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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화

 

 

5

 " … 해서, 이렇게 된거야. "

 

 유시혁은 그 말을 끝으로 펜을 놓았다. 여우가 아리라는 이름의 인간 소녀가 어떻게 됬는지

를 설명한 장장 한시간이나 걸린 대연설이었다. 종이가 없던 유시혁은 화장실의 대리석 바

닥을 종이삼아 이해를 도울 글을 쓰며 설명했는데, 한 시간이라는 시간 만큼이나 펜촉이 지

나간 흔적은 남자 여섯명이 누워도 편안해보일 정도의 넓이였다.

 

 " 자, 이제 여우가 사람되는 병신같 … 아니, 아리를 기점으로 ' 정상적인 ' 소리를 너도 잘

이해했겠지? "

 " 솔직히 마법같은건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해는 안 되지만 한 시간 동안이나 글을 써댄

네 열정과 부끄러움 세포가 퇴화 됬는지 사람들 지나다니는 화장실에 엎드려서 글 쓰는

네 꼬라지를 더는 못 보겠어서 믿도록 할게 … "

 " 좋아 ! "

 

 좋긴 뭐가좋아 … 여러분 이 자가 발로란의 미래를 결정하는 전쟁 학회의 상원입니다.

라고 저널에다 올리면 분명 국가급 폭동이 일어나서 리그의 시대가 종결나버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뒷배경 없는 나도 결딴날테니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언젠가 내

가 은퇴해서 늙어 죽을 때 되면 자서전 써서 저 놈의 진상을 다 까발리고 말겠다.

 

 " 그래서, 이제 더 할 말 없어? 가 봐도 되는건가? "

 " 아니, 본론이 남아있어. 에고, 허리야 … "

 그렇게 말한 엎드린 자세의 유시혁은 무릎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그나저나 이 펜 유성펜

인가? 청소부 아주머니들 이녀석을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 또 뭐? "
 " 아리좀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만 맡아라. "

 

 …

 

 " … "

 " 응? 멘탈이 나갔나? time::정화.install(3); "

 

 은은한 보랏빛의 빛줄기가 내 몸을 멤돌다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

유로 마음이 고요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하는듯 편해졌다. 음. 현자들은 다 이런 마

음가짐일까.

 

 " … 소환사 스펠을 그렇게 남용해도 되는거야? "

 " 리그 경기나 하원의원 놈들이나 스펠이 한 번 한 번 쓸 때마다 고민해야 될 만큼 중요한

거지 나 정도 되면 출력 높여서 정화를 마약 대용으로 쓸 수도 있다구. "

 "  … 아무튼간에, 뭐? 내가 걔를 맡아? 네가 정신은 나갔어도 멍청하진 않으니, 짧게

라도 변명할 시간은 주겠어. "
 " 거짓으로 준비한 변명과 진실한 변명중 뭐 먼저 들을래? "

 

 이미 준비 한거냐. 미리 준비할 거라면 애초에 내가 말을 하기 전에 변명부터 하라고.

 

 " 거짓부터. "

 " 좋아, 아리는 일단 법적으로 무국적자이며, 나이 또한 어리고, 일반적인 사회 지식도

떨어지고 사회 기반도 없어. 그렇다면 필히 보호자 역할을 할 녀석이 필요할터, 그 보호

자를 뽑아야 했지. 그런데 이 보호자 역을 맡으려는 녀석들이 하원 말고도 상원에서도,

심지어 상임의원 키르까지도 탐을 냈어. "

 

 키르는 키어스타 맨드레이크 상임을 녀석이 애칭이라며 부르는 말이였다. 그 외에도

녀석은 베사리아 상임은 베시. 루드비아나 할머님은 루비라며 축약해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 … 하원이라면 모를까, 상원이랑 키어스타 맨드레이크 상임까지도? '

 " 물론 하원들은 외모에 혹해서겠지. 하지만 상원이나 맨드레이크는 그 이유가 아닐거

야.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뜸을 들인 유시혁은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 다른 녀석들이 무슨 속셈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적어도 나와 루비는 ' 연구 목적 ' 으

로 보호자 역을 신청했지. 일단 여우가 사람이 됬다는건 현재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짓

거리니까, 적게든 많게든 성과가 있을거 아냐. "

 " 루드비아나 할머님? 하기사, 아리란 녀석 정신계 마법에 소양이 있댔지, 그 분이라면

탐낼만 하겠네. 그런데 네가 왜 그녀석을 맡게된거지? 네가 비(秘) 마법의 스페셜리스트

란건 알지만 마법 연구쪽에 권위가 있는건 아니잖아.  "

 " 그야 보호자 역할을 하게되면 당연히 본래 하던 업무에 소홀해지게 되잖아. 키르한테

주자니 안 그래도 일 안하는놈이 핑계대면서 일을 안하겠지. 그 꼴을 베시 상임녀석이

가만 보겠어? 그래서 키르는 제외. 그렇다고 루비에게 주는건 애쉬람 파벌인 베시가 이

스트반 파벌인 루비에게 줄 리가 없지. 이스트반 파벌이 강해지면 당연히 베시의 입지는

좁아질테니. 거기다 둘은 사이도 안 좋아. 뭐 그건 베시가 일방적으로 싫어하는거긴 하

지만. 자 그럼 하원한테 주는건 어떨까? 상원들이랑 키르랑 나랑 루비가 곡소리 내서 땡

깡부리는거로 무마. 자기 파벌의 상원의원한테 주는건? 이 역시 연공서열과 땡깡으로

무마. "

 " 뭐 그런 정신나간 짓거리들을 … " 

 " 정치란게 다 이렇지 뭐. "

 

 부끄러움 세포가 퇴화된 시혁답게 일말의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네가 아리의 보호자가 될 이유는 없는듯 한데? 너도 이스트반 파

벌이잖아. "

 " 없긴 왜 없어. "

 

 그렇게 말한 녀석은 검지로 날 가리켰다.

 

 " 트위치 널 보호자로서 제대로 선도한 경험자니까 당연히 난 강력하게 주장할 명분이 있

다고. "
 " 소환사들 눈깔은 계란 흰자에 오징어 먹물 묻힌거냐? "

 " 거 말이 심하시네. 베시한테 일러봐? "

 " 너 지금 나한테 네 일 맡기려고 하는중이거든? "

 " … 그렇군. 쌤쌤으로 하고 퉁치자. 서로 말하기 없기. "

 언제나 제멋대로인 평소의 시혁이다.
 

 " 거기다 나는 상임이 아니라 상원 의원이라 내 일에 소홀해진다는 문제는 대충 하원의

원 잡아다가 잘 구슬려서 대신 시키면 끝이야. 상임 의원과 달리 상원 의원의 일은 하원

의원들이 하는일의 연장이니까 문제도 없지. 그리고 나는 네가 말한대로 비전 마법 전

공이라 아리를 연구해서 얻을 이익도 적어보이고, 베시 입장에서는 속에 구렁이 가득한

루비보다는 정신 나갔지만 교활하지는 않은 내가 더 다루기 편하다고 생각했나보지. "

 " … 듣자하니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너도 딱히 아리를 가져갈 이유는 없잖아? "

 " 정확히는, 그런 척을 해야했지. "

 

 긴 말을 연이어 해서 그런지 호흡이 가빠진 녀석은 다시 숨을 고르곤 말을 이었다.

 

 " 내가 받아서 몰래 루비와 키르에게 연구하도록 하는게 진짜 목표였으니. 아무리 베

시라도 밤이나 업무시간에는 감시 못할거 아냐. "

 " 아. 그럼 설마 너 전에 할머님이랑 사이 틀어진 것 처럼 보인 사건도 … ? "

 " 의심을 피하기 위한 작전인거지 뭐. "

 

 이런 세상에.

 

 " 지금 내가 맡기려는 것도 위장인거지. 내가 너한테 보호자 역을 떠맡기고 한 달 정도

휴가를 가면, 베시도 ' 업무를 빼주는걸 이용해서 사기를 쳤다 ' 정도로만 인식할거 아

냐? "

 " 그렇군.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사기였어. 그래서 영화같은 거짓이 아닌 진실된 변

명은? "

 " 술 마시러 멀리 갈거야. "

 

 … 저런 세상에.

 

 " … 방금 한 말들 어디까지가 진짜야? "

 " 그거야 앞으로 밝혀질 일들 아니겠어? "

 

 그렇게 말한 유시혁은 화장실의 한 쪽 벽면으로 걸어가더니, 다시 글을 ㅡ 아니, 마법

진으로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텔레포트? 아직 낮인대 술퍼마시러 가는건가 … "

 " 뭐 숙지사항이나 어떻게 해야할지나 아리에 대한것들은 내 서재에 있으니 더 말할것

없어. 특히 아리 리그의 심판 기록은 잘 봐라, 걔 보기보다 무서운 녀석이더라고..

방열쇠. "

 

 그렇게 말한 유시혁은 냅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던졌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곧은 일

직선으로 날아온 열쇠는 분명 평범한 사람의 두개골정도는 관통할 속도였다. 뭐, 챔피

언 급이 못 잡아낼 정도는 아니였지만. 정확히 두 손가락으로 잡아준 뒤, 주머니에 대

충 찔러넣었다.

 

 "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

 " 뭐 좀 묻자. 네가 말한대로라면 굳이 나한테 시킬 필요 없잖아 … 하원 의원중 아무

나 잡아다 시켜도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내가 보호자 역할이야? "

 " 걔가 사람을 무서워해. " 

 " 응? "

 

 무서워 할 이유가 있나? 하긴, 여우랬지. 야생의 짐승이라면 응당 인간을 배척하고 경

계하며 두려워해야 할 것이 당연했다. 그것이 야생에서의 생존 전략들 중 하나였다.

 

 " 정확히는, 자기가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저주받은 잡종 괴물이라 인간과 어울

릴 자격이 없다 생각하더군. "

 " … 그렇게 치면 내가 뭐가되는거야. 힘도 없고, 외모도 혐오스럽고, 종도 인간에게 혐

오받는 쥐새끼인 나는 지금이라도 자결해야겠다? "

 

 유시혁은 후후, 하고 웃더니 완성된 마법진에서 조금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어. 자결해 마땅해야 하는데도 반성이 없는 여우의 주식인 쥐,

전혀 그래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신을 인간보다 하등한 생명체로 옥죄는 쥐가 주식인

여우. 마법적인 배경으로 탄생한 아리와 과학의 산물로 탄생한 트위치. 어쩜 이렇게 극

과 극으로 반대되는 녀석들일까? 한 번 붙여놔보고 싶더라고. 극과극은 통한다라는 법

칙하에 잘 지내게 될까, 아니면 그 다름만큼이나 서로가 적대하게 될까? "

 " … 한 마디로, 또 정신나간 짓을 해보고 싶었다는거지. "

 " 알면 됬다. "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마법진을 완성했다. 얼마뒤, 비전 마법의 상징이자 전쟁학회

의 로브의 색이기도 한 보라색 빛의 잔흔들을 남기며, 시혁은 사라졌다.

 

 

 

 트위치의 메모장

 

 

비전 마법

 

화(火), 수(水), 풍(風), 지(地), 배우기가 비교적 쉬우면서도 효율이 좋은 네 가지 마법과 다른 계통의 마법.

비(秘) 마법으로 칭하기도 한다.

 

다섯번에 걸친 룬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과거의 마법들을 총칭한다. 유물 출토결과, 과거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마법이 발달했다하니,

이 비전 마법의 사용자들이 강한것은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

 

소실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체계적인 교육은 존재하지 않으며, 금지된 땅을 탐색하던 라이즈는 우연히 이 비전마법을 익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비전마법의 사용자도 라이즈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경위를 가진 듯 하다.

 

상징색은 보라색과 보라빛에 가까운 푸른색. 공교롭게도 소환사의 로브는 보라색이다.

 

 

 

Ludviana W. Silverearring

 

루비 할머니에 대해서는 … 음, 나중에 이어써야지.

 

 

 


 

녹색빨간색

 

서로 마주보는 보색이다. 그렇기에 색반전을 할 경우 상대의 색이 나온다.

둘을 합할경우, 내 털과 비슷한 회색과 갈색의 중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