 그랬음. 사오년정도 지나니 화상채팅 특히 몸캠 등으로 한국 남자들을 홀려 먹었고 결혼을 빙자해서중국으로 송금을 하게 만드는 사기 등등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면서 삶을 유지함.
원래 게임 작업장이라는 것도 중국인들의 값싼 노동력을 갖고 와 남들 일할 때 대신 게임 놀아주면서 게임머니를 벌어준다던가 혹은 랩업을 해주고 그걸 현금으로 지불해준다는 나름경제논리에 입각한 사업임. 한국인이 하는 사업이니 당연히 조선족이 끼어들었고, 그걸 고대로 배워서 지가 차리는 경우가 많았음. 물론 이게 규모가 작으면 다른 게이머에게 피해 적게 주거나 안주는게 가능한데 후에 이게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자 규모가 커지면서 문제가 되었음. 연길에 가장 큰 작업장은 인원이 500 명정도 되었고 규모가 1 층부터 4 층까지 건물을 통으로 사용했으며 200 여대의 컴터가 있었음. 그래픽이 좋아지면서 비싼 그래픽 카드가 아니면 게임이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큰돈 주고 그래픽 카드를 업글하는게아니라 컴터를 빌려주는 업종까지 등장했다는…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
화상채팅을 좀 이야기해보면 북한이야기까지 나오게 되는데, 사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북한 여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칠 수 밖에 없는게 조선족임. 그럼 조선족들이 그 북한 여자들을 그냥 돈받고 한국으로 보내주면 되는데 이 바퀴벌레 같은 생퀴들이 이들을 돈벌이로 이용하기 시작함. 어차피 불법 신분이라 공안에 신고를 할 수 없으니 손쉬운 범죄의 대상인거임. 자기 아내로 삼으면 다행인데, 13살 14살 밖에 안된 핏덩이들을 돈 받고 멀리 내륙에 있는 한족에게 팔아버리기도 하고 여자들을 감금해서 화상채팅을시키는 일도 다반수이고 식당에서 5~6 개월 일 시키고 급여를 안주고 공안에 신고해서 북송당하기도 하며 잔인하게 살해당한 후 매장당하기도 함.
<결혼 바로 전부터 지금까지>
때는 08 년, MP3 가 거의 끝물을 달리고 있었을 적임. 아이폰 3S 나온 다음부터 MP3 다 작살 났었으니까...M 사와 I 사의 MP3 반제품, 완제품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항상 세관과 문제가 있었음. 당시 외국인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물품을 수출하려면 장벽이 굉장히 높았고 서류적으로 금액적으로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넘보기 어려운 벽이 존재하고 있었음. 그럼 그때 대부분 수출하는 분들은 어떻게 일을 했냐면 (1) 홍콩으로 돈을 받아 현금화 한후 중국내에서 물품을 구입, 택배형식으로 한국에 발송. (2) 중국인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 정상적으로 수출. 1 번은 매번 현금화 하려니 홍콩을 왔다갔다 해야해서 귀찮았고, 중간에 환치기를 해준다며 돈을 갖고 잠적해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2 번이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중국말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항상 조선족이 따라 붙어서 2 번 방법으로 기업을 돌려 막아주는 역활을 많이 했음. 나 역시 아직 와이프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었음. 결혼하기 전이었고 아직 돈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 맡길 그런 위치가 아니었으므로 2 번을 선택해서 일을 하고 있었음.
중국인들은 “키워서 먹는다” 라는 말을 많이 함. 즉 처음에 기업 규모가 작을때는 정말 성심 성의껏 온힘을 다해 도와주어 믿음을 산 다음에 기업이 어느정도 크면 바로 한국 사장을 내 쫓는 방식이다. 사실 2번 방식은 한국인이 사장으로 등록이 된것도 아니므로 만약 바지 사장이 한국 사장보고 내 회사에서 나가라면한국 사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요구할 수 없으므로 나가야 한다. 즉 눈뜨고 코가 베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나쁜건 빨리 배워서 조선족들도 2 번을 선택해서 하는 경우가 많고 필자도 그 피해자 중 한명임.
당한 일을 시간 순서데로 나열해보자. 12월 23일 급하게 한국을 들어갈 일이 생겨 한국에 들어감. 12월 24일 조선족 관리자과 연락이 안됨. 별일아닐꺼라고 생각함. 12월 25일 일이 터졌다. 조선족 관리자와여전히 연락이 안되어 여친에게 공장을 가보라고 함. 공장 문은 열려있고 안에 아무것도 없다 함. 12월 26일 새벽 비행기로 넘어와서 공장을 둘러봤더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있던 생산 설비와 플래쉬 메모리 한화 약 8 천만원 어치, 출하를 기다리는 완제품 등 총 2 억정도가 모두 사라짐. 내 사무실 책상, 쇼파는 물론이고 내가 기르던 화분까지 몽땅 다 사라진거임. 정말아무것도 남겨진게 없었음. 바로 경찰로 넘어가 신고를 했음. 경찰조서를 꾸미다가 회사 법적 소유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더라. 내가 관리를 맡긴 조선족이라고 대답하니 관리를맡겼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고 법적 소유자가 공장을 이전해 갔는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대답을 받았다. 틀린말 단 하나도 없었다.
잠시 옆으로 빠지자면 그때 실의에 빠져 정말 다 포기하고 있었을 적, 현 와이프가 현금 카드를 한장 쓱 내밀면서 안에 80 만위엔 (그때 가치 한화 1 억정도)가 있으니 필요한만큼 가져다 써라 였음. 자기가 좀 모은 돈이랑 어머니(지금 장모)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빌린 돈이니 잘 쓰고 때 되면 갚으라는 것임. 그때 날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이기에 내가 버는 모든 돈은 와이프가 관리하고 있고 나도 전혀 불만이 없음. 그렇게 겨우 몸을 추스리고 다시 사업을 일으켰음. 아이폰 3S 가 나오면서 MP3 는 다 끝나고 MP4, MP5 등 여러 제품이 나왔지만 다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하고 광학 쪽으로 사업을 전환하였음. 그때 와이프가 안 도와 줬으면 아마 지금쯤 한국에서 그냥 저냥 살고 있을 것 같음. 중국 생활은 그냥 잠시 꾼 꿈처럼 잊어버렸겠지.
2020년인가 코로나 터지기 바로 전에 그때 딱 우리 품질하던 아가씨가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 두었음. 출하도 바로 코 앞이라 좀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쌍둥이를 낳는 바람에 말도 못꺼내고 몸조리 잘하라고 했음. 결국 소개 소개로 조선족이 하나 들어왔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4 살적고 흑룡강 고향이라고 함. 신분증에도 고향이 흑룡강이라고 적혀있었고. 어떻게 어떻게 검수 잘해서 출하가 되었는데 그 후로 이놈이 좀 이상한거임. 내가 한국 고객이랑 통화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가까이 와서 딴짓하는 척하면서 통화 내용 듣고, 맨날 칼퇴하던 놈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퇴근할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하고. 내가 퇴근하기전 항상 노트북을 절전으로 해 놓고 퇴근해서 좀다행이긴한데, 출근하면 노트 위치가 조금씩 바뀌는거임. 이상하다….싶었지.
그러던 어느날 고객이랑 또 통화를 하는데 나한테 위쳇으로 누가 자기를 추가했다는 거임. 그러면서 사장님은 아실 필요없고 뭐 필요하신거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주시면 싸게 드릴수 있다고 그렇게 말이 왔다는 거임. 프로필 봤더니 새로 들어온 품질인거. 역시 근본은 속일수가 없구나 라는 걸 새삼 또 깨닫고 바로 내보냈음.
아무튼 난 정말 사람이 없어서 급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절대 조선족을 쓰지 않음. 날 거쳐간 직원들이 아무리 못해도 500 명은될껀데 의리있고 착하고 정말 성실하게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한족이 훨씬 많음. 인터뷰 할때도 한족은자기 소개부터 하지만 조선족은 내 회사 소개부터 해줘야함. 자기들이 무슨 한족보다 낫다고 급여도 훨씬 많이 줘야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못찾겠음. “에이 사장님. 그래도 조선족인데 한족이랑 같은 월급을 주시면 되나요?” 이런 개소리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음. 학력 훨씬 좋고 성실한 한족들 얼마나 많은데. 나가 이 새끼야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4 글을 마치며>
사실 우리 주변에 조선족들이 많다. 중국내에선 품질, 회계, 영업,생산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한국인들과 일하고 있고 국내에선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 어려운일,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 하나인, 같이 협력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거. 근데 왜 난 아직 그런 조선족을 한번도 못만나 봤을까. 추천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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