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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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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써왔어비 오는 새벽이었다.
원룸도 아닌 작은 방 천장에는 오래된 형광등이 웅웅거렸고, 사내는 컵라면 국물 대신 미지근한 우유를 들이켰다. 배는 고팠으나 이상하게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람은 가끔 허기보다 다른 것으로 버틴다. 책상 위에는 적다 만 메뉴 이름들이 흩어져 있었다. 밀각. 국수와 족발의 집. 들깨. 메밀. 냉면. 육수. 사내는 한참 그 글자들을 바라보다가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낮에는 남의 주방에서 열두 시간씩 칼을 잡았다. 고기 삶는 냄새와 세제 냄새와 사람 목소리가 뒤섞인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실하다고 했으나, 사내는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성실한 사람은 보통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오늘을 버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족발을 썰다가도 문득 생각했다. ‘이 고기는 결국 유통이다.’ 냉면 육수를 식히다가도 생각했다. ‘맛은 오래 못 간다. 구조가 남는다.’ 그래서 그는 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다른 요리사들이 칼의 강도와 불 조절을 말할 때, 그는 회전율과 공장과 프랜차이즈를 말했다. 누군가는 음식 장사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후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작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사내는 침대에 눕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동물이 의성어를 내며 맛집을 돌아다니는 영상. 메밀향이 진한 면. 검은 그릇. 따뜻한 조명. 작은 다찌. 고독한 손님. 혼자 먹는 족발. 깊고 진한 육수. 그는 자꾸만 자기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우스워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날 밤이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불도 끄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으나 현실의 그는 부모 집 작은 방에서 버티는 사내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내는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짜 두려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평범하게 늙는 것. 감각이 무뎌지는 것. 월급 명세서만 남기고 끝나는 인생. 그것이 무서웠다. 어느 날 그는 퇴근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들고 한강 근처를 오래 걸었다. 강바람은 차가웠고 도시 불빛은 물 위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배달 오토바이는 끊임없이 지나갔다. 모두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내는 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결국 욕망으로 움직인다고. 사람은 외로운 만큼 먹고, 허전한 만큼 브랜드를 기억하고, 불안한 만큼 익숙한 간판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언젠가 자신도 사람들의 허기를 다루는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배고픔이 아니라, 더 깊은 허기. 그는 삼각김밥 포장을 천천히 뜯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었다. 가게도 없고, 돈도 없고, 이름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인간 같지는 않았다. 멀리서 새벽 첫차가 지나갔다. 사내는 차가워진 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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