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년 4월 15일, 베니스.

평소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매월 말에 수입과 지출에 관한 매상장부를 정리하거나 상관에 납품할 물품 목록 따위를 적어 교역소의 도제들에게 보내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소하고 교육만 받는다면 누구든지 쓸 수 있는 것이므로 인생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기록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선대에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것이다. 만약 완벽하게 일지를 완성시킨다면 후대의 모험가와 상인들에게 커다란 지표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에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기록이라 자부한다.
내가 베니스인들 중에서 최초로 향료섬까지 개척할 것이라는 빌어먹을 소식을 들은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상회의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인도산 홍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어 들어온 여동생 아그네스는 질질 끌리는 드레스자락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나의 책상 앞까지 뛰어왔다.

“소식 들었어?”

노란색 머리가 실컷 헝크러지고 유럽에서 유행한다는 수은 화장품이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죽을사람처럼 보여서 그녀의 얼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비밀처럼 간직해온 소식을 꽁꽁 숨기고 있는데 당장 말해버리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죽을 사람처럼 보여서 안쓰러워 보이는데도 어린애처럼 초롱초롱한 눈은 그녀가 아직 건강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히 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있자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다짜고짜 내뱉는 말로 나는 순간 기겁할 뻔 했다.  

“오빠가 향료섬에 가게됐어!” 

“푸흅!!”

듣자마자 입에 머금은 홍차를 내뿜었다. 곧장 손수건으로 더러워진 책상과 입을 닦고 그녀에게 못 믿겠다고 했지만 분명히 그러한 전보가 집으로 날아왔다고 흥분하며 말했다. 아그네스가 아무리 장난을 좋아하는 왈가닥이라도 남을 속이는 장난은 절대 하지 않을 아이란 걸 알기에 나는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곳에 보낼 인물을 찾는 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 맙소사’ 하고 내뱉은 것은 아버지가 조합의 마스터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전보를 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하나님 맙소사……”

향료섬에 간다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항로와 거점이 완성되어 있는 포루투갈은 몰라도 백지상태의 영국상선이 여왕의 후원금을 받아 막대한 거금을 들여 향료섬까지 항해를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전체의 1/3이나 1/4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괴혈병과 이질은 함장이라고해서 피해가는 병이 아니었다. 따라서 함장이나 항해사같은 중요인물이 죽어버려서 책임자가 전임되거나 항해가 중단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나는 이 망할 소식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곧장 상회의 마스터에게갔다. 동생 아그네스도 뭐가 좋은지 드레스 윗단을 손으로 치켜올리고 총총거리며 나의 뒤를 쫓아왔다. 
아그네스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집안의 아가씨처럼 예쁜 옷과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사치품들을 돈이 있는데로 사들이는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하지만 워낙에 활동적인 성격이였기에 어릴 적부터 이렇게 뛰는 걸 좋아했다. 아그네스가 타고 온 마차를 타고 상회 건물까지 도착한 뒤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거의 뛰다시피하여 조합 마스터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대충 옷가짐을 단정하게 고친 뒤 형식적인 노크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가자 조합 마스터 조르지오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상회의 영원한 돈 줄, 마르코 베르티 아닌가. 마침 잘 왔네. 자네에게 해줄 말이 있었어. 차를 마시겠나?”

자리에 앉자마자 새로운 향신료 항로 개척의 총대를 맨 것이 나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향신료 항로 개척건으로 문의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뵙습니다. 듣기론 제가 가기로 결정됐다던데요.”

조르지오는 그 말에 괜히 놀라는 척 하면서 습관적으로 콧수염을 어루만졌다.

“그런가? 축하하네.”

“어째서 저인가요? 왜죠?”

그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지 나에게 자리에 앉길 권유했고 그에 따르자 그도 자리에 앉아서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상회는 페르세포네 상회와 상전중이네.”

상전이란 상회끼리의 전쟁을 뜻한다. 행상인이나 장인, 환전상등, 지상에서 돈을 버는 조합도 영향력 있는 상회들끼리 상전을 벌이면 나라 전체가 뒤집힐 정도로 극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거기에 소비 되는 돈은 무역항 하나를 새로 지을 정도로 막대하다. 
대부분 일시적인 시세 폭락이나 시세 폭등, 혹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정도로 재화의 보급이 급증하거나 상품의 반영구적인 단절 등으로 상회가 상회를 돈으로 망하게 만들기 위해 벌이는 소모전은 상회가 도산하거나 합병 될 때까지 계속된다.
지상에서의 상전이 이 정도인데 그 보다 큰 규모인 바다에서의 상전을 벌인다면 상상도 못할 만큼의 자본이 소요된다. 벌써 베니스의 이름있는 상인들 몇 명이 막대한 타격을 받아 프랑스와 오스만 투르크로 귀화하거나 혹은 전문 군인이되어 투르크와의 전쟁에 참전했다. 철저하게 망해버린 상인들은 다시 회복할 수도 없어서 행상인이 되거나 시골에서 조그만 가게를 지어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르지오씨는 하인이 내온 차를 마신 뒤 얘기를 계속했다.

“페르세포네에서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란 것도 자네는 알고 있을 것이네.”

“저희 상회가 그들에게 맞춰서 신항로 개척을 준비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일전의 회의에서 이미 결정이 난 사항입니다.”

“반대표를 내건 사람들 대부분이 파산했어.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우리 상회의 일원이 아니야.”

투표 결과를 자신의 주관대로 맞춘 것 같아서 분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반론을 펴도 불리한 건 나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그의 말에 수긍했다.

“우리 상회에 남은 것이라곤 늙은이들과 상전을 치르기 위해 프랑스,런던.. 제노바로 원정을 떠나 몇 달째 소식이 두절 된 상인들…… 아마도 페르세포네에서 손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쨋건 간에 전쟁 자금과 무기 시장을 확보하러 나간 상인들 말고는 자네밖에 인물이 없어.”

“말도 안돼…….”

신항로를 개척하라는 말은 아버지가 상회 마스터에서 물러났을 때 보다 충격이라고 앞서 말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후계자를 내가 아닌 지아니씨에게 정한 것은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지아니씨는 상회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마스터를 맞게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스터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살 당하고 그 뒤 제라르도, 코시오씨가 차례로 그 자리에 올랐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조르지오씨가 마스터가 되었다. 벌써 3년이나 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으니 그들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는 청진기를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의 말을 어긴다는 건 곧 앞서 죽거나 행방이 묘연해진 상인들의 뒤를 걷고 싶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나는 베니스에서 영향력있고 명성이 있는 상인이었으므로 조르지오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후계자의 자리는 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1인자를 언제 박차고 나올지 모르는 2인자를 용케 살려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하지만 이번에 향료섬에 가라는 말은 날 죽이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막말로 난 이미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약만 안썼을 뿐, 타지에서 배와 보급품만 듬뿍 갖고 질병과 해적에게 당하여 죽어버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혼자 죽으면 심심할까봐 선원 몇 백명까지 함께 넣어서 말이다. 친절도 하셔라...
아마도 앞서 저 세상에 가버린 사람들에 비해서 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신항로 개척이라는 명분을 통해 죽이려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무척 우울해졌다.

“자네는 우리 상회의 미래야. 나는 자네에게 크나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네.”

하고 서류를 두 장 내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살인 계획에 성공한 암살자 같은 표정이었다.

“투자자들이 지원해준 돈과 향료섬에 가기에 적합한 인재들. 그리고 자네가 직접 설득하여 데려와줬으면 하는 항해자들의 목록이 적혀있네. 제독의 권한과 이 일에 필요한 투자자금 모두를 자네에게 인계 할 거야. 준비 기간을 2개월 주겠어. 그 때까지 책임지고 모조리 자네 배에 태우게.  페르세포네에게 빼앗기기 전에. 배는 우리가 준비해둘 것이네.”

문서를 뾰루퉁하게 받아보고서 나는 순간 기절할뻔했다. 항해자들의 목록을 생각 없이 대충 훑어본 뒤 투자금액이 얼마인지 세어보았더니… 

신께서도 놀랄 만한 금액, 27만 듀카트가 버젓히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이시여….

27만 듀카트는 내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날 죽이려는 게 아닌, 정말로 진지하게 페르세포네보다 먼저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라는 것을 이 막대한 투자자금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문서로 마음에 완전히 바뀌어버린 나는 조르지오씨에게 인사한 뒤 곧장 목록에 적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상회를 나왔다. 마차에 올라서 아그네스에게 내가 때 돈을 벌게 되었으며 이 목록대로 사람들을 배에 태워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 일 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사람을 찾는 일에 자기도 끼워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별로 도움이 안되는 녀석이었기에 그냥 집에서 옷이나 골라 입으며 놀라고했다. 그러자 쌍욕을 내뱉으며 마차에서 내쫓고는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발에 땀이 나도록 베니스 거리를 돌아다녀야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유럽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목공장 알렉산드로. (그는 베니스의 조선소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달에 이미 페르세포네의...”

뭐 한 명은 페르세포네에게 빼앗겼다고 치고, 다음으로 서아프리카까지 항해 경력이 있는 포루투갈 출신 군인, 그렘턴.

이틀간 수소문해서 그가 있다는 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얼마 전 전쟁터에서 대포를 맞고 어깨 하나가 완전히 날아가 있었다. 이 때는 아그네스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기이한 형상을 보며 용케 살아있구나하며 신기해했다. 동방에서 온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는 것 처럼 한 2분쯤 넉넋고 쳐다보았을 것이다. 상대는 낭패하는 표정이었지만.
다음 날 항해사를 부탁하기 위해 다시 찾아갔을 땐 심한 열병이 걸려서 오늘 내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그 다음 날에 저세상으로 갔다고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항해사겸 모험가 바드로.
집에 찾아갔더니 오스만 투르크 오지에서 악어에게 물려 사망. 불쌍한 그의 아네 바질…..

퇴역 군인 아르만도.
현재는 해적. (현상금이 내걸린 수배지를 보고 알았다.)

항해사 올딘, 사르마딘, 지아니, 모렐리, 기타 13명. 
실망스럽게도 페르세포네의 배에 탑승하기로 결정.

이들을 일주일 동안 등골이 휘도록 찾아다니다가 문득 마차에서 골아 떨어진 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신경쓰이는 일로 심기가 안 좋을 때마다 도지는 불면증이었다. 울컥 짜증섞인 화가 나서 내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그러자 마부는 나와 동생이 어깨가 날아가버린 그렘턴을보며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날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 곱게 생긴 귀족이 시골 촌놈처럼 성질을 부리니까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