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길을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없다. 아니, 있을리가 없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지. 갈곳이 없는 자에게 길은 그저 걷기 위한 곳일뿐. 여자는, 그저 걸을 뿐이었다.

날은 어두웠다. 여자는 강인한 검사이긴 했지만 이런 시간대에 이렇게 외진곳을 혼자 걷는것은 역시 조금 꺼려지는 행동이었다. 그때부터 여자는 걷는 이유를 쉴곳을 찾는 것으로 바꾸었다.

새로 생긴 이유 덕분일까. 여자의 발걸음에 조금 더 힘이 넘쳤다. 해가 진지 오래라 걷는데에는 불편함이 많았지만, 여자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어차피 걷는것 외에 할 수 있는것도 별로 없는 처지다. 여자는, 그저 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한 모닥불을 발견할때 까지 계속 되었다.

모닥불엔 이미 주인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닥불이 스스로 모여 타오르지는 않을테니까.

여자는 도적이나 범죄자의 위협을 생각했다. 여자는 눈앞의 모닥불을 피해갈까 생각했지만, 이윽고 모닥불의 주인이 한명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모닥불 앞까지 다가갔다.

모닥불의 주인은 한 남자였다. 남자는 딱 보기에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그것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장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 전장을 헤치고 나온자만이 가질 수 있는 거친 기운과 너무나도 큰 시련을 겪은자만이 낼 수 있는 숨소리를, 남자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다시 한번 지금이라도 모닥불을 피해갈까 고민했다. 허나 이미 늦었다. 남자는 이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발걸음을 고친다면 필시 원치 않은 관심까지 끌게 할 우려가 있다. 여자는 마음을 고쳐 먹고 먼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모닥불좀 빌려도 될까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느리게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아주 가볍게 웃으며, 여자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여행자인가? 게다가 여자 혼자라....뭐, 마음대로 하시게."

"고마워요."


여자는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남자의 옆에 앉았다. 그 거침없는 행동에, 남자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담하군. 내가 강도면 어찌하려고?"

"이래뵈도 나름 내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거든요."


이거이거 무섭군. 하며 남자는 웃었다. 남자는 자신의 대나무 술통에 든 술을 한모금 마신 후, 여자를 향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젊은 아가씨 혼자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목적지는 없어요. 그냥 걸을 뿐이죠."

"호. 그건 왜?"

"집을 나와서, 갈곳이 없거든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허허 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술통을 여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한 모금 하겠나?"

"감사하지만 사양하죠."

"역시 그렇군."


남자는 여자의 즉각적인 거절에도 그다지 당황하거나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그저 여자에게 내밀었던 술통을 다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한모금 마실 뿐이었다.

이글거리는 모닥불이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마치 불꽃이 춤을추는듯한 모양새였고, 그것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남자 역시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이 차오른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이번에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죠?"

"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난 쫒겨난 사람이지."

"어디서요?"

"조국에서."


간단히 대답한 남자는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켰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조용히 바라보며,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물었다.


"왜죠?"

"오해가 오해를 낳고, 그 와중에 생겨난 비극들 때문이지. 누가 스스로 원해서 자신의 조국을 버리겠나? 바보가 아니고서야."


여자는 남자의 말에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나요?"

"딱히. 그냥 걷다가 달이 좋아 주저 앉았을 뿐이네."

"어디를 향해 걷는거죠?"

"나도 알고 싶군."


이런 선문답이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왠지 불쾌하지 않았다. 뭔가 묘한 친숙함이, 여자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나랑 비슷하네요."

"그렇군. 비슷하군."


그렇다. 그 둘은 확실히 비슷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여자는 마치 이 외진곳에서 동료를 얻은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외톨이로 있었던 여자에게 있어, 그 기분은 굉장히 오묘하고, 또 좋은것이었다.


"당신도 방랑자군요. 길을 잃었어요."

"방랑자라고 길을 잃은건 아니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뿐이야."

"....그런건가요?"

"그래. 검과 몸뚱이, 그리고 술만 있다면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게 술에 취한 갈지자 걸음일지라도 말이야."


남자의 농담에 여자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의 미소에, 남자는 호오 하며 감탄했다.


"웃으니까 상당한 미인이 아닌가. 그래. 이름은 뭐지?"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했다.


"리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