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QVwtd

 

 

 

 

 

브라질 월드컵 특집 2탄! 브라질의 역사속으로!!!

 

 

 

안녕하세요~ 일락일협 입니다.

서른다섯번째 실축 전술은 축구역사상 최고의 팀이라 불리웠던,

1970년 자갈로 감독의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 입니다.

 

50년대후반 페올라감독이 창안한 4-2-4 시스템을

토탈사커의 색채를 넣어 자갈로식 4-2-4로 탄생 하였습니다.

 

초창기 포메이션에 흐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정리하는 시간을 갖구요,

 

 

피온3 유저분들께서 많이들 쓰시는 4-2-4 포메이션의 원조가

어떻게 운용되었는지 살펴 봅시다.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내용들..

 

네이버캐스트 -월드컵 전술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99&contents_id=2657&leafId=99

 

안양한 축구이야기 -브라질 424-

http://anyangred.com/?mid=asured_review&listStyle=viewer&document_srl=199969

 

ooxlar님의 블로그 -424 포메이션의 완성 브라질 축구왕국의 시작 비센테 페올라-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oxlar&logNo=90098509056&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리에르세님의 블로그 -자갈로의 브라질, 삼바식 토탈사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u7ub&logNo=90160670323&beginTime=0&jumpingVid=&from=search&redirect=Log&widgetTypeCall=true

 

오른쪽 클릭 새창으로 보시구요.

 

 

 

이번 전술구현의 영상이된 자료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 대 체코 전입니다.

 

 

 

유투브영상이 안나올때에는 유투브영상바로보기를 눌러주세요~

 

 

 

브라질 대 체코 풀영상.

 

 

영상화질이 시대가 시대니 만큼... 선수 찾는게 일이었네요...

 

 

 

 

 

 

 

선수들!!

 

 

축구황제! 펠레!!!

 

 

 

 

 

 

 

 

 

 

강력한 오른발 슈팅의 달인! 펠레와 궁합이 잘 맞는 자이르지뉴!!

 

 

위키백과 -자이르지뉴-

http://ko.wikipedia.org/wiki/%EC%9E%90%EC%9D%B4%EB%A5%B4%EC%A7%80%EB%89%B4

 

 

 

 

 

 

악마의 왼발!! 플리플랩의 창시자 히벨리누!!

 

 

 

 

bani님의 블로그 -악마의 왼발, 호베르투 히벨리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3o_santa&logNo=50188584069&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그외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소개.

 

 

감독.

 

마리오 자갈로(Mario Zagallo)

출생: 1931.08.09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을 완성시킨 탁월한 전술가. 현역 시절 1958년, 1962년 2연패에 크게 공헌한 바 있으며, 1970년 대회 우승을 통해 선수 및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정상에 오른 최초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위업을 달성한 인물은 지금까지도 자갈로와 베켄바워가 유일하다.

 

선수들.

 

펠릭스(Felix)
출생: 1937.12.24

포지션: 골키퍼

 

-깡마른 체구 때문에 ‘종이인간’(Papel)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개성 만점의 수문장. 대회 내내 기복 없이 활약했음은 물론, 잉글랜드전에서는 고든 뱅크스와 전설적인 선방 대결을 펼쳤다.

 

 

윌손 피아짜(Wilson Piazza)
출생: 1943.02.25

포지션: 센터백

 

-수비수답지 않은 안정된 테크닉과 패싱력이 돋보였던 최후방의 리더. 종종 볼 처리 실수를 저지르던 파트너 브리투를 적절히 보좌하며 수비진의 밸런스를 유지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까지 소화 가능했던 멀티 플레이어다.

 

 

브리투(Brito)
출생: 1939.08.09

포지션: 센터백

 

-투지 넘치는 스토퍼형 수비수. 190cm에 가까운 장신을 앞세워 공중볼 다툼에도 강점을 나타냈다. 종종 저지르는 잔 실수가 아킬레스건이었다.

 

 

카를로스 알베르투(Carlos Alberto)
출생: 1944.07.17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1970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의 주장. 우측 수비수로서 공수 양면에 걸친 부지런한 움직임과 견고한 1:1 마크 능력을 자랑했다. 브라질 역대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다.

 

 

에베라우두(Everaldo)
출생: 1944.09.11

포지션: 레프트백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견실한 수비가 돋보였던 레프트백. 반대편의 카를로스 알베르투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할 때 후방에서 수비적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교통사고로 인해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클로도알두(Clodoaldo)
출생: 1949.09.26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공수를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가던 중원의 엔진.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지만 과감한 공격가담 및 드리블 돌파를 통해 전방의 공격수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제르손(Gerson)
출생: 1941.01.11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브라질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중원 사령관. 안정된 볼배급과 경기 조율능력을 바탕으로 전술적인 키 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정확한 롱패스를 구사했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70년 월드컵 당시 팀 공헌도 면에서 펠레 다음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히벨리누(Rivelino)
출생: 1946.01.01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좌측 날개

 

-1970년대를 풍미했던 왼발의 달인이자 희대의 테크니션. 왼쪽 측면과 중원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니며 공격 1선과 미드필드 2선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했다. 프리킥의 달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플립-플렙 개인기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토스탕(Tostao)
출생: 1947.01.25


포지션: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하얀 펠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테크니션 공격수. 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워 펠레, 히벨리누, 제르손 등과 함께 꿈의 공격축구를 현실로 구현해냈다. 망막 박리로 인해 26세의 나이로 은퇴한 비운의 축구스타로 손꼽힌다.

 

 

자이르지뉴(Jairzinho)
출생: 1944.12.25


포지션: 공격수, 우측 날개

 

-1970년 월드컵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한 1960~70년대 브라질 최고의 스트라이커.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았으며, 펠레와 인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였다.

 

 

펠레(Pele)
출생: 1940.10.23

 

포지션: 공격수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자타공인 축구황제. 1970년 월드컵 활약 및 우승을 통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본론.

 

*선발라인업.

 

 

 

군대 제식마냥 서있는 선수들과 게임영상을 보는듯한 관중석.

 

 

포지션은..

 

 

 

이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사포로 몸을푸는 브라질선수.

 

 

 

 

 

 

 

*실축과 게임에서 전체적인...

 

 

 

 

*실축과 게임에서 수비는...

 

 

클로도알두와 함께 5명의 기본 수비진을 구축합니다.

 

 

 

 

*실축과 게임에서 역습시 수비진은...

 

 

 

피부에 양보하면 안됩니다. 3명이서 역습을 커버해야 합니다.

 

 

 

*클로도알두는...

 

 

 

 

 

 

 

*실축과 게임에서 제르손과 클로도알두는...

 

 

 

 

 

 

 

*제르손과 클로도알두의 역할은..

 

 

 

 

 

*실축과 게임에서 자이르지뉴는...

 

 

 

 

 

 

 

*실축에서 히벨리누의 역할은...

 

 

 

 

 

 

 

 

 

*압박의 형태는...

 

 

 

 

 

 

*펠레의 움직임은...

 

 

 

 

 

 

 

 

 

 

*공격패턴

 

 

전방으로 보내는 로빙.

 

 

 

측면돌파에의한 땅볼크로스

 

 

 

 

반대에서 반대로

 

 

 

 

리턴패스에 의한.. 

 

 

 

펠레가 주고 들어가는...

 

 

 

 

 

*공수참여도는...

 

 

 

 

 

 

*전술수치.

 

 

 

 

 

 

 

<초창기 전술의 흐름>

 

1930년대 포쪼감독의 메토도 시스템.

 

2명의 수비수(풀백), 3명의 미드필더(하프백), 그리고 5명의 공격수를 3선에 걸쳐 배치하는 이 포메이션에는 보이는 그대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지도자들이 “축구는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경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 충실했음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그 당시 감독들의 전술은 수비보다 공격을 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30년대에 치러진 제1회(1930년), 2회(1934년), 3회(1938년)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선에 출전한 대부분의 팀들은 피라미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고, 그 외의 포메이션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다. 단, 1934년 대회와 1938년 대회를 2연패한 이탈리아의 경우 조금 변형된 포진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는데, 명장 비토리오 포쪼 감독이 사용한 이 전술은 오늘날 메토도 시스템(2-3-2-3)으로 불리며 피라미드 시스템과 구분되고 있다.

 

포쪼 감독이 피라미드 시스템에 수정을 가한 이유는 간단하다. 2-3-5는 최전방에 지나치게 많은 선수들이 밀집되어 있는 형태인 만큼 중원이 엷어지기 쉬웠고, 또 3명의 하프백이 넓은 활동범위를 가져가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수비까지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로 인해 포쪼 감독은 5명의 공격수 중 2명을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로 내리는 한편, 3명의 하프백으로 하여금 수비 쪽에 좀 더 무게를 두도록 했다.

이러한 메토도 시스템은 공수 밸런스라는 측면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공격수+미드필더’ 스타일의 주세페 메아짜는 메토도 시스템의 인사이드 공격수 위치에서 오늘날의 플레이메이커와 같은 역할을 수행, 이탈리아의 월드컵 2연패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이처럼 메토도 시스템이 피라미드 시스템을 압도한 이후, 영국에서는 그보다 발전된 형태인 WM 시스템이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메토도를 구현한 인벤:유드베드 님의 메토도 전술.

 

 

 

 

 

위의 전술에 대한 링크.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145&query=view&p=1&my=&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subject&subject=&content=&keyword=%B8%DE%C5%E4%B5%B5&sterm=&iskin=&mskin=&l=4693

 

 

 

 

 

 

 

메토도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국의 채프먼 아스날의 아버지라불리우는

감독의 WM 시스템.

 

20세기 초, 영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두 걸음 이상 앞서 나가며 빠른 속도로 축구 전술을 발전시켰다. WM 시스템 역시 영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피라미드 시스템을 한층 발전시켜 WM이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인물은 아스널의 허버트 채프만 감독이었다.

WM 시스템(3-2-2-3)은 메토도 시스템(2-3-2-3)에서 하프백 한 명을 줄이는 대신 수비수 한 명을 늘린 좀 더 균형 잡힌 형태다. 이 한 명의 수비수에겐 센터백이란 호칭이 붙여졌고, 기존의 풀백 두 명은 측면 쪽으로 넓게 벌려 이전보다 두터운 수비벽을 구축했다. 수비진 정 가운데 위치에서 리더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는 센터백은 상대 팀 센터포워드를 전담 마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WM 시스템의 밸런스는 피라미드 시스템이나 메토도 시스템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공격진에 5명, 수비진에 5명을 배치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공수 밸런스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역할분담 또한 훨씬 더 명확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40~50년대에는 거의 모든 팀들이 WM 시스템을 붕어빵처럼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 팀의 ‘W’를 상대 팀의 ‘M’이 전담마크 하는 형식으로 공수 공방이 이루어졌다. 월드컵 무대에서는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대회에서 WM 시스템이 크게 유행한 바 있으며, 1954년 대회1958년 대회에 참가한 많은 팀들도 WM의 범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 인장에 있는 채프먼 전술.

 

 

 

 

 

 

 

 

 

 

1950년대 헝가리 MM 시스템.

 

195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매직 마자르’ 헝가리는 WM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헝가리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은 “상대 팀 선수 1명을 아군 1명이 상대함으로써 철저한 역할 분담을 이끌어낸다”는 WM 시스템의 기본 원리에 일찍부터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철저한 1:1 전담 체제를 통해 보다 안정된 공수 밸런스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경기를 마음먹은 대로 이끌어 가기엔 축구는 너무 변화무쌍했다.

세베스 감독은 WM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뒤집어 생각함으로써 그 파해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즉, 철저한 1:1 전담 체제를 통해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전술을 바탕으로 2:1, 3:1과 같은 수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상대 팀의 1:1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WM 시스템의 파해법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세베스 감독은 WM 시스템을 개량하여 MM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공격진에 ‘포지션 체인지’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시켰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페올라감독의 4-2-4 의 시작.

 

한편 1954년 월드컵의 헝가리 팀을 유심히 지켜 본 브라질 출신 지도자들은 이 전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은 헝가리 측과 활발히 교류하는 한편, 세베슈 감독과 구트만 감독이 기초를 다져놓은 4-2-4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헝가리 출신 지도자들은 “WM 시스템의 파해법이 MM 시스템의 포지션 체인지라면, 그 MM 시스템의 포지션 체인지에 대한 수비적인 대비책도 반드시 준비해둬야 한다” 며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세베스와 구트만을 비롯한 헝가리 지도자들이 도출해낸 결론은 “포지션 체인지는 대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로 대처해야 한다.”였다. 왜냐하면 한 명의 선수가 다른 한 명의 상대 선수를 철저히 전담 마크하는 대인방어 체제에서는 기술적 열세를 극복해내기가 쉽지 않았고, 상대 팀의 콤비 플레이에 공간을 내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비수들이 상대 선수가 아닌 자신이 맡은 일정 범위의 지역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상대 팀의 다양한 공격 방법에도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훨씬 더 용이했다.

 

브라질의 페올라 감독은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4-2-4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수비진에 3명이 아닌 4명의 수비수를 포진시킴으로써 지역방어 체제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한편, 2명의 미드필더(더블 볼란테)는 상대 진영과 자기 진영을 부지런히 오가는 움직임을 통해 공수 양면에 걸쳐 수적 우위를 만들어냈다. 결국 브라질은 4-2-4를 바탕으로 1958년 월드컵과 1962년 월드컵을 2연패하며 세계 축구의 전술적 패러다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 국가들은 1950년대 후반 들어 브라질이 세계 최강으로 떠오르자 4-2-4를 빠르게 받아들여 WM 시스템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킨 장본인은 ‘4-2-4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헝가리 출신의 벨라 구트만 감독이었다. 구트만 감독은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60/61, 61/62 시즌 챔피언스컵 2연패로 이끌며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4-2-4 축구를 바탕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냈다.

 

 

-전술은 본문에....-

 

 

 

 

 

그와함께 이탈리아에서는 카테나치오의 유행.

 

브라질 대표팀과 벤피카의 영향을 받아 4-2-4는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일찍부터 수비적인 전술로 ‘이기는 축구’를 표방해 온 이탈리아는 공격적인 4-2-4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 파해법을 연구해나갔다. 이 노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건너와 인테르의 지휘봉을 잡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에 의해 집대성됐다.

헝가리 축구의 기본 골격을 이어받은 브라질 4-2-4의 기본 바탕은 ‘포지션 체인지에 기초를 둔 자유로운 공격’이었다. 이에 헝가리와 브라질 지도자들은 “지역방어로써 포지션 체인지에 대처한다”는 수비적 해답을 찾아냈지만, 에레라 감독과 이탈리아 지도자들의 접근 방법은 180도 달랐다. 이들이 찾아낸 해답은 ‘대인방어와 지역방어의 혼합’이었다.

예를 들어 WM 시스템의 고전적인 1:1 대인방어로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들을 모아놓지 않는 한 브라질의 4-2-4를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펠레, 가린샤, 바바와 같이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공격수들을 1:1로 제어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 팀 입장에서는 2:1 수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4-2-4의 공격을 틀어막아야 했는데, 에레라 감독은 이를 위해 ‘리베로(Libero)’라는 역할의 최후방 수비수를 포백 라인 뒤에 따로 포진시켰다. 리베로는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즉, 에레라 감독은 4-2-4의 공격수 4명을 수비수 4명에게 대인마크시키는 한편, 최후방에 리베로를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2:1 수적 우위를 만들어 내거나 유사 시 커버 플레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아군 수비수가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거나 움직임을 놓칠 경우에도 리베로가 빠르게 2차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리베로의 존재로 인해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는 1-4-3-2(5-3-2) 혹은 1-4-4-1(5-4-1)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다. 또,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 전술에 “빗장으로 골문 앞을 걸어 잠근다”는 뜻의 ‘카테나치오(Catenaccio)’ 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테나치오는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고, 인테르에게 63/64, 64/65 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2연패라는 영광을 가져다줬다. 이탈리아 대표팀 역시 1966년 월드컵에서는 북한에 발목을 잡혀 고배를 들이켰지만, 유로 1968 우승을 통해 카테나치오의 위력을 전 유럽에 알렸다.

한편 이탈리아 이외의 유럽 국가들은 브라질과 벤피카의 4-2-4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다 거칠고 스피드 위주의 스타일을 갖고 있던 유럽 국가들의 경우 두 명의 미드필더만으로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1960년대 중반 들어서는 4-2-4에서 미드필더 한 명을 늘린 4-3-3 형태가 유럽 팀들의 보편적인 밑그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66년 월드컵의 잉글랜드, 서독, 소련 등이 가장 대표적인 팀들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1960년대 후반 들어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이 4-3-3 쪽으로 흘러가자 카테나치오의 밑그림을 1-4-3-2(혹은 1-4-4-1)에서 1-3-3-3으로 변형시켰다. 이탈리아 역시 4-3-3을 기본 포메이션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최후방에 리베로를 두는 카테나치오 전술로 인해 실제로는 1-3-3-3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던 셈이다.

1970년 월드컵 결승전은 공격축구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4-2-4(혹은 변형 4-3-3)와 수비축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맞붙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경기 결과는 브라질의 4-1 완승이었고, 카테나치오는 이 패배 후 급속도로 쇠락하며 유럽 축구의 주류로부터 벗어나고 말았다. 반면 네덜란드는 헝가리와 브라질의 공격적인 전술을 적극적으로 도입, ‘토털풋볼’이란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며 1970년대를 지배하게 된다.

 

 

 

 

 

인벤 닉네임: 유드베드 님께서 만든 초기카테나치오.

 

 

 

 

유드베드님의 초기카테나치오글 링크.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145&query=view&p=1&my=&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subject&subject=&content=&keyword=%C4%AB%C5%D7&sterm=&iskin=&mskin=&l=4746

 

 

 

 

 

 

 

제가 이번에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짧다면 짧은글 길다면 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4-2-4도 엄연한 실축 전술이지요.

게임에서 너무 많이들 쓰시니,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는...

 

이번 시간은 브라질 월드컵 즈음에,

브라질에 대한 축구 역사의 한페이지를 열어 보았다고 할까요?

 

플레이 스타일은 기존의 피온3에서 424를 쓰시듯 뻥축위주로 풀어 나가시면 됩니다.

 

 

 

 

 

 

 

 

 

 

 

남은 오후도 파이팅!! 하시구요~

춘곤증 인가요? 날씨는 여름인데...

졸리네요....

 

 

진도 여객선 사고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으신 분들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피온3 감독명: 일락일협

피온3 클랜명: 오딘

피온3 클랜채널: 442

아프리카TV방송: 피온3 일락일협

(가끔 방송하는 아프리카TV 실축전술만들기,

시청자 전술 피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