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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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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
[20년 와생 회고 8편] 군단 - 첫 월급은 작았고, 그 버프는 내 것이 아니었다지옥불 성채 신화를 트라이하던 중에 나는 공대를 나왔다.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사이 아제로스에는 군단이 쳐들어왔다. 취업 연계 교육에서 소개해 준 회사는 당연히 좋은 곳이 아니었다. 직원 열서너 명 남짓한 작은 회사였다. 개발팀으로 들어갔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기술 영업이었다. 사장님은 어느 중견 장비 회사 대표의 동생이었고, 형님 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몇 없는 회사였다. 첫 월급은 세금을 떼고 140만 원 언저리였다. 그래도 소중했다.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났다.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석사를 조금 했다고 반년 만에 승진도 시켜줬고, 월급도 조금 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오래 버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다섯 달째, 탈출 준비를 시작했다. 토익 학원을 다시 등록했다. 퇴근하면 바로 학원으로 갔다. 백수 시절 취업 교육 시간에 인벤을 보던 내가, 이번엔 진짜로 공부를 했다. 1년이 채워지고 퇴직금이 나올 무렵, 좋은 기회로 이직을 했다. 이번에도 중소기업이었지만, 대학원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전공과는 조금 방향이 달라서 새로 공부할 게 많았다. 그래도 그때 쌓은 경험이 지금까지 내 일의 발판이 됐다.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던 대학원 1년이 그렇게 쓸모를 찾았다. 월급이 오르고 숨 쉴 여유가 생기자, 나는 또 와우를 켰다. 에메랄드의 악몽이 열렸다. 드레노어 시절 공대 친구들에게 연락했고, 다시 공대에 들어갔다. 반갑게 맞아줬다. 그 든든하던 냥꾼 아재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이번 회사는 야근이 정말 많았다. 백수 시절처럼 주 3일 레이드를 빠짐없이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겨우 시간을 맞춰 들어가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우르속을 잡던 무렵이었다. 딜 미터기를 볼 때마다 내 이름은 아래쪽에 있었다. 아무리 공략을 읽고 손을 맞춰 봐도 딜이 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야근이 이어졌다. 친구들에게 민폐가 되기 싫었다. 나는 또 공대를 나왔다. 이유를 알게 된 건 공대 나온 다음주였다. 그때 격냥에게는 딜 버프 스킬이 있었다. 버프가 뜨는 걸 보고 조사를 당겨야 했다. 그런데 나는 텔미웬 설정을 공대원 전체 버프로 잡아 두었다. 그 든든하던 냥꾼 아재의 버프가 뜨면, 그게 내 화면에 떴다. 나는 그걸 내 버프로 착각하고 매번 엉뚱한 타이밍에 조사를 당기고 있었다. 딜이 나올 리가 없었다. 드레노어 때 옆에 있어서 든든했던 그 아재는, 군단에서도 내 화면 속에서 나를 이끌고 있었다. 엉뚱한 방향으로. 원인을 찾던 날, 한참을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1레벨 스킬을 쓰고 다니던 오리지널부터, 77레벨까지 카라잔 활을 끼고 다니던 리치왕까지. 전구의 역사는 이렇게 또 한 줄 늘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설정 하나만 제대로 했다면 공대를 나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차피 야근과 현생에 밀려 나왔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블랙핸드를 잡으며 소리 지르던 백수는, 우르속 앞에서 조용히 로그아웃하는 직장인이 됐다. 그렇게 나의 군단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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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