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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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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8
[20년 와생 회고 마지막편 10] 한밤 - 이제 내가 그 아재였다현생은 적응한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퇴근하면 달렸고, 가끔 러닝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혹시 모를 퇴직 후를 위해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10킬로와 하프를 몇 번 뛰고,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달렸다. 3시간 52분. 서브4였다. 평균 심박 148. 경치를 보고, 길가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42킬로를 달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달리기였다. 자신감이 붙었다. 인터벌을 하고, 10킬로 40분대를 목표로 훈련했다. 그리고 2026년 4월, 두 번째 풀코스에 나갔다. 목표는 3시간 30분. 하지만 날이 너무 더웠다. 28킬로 지점부터 걸어서 들어왔다. 걸었으니 다리는 괜찮을 줄 알았다. 쉬어야 할 그다음 주 목요일, 나도 모르게 스프린트를 치다가 왼쪽 허벅지가 나갔다. 두 달 가까이 달리지 못했다. 뭘 할까 하다가, 나는 또 와우를 켰다. 정공들은 한창 르우라를 트라이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스트리머가 많아서 치지직과 유튜브만 봐도 공략이 쏟아졌다. 렙업을 하고, 쐐기를 돌고, 길드 레이드에도 한두 번 따라갔다. 그러다 한 스트리머의 직장인 시청자 공개팟에 들어가게 됐다. 5월부터 6월까지 매주, 르우라 영웅부터 신화 용까지 그 팟을 따라다녔다. 처음엔 못한다고 욕도 먹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즐거웠다. 예전 정공 시절, 내가 헛짓할 때마다 내 아이디를 외치던 공대장 친구의 목소리가 그리웠으니까.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르우라 대가리를 깨고 싶었다. 방송을 보니 주 2일로 시즌 끝까지 트라이하면 잡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성기사 트팟이 끝물이던 무렵, 알레부터 잡는 주 2일 공대에 여기저기 지원했다. 전부 거절당했다. 한 주가 흘렀고, 파티 찾기 게시판에 지난주와 같은 구인글이 또 올라와 있었다. 한 번 떨어진 곳이었지만 다시 지원했다. 이번엔 공대장이 나를 받아줬다. 알레를 앞두고 금칩 아저씨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봤다. 나 때문에 같은 트라이를 반복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옆에 있던 든든한 냥꾼 아재 덕분인지 알레는 금방 넘어갔다. 공대장 아저씨는 유쾌했다. 꺼드럭 타임도 가지고, 자기 계획보다 한 주 밀렸지만 괜찮다며 계속 응원했다. 말은 안 했지만 내 계획도 공대장 아저씨와 똑같았다. 그 무렵 파티 찾기에서 반가운 이름을 봤다. 드레노어 시절 공대장 친구가 구인글을 올리고 있었다. 연락했다. 다음에 같이 할 수 있겠냐고. 친구는 일단 르우라부터 잡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 공대는 시즌 마지막 주, 공대 일정의 정말 마지막 트라이에서 르우라를 잡았다. 다 같이 너드 스크림을 지르고 해산했다. 친구 공대에 들어갈 때 보여줄 로그를 만들고 싶었다. 영웅 99, 신화 90이 목표였다. 하지만 로그를 찍으러 간 공대에서, 도저히 죽을 이유가 없는 순간 힐을 못 받고 먼저 누웠다. 결국 80점 언저리의 신화 로그를 들고 맹독 심연에 들어갔다. 일반 난이도는 지난 시즌 템을 낀 야수 사냥꾼으로도 딜이 잘 나왔다. 불리한 네임드 몇을 빼면 상위권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할 만하구나. 민폐는 안 되겠구나. 하지만 이번 레이드는 격냥이어야 했다. 친구는 무빙이 많으니 야냥도 괜찮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영웅 초반엔 야냥으로 가다가, 줄잔부터 스스로 격냥으로 바꿨다. 조금이라도 더 치고 싶었다. 공대장 친구와 공대원들이 워낙 잘해서 첫 주에 울라텍을 잡았다. 나도 심장 딜을 열심히 넣었다. 매크로 실수로 본체를 친 트라이도 있었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이 미화됐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익숙하지 않은 격냥이었다. 딜은 점점 떨어졌다. 오프닝을 손에 익히려고 회사에서 메모장을 켜고 가상으로 버튼을 눌렀다. 2, 1, 1, Q, R, Alt+E, Alt+R, 2. 모니터 너머로 보고서를 쓰는 척하며 그 순서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르겠다. 주 2일, 하루 4시간 공대는 생각보다 빡셌다. 공대만 가면 끝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영웅 울라텍도 잡아야 했고, 쐐기도 돌아야 했다. 일주일 중 나흘을 와우에 써야 했다. 나는 아내에게 자격증 공부하러 스터디 카페에 간다고 말하고 PC방에 갔다. 지금 가장 현타가 오는 장면 중 하나다.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공대원들과 나의 차이가 벌어졌다. 딜 사이클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보스에 대한 익숙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캐로 영웅을 돌고 저신화까지 가고 있었다. 그 경험의 차이가 미터기에 고스란히 찍혔다. 피 대상자끼리 같이 맞고 나와 바닥을 깔아줘야 하는 패턴이 있었다. 나는 그걸 인지조차 못 하고 있다가 부공대장 친구에게 한 소리 들었다. 정말 몰랐다. 그 한마디 뒤에는 아마 다른 공대원들의 불만이 잔뜩 쌓여 있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이었을 것이다. 르우라 때는 한 주에 한 네임드씩, 트팟을 다니며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이번엔 눈 깜짝할 새 스즈라크 앞에 서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력을 메우기 위해 준비할 시간 자체가 달랐다. 내가 울라텍을 네 번 잡는 동안 공대장 친구와 공대원들은 열 번은 넘게 잡았을 것이다. 그때, 드레노어의 그 냥꾼 아재가 다시 생각났다. 옆에 있어서 든든했지만 실수가 많던 아재. 군단에선 그 아재의 버프를 내 것으로 착각했던 그 아재 이제 내가 그 아재였다. 그만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먼저 말할까, 아니면 오기로 끝까지 버텨볼까. 나는 버티는 쪽을 골랐다. 회사에서 몰래 인벤과 유튜브를 보며 준비했다. 출장을 다녀온 날에도 집에 가지 않고, 아내에게 일이 늦게 끝났다고 말한 뒤 공대에 들어갔다. 새벽 한 시에 집에 들어갔다. 공대장 친구는 분명 다른 공대원들의 불만을 들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에 있는 내게 다른 사람들의 딜 로그를 카톡으로 보내줬다. 또 다른 부공대장 친구는 영상을 찍어 공유해 줬다. 아내가 잠든 밤, 화장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그 영상을 봤다. 사실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았고, 보스에 익숙해질 만큼의 트라이 경험이 내게 없었을 뿐이다. 생존기를 제때 못 눌러 죽을 뻔한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힐러분들이 워낙 잘해서 살려준 거다 지난주엔 정말 칼을 갈고 들어갔다. NSRT와 빅윅 설정을 다 맞추고, 이때 이걸 누르고 저때 저걸 누르자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하지만 연습 없는 트라이는 실패를 부를 뿐이었다. 더 자주 죽었고, 딜은 더 안 나왔다. 초반 2~3분만 잘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 아내에게 일이 생겼다. 학부모 민원이 세게 들어왔다. 퇴근하고 공대에 가야 했지만, 나는 아내에게 갔다. 공대장 친구에게는 회사에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직장인이 댈 수 있는 가장 편한 핑계였다. 그리고 긴장했다. 공대에 한 번 빠지는 순간 나가야 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짐작은 맞았다. 친구는 담담하게 고생했다며, 정공은 여기까지 하자고 했다. 나도 민폐였다고, 고생했다고 답했다. 카톡은 그렇게 끝났다. 많은 말이 오갔을 것이다. 이해한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 친구들과 한 번 더 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바닥 밟는다고 내 아이디를 외치던 그 목소리가 그리웠던 사람이다. 현생을 말아먹으면서도 와생만큼은 즐거웠던 그 시절이, 나름의 내 고점이었으니까. 지난주 블리즈컨에서 와우 포에버 소식이 나왔다.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 시절의 향수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곳에 가도 나와 같이 캠핑하던 얼라 만렙은 없다. 메아리섬에서 100골을 쥐여주던 형도 없다. 그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이 없는데, 무엇으로 추억을 보정할 수 있을까.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소중한 건 결국 그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달려갔다가 카톡을 받은 내 표정을 보고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넘겼다. 잠들기 전에 아내에게 털어놨다. 정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있었다고. 그 시절 너무 행복했다고. 최근에 다시 시작해서 좋은 추억을 한 번 더 쌓고 싶었다고. 그런데 늙어버린 손가락으로, 시간을 무한정 쏟을 수도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여기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조금 더 여유로운 팟에서 계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최고의 와우는 이제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터디 카페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PC방에 앉아 있는 나, 부상으로 달리지 못하고 10킬로 가까이 불어버린 내 몸을 보면 그만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어제, 20년 된 트롤 사냥꾼을 지웠다. 길드 창에서 내 캐릭터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 보고 귓말을 건네주신 길드원분, 감사합니다. 나중에 길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아 이 고마움을 전하지 못할까 봐, 같은 이름으로 1레벨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뒀습니다. 아마 다시 접속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게임 친구들아. 나름 행복하게 했다. 4주 동안 들떠서 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짧은 인연이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예전처럼 좀 뭐라고 하지. 네 오더가 그리웠다. 거북이 켜라는 소리도 즐거웠고, 심장 징표 박으라는 소리도 즐거웠다. 내가 못 따라가서 이제 같이 게임할 일은 없겠지만, 가끔 생각날 것 같다. 어제부터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도 늦게 자지만, 오늘은 점심시간에 쪽잠 대신 커피를 들고 산책을 했다. 걷다가 문득 어디선가 쇼츠로 스쳐 본 BMK의 「꽃피던 봄이 오면」이 떠올랐다. 찬란했던 봄날이 꼭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다는 그 노래.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와우가 아니었다. 그 찰나 같던, 찬란한 시절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쉬어도 된다며 와우를 다시 깔지 않았다면, 20년이나 이 게임을 붙잡고 있었을까. 그래도 부러진송곳니 앞의 열흘과, 메아리섬에서 오그리마까지 형과 나란히 달리던 그 길은 후회하지 않는다. 2006년, 기숙사 방에서 이 이름으로 처음 아제로스에 발을 디뎠다. 그동안 고마웠다, 아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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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