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 시절

 

1965년 프랑스의 알레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로랑 블랑은 어릴적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아 1983년 프랑스 르샹피오나의 명문 구단인 몽펠리에 HSC와 계약하여 일찌감치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10대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그의 본포지션인 스위퍼,수비쪽이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기술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프로 첫시즌을 공격형미드필더로 보냈으며 그의 활약덕분에 몽펠리에는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며 리그2에서 리그1로 승격하였다.

 

당시 몽펠리에의 감독인 미셸 메지는 그의 피지컬적인 능력등을 존중해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꿔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로랑 블랑은 이후 더 엄청난 선수로 성장하며 ('Les Bleu')레블뢰군단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된다.

 

수비수로서는 다르게 그는 강한 피지컬능력과 원래 가지고있던 공격능력을 더해 매 시즌마다 최소 12골씩을 기록하기도 한다.

 

89-90 프랑스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몽펠리에 에게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로랑블랑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84골(리그에서 82골)기록하여 아직까지도 몽펠리에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 수비수로 남아있다.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가 구단내에서 이정도의 득점을했다는것은 엄청나다고 볼수있다.

 

 

나폴리에서의 로랑블랑

 

 

1991년. 블랑은 자국인 프랑스리그를떠나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팀인 SSC 나폴리로 이적하며 새롭게 유럽무대에 도전하게 됩니다. 나폴리에서 첫시즌을 보낸 그는 좋은 수비력과 공격력을 바탕으로 6골을 기록하는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쟌프랑코 졸라,치로페라라,마라도나 등이 이끌고있었던 나폴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1년만에 떠나게된다.

 

이후 님 올랭피크로 92년 이적하게 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못하고 한시즌만에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하면서

축구 인생을 이어간다. 로랑블랑은 몽펠리에 시절을 제외하고는 팀을 정말 많이 옮긴 선수이기도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명 공격수인 루카토니와 같은 대기만성형 선수였기때문입니다 루카토니가 한말이있죠.

큰선수가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만큼 자신의 스타일에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으려고 노력도 많이한것으로 보여집니다.)

 

 

두 전설. 생에티엔 시절의 로랑 블랑과 마르세유 시절의 디디에 데 샹(현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

 

생테티엔으로 이적한 로랑블랑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94-95시즌에는 13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공격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생테티엔은 당시 강등 위기에 처하게되는데 이는

 

르샹피오나의 명문팀인 마르세유가(당시 2부리그) 재정난 문제로인하여 승격이 취소되었고 생테티엔은 잔류하게된다.

 

 

블랑은 생에티엔 에서 70경기를 소화하였고 95년. 당시 AJ옥셰르의 루 감독은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인 프랑크 펄라트의 대체자를 찾는도중에 블랑을 영입하게된다.

 

블랑은 시즌초반 부상을 당해서 출전기회를 많이 못잡았지만 복귀 후에는 구단이 더블을 달성하는데에 큰 기여를했다.

 

옥셰르에서 단 23경기만을 소화했지만 . 그 능력을 인정받아 유럽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되고 이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구단인 FC바르셀로나가 블랑을 영입한다.

 

꿈에 그리던 빅리그 입성. 바르셀로나 입단식에서의 로랑블랑

 

 

블랑은 이렇게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하게되었지만.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를데려오는데 큰 역할을했던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인 요한 크루이프가 블랑이 이적한 당일날 좋지 못한 성적으로 해임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수페르코파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승리를 거두게되는데 블랑은 이경기후 부상을 입습니다 그리하여 시즌 초반을 재활 등으로 보내게 되지만 복귀후에 주전으로 활약하게된다

 

하지만 스웨덴 구단인 AIK클럽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했고 그후의 경기인 아스트레미드라와의 경기에서 또 부상을 입었으며 엘클라시코와 UEFA컵 위너스컵 결승전인 파리생제르망과의 경기에서도 결장하게된다

 

최고의 선수의 반열에 오르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1년앞두고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이 월드컵에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하던 블랑은 한시즌만에 바르셀로나에서 떠나게된다

 

블랑은 저주받은 세대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했던 메이저대회마다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에릭 칸토나,장피에르 파팽,다비드 지뇰라 등과 함께 불운의 선수로 지목받기도했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블랑은 앞서 말했듯이 저주받은 세대의 일원이라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탈락 94미국월드컵 예선탈락을 했었다. 유로92에서는 프랑스가 8전 전승을 하였는데 충격적인 예선탈락으로

 

유독 국가대표와의 인연은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프랑스 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에메 자케 감독은 당시 떠오르는 스타였던 지네딘 지단을 앞새워 예술적인 경기스타일,즉 아트사커를 기반으로 팀을꾸려나갔다 자케 감독은 1년전 열렸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3위에 그쳤을때

 

월드컵이 1년밖에안남았는데 다른 감독으로 교체해야하는것아니냐 등 많은 언론들이 이러한 외침을 한탓에 힘들어해야만했다 이때까지만하더라도 자케감독의 수비적인 전술운용 흑인 및 혼혈 선수들을 기용했던 방식은 프랑스 언론과 팬들에게 별다른 호응을얻지못하고있었다.

 

자케감독은 자신의 신념하나만으로 프랑스를 개막을 앞두고 좀더 완성된 조직력으로 환상적인 축구를 하는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청소년월드컵에서 최고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던 티에리앙리,다비 트레제게,로베르 피레스 같은 신예 선수들은 프랑스가 한발짝 더 성장 할수있기에 큰 공헌을 했던 선수들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시작되었고

처음 프랑스 대표팀의 전술은 4-2-3-1 시스템이었다 원톱에 기바르쉬 그 뒤 조르카에프와 지단 앙리를 배치하고 포백 앞에는 데샹과 쁘띠를 포진시키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전술로 조별리그 가장뛰어난활약을 펼친 선수는 티에리앙리였지만 파라과이와의 16강에서는 조별리그 에서만큼의 활약을 하진못했다.

 

첫경기

 

프랑스는 C조에 편성되었고 98년 6월12일 남아공과의 첫경기를 가지게된다

이경기에서 프랑스는 크리스토퍼 뒤가리의 선제골. 상대 선수인 이사의 자책골과 앙리의 종료직전 골로 3:0 대승을 거두게된다. 대체적으로 프랑스가 속했던 이C조는 덴마크,남아공,사우디 등이 포진되어 약체로 알려진 조이기도했는데

 

프랑스 언론은 덴마크 정도만 강팀으로 두고있었다.

 

2번째경기는 사우디와의경기였는데 앙리의2골과,트레제게,리자라쥐의 골로 4:0 대승

조금 치열했던 덴마크와의경기는 조르카예프의 패널티킥골과 쁘띠의 골로 인하여 2:1

 

3전 전승으로 16강에 합류하게된다

 

16강. 파라과이와의 경기였는데 연장 혈투 끝에 이경기에서 블랑이 골든골을 기록하여 프랑스에 1:0승리를 안겨다준다

 

이 골은 아트사커 프랑스의 환상적인 팀워크로 이뤄낸 골이기도하였다.

 

 

당시 득점 장면.

 

이 골로 프랑스는 8강에 올라가고

 

8강상대는 이탈리아였는데 연장혈투끝에 마지막키커인 디비아지오가 골포스트를 맞춤으로 승부차기에서 4:3승리를 거둔다. 예나 지금이나 승부차기는 참 잔인하다.(이 당시 이탈리아 골키퍼가 부폰이었다. 지금도..)

 

암튼 4강에서 프랑스는 황금세대라 불리우고 신흥강호였던 크로아티아를 만나게되는데 초반 슈케르에게 선제골을내주었지만 튀랑이 2골을 기록해 2:1승리 결승전에 올라가게된다.(훗날 슈케르는 이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며 크로아티아를 월드컵 첫 출전에 3위로 만드는 쾌거를 이루게된다.)

 

결승전.

 

결승전 상대는 쌈바축구 브라질이었고 많은 전문가들도 예상했던 매치업이었다.

호나우두,히바우두,에메르손,둥가,베베투 등을 앞새운 브라질이었기에

 

치열할것같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지단의 2골과 쁘띠의 1골로 3:0으로 프랑스는 대승을 거두고 월드컵 한대회 최다 득점자중 하나인 쥐스트 퐁텐이 있었던 프랑스도 이루지못했던

 

월드컵 우승을 이루게된다.

 

당시 올스타팀으로 프랑스 멤버가 대거 선정되었는데 여기에 블랑은 아쉽게도 포함이되지못하였다.

하지만 당시 철의 포백이라 불리웠던 드사이,튀랑,블랑,리자라쥐 이 4명의 수비수들이 이루었던 업적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남아있다.

 

훗날 프랑스는 유로2000 까지도 연달아 거머쥐며 그야말로 세계최고의 축구역사를 쓰게된다.

 

월드컵이 끝나고 블랑은

 

 

마르세유로 이적하게되는데 자신을 믿어주는 구단이 필요했던 블랑에게 마르세유는 최고의 선택이었고 블랑은 마르세유에서 더욱더 뛰어난 활약을보이며 리그 4위라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다음시즌에는 보르도에게 패배하며 리그 준우승을 거머쥔다

 

 

2000년 로랑블랑은 세리에A로 복귀하게되었고 그팀은 인터밀란이었다. 인터밀란에서도 오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는못했는데 이때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수비수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일이었고

 

 

당시 노장이었던 블랑은 맨유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2001년 부름을 받아 맨유에 입단하게된다.

 

그의나이가 35세였는데 퍼거슨감독은 96년부터 그를 원했다고 한다. 라치오로 간 스탐을 대신하여

35세의 나이에 빅클럽에 영입된 블랑은 2년간 맨유에서 뛰게 되고

 

노장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시즌 초반에 부진하여 맨유의 5연패 기록을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하지만 02-03시즌 좋은활약을 보여주었던 그는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하였고 길고 길었던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게된다

 

블랑은. 국가대표로써 97경기를 소화했으며 16골을 기록했고.

클럽 선수로써는 602경기를 소화했으며 125골을 득점하였다.

 

블랑은 역사상 가장 뛰어났떤 수비수중 하나였고. 지금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축구인생을 토대로 파리생제르망 감독에 부임하였다. 파리생제르망은 현재 25승 5무 2패로 르샹피오나 1위에 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 첼시를 누르고 8강에 합류하였을정도로 지도자로써의 삶도 잘 개척해나가고있다.

 

현역 말년시절. 블랑의 너무 팬이었는데 블랑에대한 기록같은게 거의없어서 적어봅니다.

190의 큰키에도 정말 빨라서 상대수비수들이 더욱더 두려워했죠. 블랑은 자신이 슛해도될 위치에도 선수가 가까이있을때 상대 선수를 벗겨내며 패스를 할정도로 섬세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하지않으면 자신이 처리를하지않았죠. 

 

제공권을 압도하는 미친 피지컬은 말할필요도없고. 또하나 스피드. 호나우두,카를로스 등 과 나란히뛰는 미친 스피드에 수비수였기에 더 감탄했었던..

 

그랬던 선수시절의 로랑 블랑을 지금은 게임속에서 제가 쓰면서 매일 만날수가있네요. 다들 블랑 조각 얻으셔서 꼭 써보시길 제가 반했었던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피파가 구현을 잘한것같아 좋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