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건 음역/완역의 문제라기보단 
사람들이 기존 레가시 식의 디아블로2를 20여년동안 해왔다는 것이 
기존 유저들이 다투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오히려 리저렉션 완역의 경우에는 번역한 분들이 직관적으로 더 걸맞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기존 레가시의 음역/완역 혼용 위주의 번역에서 철저한 완역 위주의 한국 정서에 스며들 수 있는 게임으로 통일성 있게 변화 시키려고 기획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예시를 몇개 보여드릴게요





천저天底, nadir

천구상에서 천정과 반대인, 아래쪽의 교점을 말한다.

레가시 이름 '천저'에서 리저렉션 '구렁텅이'로 바뀌었죠
천저라는 용어가 오히려 일반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한자용어입니다.
검색 전에는 그 뜻을 알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지 않은 단어죠.
그에 반해 구렁텅이라는 뜻은 완전히 뜻이 같진 않더라도 같은 느낌의 방향성을 제시한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번역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다는 말도 각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표현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100% 번역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죠.
다만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때 지금 당장이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천저/구렁텅이에 대해 물어본다면 후자는 대부분이 알아들으실 거예요. 더 쉽게 표현한 번역이라는 거죠.




섬망譫妄, delirium


병의 일종인 섬망(delirium)이 대표위원(delegate)이라고 완전 오역 된 룬워드 아이템입니다.
이건 당시 번역을 한 사람의 완벽한 실수(혹은 그 정도 능력)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해당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는 
리저렉션에서 이 아이템을 만들기엔 불가능에 가까워서 딱히 없었죠.
그래서 아마 이 룬워드는 리저렉션에서도 '섬망' 혹은 다른 정신병의 이름으로 바뀌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Slain monsters rest in peace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몬스터를 무찔러라로 번역한 것 역시 완벽한 오역입니다.
번역하신 분이 영미권 'Rest In Peace, 편히 잠 드소서' 어구의 의미를 아예 모른 상태에서 번역을 한 듯 싶습니다.
해당 문구가 게임 내 아이템 옵션인 걸 감안한다면
'몬스터가 되살아나지 못함' 혹은 '처치 된 몬스터가 안식에 듭니다' 정도로 하는게 더 바람직한 번역이었을 겁니다.




말이 많았던 번역 중 하나죠.
왜 기존 고유 명사 모닝스타를 냅두고 굳이 북한말처럼 샛별곤봉으로 바꾸었냐 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근데 모닝스타 역시 영미권 고유명사가 아니란 사실 아시나요?
모닝스타는 원래 독일에서 만들어진 'Morgenstern(모르겐슈테른)'이 고유 명칭이며 메이스(곤봉)류 무기입니다.
별 모양의 머리부분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며 갑옷을 입고 있는 중장갑 기사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해서 
중세시대에 보병들에게 각광받던 무기류죠. 
그런 별모양 무기에 아침에 떠오르는 별 모르겐슈테른 = 모닝스타 = 금성 = 샛별 을 상징을 더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오히려 영어권에 들어와 독일식 모르겐슈테른이 영어식으로 완역된게 모닝스타입니다.
독일식 이름을 딴 무기들이 디아블로2에 몇개 더 있는 걸로 봐서
정말 굳~~~이 따지자면 블리자드가 통일성을 좀 더 주는 노력을 하여 
모닝스타라고 할게 아니라 영어판으로도 모르겐슈테른으로 표기했어야 하는게 맞다는거죠.
따라서 애초에 영어 기원도 아닐 뿐더러 이를 다시 온전히 한글로 변화시킨 샛별곤봉이라는 단어가 
아예 원작 파괴수준으로 망쳤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한국 유저들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아니죠.
20여년을 모닝스타로 번역된 상태로 불러왔는데 하루아침에 샛별곤봉이라고 하니까 장난감 느낌이 드는 경향도 있구요.

번외로
Flamberge(플람베르쥬, 물결(혹은 불길(flame)모양 이라고도 함) 모양의 검)-프랑스어이기도 함, Zweihänder(쯔바이핸더,양손 검) 
각각 레가시에서 독일식 발음의 무기가 이렇게 번역이 되었죠.
근데 이 중 쯔바이핸더는 양손 검이라는 뜻으로 디아2 내의 투핸디드소드와 뜻이 똑같은 검입니다.
물론 영미권 투핸드소드와 독일의 쯔바이핸더가 같은 모양, 같은 용도는 아닐 수 있지만 결국 번역하면 이것도 
독일-영어판 샛별곤봉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블리자드부터가 어떤건 독일식으로 그냥 냅두고, 어떤건 영어로 완역하고 
애초에 블리자드의 행보 부터가 이도저도 아니었다는거죠.

외에 룬워드 Leaf는 꽃잎(영어로 꽃잎은 petal)이 리저렉션에선 잎새(영어로 leaf)로 올바르게 번역되었고요
룬워드 Stealth는 원래대로라면 은폐가 맞으나 현재 블리자드 게임 내에서는 은폐는 Cloak로 통일되어 있었고 같은 의미의 잠행으로 올바르게 스텔스라는 음역에서 한국식에 가깝게 변화된 것 입니다.

그리고 레가시에서는 대부분의 아이템 이름들은 해석한게 아니라 그대로 음역을 했는데 
(예: 크루드 스컬 캡)
룬워드 번역에는 갑자기 또 완역을 한 아이템 이름들이 나옵니다.
아뮬렛, 링등 기존엔 다 음역이면서 
룬워드에는 갑자기 꽃잎,수수께끼로 완역이 나오는게 오히려 통일성을 헤치는 엉망 번역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이번 리저렉션에서 스텔스가 잠행으로 바뀌는것에는 예민한데 이니그마가 왜 수수께끼냐고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중국식번역이다, 북한식이다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떡대같은 단어도 버젓이 국어사전 등재된 단어로
짐승같은 사람이라는뜻의 Brute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완역에 있어서 이상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액트1 다크우드의 고유 괴물 Treehead Woodfist(트리헤드 우드피스트)는 '나무머리 목주먹'이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나오긴 했습니다. 
Tree와 Wood 둘 다 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바로 변환하면 나무머리 나무주먹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해져버리죠. 
이런 경우에 한자어 목木을 사용하여 중복되지 않게 음역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봅니다만 
그럼에도 어색한 건 언어의 차이에서 올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타 문화의 내용을 완역했을 때 생길 수 있는 필연적인 문제점인 셈이죠.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베타였기 때문에 언제든 문의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베타'잖아요

여하튼

이렇게 글을 써서 제가 리저렉션 완역 옹호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음역 완역 둘 다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대거를 단검으로 번역하든 그냥 대거라고 쓰든 의미가 올바르게 전달된다면 굳이 따지진 않거든요.
오히려 '대표위원', '엘드리치 오브'에 있는 '~~스킬에 대하여'같은 오역이 많이 거슬리는 편입니다.

구루마, 벤또 같은 시대적 아픔이 있는 잔재가 아닌 이상 게임에서 별 문제 없이 사용된 '음역'들이라면, 그리고 그게 20여년동안 써온 단어라면 저도 굳이 바뀔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다만 블리자드 코리아 입장에서는 리저렉션 편이 나오는 김에 세련된 작업을 하려 했던 것이고 
기존 오역/번역들을 새롭게 개편하려 했던 바람직한 노력이라고 보면 완역에 대해서도 수긍하고 인정하는 편이죠.


그저 막연한 완역 욕설에 대해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음역 완역이 포인트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당 방식으로 20여년동안 플레이 해왔던가?'가 중요하구나 란 겁니다.

지금 레저렉션으로 나온 번역들이 20년전에 나와서 지금까지 사용되어왔다면
오히려 반대 여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좋은 말들 냅두고 왜 음역을 굳이 쓰라고 하라는 거냐고 말이죠.
'떡대라는 좋은 말 냅두고 브루트라고 불러야 하냐'는 상황이 나왔을 겁니다.

저 역시 게임 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문화의 연장선이고 그 역사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존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왔던 음역 버젼으로 하는 게 더 향수를 일으키고 그때 디아블로2를 했던 경험을 되살리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블리자드가 이전 음역을 다시금 채택한 것은 어쩌면 음역/완역을 떠나서 위와 같은 근거로 옳은 선택이었다고는 생각됩니다.
동시에 현재 인벤에서 돌고있는 막연한 완역에 대한 강한 비난은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해요.

국제적인 것이 아닌 한 문화적인 가치에 있어서 
수십년간의 익숙함을 생소한 것으로 바꾸느냐의 차이인 것이지
구렁텅이는 북한식이니 잠행은 중국식이니 하는 말들은 전혀 이번 일들과는 무관한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긴 글인데 불구하고 다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