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7시.... 난 현실에서의 준비가 끝났다.

"여보, 오늘 꼭 템 먹어! 화이팅!"
"응.."

후다닥 해치운 외식과 함께 케익샵에 들려 티라미슈 한조각을 포장한 것으로 오늘 난 12시까지 자유다.
후후후, 내 나이 사십대 중반, 와우 힐러 10년차, 이 정도의 통금 해제 스킬은 식은 죽 먹기다.

30분만 있으면 '달력 예약'을 해뒀으니 길팟 초대가 날라올 것이다.
서둘러 특화 300 요리를 굽고, 비릿하게 웃는 노미녀석에게 뻐규를 날려주며 주방을 빠져나간다.

옆방의 아이언포지 포탈을 탄다.
로딩 시간이 좀 걸리자 '디스코드' 채널을 찾아 들어가 섬세하게 스피커의 음량을 조절한다.
긴 레이드에 공대장님의 복음을 경청하기에는 스피커만하게 없다.
나 같은 와재에게 헤드셋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귀에 땀이 차기에 갖다버린 헤드셋만 세개다.

'쿠쿠쿠, 영약값이 똥값이군. 역시 연금술따위는 안하길 잘했어."
경매 물품을 클릭하며 내심 바보인 줄 아는 위안을 늘어놓는다.
영약과 고대 물약값으로 4000골드 남짓 지불하는 것 쯤은 아깝지 않다.
다 득템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리라. 내 마나를 태워 공대 피를 맘껏 채우리라!

- 달초 예약하신 분 길팟 먼저 초대합니다.
길팟 부공대장 판다님의 녹색 메시지가 울려퍼진다.

"어헛! 벌써 시간이? 손! 손!"
급히 공대 초청을 받고 휘리릭 귀환을 탄다. 어둑 어둑한 분위기의 수라마르 전진기지다.
'나는 확고니까.' 라고 피식거리며 우체통에서 경매물품을 차근 차근 챙기며 포탈 앞에 선다.

후다닥 포탈을 타자마자 늑대 정령으로 달려간다. 달리기는 술사의 기본 아닌가...
몹이야 달라붙어도 나의 추종자의 이속 100%의 버프는 그들을 떨쳐내기에 충분하다.
녹색 포탈을 클릭해 밤의 요새에 진입한다.

'후욱! 오늘의 시드는 나다! 사슬아~ 쏟아져라~~'

"오옷? 어서오세요. 공대원들이 아직이네요."
"들어가요, 오늘은 흑마님 있어요. 안에서 솬해요."

좀 있다가 후다닥 달려오는 공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혹시 개망시드가 뜰까봐 방금 도착한 척  문앞에서 기다리는 나는... 와재의 표상이리라.

**      **     **

밤 11시 드디어 굴단 녀석 앞이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지축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간혹 맘씨 좋은 드루님께서 '자극'을 주셨을 뿐이다. 모든 드루는 착하다.

'그래... 리카운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하긴... 힐량 꼴지인 와재 복술에게 지축이라는 축복은 가당찮다.

'이 모든 오욕은 저놈만 벗기면 끝나는 거야!'

굴단 녀석이 입고 있는 치마인지 바지인지 헷갈리는 아랫도리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번들거리는 폼이 딱 봐도 티어다.
공찾에서 허접 망토 티어하나를 건졌으니, 저것만 있으면 나도 2셋이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날 리 없다.
와재는 공대장 말씀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따를 뿐이다.
뭉치라면 뭉치고 바닥 피하라고 하면 공대장이 달려가는 쪽으로 냅다 달릴 뿐이다.

"아, 수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을 알리는 공대장님 말씀에 따라 딸피인 굴단에게 치토와 정고를 던졌다.
끝내 불리지 않은 나의 힐업기...

- ESC!

굴단 녀석이 죽는 장면이야 와재라면 벌써 유투브에서 충분히 감상했다.
순식간에 길원들의 보라색 탬이 주르륵 뜬다. 환호성과 한숨이 교차한다. 걔중에는 티어도 있다.
죄다 판금. 가죽 근딜... 나눔부터가 불가능이다.

'전쟁벼림? 후후... 난 티탄벼림을 띄울 것이다. 오늘 나는 첫 킬이거든!'

나는 천천히 전리품 상자를 향해 걸어가며 코인 하나를 하늘 높이 던져서 받았다.

'쳇! 역시 유물이군. 망할 블리자드 놈들...'

코인으로 티어를 먹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와재로서 그런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것은 경험치만큼이나 충분한 데이터가 있다.


'떠라! 티어! 티탄벼림!'

- 두둥.... ????

'어?... 어???'

...

'뭐지? 왜? 골드가 들어오지?'

난 그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주는 굴단을 보지도 못했다. 마눌 통금시간에 걸려 중탈했기 때문이었다.
첫킬이 분명하다.

"야~~ 굴단! 너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야... 너 누우면 옷 벗어주기로 했잖아... 바지! 시바...치마든 나발이든! 아무튼 그..그거 주기로 했잖아...야~~"

'그래...뭔가 잘못됐어...내가 흘린거야. 죽은 놈이 바지를 상자에 둘리 없잖아.'

나는 반짝이는 뭔가를 찾기 위해 바닥을 두리번 거렸다.

누군가 툭하고 부딪힌다.
얼굴을 들어보니 일리단 형님이시다.
불성때부터 준비가 안됐다고 말씀하신 그분...
아니...손가락 고자임을 증명케해 '검사' 공대에서 날 뺀지 놓게하고, 
결국 냥꾼을 접고 복술로 돌아서게 한 바로 그 *방새다.

"수고했다. 굴단은...."

일리단 *방새가 날 보고 비릿하게 웃으며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굴단을 죽인 놈은 나라고.  니가 뭘 했다고 웃는거야? 왜!!!

"&&**$$% 야 %%^^&*  내 바지!!!! 니가 가져간겨? 엉? 야! 일리단!!"

**      **

"아빠, 그냥 오버워치해! 맨날 템 못었다고 그러지 말고."
"닥쳐. 아들!'

"여보, 끝났으면 그만 자자. 서재 난방 끄고 와... 후함~"
"넹!"

P.S. 그러고 보니 어제 시드 망시드였다고 길드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누구 시드였나고...
나 또한 멘붕시드라고 투덜거리며, 내일 보자는 인사와 함께 조용히 종료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