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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꼭 술을 마신 다음날이 아니더라도,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땀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찝찝한 상태로 집세가 비싼 전쟁학회 기숙사 한 구석 방에서 잠을 깬다.

이 모든 공로를 내 몸에 악착같이 붙어있는 털가죽에게 바칩니다. 사실 어찌보면 잘된 일

이기도 했다. 아침마다 샤워를 억지로라도 할 이유를 만들어 주니까.

 

 침실을 나와 현관에서 세 보만 걸어도 도달할 정도로 바깥과 가까운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거울에는 언제나처럼 신장 1.5미터의 쥐가죽을 둘러쓴 내가 보인다. 별로 기분좋아 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이 놈의 술을 끊어야지 내가.

 

 목욕은 간단하다. 아니, 애초에 내가 팔이 짧아서 별 지랄을 다해도 뭐 어떻게 제대로 된

목욕이 불가능하니까 간단해졌다고 해야하나. 그저 샴푸 한 병 가량을 머리부터 시작해

온 털가죽에 다 흘러내리게 한 뒤 물칠. 가사도우미를 쓰면 제대로 된 목욕이란걸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양하고 싶다. 제일 큰 이유는 귀찮잖아 그거.

 

 비맞은 쥐 꼴을 한 채 잠깐 네발로 서 물기를 탈탈 털어내곤, 수건으로 한 번 더 물기를

걷어내면 아침 목욕 끝. … 이제 뭘 할까.

 

 " … "

 

 가렌이나 카타리나 같은 무려 국가 공무원들이라면 이 아침시간대부터 온갖 결재서류

와 마주하고 있겠지만, 나는 리그 경기 외에는 직장도 수입도 없는놈이다. 그러니 리그

경기가 없으면 할 일 없는 신세일 수 밖에. 블리츠크랭크라던지의 녀석들은 챔피언의 인

지도를 이용해서 결혼 중개회사같은 사업 같은걸 하는 모양이다만, 나는 그런 일에도 관

심이 없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 애초에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그리 많지 않

다. 

 

 일단 전쟁 학회의 1층 홀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속도 쓰릴 겸 뜨끈한 거 한 그릇

할 겸 말이다. 전쟁 학회의 1층 홀은 흡사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 상가들이 밀

집한 곳이었다. 1층, 2층같이 접근성이 좋은 곳에는 상가를, 7층,8층같은 접근성이 떨

어지는곳에 회사의 집무실 등을 배치하는 자운의 빌딩들과 같은 구조였는대, 리그 최초

의 소환사인 이스트반이 자운 출신임을 생각하면 그의 입김이 강했을 듯 하다. 아마도

리그 초기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한 두마디 정도는 했었

지 않을까?

 

 

 고대의 신전을 모티브로 한 건지 대리석의 기둥들이 빼곡히 외벽을 장식한 전쟁학회

의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지러운 길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을

자주 돌아다니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인상에 남는 특정 구간을 중심으로 머릿속의 지

도를 만들어나가게 되어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그런 기억에 남는 특정 구간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였

다. 양 쪽 벽에 개인 집무실과 여러명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을 부서들이 나열된 평범

한 복도지만, 중간쯤 다다르면 사람보다도 더 크고 넓게 그려진 초상화에 이목이 끌리

게 된다. 갈색머리를 단정히 뒤로 묶은 중년의 남성의 그림. 액자의 이름표에는 초상

화의 인물의 이름이 써 있었다. 레지날드 애쉬람.

 

 " 도착, 절반은 왔다. "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초상화를 올려다보았다. 레지날드 애쉬람. 그에 대

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종종 없을지라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발로란 사람은 없을것이

였다.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한 신. 인간의 모습을 한 신. 자신을 인간이라 주장한 신. 향간

의 어떤 말이든 그를 현세의 인간과는 완벽히 구분짓는 미사여구가 그를 따라다닌다.

내 쪽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온갖 미사여구와 허구같은 신화들을 지어내는 추종자들의

말에 긍정해줄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나도 그를 좋게 보고 있다. 앞으로 분쟁이 생기

면 온갖 불합리한 제약과 룰에 따라서 5:5로 싸워 결정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장

난질에 그 완고한 녹서스와 데마시아가 따르게 하다니. 그의 외교력, 혹은 무력은 정말

로 경이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 여기였네, 절반은 왔 … "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모퉁이에서 시혁이 얼굴을 드러냈다. 서류철에 결재

서류로 보이는 것들을 한 가득 묶은채로. 생각해보니 얘도 나름 공직자였지. 전쟁학

회 상원의원 100인중 하나.

 

 " 어, 안녕. 트위치. "

 " 그래. 너는 속 안쓰리냐? "

 " 이래뵈도 소환사잖아. 그 정도로 취하거나 하지는 않아. "

 " 거 마력 다루는 놈들은 참 좋겠어. 나는 필름까지 끊겼는데. "

 " 끊겼다고? 아, 그래. "

 

 중얼거리듯 말하며 다가온 유시혁은 내 옆에 서곤 초상화를 올려다보았다.

 

 " 애쉬람님이 실종된지도 이제 6년이나 지났구나. 그 와중에 상임의원 대리로 뽑힌

헤이완 렐리바쉬는 지금도 감옥에서 복역중이겠지. "

 " 네가 ' 정치인 스타일이니까 아마 상임의원들 업무가 쉬워질꺼야 ' 라고 했었지, 그

사람? "

 " 그래. 키어스타는 마법의 발전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서류업무는 내팽개치고, 베사

리아만 애쉬람님 없어지고 줄창 일했잖아. 그마저도 사무나 외교쪽은 문외한인터라

비효율적이었고. 이 와중에 정치 경험이 적잖이 있는 헤이완 덕분에 한 숨 돌렸지. 착

각이었지만. "

 

 … 실상 전쟁학회는 강한 마법사들이 모여 만들어졌을 뿐, 사무업무라던지 외교라던지

하나의 ' 최고 의사결정 기구 ' 로서 돌아갈 인프라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임의

원이라 해도 외교술같은 정치적인 기술이 있을리가 없는건 당연했고, 그렇기에 헤이완

을 임명했지만 … 너무나 정치가였던 그는 결국 자멸했다.

 

  시혁은 흘러내리려는 서류들을 서류철로 다시 고정하곤 되물었다.

 

 " 지금이 CLE 21년, 4월 26일이였지? "

 " 그래. 뭐 신경쓰는거 있어? "

 " 없겠냐. 5월 3일이 네녀석 생일이잖냐. "
 " 생일이라 해도 탄생일은 아니고 네가 ' 이제 챔피언으로 일하니 다시 태어나게 됬다

는 의미로 5월 3일을 생일로 정하자 ' 라고 한 날이지만. "

 " 그랬지. "

 

 …

 

 " 뭐 그럼, 난 가볼게. 애쉬람님 없는 전쟁학회의 소환사 답게 할 일이 좀 많아서. "

 " 그래. 수고해줘. 아, 그런데 말이지. "

 " 응? "

 " 차라리 내 모습이 적당히 인간 80%, 동물 20%에다,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였다면 역

시 좋았겠지? 성별은 당연히 여성체. "

 "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야 … "

 " 아니 뭐, 부모 자식도 자식이 다 크면 은혜에 보답하는게 당연한거잖아. 근데 나는 뭐 도

울 수 있는게 없는 신세라서. 차라리 그런 모습이면 다른쪽으로 보답할 수도 있었을 것 같

아. "
 " … "

 " 음, 내가 말하고도 좀 많이 무리였다. 미안. "

 " 괜찮아. "

 

 녀석은 서서히 나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 많이도 변했어. "

 

 

 4

 

 어느덧 1층의 홀에 도착해 푸드코트에 들어섰다. 발로란 각지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이유

로 찾아오는 곳이니만큼 그 음식의 종류들도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점포들이 늘어서있었다.

 

 사람이 있기에 점포가 있는법, 주변을 둘러보면 점포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본

래라면 전쟁학회는 데마시아와 녹서스의 정확히 중간, 첩첩산중의 오지에 위치해있기에 이

런 인파와 점포가 들어설 일은 없었겠지만, 창설 초기부터 각 지역에 텔레포트 센터를 설치

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여왔다. 실상 다섯번에 걸친 룬 전쟁 직후에는 마땅한 물류 센터조차

마련되지 않았을테니 그때당시 제대로 된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었을것

도 같다.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쇼핑몰들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하나, 이 곳의 사람들의

80%은 연예계에서 활약하는 스타들 만큼이나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

한 관광객이라면 단숨에 위축될 정도로 이 곳의 평균적인 외모 수준은 비정상적으로 뛰어

났다.

 

 만약 자신의 외모가 뛰어나지 않기에 이 곳에 들리는게 꺼려진다면? 걱정하지 마시라. 전쟁

학회의 입구를 중심으로 북동쪽을 향해 가다보면 ' 실버 러쉬 ' 라는 이름의 가게가 나온다.

무려 전쟁학회 소환사 출신의 사장이 직접 시술하는 성형병원. 가격대는 여타 성형에 비교했

을 때 수십배 저렴하며, 부작용의 걱정은 전혀 없다. 심지어 완성조차도 삼십분 내로 끝나버

리는, 그야말로 당신의 고민에 최적화된 가게다.

 

 … 무엇을 숨기리요, 당연히 일반적인 성형이 아니라는 것 쯤은 짐작했겠지. 실버러쉬의 사

장이자 창립자인 루드비아나 씨는 환상, 정신조작 계열 마법의 스페셜리스트로서 많은 마법

특허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환상마법 일루젼을 이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팅. 시각,

촉각, 후각, 미각까지 완벽히 속이는 환상을 얼굴 표면에 덧씌워, 마치 성형을 한 듯한 효과

를 낼 수 있다. 얼마전에는 동물귀라던지 꼬리까지 달아주는 옵션도 생겼다고 했기에, 어쩌

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가보았지만, 거절당했다. 루드비아나씨가 자기도 불가능이

란게 존재한다면서. 아무튼, 내가 ' 저건 가짜야 ' 라고 수 없이 되뇌이며 뚫어져라 쳐다봐도

본모습이 보이질 않는것으로 보아 효과는 확실한 듯 하다. 

 

 " 저기 … 제가 뭘 … 잘못한건가요? "

 

 특히, 아홉개의 여우꼬리라는 욕심히 과한듯한 모양새와 윤기있는 검은색의 머리칼과 동

일한 색을 가진 여우귀 두 쪽이 여전히 선명하게, 실감나게 보인다는건 역시 대단한 마법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시킨 음식을 기다리는 내 앞에 허락도 없이 앉았다는 것이 불만이긴 해. 심지어 여우라

서 쥐인 내가 많이 불안해지고 있거든. "

 " 저기요, 혹시 챔피언 … 님? "

 

 내 말은 무시냐.

 

 " 그렇다만. "

 " 후아아아 … 혹시 성함이 트위 … 치? "

 " 그것도 맞어. "

 

 여우로 분장한 소녀는 마찬가지로 여우의 눈을 연상시키는 호박색의 눈으로 날 오도카니

바라보며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너 나 안 징그럽냐? 하긴, 하마라던지 코끼리라던지

도 집에서 기르고 싶은 사람은 적지만 동물원에 보러가는 사람은 많잖아. 바깥에서 보니

내 괴상한 외모도 단순한 ' 흥밋거리 ' 정도인가 보지? 쳇.

 

 " 뭐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

 " 아, 아는 사람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기다리는 와중에 … 아는 사람이

말해준 것과 비슷한 커다란 쥐가 짠 ㅡ 하고 나타났어요 ! "

 " 그 아는 사람이 내 팬이라도 되나보지? "

 " 네 ! 시도때도 없이 트위치니 뭐니 쥐 얘기만 가득 하더라구요? "

 

 열성 팬인가. 하긴 나도 그런게 있기는 있을법 한 몸이지. 무려 프로필부터 자운의 최상급

챔피언이라고 나와있지 않은가. 나는 그 이상의 대꾸 없이 언제쯤에나 시킨 음식이 나올지

를 기다리며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눈 앞의 여우소녀는 뭐가 그리 신기한

지 음식이 나올때까지 계 ㅡ 속 이 쪽을 바라본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이런 기분이였을까.

적당한 핑계라도 대서 어딘가로 치워버리자. 일단 저 놈의 살랑살랑거리는 꼬리랑 귀가 제

일 만만해보인다.

 

 " 그 여우 분장좀 치워. "

 " 네? "

 " 왜, 쥐라도 포로 튀겨서 가져다주리? 여우가 쥐 잡아먹고 사는거 알아, 몰라? 알아들었으

면 그 꼬리랑 귀 빨리 치워. "

 " … 이걸, 치우라고요? "

 " 못 치우면 저리가, 눈에 띄질 말라고. 보기만 해도 털이 곤두선다 곤두서. "

 

 내가 기억하기론 일루젼 성형은 본인 의지로 제거할 수가 없다. 다시 시술소에서 제거를 받

거나,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풀리도록 되어있으니, 아마 대충 적당한 핑계가 됬으려나.

 

 " 하긴, 이 꼬리 때문에 의자 앉는것도 불편했어요 ! "

 " 그래, 그럼 썩 ㅡ "

 

 여우 분장의 소녀를 중심으로 잠시 풍경이 일그러지는듯 하더니, 곧 녀석의 귀와 꼬리가 사

라졌다. 여우 분장의 소녀 … 아니, 더 이상 여우 분장이 아닌 소녀는 꼬리가 없어져 의자와

등 사이에 생긴 빈 공간을 의자를 끌어앉아 채우곤, 다시 이 쪽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다.

 

 " 읏차, "

 " … 너 그거 어떻게 한거냐? "

 " 예? 보기보다 쉬워요. 배워보실래요? "

 " 사양할게. "

 

 일루젼 마법 버전이 업데이트 됬나보다. 에라, 이렇게 된거 내 열성팬의 친구라는데 귀찮은

것 감수해주지 뭐. 가끔은 이런 사소한 이벤트도 있는법이야.

 

 그 뒤로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누구에게나 익숙한 식당의 아주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곰국과 여러가지 반찬들, 공기밥 하나를 쟁반가득 담아오셨다. 드디어 식사

시작 !

 

 " … "

 " … "

 

 인가 했지만, 여우 분장을 하지 않은 소녀 … 붉은 비단옷을 입었으니 앞으로 비단옷의

소녀라 지칭하자. 아무튼 비단옷의 소녀가 내 식사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침이라

도 도는 모양새다. 뭐, 사실 동정심이라던지 줄 생각이라던지는 전혀 없다. 나눠? 누가?

대체 왜.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신경쓰이는건, 주변의 시선이였다. 요즘 시대에는 과학

기술이 하도 좋아져서 사진 한 방 찍히면 온 발로란에 다 퍼져나간다. 그러니 챔피언 같

은 인기있는 직종이라면 당연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지

금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나 혼자 먹는다 ㅡ> 애 앞에 두고 혼자 처먹는 인성 甲 트위치

 어떻게든 먹여주려고 한다 ㅡ> 팔이 짧아서 안 닿는다

 하나 더 시킨다 ㅡ> 문제없다 ㅡ> 신난다

 

 " … 너 다 먹어라 씨부럴 "

 " 앗, 감사합니다 ♬ "

 

 나지막한 중얼거림은 무시한건지 못들은건지 얼굴 가득 화색이 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마음속으로는 뱉을 수 있다. 퉷.

 

 다시 내 것을 시키고 돌아오자, 녀석은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채 수저를 내려놓았다. 다

가오는 나를 보자, 녀석은 울상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밍밍해요 … "

 " 저런 씨 ~ 아니아니, 곰국에는 먹기전에 소금을 넣어야지. 분명 이거 아이오니아 음식인

대 네가 모른다고? "

 

 검은색의 머리와 붉은색과 하얀색을 베이스로 한 비단옷을 봐서는 분명 아이오니아인, 그

것도 윤기있는 머리칼과 백은의 서리가 내려앉은듯한 붉은 비단옷으로 봐서는 아이오니아

인 중에서도 뭔가 잘 사는 집 애인줄 알았는대. 아니, 잘사는집 애라 철이 안 들고 뭐가 뭔지

잘 모를수도 있나? 어쨌든 소금그릇을 수저로 퍼 대충 간을 맞춰주었다. 공기밥도 말아주면

한 끼 식사 완성.

 

 " 마 … 맛이 달라졌다. "

 

 그게 놀랍냐. 티가 나지 않을정도로 작게 조소했다. 비단옷의 소녀는 이윽고 서투른 수저질

로 식사를 시작했다. 날 면전에 두고 식사가 정상적으로 가능한 사람은 유시혁 제외하고 너

밖에 없을거야.

 

 " 내 면상 면전에 두고 참도 잘 쳐먹는다. "

 " 후냠냠 … 예? 여우는 원래 쥐를 잡아먹지 않았었나요? "

 " … "

 

 생각하는것을 포기했다. 뭐라는건지. 확실한건 이 녀석은 왠지 나 한 번 쳐다보고 밥 한숟

갈 뜨고 나 한 번 쳐다보고 밥 한 숟갈 뜨는것도 가능할 것 같다. 염병할 자린고비냐. 그나

저나 이 녀석을 여기에 기다리게 한 친구는 도대체 누구인거야? 화장실 정도 갔다 올 시간

이라면 한참 지났다고. 나는 녀석이 다 먹어갈 즈음에 입을 열었다.

 

 " 질문좀 하자. 그 아는 사람이라는 녀석 누구야? 무슨 일로 여기 온거지? "

 " 음 … 여기서 일한다고 했어요. "

 " 여기? 1층 상가말이야? "

 " 그건 아니래요. 미리 ' 1층과 2층 이상은 완전히 별개의 장소니 행동을 조심해야해 ' 라고

말까지 했는걸요. "

 " 옷은 뭐 입었는대? "

 

 소환사들은 보통 고귀함을 상징한다고 하는 보라색의 천으로 로브를 만들어 두르고 있다.

직위에 따라, 취향에 따라 금색의 비단실을 소매나 후드 부분에 장식하기도 하고, 상임의원

급이라면 금색의 견갑이 왼쪽 어깨에 장식으로 자리잡고 있거나, 푸른 보석을 소매에 장식

하거나 아니면 보라색 외에 순수함을 상징한다는 흰색의 옷을 로브 위에 입고있거나 하고

있다. 물론 그 정도 급의 인물이 친구지는 않겠지.

 

 " 검은색 양복이요 ! "

 " 뭐야, 잘못 들은거 아냐? 그런 옷을 입는 소환사는 …  생각보다 많네.  "

 

 이 대목에서 내 마음 한 켠으로 실망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 좋아, 그럼 내가 이름들을 부를테니 아는사람의 이름이 있으면 말해봐. "

 " 네에. "

 

 비단옷의 소녀는 한 끼 대접해 준 덕분인지 말하는대로 척척 잘 따라주었다. 말을 참 잘 들

어주는 모습이 이거 뭐 개같다. 강아지 말이야. 강아지.

 

 " 그럼 시작. 루드비아나 실버이어링. "

 " 모르는 이름이에요. "

 " 시구엘 칸데르크. "

 " 아니예요. "

 " … 이스트반. "

 " 아는 사람의 이름은 아니지만 말해주기는 했 ㅡ "

 

 됐어. 정답이 나왔다. 실망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 유시혁이지? "

 " 네 ! 그 이름이에요. "

 " 젠장. "
 

 내심 내 열성팬이라길래 조금 기대는 했건만, 그 작은 기대감조차 산산히 조각내는구나 …

그것보다, 걔가 왜 이런 어린애를 여기에 기다리라고 해 놓은거야? 방금 꽤나 바빠보이지 

않았나?

 

 " 걔랑 무슨 관계야? 어린애 데리고 다닐만큼 한가한 녀석이 아닐텐대. "
 " 트위치씨랑 비슷한 관계라고 말해주셨지만 …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
 " 그게 무슨관계인건대 … "

 " 그래서 저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 트위치씨랑 유시혁씨는 무슨 관계인건가요? "

 " … "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대며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게 있어서 말하는 재주라는건 남

이 걸친 귀금속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대 굳이 내돈들여

사고 싶지는 않고, 그것으로 무언가 잘나 보일때 가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잠깐 많이 드는 정

도라는 말이다. 당연히 그런 내가 그 긴 이야기를 몇 마디 정도에 담으려니 말문이 막혀버렸

다.

 

 " … 쌍무적 계약관계? "

 " 네? "

 " 법리 해석상의 후견인? "

 " 후견인? "

 " 염병, 더 묻지마. "

 

 그렇게 툭 쏘아붙여 대화를 끝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열성팬도 없겠다, 내가 이 자리에 더

있을 이유나 녀석이 또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묻고 싶은 마음도 없다.

 

 " 에, 트위치씨가 주문한 음식은 안 나왔는대 어디가세요? "

 " 그러고보니 시켰던가? 계산은 할테니까, 시혁이 오면 처잡수든 버리든 개나줘버리든 맘대

로 하라고 전해.

 

 뒤이어 들려오는 녀석의 대답을 귀담아듣지 않은채, 나는 밖을 나섰다.

 

 

 " 후우우 … "

 

 화장실의 거울은 아침과 마찬가지로 영 좋지않은 기분인듯한 표정의 쥐를 보여주고 있었다.

방금의 여우분장을 한, 비단옷의 소녀는 대화 내내 내게 신기하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이는

최소한 일순간이나마 혐오감이 피어오르는 면상을 먼저 내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에 비하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도 나쁘다면 나쁠 뿐 기분좋은 대우는 아니

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거울을 바라보았다.

 

 " … "

 

 어쩌면 그저 당연한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내 작은 화풀이일지도 모르겠다. 세면대의 물

을 틀곤, 두어번 연거푸 얼굴에 물을 축였다. 중간중간 푸드코트는 넓으니, 다시 만날일이 없

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을 거를 수는 없다며 배가 복통이라는 강수까지 두며

시위하고 있었으니까.

 

 " 대화 나눠보니까 어때, 그 여우는? "

 " 애가 영 … 맹 ㅡ 해보여, 사람이랑 대화하는 느낌도 안 나고. "
 

 … 익숙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리자 얼떨결에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보라색 로브를 입지않은, 검은색의 정장 차림의 소환사. 유시혁이 팔짱을 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 너 뭐야. "
 " 네 삶의 빛이요, 네 생명의 불꽃, 너의 죄, 너의 영혼. 나 유시혁을 잊으셨나? "
 " 그 입 닥쳐라, 언제부터 보고있었던건대? "
 " 네가 아리 밥 한 그릇 말아주고 있는 장면부터 계 ㅡ 속 지켜보고 있었어. "
 
 새삼스레 생각하는거지만, 이 녀석은 정말 악취미다.
 
 " 아리? 그 녀석 이름인가, 걔는 왜 데리고 다녀? 결국 네놈의 일 하기 싫음이 베사리아 상임
의원을 죽여버리고 자유를 쟁취한거야? "
 " 아직 죽일 생각도 준비도 안되있어. 그리고 지금 난 열심히 일 하고 있잖아? "
 " 네 녀석의 직업은 반반한 애들 꼬셔서 유흥업소에 팔아넘김으로써 지금도 심한 연예계 여
배우 기근에 공로하는 포주인거냐? "
 " 거 말하는 꼬라지가 … "
 " 스승은 제자의 거울이지, 날 가르친 누군가와 널 가르친 누군가를 오버랩해보는건 어때? "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유시혁은 허공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누군가에게 말하듯 중얼거렸
다.
 
 " 분명 지옥에 계실 이스트반 스승님, 저 쥐새끼가 모자란거지 저와 스승님은 죄 없으니 오해마
세요. "
 " 아니에요 이스트반씨, 저 인간새끼 분명 ' 그 트롤러 영감때문에 내 성격이 이러니까 양해해 '
라고 말했다니까요, "
 
 잠깐의 침묵뒤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래서, 쟤 데리고 무슨 업무를 하고 있던건대? "
 " 아리는 89번째 챔피언으로 기용될 예정이야. "
 " … 챔피언? 그런가, 업무의 일환이였던게 맞긴 맞네. 걔는 뭘 할줄 아는대?  "
 " 중무장 군인 대열, 그래, 아이오니아인 처럼 보였는대 참전자라도 되는건가, 그렇겐 안보였는
대 의외네. " 
 
  적당히 손을 탈탈 털어 물기를 털어낸 뒤 바깥을 향해 걸어나섰다. 더 말하더라도 일단 뭐라도
시켜놓고 얘기하자. 위장의 소리만 내던 평화시위가 참다못해 복통이라는 무력시위로 번지기 시
작한지도 오래다.
 
 " 잠깐 ! "
 
 그러자 갑자기 유시혁은 내 어꺠를 우악스럽게 잡아 돌려세웠다.
 
 " 또 뭐야. "
 " 계속 이야기 할 거니까 잠깐 좀 들어봐. 이런거 남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잖아? "
 " 그다지 흥미있는 이야깃거리도 아니다만 … "
 
 내 어깨를 잡은 두 손을 치우곤 다시 밖을 향해 걸어갔다. 잠깐 조용하려니 드디어 끝났다 생각한
순간, 녀석은 다른 카드를 내세웠다.
 
 " 좋아, 네가 아침에 ' 부모자식도 자식이 크면 은혜를 갚는다 ' 라고 했지? 지금 네가 내 말을 잘 ㅡ
들어주면 네가 받은 은혜의 반을 탕감해줄게. "
 
 내가 대체 왜 그 낯부끄러운 말을 해서 또 새로운 개짓거리의 희생자를 자초한걸까. 후회스럽지만
발로란의 현재 기술력은 과거로 가는 마법이 없다. 미래로 가는건 있지만. 결국 나는 돌아섰다.
 
 " … 짧게 말해. "
 " 그러니까 말이지, 아리는 그러니까 … 아마 네가 느꼈던대로 평범한 녀석이 아니야. "
 
 챔피언 중에서 평범한 챔피언 자체가 적은대 무슨 소리일까. 특히 네가 여러가지 이유로 관리하게
되는 챔피언은 말이지,
 
 " 네가 사람새끼가 아니라서 정신상태가 안 좋은 챔피언을 관리한다는거야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 "
 " 어떤 새끼가 말한거야 그건 … 아무튼 ㅡ "
 " 내 쪽이 물어보자. 나랑 비슷한 관계라면서? 무슨 관계인거야 그거. "
 " … 쓸 데 없는 소리를, 별 거 아냐. 법적 후견인으로 내 명의를 써먹게 됬거든, "
 " 후견인? 부모가 없어서 법에 걸려서 보호시설에 넘어가지 말라고 임시 조치로 해두는 그거? 이
젠 고아까지 잡아다가 일 시키는거냐? 그것도 전쟁 피해자를? "
 
 안 그래도 군인같은 살인이 정당화되는 공직자를 제외하고도 리그에는 정신나간 살인마가 챔피언의
반 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리그가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내팽개치는걸까. 레지날드 애쉬람이 살아
돌아오면 참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길 것 같다.
 
 " 그런거 아냐. 먼저 찾아온건 아리라고. 오히려 거절해야 되는데 그 임시조치 까지 해서 리그 쪽이 아
리를 받아준거고.  "
 " … 잠깐, 뭔가 이해가 안되는대.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사람 머리 두부뭉개듯 뭉개는 완력으로 녹서스
나 자운의 군인 머리통을 뽑아대는 고아가 리그에 다짜고짜 찾아와서 정육점 주인과 함께 사람 토막내
고 고맙단 소리를 듣는 직업으로 알려진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했는대 거절해야 되지만 특별히 법적후
견인 까지 붙여가면서 어떻게든 89번째 챔피언으로 기용한다고? 너 지금 장난치냐? "
 
 유시혁은 짐짓 잠시 고민하는듯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렇게 따지면 졸라 못생겼고 사람 머리 두부뭉개듯 뭉개는 완력도 없으며 스프링쿨러로 나올 물을
독과 바꿔치기 해서 두자릿수 킬수를 올린놈을 살인첩부업자와 함께 사람 토막내고 고맙단 소리를 듣
는 직업으로 알려진 챔피언으로 써먹는것도 말이 안되는거 아니냐? "
 
 … 반론해야 할 부분이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분은 제쳐두었다.
 
 " 그거야 … 추측해보자면 나를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자운에게 주고 싶지 않았던거겠지. 아
니면 이슈를 노렸다든가 … "
 " 바로 그거야 ㅡ ! "
 유시혁은 갑자기 과장된 몸짓을 보이더니, 검지로 날 삿대질해보였다.
 
 " 뭐가 그건대 … "
 " 걔도 사람이 아니거든. 여우야 여우. 네 발로 걷고 캥캥 울며 쥐를 잡아먹는 그런 여우 ! "
 " … "
 내 썩어빠진 얼굴로 최대한 썩은 표정을 지어보여서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트위치의 메모장
 
 
 
柳時奕
전쟁학회 상원의원 100인중 한 명. 이름이 특이하단 소리를 많이 듣고있다.
이상하리만치 ' 지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것 ' 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있다. 본인이 자청하는건가?
 
지낸지는 꽤나 오래됬지만, 아직 녀석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다. 쓰려고 하니 뭐가 안나오네.
일단 소환사니까 강하긴 강하겠지.
음 … 또 정신이 나갔고 정신이 나갔거나 정신이 나가있거나.
 
 
검은 정장의 소환사들
 
자운의 소환사이자 최초의 소환사이기도한 이스트반은 전쟁의 끔찍한 경험의 영향으로 정신병적인 행동을 보이곤 했다.
후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명명되는 정신장애였는데, 이에 의해 이스트반은 각종 리그의 규범을 어기는 행위를 보여왔다.
 
젊은 소환사들이 ' 트롤러 ' 라고 지칭하는 녀석들의 정신적 스승인 셈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마법실력만큼은 애쉬람과 동격이었던 이스트반은 정신적 제자들 말고도 많은 직계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있었는대, 
그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이스트반이 어긴 규범중 가장 가벼운 규범인 ' 복장 ' 을 어기고 있다. 검은색 정장을 입는것 말이다.
보라색 로브가 전쟁학회를 상징한다면, 검은색 정장은 이스트반을 상징한다나 뭐라나.
 
전쟁 학회에서도 이들은 이스트반의 의지를 따라 들어온 인물들임을 알고 있기에 추모 정도의 의미로 어기는 것을 일일이 잡지는 않고있다.
 
이스트반은 현재 피들스틱과 관련된 사고로 인해 실종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