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러서 6월 30일, 재판날짜가 다가왔다.

'오랫만이군 여기.'

 전쟁 학회에 찾아온 것은 리그에 입문하기 위해 온 이외에는 한번도 없었다. 손에 꼽힐 정도면 그래도 몇번은 왔다고 기억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전혀 떠오르지 않는걸 보면 한번도 안온 것이 맞는듯하다.

 

Fair Play, Fair Duel. 룰과 매너를 지켜, 즐거운 듀얼을 하자!

 아마도 전장에서 자웅을 겨루는 챔피언들에게 외치는 말인듯, 일종의 슬로건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이길것 같나."
 며칠전에 들은 공명의 목소리가 엘리스의 등뒤에서 들려왔다. 엘리스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살짝 돌리는것도 없이 답했다.

"그래...라고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유리하지 않니?"
"그것이 바로 내 종교에서 말하는 헛된 믿음이라고 하는것이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 예언을 해밨는데..."

 말자하의 말을 듣기 싫다는듯이 엘리스는 재판 장소로 뛰어갔다.

"...부정해도 뭐라 않겠다. 그것도 분명 네 자유니까."

 이를 예상하는듯한 말자하의 말은 그가 말하는 '그 날'이 올것임을 확신하는듯한 말투와 같았다.

 

 엘리스와 말자하는 양쪽으로 갈라져있는 방으로 이동했고 법정의 모습에 중점을 맞췄다.

'가운데에 의자 하나?'

"안게, 엘리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명령이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법정의 방대함을 느꼈다. 설령 10m 이상의 신장을 가진 생물체라 하더라도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벽이 있었다. 그 벽 위에 있는 것은 당연히 소환사였다.

"준비는 됐나?"

"예."

"좋아. '청문회'를 시작하지."

'음?'

"당황하고 있는듯하군. 내가 잘못말하기라도 한건가, 아니면 그대에게 제공된 정보가 잘못된건가?"
"아, 아닙니다."

 재판이라고 들었는데, 분명 '청문회'라고 했다. 소환사의 실수이거나, 엘리스의 실수거나, 아니면...

 

... 그녀와 말자하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갑자기 내용이 바뀌었던가.

 엘리스와 말자하, 누구에게 이 일의 책임을 두어야 하는가. 이곳에서 결정될 것이다. 굳이 재판으로 보자면 형사보다는 민사에 가까울 것이며, 처벌의 강도에 따라서 유죄와 무죄로 갈리는거나 다름없는 상황.

"이 화면을 보시게 엘리스."
 엘리스가 알고있는 그 이상의 공간을 지닌 법정이었나본지 소환사의 말이 울려퍼져왔다. 말자하같은 존재는 아닐텐데말이다.

ㄴ말리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들을 말릴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죽게될 것이니까요.ㄱ

'저건...'

 엘리스 앞에 드러난 스크린 속에서 재생된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대사 이후로 벌어지는 말싸움. 엘리스는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신도들이 말했던 도발. 말로써 시비를 건것은 확실히 공허교쪽이라는게 드러났다.

"여기 있는 신도들이 공허교 신도들과 자네가 만든 종교의 신도들인가?"

"맞습니다."
 영상은 정지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시비가 상대쪽에서 나왔음은 분명하다. 공허교 신도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확실히 거미교 신도들의 분노를 이끌었다. 여기서 싸움이 강제적으로 중단되고 다음날부터 무력충돌이 일어났으면 엘리스에게 있어서 더없는 전개였으나...

 거미교 신도의 주먹이 본격적인 몸싸움을 이끌었다. 신도들은 주먹에 강경하게 대응하기를 택했고, 패싸움은 술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엘리스가 자운의 번화가에 도착해서 본 싸움은 그 싸움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다.

"거미교 신도들의 행동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다. 엘리스는 이에 대해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어 인정'같이 반말투로 대하면 감당할 수 없는 페널티가 들어올게 뻔했으니 엘리스는 본 말투를 숨기면서 긍정하는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부정하고픈 욕구가 강했다.

"인정하고 있는것 같지 않는것 같다만..."
'핫?'

"솔직하게 답하게. 거짓말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게 나을것이야."

''거짓된 행동없이 솔직히 대하라.''

 갑자기 자신의 신이 말해줬던 내용이 떠올랐다. 소환사는 자신의 마음까지 꿰뚫어보고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아니면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 자신의 신이 말해줬던 어드바이스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신념으로도 옳은 소리였다.

'그래, 저건 내 신도들의 잘못이다... 아니길 바랬지만, 내 신도들의 잘못, 곧 나의 잘못이다...'

 몇 분을 되새김한 뒤에야 그녀는 진심으로 인정한다고 답했고, 위기를 모면했다.

"좋네. 그 다음 화면."

 다음화면부터였을까. 엘리스에게 내려질 철퇴의 무거움을 알려주는 장면이.


ㄴ난 분명 '엘리스'도 우리의 아량을 베풀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너에 대해 말한 것이다.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ㄱ

ㄴ나는 거미교의 사제이며 이 종교의 우두머리야. 나를 모욕하는것은 나를 따르는 신도들에게도 모욕을 준것과 같아. 그 신도들에게서 원망소리가 들리지 않아?ㄱ

"아..."
 자기의 감정을 앞세워서 말자하에게 싸움을 거는 장면이었다.

ㄴ네가 날 이길수 있을까?ㄱ

"이 장면을 보면 명백히 '챔피언과의 싸움이 전장 밖에서 이루어지면 안된다는 규율을 깬 쪽'은 자네네.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용으로 치면 역린이 발견된 셈이고, 윷놀이로 치면 말이 잡혀버린 순간이었다. 그 당시의 그녀는 말자하를 어떻게든 때려눕히고 싶어했다. 그 때의 그녀의 태도는 명백한 위법행위였다.

"아무리 자기의 약점을 꼬집었다고해도, 그정도의 인내심이 없어서야... 챔피언이 지켜야 할 원칙이나 법은 충동적인 결정따위로 어겨도 된다고 생각했나?"
"크..."
"답변이 매우 불쾌하군."
"아... 아닙니다."
 '분하다'고 말할 뻔했던 입을 겨우 막았으나 새어나온 말마저 막지는 못했다. 엘리스는 또 소환사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행동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최대한 가식없이, 진심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흠... 좋아. 그런 거짓없는 태도가 그대에게도 좋을테니."
'휴...'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두번의 질의에 벌써 그녀는 당당함을 잃었다. 앞으로도 이런 질의응답을 가져야하다니.

'그래도 사실대로 인정할건 인정하자. 소환사 앞에서 꾸밈없이 말해야...'

"자... 이번엔 자네의 종교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겠나?"
"네?"
"말자하의 공격적인 언행은 자기 자신과 공허교에 대한 가치관이 명백했기에 그럴 수 있었네. 그럼 그대가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싸워야만 했던 그 때의 생각과 가치관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군."

<계속>

 

<글쓴이의 말>

 초고에는 분명 '재판'이라고 했죠. 내용은 영락없는 청문회였는데...(웃음) 아...떠올리고 싶지 않은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