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정용진이 불쌍하다


일베와 같은 '사회의 하수구' 안에서 통용되는 말들이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보자.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기호나 상징으로 숨겨 놓는 것은 소극적 정치 의사의 표현으로 일종의 '정치적 욕망'과 연관돼 있다. 이런 행위는 특정 상징을 알아보는 사람들끼리 비밀을 공유하는 '내부적 유대감'을 주면서 "나는 대중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지적, 정치적 우월감도 충족해 준다. 직접적인 발언이 사회적, 법적 제약을 받을 때 이런 상징물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연일 뿐'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라는 심리다.

좀 더 나아가면 영역 표시와 권력 과시 공간을 비밀리에 전유해, 공적 공간에 자신의 표식을 남김으로서 그 영역을 정신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일종의 '샤먼'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대중의 무의식 속에 상징을 노출시켜 은밀하게 동조자를 모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극단적 진영에서 주로 통용된다. 무엇보다 그럴듯한 건 '유희적 본능'이 이런 '놀이'에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행위자는 '이스터 에그'를 일종의 게임처럼 즐기고, 감시망을 피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 심리적 쾌감을 느낀다.


정용진 회장은 본의와 상관없이 이런 놀이들이 행해질 수 있는 판을 조성해 준 꼴이다. '멸공 챌린지' 같은 극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상징과 구호를 사용하는 순간, 그의 사회적 영향력은 일베와 같은 '사회의 하수구'에 울타리를 개방해 주는 효과를 낳는다. 정용진은 그들이 공유하는 수많은 구호 가운데 '멸공'만을 택했을 뿐이지만, 도그 휘슬에 반응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스펙트럼은 '반페미니즘'부터 '인종주의', '윤어게인', '장애인 차별'까지 넓고도 깊다. 정용진은 작은 '둑'을 건드렸지만, 결과적으로 극우적 사상의 다양한 스펙트럼들에 사회적 진출의 물꼬를 열어준 셈이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이스터 에그' 찾기 방식으로.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정용진 회장이 차라리 불쌍하다. 그의 죄가 있다면 '무지'다. 역사에 무지하고 세상에 무지하다. 여기에 치기어린 '나르시시즘'이 결합됐다. 공자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지혜는 적은데 재산이 많고 덕은 없는데 과시욕이 넘치면 세상은 그에게 반드시 화를 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