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곳에서 뭘하는거지."
 파란색 복장과 보라색 두건을 입은 남자가 자신의 신도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다른 종교와 대립을 이루는건가."

"...저들이 무력으로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종교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거짓말치지마라!"
 거미교에서도 귀가 상당히 좋은듯한 신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들의 믿음이 헛된거라고 말한쪽은 그쪽이라고!"
"맞아맞아!"
"무력으로 시비건것은 맞지만, 너희들의 언행이 올바르지도 않았다고!"
"조용히해라!"

 다시 한번 무력충돌이 일어나려는 분위기가 엘리스의 호통으로 겨우 저지되었다.

 

"내가 분명 말했을터다. 공허가 올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반면, 믿지 않는 사람또한 존재한다고."

"...그러셨죠."

"우리들은 그런사람들에게 굳이 우리들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믿고안믿고는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온다. 그 사실 하나가 우리들을 결속시켜왔지 않았나? 저들에게 베풀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은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에 다가올 공허를 받아들이게 이끄는 것이다. 설령 공허가 저 무지한 자들을 덮치려고 할 때조차도 말이지,"

"...죄송합니다."

 마지못해 꺼낸 형식적인 사과지만 신도는 교주의 말을 귀담아듣는듯했다. 아무리 대립관계의 교주라고는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태도만큼은 엘리스조차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교주 자체가 문제인 종교는 아니군.'

 짧은 대화를 엿들은 그녀의 한줄 평이었다. 여기서 우두머리 자체가 문제인 종교는 거미교라는 사실은 잠시 생략하기로 하고...

'확실히 저 교주라면 이번 충돌을 좋게 마무리지을수 있겠어.'

"그런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외친 비하발언은 누가한것이냐?"

 대놓고 엘리스에게 내던진 비난의 발언자를 찾는것 같다.

"저입니다."
"왜 그렇게 말했지?"

"알고계시리라 생각하겠지만 감히 얘기하자면, 거미교의 사제인 그녀는 온갖 부와 명예를 등에 업은채 지금의 삶을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허가 닥칠것을 대비해 가진것을 비워가는 우리와는 전혀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백셩을 보면 그 우두머리를 알 수 있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우리와 완벽히 대칭축에 서있는..."
"실례하지만, 그쪽 교주님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엘리스의 말이 보기좋게 무시당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비워가는 사람이라면, 저자는 채워가는 사람입니다. 저 모습을 보십시오! 공허가 들이닥친 후에 저렇게 지낼수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들을 덮친 뒤에 그동안의 부와 명예가 이어질리가 없다는걸 알고 계시잖습니까!"
"저기, 이번 충돌사태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
"그래. 하지만 지금의 '엘리스'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

 얼굴 한 번도 본적없는 교주의 입에서 자기의 이름이 나왔다.

'신도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한건가? 내 앞에서도 '사제님'이라고 말했을텐데?'

"확실히 그 여자는 우리의 대칭축에 있는 여자는 틀림없다. 하지만 대칭축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난관으로 여겨지거나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녀의 삶은 자기의 신, 즉 거미교의 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단계 그 이상으로 연결되어있지. 종교며, 그녀의 취미나 즐거움이며, 심지어 생각마저도 그렇다. 하지만 공허는 발로란 대륙에 있는 모든 것을 파멸시킬수 있다. 사람, 동물, 식물, 그리고 현세의 신조차도 말이지... 그녀의 몸에 공허가 침식되어갈때도 '신이시여...'하고 죽어가는 장면은 눈에 그려지지 않나? 그런 자가 어떻게 우리 교단의 장래에 영향을 끼친단 말이냐?"
 어째서 자기 이름을 알고있냐는듯이 노려보는 엘리스에게 말자하의 말이 정확히 귀에 들어갔다. 자신뿐만 아니라 신보다도 우위에 서있다는 공허라는 존재,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신과 종교를 포괄한 방대한 비꼼.

"... 거기 계신 교주님?"
"알겠느냐. 저런 외모와 지금의 위치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저 여자는 아무리 겉으로 치장해도 속은 텅 비어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미 마음속에는 자기자신이 있지도 않아. 맹목적인 숭배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이나 가치는 점점 '공허'로 향하고있단 말이지..."

"..."
"안그런가? 엘리스."
 드디어 청자가 전환되면서 교주의 시선도 그녀에게 돌아갔다.

"네녀석은 대체 뭐하는 놈이지? 어떻게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있는거냐."
"음... 나를 모르는건가. 그러고보니 용케 너는 대중 앞에서 존댓말캐릭터를 연출해오셨더군. 화가나면 반말로 대하는건 네 개성인가?"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내 앞에서 나를 비하하다니, 그건 매너가 아닌것 같은데말이야..."

 교주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동작 없이 경이로운 말투를 자아냈다.

"뭐야, 왜 내가 너하고 처음보는 사이지? 올해는 그렇다쳐도, 몇년전에는 수도없이 전장에서 마주친 사이였을텐데? 적이든, 아군이든."

'?!'

 생전 본적도 없는 사람이 자신을 알고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수도없이 전장에서 활동해왔다는 남자의 말.

'그럼 저사람은 챔피언이라는 얘긴데... 왜 하나도 기억속에서 저자가 떠올려지지 않는거지?'

 흔히말하는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아니다. 낯선 사람을 만난것 같은데 상대와의 연은 과거부터 이어져있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 상대는 날 알고있는데 자신은 상대를 모른다. 일방적인 무지에 갇혀버렸다.

"그건 그렇다 치지. 어쨌든, 이번 교단끼리의 충돌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싶다. 무력을 선보였다쳐도, 빌미는 우리에게 있다는 이상, 괜한 자존심으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까 저 신도에게 했던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지. 왜 입바른 소리만 하다가 내 얘기에서는 쉴새없이 깎아내리는거지?"
"내가 할수있는 말은 제 3자가 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비판적인 부분이다. 무슨 연유로 이런 종교를 만들었고 그를 통해서 네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냐? 네 뒤에 있는 모든 신도들이 '축복을 받는다면' 너는 뭘할거지? 그때까지도 지금의 신아래에 머물러있을건가? 나는 깨달았다. 이 대륙이 혼돈에 휩쌓이고, 사람들은 반강제적으로 공허를 받아들이게 될 것을... 그리고 이 미래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진실이, 이 '공허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여기있는 누구도 그걸 피해갈 수 없다. 너도, 또한 나도, 그리고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도. 나는 그 상황에서도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 이 종교를 만들고 활동하고있다. 넌 그만한 과거가 있나? 네가 변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면 넌 무욕한 돼지나 다름없어."
 자기가 먼저 말을 걸었으나 속사포같이 쏘아붙인 말들이 그녀를 궁지에 몰아붙였다. 어느새 엘리스는 자신이 하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상대의 말에 대한 반론만 생각하고 있었다.

"네 신도들은 어리석을지는 몰라도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건, 너다."

"... 너는 분명 자기 신도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와 나의 종교를 모욕했다. 너의 그 발언은 내 정곡을 찌르는 용도로 쓰인것같은데. 뭐하자는거지? 나와 싸우려고 하는건가?"
"난 분명 '엘리스'도 우리의 아량을 베풀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너에 대해 말한 것이다.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

"나는 거미교의 사제이며 이 종교의 우두머리야. 나를 모욕하는것은 나를 따르는 신도들에게도 모욕을 준것과 같아. 그 신도들에게서 원망소리가 들리지 않아?"
 엘리스는 설령 지게되더라도 저 교주의 얼굴에 독을 한바가지 쏟아부어보고싶었다. 그리고 교주는 도발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네가 날 이길수 있을까?"

<계속>

<글쓴이의 말>

알분은 알고 모를분도 알 수있는 교주의 정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