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의 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지금까지의 우세를 모두 엎어버리고도 남을만한 반전이 있었다. 교주를 물어뜯던 수백마리의 거미들이 힘을 잃고 툭툭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곱, 여덟마리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꺼번에 몇십마리로 불어났다.

"이 스킬은 전장에서 '재앙의 환상'이라고 전장에서 외친듯한데."

 말자하의 몸에 올라타있던 새끼거미들에게 검은색 막이 쳐졌고 그 막의 속에서 보라색 물질이 새끼거미들에게 데미지를 주는듯했다.

"대상의 정신을 오염시켜서 데미지를 입히는 스킬이다. 대상이 죽어버리면 주변에 있는 다른 대상으로 무한히 옮겨가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새끼거미들을 낭비하다니. 넌 정말 변함이 없군. 나와 맞붙을때도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져왔다."

'같은 패턴으로?!'

 머리속에서 지워진 기억에 의하면 자신은 언제나 이런 패턴으로 저 교주에게 져왔다는 것이다. 이미 이 싸움은 엘리스가 이길 수 없는 판이었다는 압박감을 주는것과 다름없었다.

 어느새 그녀가 불러낸 모든 새끼거미들이 시체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전장에서 발휘되는 우리들의 농력이 봉인되고 절제되어서 나온다는건 알고있지? 이쯤되면 알아차리는게 좋을텐데."

 말자하 주변에서 조그만 공간의 균열들이 일어났다. 그 균열의 소멸과 동시에 자리에 남겨진 것은 몇 십마리의 공허충들이었다.

"넌 날 이길수 없다. 네가 정 원한다면 너에게 했던 모든 말들을 거두어줄테니까 이런 싸움은 그만하는게 좋을 거다. 이 싸움은 종교적 대립도 아닌, 단순한 감정싸움에 불과하다고."

"늦었어. 나는 내 뒤에 있는 신도들을 위해, 신을 위해 몸을 바쳐온 나 자신을 위해서 너와 싸우겠어. 내가 쓰러지더라도 싸우겠어. 네녀석에게 그런 아량따위는 받고싶지 않아."

"그럼, 이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교주의 말을 들은 엘리스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공허충들을 보고 진땀을 흘렸다. 이들을 모두 처리하고 상대를 이길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균열이 생겨버렸다.

"해보시지."
 보라빛깔의 벌레들이 엘리스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네녀석에게만큼은 지고싶지 않아!'

 엘리스는 양팔을 마구휘두르며, 입에서 끊임없이 독을 뿜어내며 공허충들과 맞서싸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쉴새없이 휘두르는 팔, 그 끝에 있는 손에서 던져지는 다량의 액체들이 그녀를 공격하려는 생명체들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다. 입에서 뿜는 독마저 맞아버려서 쓰러지는 공허충이 생기면 그 벌레의 왼쪽, 오른쪽, 위, 아래에서 4마리의 공허충들이 다시 튀어나왔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공세에 뒷걸음질을 치면서 쓰러뜨리기에 벅차가고 있었다. 결국 신도들로 이루어진 벽에 다다랐을 때에는 손과 발을 육탄전용으로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거미의 다리를 연상케하는 기다란 손으로 상체로 뛰어드는 공허충들을 손톱으로 찔러내고, 하체를 노리는 공허충들을 상대로는 제자리뛰기를 한다음에 이어지는 뾰족한 힐로 찍어누르는등. 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열전을 보이고 있었다.

"무의 지대."
 교주의 중얼거림에 스킬이 발동, 엘리스의 바닥에 보라색 원이 그려진 지역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그 원안에 있을수밖에 없는 그녀는 자기의 마음속에 기분나쁜 무언가가 자극을 받아 자신을 덮쳐버리려는 느낌을 느꼈다.

 문제는, 그 기분나쁜 무언가가 엘리스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는 것.

"이렇게 된 이상,"
 엘리스는 공허충과의 난투사이에 들어온 교주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성공,

"방법은 그것밖에 없지!"
 그녀는 공허충을 징검다리 삼아서 몇발의 도움닫기를 한 뒤, 높이 뛰어올랐다. 그녀의 허리 양옆에 있는 옷감이 가볍게 살랑일 정도의 짧은 소강상태가 지나갔다. 엘리스의 왼팔과 오른팔이 크게 휘둘려졌고 입에서 여러번의 독이 교주를 향해 날아갔다.

"소용없다."
 교주는 공허충들에게 엘리스가 날린 투사체를 막도록 했고, 그녀가 있을법한 지점에 스킬을 시전했다.

"공허의 부름."
 

 2개의 원, 그 둘을 이어주는 둘의 형상을 가진 투사체가 완벽히 시전되었으나 그곳에 있어야할 상대는 놀랍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

 물음표는 교주의 등뒤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착지음으로 해결되었다. 거미형태로 변해있는 엘리스의 '줄타기'식 착지였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기척으로 따지자면 눈치못챌 수준을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에게 등을 내준 교주의 대처.

"독이빨!"
 엘리스의 이빨이 교주를 덮치려고 안달이 난듯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에 있었다.

"캭!'

"여기는 전장이 아니다. 스킬딜레이가 생각보다 짧단 말이지. 네 위치는 그 '기운'덕에 모를리 없고. 그러면..."
 투사체에 맞아서 스킬이 캔슬된 순간에 교주는 뒤를 돌아봐서 엘리스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얼른 고치를...'

"황천의 손아귀."
 인간상태도 변해서 고치를 날릴 위치를 보기 위해 얼굴을 들어올렸을 때, 챔피언이 두르고 있는 보라색 두건에서 무언가가 비춰진다는 걸 보았다. 두건속에서 보라색 빛이 그녀의 온몸을 비추었다. 엘리스에게 한 줄기의 응축된 정수가 가슴에 꽂혀버렸다.

"끄악! 끄으으아..."
 보라빛 정수는 엘리스의 몸속에 강제적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엘리스와 공허교의 신도들은 그 장면을 소리높여 지켜보고 있었다.

 정수에 노출될수록, 엘리스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 느낌은 전장에서의 사망보다 큰 고통... 이러다간 끝장이다! 어떻게든, 이 스킬을 캔슬시켜야 해.'

 엘리스는 현재 자신의 체력에서 낼 수 있는 최대의 마력을 오른손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엘리스의 손바닥에 소환된 새끼거미가 점점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위험한 새끼거미!"
 현재 그녀의 전력을 담아낸 새끼거미가 교주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그리고 나타난 대폭발. 엘리스와 챔피언 모두 폭풍으로 인해 뒤로 나가 떨어졌다. 대폭발이 일어난 장송는 1M 크기의 구덩이가 깊게 파여져 있었다.

 

 두 챔피언은 모두 번화가에서 조용히 쓰러져 있었다. 승부가 뚜렷하게 결정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지금은 먼저 일어나는 챔피언이 승자취급을 받는 것 같다.

 엘리스가 먼저 일어섰다.

<계속>

 

<글쓴이의 말>

 

비교해서 말하자면 종교적 대립으로 싸웠던 초고와는 달리 수정본에서는 단순한 자존심싸움으로 바꿨던게 이번 내용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에 재평가될 거미교를 고려하면 이 전개가 개연성있다고 생각해서인데요, 과연 어떻게 바뀔지는... 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