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서 도망친 직후의 얼굴로 깨어난 엘리스였지만 그녀를 지켜보고있던 마오카이에게는 '기절한 사람이 갑자기 놀란듯이 일어난'것밖으로 보였다.

"일어났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게 믿기지않다는듯 계속 천장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건넨 대사.

"일주일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있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나 지났어...?'

 하긴 자신이 스파링 시스템이 끝난 이후에도 싸움이 있었고 카사딘에게 받은 데미지를 생각해보면 빈사상태까지 가야하는게 정상이었다. 일주일동안 엘리스가 겪은 상태역시 치명적인 상태였지만 생사를 넘나들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리신은 지금 제자들에게 수련을 시키고있는 중이다. 야외수련장이 절반이나 파괴되었지만, 제자들과 같이 힘을 써서 어떻게든 복구해냈다. 그래봤자 무너진 돌담을 쌓고 뒤엎어진 토지를 가지런히 정비시킨것밖에 없지만."
"그래. 다행이다."
"너는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놀랍지 않은건가 엘리스? 제몸을 원하는대로 다룰수 있는 지금의 너에 대해서?"
 이말을 듣자 멍때린채 마오카이의 말에만 반응했던 그녀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전신을 강타한게 분명한데 몸이 두동강나거나 피부가 벗겨져나기는커녕 그녀가 당시 입고있던 복장에 흠집하나 나있지않았다. 소리없이 놀란 그녀는 마오카이를 향해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을 놓치지않고 마오카이가 물었다.

"너, 아무에게도 말하지않은 비밀이 있는건가."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음으로써 빠른 대답을 했다.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면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녀역시 알고있다.


 

 자신이 예전의 그 모습으로 카사딘과 싸웠다는 사실을.


 

"말해라. 뭔가 넌 알고있을것 같은데."

"..."
 직감으로만 말하자니 마오카이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되지않은게 뻔하고 가설을 세워서 말하기에는 부정확한 정보만 제공할것같기에 엘리스는 말을 아꼈다. 진실... 진실을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마음속 깊은곳에 담아놓은 채.

"어쨌든, 이걸 작성해서 제출해라. 네가 '프리실라'라는 가명으로 아이오니아에 입국한 이상, 네가 이곳에 오는게 사실상 불가능했음에도 들어온 이상, 아이오니아의 장로들이 네 한달간의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더군. 너와 같이 입국해서그런지몰라도, 나를 불러서 이 서류를 건네더군."
 그녀는 서류를 받으려 손을 내밀기전에 지난 한달을 생각했다. 자신의 용기 혹은 고집으로인해 이곳에 왔고 적지않은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엇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날짜를 보니 벌서 9월을 바라보는 시기다. 4개월. 얼마나 아이오니아에 머물러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리신에게 말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감정도...'

'감정을 되찾아서 감성팔이나 하려는 악녀는 필요없다구. 네 얘기를 들어줄법한 빈민가를 알려줄테니 거기가서 실컷 자기만족이라도 느끼던가.'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 대한 단어를 생각하는것만으로도 카사딘의 독설이 줄지어 떠올랐다. 감정을 되찾으려는게, 다시 느껴보려는게 감성팔이라... 엘리스는 감성팔이가 어떤뜻인지는 정확힌 모르지만 분명히 감정에만 치중한채 무언가를 활동하려는 사람을 낮춰부르는말일거라 어림잡았다.

"마오카이."
"..."
"넌 내가 감정을 되찾으려한다는 행위가 우스워보여?"
 보통사람의 덩치보다 훨씬 큰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자신의 목표가 우스워보이냐는 물음이 언제나오는지 마오카이는 알고있었다. 그녀의 편에서 꾸준히 있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의견을 말해야할때라고 생각했다.

"우습지 않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을뿐이지."
"뭐라고?"
"썩은 아귀가 어째서 너의 감정을 다뤘는지 알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세상사람들은 감정보다 이성을 사용해서 살아간다. 아무리 슬퍼도 오랫동안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있듯이, 아무리 화가나서 사람을 죽였다해도 그 사람이 저지른 살인이 정당화되기에는 많은 당위성이 요구되지. 그걸 판단하는 당위성의 기준이 바로 이성이다. '이럴때는 이러는게 정상이다'라고 근거하는 논리적인 생각이 감정을 포용하는게 현실이지. 그런면에서, 난 카사딘의 견해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군."


 마오카이의 대답은 진솔했고 엘리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티가 났다. 다만, 마지막 말이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독으로 변질시켰다.

"그 말은..."

"엘리스. 내 말을 좀 더 곰곰히 생각해봐라."

"아냐, 됐어. 마오카이. 내가 물어봤잖아. 너는 그에 맞는 행동을 한거야. 그래. 맞아."

'마오카이의 말엔 일리가 있다. 그런 그가 카사딘의 견해와 상통한다. 그럼, 카사딘이 나에게 독설을 퍼부었다는것도 일리가 있는 뜻이야. 그럼 나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걸 직접 느껴봐야겠지.'

 엘리스는 이곳에서 수련을 받던 지난날보다 훨씬 가벼운 몸을 일으켜 리신을 찾으러 나갔다.

"엘리스, 리신은..."
"알아. 기다릴거야. 그의 일이 끝날때까지."

 제자들에게 수련을 시키면서도 리신은 그동안과는 다른 느낌을 인지하고있었다.

'그대가 소인을 지켜보고있구려.'

"잠시, 쉬는시간을 갖겠소."
 2시간동안 멀찌감찌 떨어져서 자신을 응시하는 엘리스의 시선을 모른채 넘어갈 수 없었는지, 리신은 평소에는 없었던 휴식쉬간을 준 다음 엘리스에게 다가갔다.

"가급적 제자들의 눈에 띄는곳에 있지 말아달라 부탁한것 같다만, 엘리스."
"다름이 아니라 리신, 부탁할게 하나가 있어."
"뭐요."
"내가 저지른 짓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을 줘."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