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팬픽물 중 소설작품입니다.

내용전개에 따라 기존의 롤 세계관이 왜곡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나

글쓴이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엘리스는 이 글을 읽고 매우 큰 충격에 빠졌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 너무 잘 이해가 되버린게 문제였다. 자신은 그동안 썩은 아귀에게 놀아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자신은 그동안의 만행을 저질러오고도 떳떳하게 다닐 수 있었다.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전에 드는 생각이 많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았다고...'

 그동안 자기가 행동했던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매그너스 던더스와 말자하에게 보였던 이유모를 패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 질문의 해답을 마침내 찾아냈다.

 보는 내내 경악을 금치못해 입을 쩍 벌리고 본 엘리스였다. 기억을 봉인당했다라... 그녀 머리속에 있는 기억중 일부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억을 찾기 위해 어딘가를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봉인을 풀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한다는 뜻. 그러나 그 계획은 당연하게도, 세우지 못했다.

 

 엘리스는 자신의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느꼈지만 아직 한 명의 소환사가 쓴 글이 남아있어서 그냥 무시해버리려 했다. 그런데 되지 않는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썩은 아귀의 정신 기생도 없는 지금 자기의지대로 손을 못움직이는건 무슨 상황일까.

'눈이 따가워...'

 그림자 군도에서, 녹서스에서 무언가가 계속 나타나는 이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굉장히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느낌이 여기에서 또다시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그전에... 눈에 고통이 찾아온다.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고 손을 움직여서 스크린을 만졌지만 코로나크의 말을 떠올릴수록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그녀의 내면이 거칠게 요동치는듯했다. 통증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은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떨리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그 떨림이 얼굴에서 상체로, 손으로, 하체로, 결국은 온몸으로 퍼져나간다는 것도.

"젠장... 이럴 시간이 없다고... 대체, 뭐때문에 이런 고통이!"
고통?
 분명 엘리스는 온몸을 떨고 있었고 머리와 눈에서 이유모를 통증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건강하게 지내던 자기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 그녀는 모르고 있다.

 

거미교.

썩은 아귀.

정신 기생.

정신 제어.

코로나크.

그리고 기억.

 

 이 모든것이 엘리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 고통의 원인을 알아도 좋아질 것은 없지만 알지 못하는 엘리스에게는 그것만이라도 알고싶어했다. 그러나 알아내지 못했다.

 자신의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의 주체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허탈함과 허망함은 분노로 표현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침내 엘리스는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이 마음을 떨쳐버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면 소환사가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서 이곳으로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에 그리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단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시 미쳐 날뛰고 싶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바닥에 얼굴을 맞댄채로 엘리스는 소리없이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얼굴을 맞댄 상태로 조용히 입을 벌렸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많은 것을 내포했다.

 

 시간은 전쟁 학회의 도서관 클래스 S 자료실이나 룬테라 대륙을 구분하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나 시계를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시간이 흘러간다고 느낄 수 없는 곳이 있다. 쿠몽쿠 정글? 그림자 군도? 시계가 없는 곳? 그런 답변을 원했다면 청자가 정해져있지 않은 물음을 할 이유는 없다. 그 장소는 클래스 S 자료실 단 한 곳밖에 없을 것이다.

 엘리스는 다음 책장을 넘길 자신을 잃은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1시간동안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끝났어. 내 기억을 더 이상 찾는 모험을 할 수 있겠냐고. 상처와 고통으로 남겨진게 뻔한 기억따위... 보고싶지 않아.'

대자로 누워보니 형광등이 엘리스의 눈으로 직접 들어왔다. 눈을 감았으나 잔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앞으로 엎어져있자니 불편해서, 엘리스는 일어섰다. 그러나 일어서도 그녀의 마음은 그대로였다.

"...나갈까."
몇시간동안 쉬지도 않고 자료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곳에 있을 이유는 물론이고 흥미조차 잃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이곳을 나가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럼 내가 그림자 군도를 떠나서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하는거지?'

 자료실 앞에서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엘리스. 엘리스도, 그녀 자신도 이 여정을 멈추처서는 안된다는걸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여정에 제동을 걸게끔 한다. 그림자 군도에서 가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는걸 넘어서 숨겨진 진실마저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있다 해도 엘리스가 그 사람들과 같은 부류일까?

"아니야..."

무슨 질문에 대한 부정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내용의 대답은 아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런 사실을 알게되다니, 녹서스에서의 일도 그랬고, 르블랑의 말 그대로야..."

 엘리스는 지금 이 상황이라면 르블랑은 뭐라고 말할지 조용히 상상해보았다. 그 때, 클래스 S 자료실의 컴퓨터 화면에 전자북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변화가 일어났다.

 

"하... 르블랑, 네 말이 맞았다. 시작부터 순탄한 일이 하나도 없네."

 한숨을 쉬면서 문을 열려는 엘리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기억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나?"
 엘리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기계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엘리스에게 이런 방식의 대화방식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뒤 조용히 답했다. 낯이근 여자의 목소리였지만 엘리스는 어를 어디있는지 모를 소환사의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여기서 원하는걸 다 찾진 않은 것 같은데."
 엘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겁나나?"
"그래. 아주 솔직히. 없지 않아 나는 것 치고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이 있어."
"그것이 내가 말한 '역경'이야 엘리스."
 '역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엘리스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에는 1시간 전만 하더라도 전자책이었던 컴퓨터가 있었고 지금의 컴퓨터는 책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고 르블랑을 비춰주었다.

"르블랑?"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마주보게 될 줄은 몰랐군. '여정'은 어떤 상태인지?"
'반갑다'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르블랑은 무거운 화제를 먼저 말해 엘리스의 입을 닫게 했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있는 엘리스는 르블랑의 안부겸 질문을 깔끔히 무시하고 말을 걸었다.

"하나 묻자 르블랑. 네가 '검은 장미단'의 재건 과정에서 여러 난관들에 부딪혔을 텐데... 어떻게 일을 끝낼 수 있었지?"
"어떤 일들이 닥치다 해도 난 이 목적을 달성해 내겠단 집념 하나로 모두 버텨왔다...고 해야 네게 조언을 줄 수 있나?"
"대단한 녀석이군. 너란 녀석은... 어떻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배경인데도 그렇게 독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거지?"
"난 내가 정한 결정에 후회를 하지 않으니까. 너도 네가 내린 결정에 만족하고 있는거지?"
 결정, 후회, 만족. 이 단어들은 엘리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아니, 그녀가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동안 엘리스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르블랑은 그 얼굴을 본 뒤 조용히 물었다.

"어이 엘리스. 설마 너 벌써 내게 보인 각오가 사라진거냐?"

"그럴리가. 그 배짱이 없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지."
"방금 전에 자료탐색을 끝내지도 않고 도중에 나가려고 한 행위가 단순한 산책의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지? 기분탓이지?"
 어떻게 그런 자세한 경우까지 파악했는지 엘리스는 때와 맞지 않는 궁금함...이 생기기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지긋이 물었다. 지금의 엘리스에게는 환술사를 상대로 거짓말을 할 기분도 아니었고, 더욱이 그럴 기운도 없었다. 그녀는 르블랑에게 이유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어이, 어째서 그런... 이곳을 나가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소환사에게 잡히고 다시 그림자 군도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는 네가 어째서 그런 태도를..."

"... 미안해 르블랑. 그러기가 너무 힘들어."
 르블랑은 전에 내본 적 없는 화를 실어서 속사포같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너 뭐야 엘리스. 그림자 군도에 빠져나온걸 후회하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알아도 네 여정에 온 힘을 쏟아붓겠다는 그 '마음'이 있으면, 네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가 없다면! 그런 태도를 보일리가 없잖아!"
"그래, 두려워. 아니, 매 순간순간마다 다가오는 공포감을 뿌리칠 수 없어! 그런데 이건 당연한거 아니야? 가지고 있으나마나인 챔피언, 신에게 놀아난 꼭두각시, 그래도 내 기억 하나를 찾겠다고 온갖 개고생을 다해서 온 내가! 내가! 이런 두려움에 휩쌓이지 않을 수가 있냐고!"
 르블랑의 존재가 스크린 속에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는다는듯 엘리스는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머리를 대고 소리질렀다.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갖고있는 모든 생각을 악으로 뱉어내서 그런지, 한동안 아무말도 못한 채 헉헉거리면서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 느낌을 어떻게 나타낼지 모르겠어..."
 엘리스의 하소연으로 인해 다시 르블랑도 말할 기회를 잡았다.

"느낌이라니... 기억 외에도 무언가를 잊었다는거냐?"

 썩은 아귀의 '정신 기생'이 그림자 군도의 기운과 같이 제거되면서 엘리스의 감정을 모두 빼앗아가버렸다. 전부터 감으로 눈치는 챘지만 그 원인이 자신의 신때문이었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엘리스는 르블랑에게 자신이 봤던 기록을 말했다. 말을 마치자 그녀는 스르르 힘이 빠져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모니터 속의 르블랑도 할 말을 잃었는지 한동안 엘리스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이런 정적은 정말 싫어... 고요하마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 그런데 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거지?'

'이건 엘리스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아닌가. 난 또다시 격려의 말을 해줘야 하는 건가. 엘리스와 대화를 하다보면 침묵이 너무 많아. 이런건 내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둘은 서로에게 할 말이 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참 묘한 느낌을 줘서 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할 시간을 주었다,

"엘리스."
"르블랑."
 이번에는 양측에서 똑같이 말을 걸려는 것... 같았으나 르블랑의 말이 더 빨랐다. 엘리스와의 대화가 늘 그래왔듯이.

"먼저 말해도 돼?"
"그래."
"네가 그 여정을 중단할 시 일어날 수 있는 사태를 짐작할 수 있어?"
"송환되겠지. 이런 일 저지르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데 소환사들에게 안잡히겠어?"
"...그걸 알면서도 한동안은 그만두고싶었단 뜻인가?"
"그렇지. 지금도 그렇고."

"그럴 때는 그냥 쉬는게 어때?"
 방금동안 말한 내용과 묘하게 이질감을 주는 말이었다. 소환사에게 잡힌다는 뜻은 어떤면에서 보면 소환사들에게 꼬리를 잡힐 시간을 너무 준 나머지 벌어지는 비극이 아닌가? 엘리스의 생각에 이 한문장이 끊어짐과 동시에 르블랑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네 여정을 중단하라는 뜻은 아니지. 다만 네가 심리적, 육체적 피ㅗ를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다가 소환사에게 잡히면?"
"너도 참... 아무리 현 세계의 지배자라고 해도 그들은 모두 인간이야. 그들은 쉴새 없이 작업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렇긴 한데..."
"쉬어. 지금의 너에게는 그동안 받아들인 충격을 견딜만한 시간이 필요해. 네가 얼마나 쉬는지는 네 열정에 따라 달라지니까."
 엘리스는 정말로 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녀가 잠시 주변을 둘러볼 때, 지나간 풍경에 색다른 느낌이 나타났다. 비좁은 공간에 컴퓨터가 달랑 1대 있는 자료실이 아닌 자기만의 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 자료실에 오랫동안 머무른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느낀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 점은 엘리스의 기분전환을 위해 잠시 구석에 박혀놓자.

 

 엘리스는 르블랑과의 대화 도중에 느낀 편않마에 몸을 맡기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컨디션이 좋아짐에 따라 주변이 밝게 보이는게 주요했다. 모니커 속의 르블랑은 엘리스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침묵으로...내주었다.

"어때, 다시 한 번 진실과 마주할 마음이 생겼어?"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을 표시했다. 르블랑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엘리스가 보고 있었던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거지?"
 뒷북을 제대로 친 그녀는 할 수 없다는듯이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다.

<계속>

 

P.S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ㅎㅎ

 

소설에 오류가 생겼거나 스토리적 전개가 이상하다 싶을 경우 댓글로 올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자비한 비하어 표현은 자제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