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셈이 구리다라는 글이 올라와서

흥미가 생겨 글을 써봅니다.


선 3줄 요약


1.빛과 공허의 전쟁은 엘릭 사가의 질서와 혼돈의 전쟁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2.엘릭 사가에선 '질서의 승리' 역시 세계의 파멸을 가져온다.

3.워크래프트에서도 빛에 대항해 싸울 날이 올 수도 있다.




엘릭 사가




1961년 부터 시작된 마이클 무어콕의 '엘릭 사가Elric Saga'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좀 더 큰 범주인 '이터널 챔피온'에 포함되는 작품인데요, 
마이클 무어콕의 이터널 챔피온 시리즈는 다중세계의 개념을 유행시킨 작품입니다.
이 이터널 챔피온의 세계에선 황천계, 아스트랄계, 평행세계 등 
수 많은 다중세계 '멀티버스'가 존재하고 이 멀티버스를
둘러싸고 질서Law와 혼돈Chaos의 군주들이 세상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기 위해 
영원한 분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선악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선악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가치 상대주의적인 세계입니다.
이는 '반지의 제왕'와 '나니아 연대기'처럼 
선악의 기준이 명확하고 불변한 작품과는 차별적인 부분이죠.


질서Law는 생명을 보호하고, 평화를 가져오며, 안정을 가져오지만
질서가 완전히 승리한 세계에선 악이 없어 선 또한 무의미한 가치가 되며
일정한 규칙이 세상을 지배하며 세계는 변화를 잃고 침체되어 점점 부패하는 세계가 됩니다.


혼돈Chaos는 파괴이고 변화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조력이지만 
혼돈이 완전히 승리한 세계에선 무분별한 가능성과 변화로 모든 관측이 무의미해진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 고차원들의 신들의 전쟁이 한쪽의 승리로 끝나봤자 필멸자들에게 좋을건 없죠..
그래서 이 세상을 존속시키기 위해선 균형이 필요하고 
세계 그 자체의 의지인 코스믹 밸런스가 선택하는게 이터널 챔피온입니다.
이터널 챔피온은 다차원 세계에 존재하며 세상에 균형을 가져오기 위해 싸우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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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와 엘릭 사가

이런 엘릭 사가의 개념은 후대 판타지에 큰 영향을 주었고

던전 앤 드래곤즈나 워해머 판타지에선 엘릭 사가에 나온 개념, 기호, 명칭들이

그대로 나오는데요, DnD룰북으로 엘릭 사가 시리즈가 나오거나, GW가 워해머를 만들기

전엔 엘릭사가 미니어쳐 게임을 만들기도 했죠.


물론 블리자드 게임에도 이 엘릭 사가의 영향이 큰데요,


파멸의 인도자(Ashbringer)와 서리한(Frostmourne
이 두 자루의 검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죠.

엘릭 사가에서 대립하는 두 자루의 검, 
스톰브링거(Stormbringer)와 몬블레이드(Mourneblade)에서 따 온 것이죠. 
심지어 이 마검들은 서리한처럼 룬이 새겨져 있으며...이 검에 희생당한 영혼을 흡수하는 기능도 있죠.

디아블로의 전체적인 세계관 역시 이터널 챔피온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드높은 천상과 불타는 지옥이 세계를 창조하는 세계석을 두고 영원한 분쟁을 벌이죠.

그리고 전쟁에 실증이 난 이나리우스와 릴리트가 세계석을 훔쳐

게임의 무대인 성역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 성역 세계와 함께 창조된 천상용 트락울은 천상과 지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여 세계를 보호하려고 하며

이 트락울의 사도가 된 사람들이 강령술사이지요.




천상-질서

지옥-혼돈

트락울-코스믹 밸런스

강령술사-이터널 챔피온


이런 개념들이 완전히 대입되며

심지어 3의 강령술사는

생긴것도 엘릭의 하얀 장발머리를 그대로 가져왔죠.


또한,

질서의 승리에 의한 부작용은, 천상의 승리에 의한 부작용으로

바꾸어서 그대로 언급하는 장면이 디아블로 소설 '거미의 달'에 나옵니다.


디아블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워크래프트 이야기를 해볼까요.



워크래프트에선 질서Order를 관장하는 비전마력과 혼돈Chaos를 관장하는 지옥마력이

따로 존재하긴 합니다만, 잘아타스의 대사를 보면 빛과 공허가 엘릭 사가의 질서와 혼돈에

더 부합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Xal'atath whispers: Do the naaru speak of the eternal conflict? 

That the entire history of your world is but a fraction of the time that has passed? 

Of those that came before the draenei? No? <short chuckle> (in Netherlight Temple)



나루가 영원한 분쟁에 관해 이야기했나요? 

당신 세계의 역사는 지나간 시간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건요? 

드레나이 이전의 것들에 대해선요? 아니라구요? 하하하!


Xal'atath whispers: The Light would have your kind remain obedient and stagnant. 

I offer the gifts of freedom and strength. I hope you remember my kindness. 



빛은 당신 종족을 순종적이고 침체되게 만들었을 거에요. 

전 자유와 힘을 선사해줬고요. 

부디 제 친절함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여러모로 엘릭의 혼돈과 질서를 생각나게 하는 대사입니다.

뭐..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엘릭 사가의 세계관과 블리자드 세계관의 유사성을 생각했을 때,

워크래프트도 빛이 완전 승리하면 그 끝은 파멸로 직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악마와 공허를 다 몰아낸 다음엔 빛이 적이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