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숲은 비명을 내질렀다.

숲의 전경은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마치 숲의 동물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듯이 제각각으로 흩어져 공포에 젖은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광경은 혼돈이라는 말 이외의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부조리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짐승들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굴속으로 기어들어가거나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겨우겨우 나무위로 기어 올랐다.

재주가 도주뿐인 늘신한 초식동물들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로 달려 도망갔다.

이빨이 있고, 발톱이 있는 맹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포식자의 위치에 존재하던 그 위용도 전부다 내팽겨쳐버린채, 평소 자신의 먹이에 불과했던 녀석들과 섞여 달아났다. 고개만 돌려도 물어 죽일 수 있는 위치에 무방비한 짐승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가리는 오직 공포 섞인 울음소리를 뱉어내기 바쁠 뿐이었다.

개중에는 공포를 이기지 못해 넘어져 버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동물들을 지배하는 공포가, 그들을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다시 일어나 달리게 했으니까.

────그 모든 충격과 공포, 괴성어린 절망과 비명의 원인이 무엇인지 과연 누가 알까. 아마 들어도 믿기 힘들것이다. 이 거대한 숲을 통째로 공포에 빠트리게 한 원인이, 다름 아닌 한 사냥꾼의 흥분 어린 질주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결국 사냥꾼은 질주를 멈춘다. 그러나 그 질주가 멈춘 후에도 숲의 전율은 끝날 줄을 몰랐다. 여전히 다시 없을 재앙이라도 피하는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도망칠 뿐이다. 그러나 질주의 주인공은 그런것 따위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 새하얀 백색의 갈기 아래에,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푸른 안광을 부릅 뜰 뿐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자였다. 백색의 갈기나 푸른 안광이 놀랍다는 것이 아니다. 사자는 두 다리만으로 땅을 디딘채 강인한 팔로 단검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냥을 위한 가죽갑옷과 자신의 전리품일게 분명한 뼈와 이빨로 이루어진 목걸이까지 차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경악에 빠트리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로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분명 그 모습은, 숲의 최고의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사자는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은 반복했다. 사자의 심장은 튀어나올듯이 뛰고 있었고, 사자는 앞으로 펼쳐질 '사냥'전에 그 심박수를 가라 앉히길 원했다. 허나 심장은 좀처럼 진정할 줄 몰랐다. 왜냐하면 그 심장의 거센 박동은 방금의 질주가 원인이 아니라 사자가 품고 있는 거대한 기대감과 흥분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사자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사냥감을 앞에 둔채 평상시의 냉정을 되찾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자는 어머니의 품보다도 더 포근한 수풀 속에 숨어, 자신이 이제 곧 '사냥'할 목표물을 바라 보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자를 능가하는 포식자였다.

위협적인 생물이나 짐승이라는 말로는 그 위험한 앞발을 전부 표현하기 힘들것이다. 마치 낫처럼 구부러진 그 앞발은 얼핏 사마귀를 연상시켰지만, 그 앞발은 사마귀의 그것과는 용도가 달랐다. 왜냐하면 그 앞발은 휘두름 만으로 상대를 두조각 이상으로 찢어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견고한 갑각을 가진 생명체만이 자랑할 수 있는 맨들거리는 빛남 역시 이 포식자는 가지고 있었다. 그 갑각은 역겨운 보랏빛을 자랑했고, 단단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연했다. 그 껍질 아래에 숨겨진 운동능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끔찍하게도 이 생명체는 날개까지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 견고한 갑각 아래 숨어 있는 커다란 날개는 이 두려운 생명체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펼쳐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론 그 정도의 날개로는 완전한 비행은 불가능 하겠지만, 포식자의 치명적인 몸뚱아리를 거의 비행이나 다름없는 도약을 가능케 할것이 틀림 없었다.

그야말로 괴물. 더 적절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사자의 새로운 사냥감이었다.

사자는 단검을 더욱더 굳게 움켜 쥐었다. 괴물은 사자에게서 도망친 짐승들을 잡아 도륙내어 먹어치우고 있었다. 사자에게서 겨우 도망친 숲의 동물들은 괴물의 존재에 거품을 물며 발광했고, 괴물은 손쉽게 공포로 미쳐버린 동물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자는 그 모습에 무성한 수풀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 동작을 두려움 따위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다음의 도약을 위한 준비다. 사자가 지금까지 수없이 취해온 동작이었다. 

사자는 알고 있었다. 생명체는 식사할때와 사냥할때야 말로 가장 사냥하기 쉬워진다. 같은 사냥꾼이기에 발견한 괴물의 사냥과 식사가 보여 주는 헛점이 사자에게는 훤히 보이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죽인채, 사자는 이를 악물며 그 흉폭한 안광을 빛냈다. 강인한 근육이 팽창을 위해 수축하고, 거대한 야성이 사자를 사로잡았다.

흥분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듯 했다. 그 동안의 덜떨어지고 약한 녀석들을 사냥하며 느꼇던 지루함과 실망감은 더 이상 없었다. 사자는 눈앞의 괴물을 사냥할 생각에 환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진정한 사냥꾼인 사자의 눈 앞에 놓여진 진정한 사냥감의 모습에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 이제 곧 사자의 사냥이 시작 되리라.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자는 사냥감을 정복하리라.

사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