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서 카마실비아 조사를 마친 모험가는 칼페온의 친서를 들고 다시 카마실비아로 향한다. 칼페온은 카마실비아와의 협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한편, 여력이 된다면 군사를 동원해 점령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칼페온 사절단인 모험가는 레모리아 경비 초소에서부터 뜻하지 않은 여정을 하게 된다. 그는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방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비밀 수호단' 오로엔과 얽힌 복잡한 사건을 마주한다.

카마실비아 메인 스토리는 가장 최근 리뉴얼 된 구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야기의 몰입도와 짜임새가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다소 길지만 자세하게 적도록 노력했다. 본 편으로 카마실비아 이야기는 마무리 되고, 다음 편은 드리간에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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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1 - 훔쳐야 산다, 도굴왕

*본 스토리 기사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메인퀘스트, NPC 대화, 지식 등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분기란 게임 내 유저의 선택에 따라 에피소드가 달라지는 부분을 뜻합니다.
*약간의 각색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나 게임 내 설정 및 컨셉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 카마실비아 하편 - 되찾은 카마실브의 빛

트렌트 마을, 레모리아 경비 초소
칼페온 의회의 친서를 전하기 위해

목재소가 발달한 트렌트 마을 곳곳에선 겹겹이 쌓인 삼나무 목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험가는 그 중 괜찮은 자리를 찾아 등을 기댔다. 간만에 맛보는 여유였다. 모험가 바로 옆 자리에는 마을 인부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험가는 델파드가 준 맥주를 꺼내 입에 대려다 그만두었다. 근처 인부들이 하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산맥 너머 키 큰 여자들이 왔었잖아?' 대충 그런 말들이 오갔다. 모험가는 '키 큰 여자'라는 단어를 듣고 실비아의 딸들을 떠올렸다. 10년 전에 무슨 일이 또 일어났던 것일까?


▲ 모험가는 휴식 중 우연히 인부들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모험가는 시원한 생맥주 두 잔을 들고 인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격 좋은 인부들은 그런 싹싹한 친구를 마다할 리 없었고, 곧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인부들의 말에 따르면 약 10년전 쯤 발타라 산맥 너머에서 늘씬하고 키 큰 여자들이 내려왔다고 한다. 스스로를 광명의 뿌리라고 칭했던 그들은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괴물(그리폰)을 데리고 조용히 칼페온 신전으로 들어가 '트롤과 사우닐'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칼페온에서 트롤과 사우닐이 기승을 부렸다.

모험가는 이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칼페온에서 벌어진 트롤-사우닐 전쟁은 누군가의 계획이었던 것일까? 현 여왕인 브롤리나 오네트가 정권을 잡게 된 데에는 사실 이 전쟁이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아멜리아의 정예호위대 '아이넬'이 칼페온으로 원정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브롤리나가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한 카마실비아를 차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브롤리나는 '영악한 까마귀'임이 틀림없었다. 일부러 혼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여왕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럼 혹시 카마실비아와 칼페온의 동맹에도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브롤리나는 카마실비아를 차지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고 치자. 그런데 칼페온은? 왜 스스로 땅을 어지럽힌 것일까? 모험가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게다가 이는 모두 추측일 뿐, 인부들의 말만 듣고 확답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칼페온의 혼란과 여명의 환국.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험가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덧 칼페온 의회에서 카마실비아 여왕에게 보내는 친서가 완성되었다. 델파드는 여왕에게 친서를 전해다줌과 동시에 칼페온 군사가 이동할 통로와 적이 매복할만한 곳을 조사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엔카로샤는 조만간 시작할 카마실비아와의 교역을 위해 진입로의 가고일들을 토벌해달라고 했다.

모험가는 가고일을 토벌하며 곧 삼엄하게 경계를 선 레모리아 경비초소에 도착했다. 칼페온의 정식 사절인 모험가는 무사히 검문을 통과하고 경비대장 나르실란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르실란은 모험가에게 초소를 구경시켜주며 이왕 가는 김에 빕 포레타의 딸기 산장에 들러볼 것을 추천했다. 지금이야말로 아주 상큼하고 맛있는 딸기를 맛볼 수 있는 때였다.

나르실란은 딸기 산장에 가면 한때 그라나 사제였던 노른 페더러스를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공주들이 들은 고대 정령의 언어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을 담당했던 자였다. 비록 베디르 말살에 눈이 먼 아멜리아 여왕에 의해 쫓겨났지만 말이다.


▲ 트렌트 마을에서 회의중인 칼페온 대표들. 맨 오른쪽은 사우닐 전쟁에서 활약한 프리드리 도프릭슨.

▲ 진입로의 가고일들을 토벌하는 모험가

▲ 카마실비아 국경을 지나려면 레모리아 경비초소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빕 포레타 산장, 아타니스 못, 나크 동굴
카마실브의 빛을 되돌릴 실마리를 잡다

모험가는 아타니스 개울을 넘어 발타라 산맥 위쪽으로 펼쳐진 빕 포레타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의 무역 관리자인 노른은 나르실란이 자신을 직접 소개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했다. 그는 과거 누렸던 명예와 권력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전 여왕 아멜리아의 폭정 속에서 해체된 카마실브 사제단, 그 안에서 죽지 않고 나온 것만도 그에겐 기적이었다.

하지만 모험가가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노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 브롤리나 체제에서는 한 루트라곤 장로가 과거 노른의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 장로는 무슨 사연인지 기억을 잃은 상태지만 고대 정령의 언어만큼은 빠삭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풍요의 정령 아타니스가 가넬의 막내 공주 캐더린 오네트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카마실브의 빛을 되살리려면 발타라, 오기에르, 나크 정령의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크 정령이 아멜리아의 광기로 인해 아히브와 함께 숲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캐더린이 이 일로 아히브에게 화를 당한 뒤 일지가 봉인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 과거 카마실브 사제단 소속이었던 노른 페더러스

노른은 이와 관련해 아타니스 못의 에르피안소를 소개시켜줬다. 아타니스 못 근처에 도착한 모험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몸을 맡겼고, 에르피안소의 따뜻한 목소리는 모험가의 마음을 평화롭게 어루만졌다. 그녀가 노래하는 것은 풍요의 정령 아타니스의 마지막 선율이었다. 그녀는 카마실브의 빛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그 정령을 기리고 있던 것이었다.

에르피안소는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 한명이 있다고 했다. 갑작스런 손님이란 말에 얼떨떨해진 모험가는 놀랍게도 그곳에서 오로엔을 만났다. 오로엔은 칼페온 뒷골목에서 카마실비아산 밀수품이 거래되고 있는 것을 봤고, 그들의 입에서 모험가의 이름을 들었다고 했다. 아마 누군가 칼페온 사절단이 챙겨온 물품 중 몇 개를 빼돌린 모양이었다.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풍요의 정령, 아타니스의 마지막 선율
매일 밤 달이 환히 보이는 조용한 언덕 위로 올라가 정령의 둥지 안으로, 그 품에 들어갈 수 있게 하소서. 숲의 길을 따라, 나뭇가지를 벗 삼아, 고단한 여정이 저무는 그 끝에, 정령의 둥지 안으로, 그 안에 잠들 수 있게 하소서. 카마실브의 온기가, 내가 여기, 바로 그대 곁에 감싸 안아 정령의 둥지 안에 있게 하소서.


▲ 아타니스 정령의 선율을 노래하는 에르피안소

하지만 오로엔은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상념에 젖은 눈으로 아타니스 못을 바라보던 그녀는 과거 자신이 카마실비아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카마실비아는 오로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땅이었고, 뾰족한 귀 빼고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던 오로엔은 가넬들의 따돌림을 받았다.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뒤에서 쑥덕거리는 식이었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진심으로 받아준 사람은 캐더린 오네트 공주 뿐이었다. 모험을 좋아했던 공주는 오로엔에게 늘 뿌리 세계 이야기를 들려줬고, 아타니스 정령의 이야기도 해줬다. 아타니스는 캐더린 오네트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크는 결코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니, 나크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고.

하지만 어느날 캐더린 공주는 오로엔을 카마실비아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그 이유는 오로엔도 몰랐다. 오로엔은 자신을 밖으로 데려가는 헤라웬에게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소용 없었다. 그 후 카마실비아의 국경은 봉쇄되었고, 그렇게 그녀는 한 동안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 아타니스 못에서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는 오로엔

이번 카마실비아 문호 개방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던 오로엔은 카두일 숲의 밀렵꾼 제리모에게서 고대 유물 정보를 캐고자했다. 이는 단순히 그녀가 '비밀 수호단'이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아마 캐더린에 대한 추억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험가 역시 제리모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기 위해 필요하다던 세 고대정령(발타라, 오기에르, 나크)의 노래. 딸기 산장 노른의 말로는 나크가 아히브와 함께 숲을 떠났다고 했지만, 오로엔이 캐더린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달랐다. 나크가 카마실비아를 버린 것이 아니라면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카두일 숲의 밀렵꾼 제리모가 쉽게 정보를 말할 리 없었다. 불법 거래와 수렵의 삶을 살아온 그는 먼저 모험가가 '일손'을 제공하길 원했다. 그는 지금 당장 '산채로 잡은' 큰 뿔 도마뱀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험가는 제리모가 시키는 대로 근처에 있는 프리엘라에게서 쥐를 훔친 뒤, 큰 뿔 도마뱀을 유인해 잡았다. 사실 발렌시아의 대도에겐 이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 돈 냄새와 피 냄새로 점철된 밀렵꾼 제리모

▲ 내가 바로 발렌시아에서 한가닥 했던 도둑놈이다.

▲ 통통하게 살이 오른 큰 뿔 도마뱀

원하던 도마뱀을 얻은 제리모는 약속대로 정보를 줬다. 현재 가넬에게서 돌아선 만샤움들은 그리폰을 마구잡이로 수렵해 나크의 동굴로 옮기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히브의 그리폰을 탄생시키기 위해서였다. 나크 정령을 섬기는 만샤움들은 그를 따라 아히브의 편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나크 동굴에 진입하려면 아주 진한 피 냄새, 즉 제물이 필요했다. 흑정령은 이 말을 듣고 만샤움 전사들을 죽여 그들을 제물로 바치자고 했다. 그러면 가넬과도 더 친해질 수 있고, 동굴도 들어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모험가는 만샤움 숲길에 진입해 만샤움족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곧 모험가의 몸은 만샤움의 피로 흠뻑 젖었고, 그 모습을 본 흑정령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나크 정령을 섬기는 만샤움 족

나크 동굴 안에는 제리모의 말대로 죽은 그리폰의 사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죽은 어미를 뜯어먹고 있는 새끼들 몇 마리가 보였다. 아마 그 '아히브의 그리폰'이라는 것들은 자신의 어미를 뜯어 먹고 자란 그리폰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눈빛은 일반 그리폰과는 다르게 좀 더 매섭고 섬뜩했다.

한편 그리폰 사체 뒤에는 신기하게 생긴 토템이 하나 서 있었다. 그 거대한 만샤움 토템 곳곳엔 알 수 없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모험가는 그 글귀의 단서를 찾다가 죽은 그리폰의 발톱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조그만 구슬 조각이었는데, 모험가가 그것을 손에 움켜쥐자 아주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구슬은 분명히 모험가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다.


▲ 죽은 그리폰 어미를 뜯어먹고 있는 아히브의 그리폰 새끼

▲ 거대한 만샤움 토템

그 구슬이 이끄는 곳은 동굴 남쪽에 있는 한 언덕이었다. 그곳에 다가가자 모험가가 지니고 있던 구슬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곧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며 만샤움 족장 나크 브뤼시카가 등장했다. 그 구슬은 바로 족장 브뤼시카의 구슬이었던 것이다. 브뤼시카는 모험가의 세배쯤은 되어보이는 창을 휘두르며 모험가를 위협했다. 갑작스런 전투에 모험가는 당황했지만, 그간 갈고 닦아온 실력으로 그를 겨우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다.

모험가는 그를 쓰러뜨리고 뭔가 '해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전보다 한결 현명해진 느낌이었다. (정령의 언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흑정령도 뭔가를 알아챘는지 빨리 나크 동굴로 돌아가보자고 했다. 나크 동굴 만샤움 토템의 주박이 해제된 것이다. 거기엔 누군가의 정갈한 필체로 쓰여진 석판 하나가 있었다.

나크 정령의 이야기가 담긴 석판
다크나이트마저 이 숲을 떠난 밤, 여신께서 강림하시어 흐느끼기를 "이 숲에 남은 축복을 모두 거두어도 좋으니, 내 사랑하는 딸들을 버리지 말아다오. 아직 이 숲에 머물고 있는 달의 아이들을 보살펴다오. 만약 그들이 떠난다면, 곁을 지켜다오. 그들의 메마른 땅이 아닌 메마른 마음을 적셔다오." 큰 비를 내려 함께 눈물 흘리니, 어머니여, 편히 쉬소서.

알고보니 나크는 가넬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실비아 여신의 바람을 들어준 것 뿐이었다. 여신은 이 숲을 포기하면서도 딸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히브들은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기 위해 나크 신에게 경배를 했고, 나크는 여신의 바람대로 그들에게 비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아히브는 나크 신의 비로 키워낸 넝쿨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카마실비아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나크는 현재 메마른 땅으로 도망간 아히브의 낙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 만샤움 족장, 나크 브뤼시카

나크 정령의 실체를 알게 된 흑정령은 다시 모험가를 보챘다. 또 다른 게 없는지 제리모에게 돌아가보자고 말이다. 제리모는 돌아온 모험가를 보고 맘에 든다는 듯 씨익 웃었다. 나크 동굴로 가서 살아돌아올 정도면 자신과 일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리모는 자신을 가넬에 넘기지 않고 종종 돕는다는 조건으로 또 다른 정보를 주었다. 그는 지혜의 고목이라는 커다란 나무에 대해서 말했는데, 그곳은 아히브와 마찰이 잦은 가넬들의 군사기지였다(레모리아 원정대의 기반). 그런데 거기서 가장 신기한 것은 바로 '말하는 부엉이'였다. 제리모는 언젠가 그 부엉이가 사라지면 자신이 사냥한 것으로 알라면서 쩝쩝 입맛을 다셨다.


지혜의 고목, 나반 초원
첫번째 열쇠, 발타라의 노래를 얻다

모험가는 제리모의 괴랄한 취향에 혀를 내두르며 지혜의 고목으로 향했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 아래 레인저들의 모습이 보였고, 입구엔 유독 눈에 띄는 새하얀 부엉이가 있었다.

사실 말하는 부엉이, 오비 벨렌은 모험가가 칼페온 사절임을 알고 있었다. 레모리아에서 칼페온 친서를 가지고 온다는 것도. 그는 모험가의 손에 들린 의문의 석판에 관심을 가졌다.

석판을 읽던 오비 벨렌은 그것이 나크 정령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또한 이 필체는 캐더린 공주의 글씨가 확실했다. 오비 벨렌의 말에 따르면 캐더린은 살아생전에 아주 착하고 여린 공주였다. 어쩌면 나크와 아타니스가 그녀를 선택한 것은 누구보다 순수한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과거 혼란한 숲에서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마지막 희망이었다.


▲ 지혜의 고목 말하는 부엉이, 오비 벨렌

오비 벨렌은 고심하더니 지혜의 고목 대장장이 푸리토라를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캐더린 공주가 끔찍히 아끼던 벗 중 하나로 현재는 아히브로부터 카마실비아를 지키기 위한 물자인 붉은 청금석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비 벨렌의 말을 전해 듣고 어쩌면 모험가가 '뜻밖의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령의 슬픔을 마주하여 맑은 눈물이 흐른다면, 달없는 어두운 밤길을 아타니스 등불이 인도하리." 푸리토라가 말하는 캐더린 공주의 일지 첫 장이었다. 이후 공주는 색바랜 늙은 페리의 깃을 들고 정령들과 숲의 소리를 기록하러 다녔다. 노랗고 파랗고 발간 봄꽃이 초원에 들어찼던 때, 그녀는 큰 소금쟁이의 샘 - 높은 홍학의 둥지에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라 했다.

모험가는 이제 그 둥지를 찾으러 떠나야했다. 자리를 떠나는 모험가에게 푸리토라는 조언했다. 캐더린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모든 움직임을 조심하라고. 특히 전령 오비 벨렌이 알아버린 이상, 이제 모험가의 존재는 온 카마실비아 땅에 알려질 터였다. 어쩌면 이미 모험가를 노리는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 캐더린 오네트의 친구였던 푸리토라

모험가는 홍학의 둥지를 뒤져 캐더린 공주의 빛바랜 일지를 찾아냈다. 일지 사이엔 나반 초원에서 꺾은 듯한 이름 모를 들꽃이 있었는데, 곧 바스라져 한 줌의 가루로 날아갔다. 일지 안에는 나크 동굴에서 발견한 석판과 같은 필체로 무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홍학의 둥지 - 봄의 일지 중
... 구름 위로 사뿐히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숲의 심장에 고였던 핏물이 모두 말랐더라. 오기에르가 말라비틀어진 땅에 씨를 뿌렸더니, 뿌리 세계를 못 잊었는지 벨라도나 풀이 서슬 퍼런 독을 품고 자라났다. "이놈! 우리가 다 함께 그곳을 떠난 지가 언제인데!"라며 발타라가 무섭게 호통쳤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흥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크가 비를 마구 뿌려버리니 벨라도나 풀로 가득한 초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자라던 늑대의 피부가, 페리의 꽁지깃과 부리가 썩어들어가자 발타라는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두꺼운 깃털을 붙여주었다. 아직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 아타니스가 들려준 발타라 정령의 이야기. 발타라는 혹시 바보였던 게 아닐까? 누구보다 강하고 고귀하게, 커다랗게 자라면 뭐 해. 땅만 바라보고 걷느라 멀리 바라보질 못하는걸. 저 멀리 드리간 너머 눈의 땅에서 코끼리 떼가 덮쳐오는 걸 왜 못 본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코끼리들이 벨라도나를 아주 맛있게 뜯어먹었을 텐데. 그럼 늑대와 페리들이 이렇게 더워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아타니스, 초원에 내려진 발타라의 잘못된 선물을 거두어 그녀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초원의 질서를 지켜왔던 만샤움에게 전해야 한다고? 응? 페리랑 늑대들의 두꺼운 깃털을 말야? 응? 내...내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 느... 늑대에게 자...잡아먹힐 것 같은데... 누군가 대신 해줄 사람 없을까? 응? 꼭 비밀로 하고 나 혼자 해야 한다고? 하하... 그런데~ 초원의 질서를 지켜왔던 만샤움이라면, 설마설마 엔로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 조그만 아이가 무슨 힘으로 나반의 질서를 다스려왔다는 거지?

▲ 홍학의 둥지에 놓여있는 캐더린 공주의 일지

동화같이 적혀있는 글 아래엔 뭔가 귀엽고 순수한 말투의 캐더린 공주의 메모가 있었다. 오비 벨렌이 말했던 대로, 캐더린 공주는 전쟁을 겪는 카마실비아의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모험가는 일지에 적힌 대로 페리와 초원 늑대들의 깃털을 모아 엔로라는 만샤움을 찾아갔다.

엔로는 캐더린이 걱정했던 대로 매우 조그만 만샤움이었다. 이런 만샤움이 어떻게 나반의 질서를 잡았다는 것일까? 하지만 엔로가 보기엔 다짜고짜 깃털을 내미는 모험가가 더 어이없었다. 누구길래 이제 와서 '발타라가 초원에 내린 잘못된 선물'을 거두어 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엔로는 모험가가 들고 있는 캐더린의 일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선택받은 공주의 일지였다. 엔로는 발타라 정령과 맺은 맹세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모험가에게 발타라의 마지막 시험을 주었다. 그것은 나반 초원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리폰의 알 껍데기를 구해오는 것이었다. (발타라의 노래를 담을 그릇)


▲ 나반의 질서를 지키는 만샤움, 엔로

그리폰은 나반 초원에서 매우 강력한 생물이었지만, 모험가가 굳이 그리폰을 직접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모험가는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잽싸게 알만 훔쳐냈고, 그 솜씨를 본 엔로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엔로는 약속대로 발타라의 노래를 모험가가 가져온 알 껍질에 담아주었다. 그 노래 속에서 모험가의 존재는 '케더린 오네트의 유지를 잇는 자'였다.

한편 엔로의 말에 따르면 작고 여린 캐더린 공주도 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리폰 둥지에서 직접 알을 훔쳐보려 했지만, 오히려 잡아먹힐 뻔한 뒤로는 여름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다 유달리 붉은 달이 뜨던 밤 한 그리폰 무리의 우두머리가 영역 싸움을 하다 죽었고, 기회가 찾아왔다. 우두머리 사체가 썩기 시작하자 아무도 그 곁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공주는 그 썩은내와 구더기를 헤치고 그나마 멀쩡한 알껍질을 구해왔다. 평생을 궐 안에서 깨끗한 대접만 받아오던 공주에게는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그녀는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에 맞서야 했다. 다른 생명의 죽음에 매우 익숙한 모험가와는 다르게 말이다.


▲ 그리폰은 나반 초원의 별사탕 몬스터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첫번째 열쇠, 발타라의 노래.


그늘나무 숲, 가이핀라시아 사원
두번째 열쇠, 오기에르의 노래를 얻다

발타라의 노래를 얻은 모험가는 이제 두번째 열쇠가 필요했다. 바로 고대 강의 정령, 오기에르였다. 모험가와 흑정령은 지혜의 고목으로 돌아가 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그곳엔 안벨리프 성인이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근처엔 익숙한 얼굴인 오필리아도 있었다.

안벨리프는 모험가가 나반 초원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모험가는 이제 카마실비아 여왕이 직접 눈여겨보는 자였다. 그는 나크 정령의 진실을 밝혀냈고, 어쩌면 카마실브의 빛을 돌이킬 수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안벨리프는 모험가를 정중히 대할 필요가 있었다.


▲ 카마실브 성인, 안벨리프는 모험가를 환대하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오필리아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오필리아는 모험가를 노려보며 마음대로 숲을 싸돌아다닌 죄를 물었다. 칼페온 사절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크 정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레같은 아히브와 붙어먹은 배신자에게 진실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오필리아는 모험가가 가져온 칼페온 친서를 막무가내로 뺏으려했다. 자신이 대신 전달할테니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모험가는 당황스러웠다. 처음에 그렇게 친절하던 오필리아의 태도가 이렇게 바뀌다니. 그녀의 말에는 '검은 가시'가 잔뜩 돋혀있는 듯했다.

안벨리프는 오필리아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모험가에게 대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 하급자인 오필리아를 돌려보내고 자신이 직접 수도 그라나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기에르 정령에 대해 묻는 모험가에게 장소를 옮겨 이야기하자는 사인을 보냈다.


▲ 갑자기 날카로워진 오필리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혜의 고목 서남쪽, 그늘나무 숲 근처에서 모험가는 은밀히 안벨리프를 만났다. 안벨리프는 오필리아의 행동에 대해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지혜의 고목은 레모리아 원정대의 큰 상처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근처 두자크 터널과 라모 계곡에서 벌어진 아히브와의 전쟁. 그곳에서 레모리아는 무려 절반의 전우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런 정세 속에서 외지인을 심각할 정도로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벨리프는 아타니스 정령이 캐더린 공주에게만 속삭여준 비밀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자신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당시 캐더린 공주는 악취 나는 진흙을 뒤집어쓰고 나반초원을 헤매다가 아이넬의 감시망에 노출되었고, 폭군 아멜리아는 그녀에게 지독한 심문을 가했다. 하지만 캐더린은 입을 다물었고 점점 죽음과 가까워졌다.

이를 보다 못한 안벨리프는 칼페온에서 구해 온 '감초맛 쿠키'로 어린 공주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카마실브의 빛을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것이 온 카마실비아에 알려졌다. 하지만 아멜리아 여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아히브의 귀에도 들어갔다.


▲ 모험가가 은밀히 안벨리프를 만난 장소

당시 공주를 직접 심문했던 자가 바로 오필리아 아이넬이었다. 안벨리프가 자리를 옮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모험가에게 책 한권을 내밀었다. 한창 오기에르 이야기를 하던 때에 작성한 캐더린의 일지였다. 안벨리프는 모험가가 지금 일지를 읽어낼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도와줄 것이고, 그럴 수 없다면 모험가를 그라나로 압송할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무단으로 숲을 돌아다닌 죄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늘나무 숲 - 여름의 일지 중
... 빛조차 닿을 수 없는 더 깊고 더 낮은 곳으로 흐르다 칠흑같은 어둠 속 번쩍이는 두 눈을 보았다. 무서움을 참고 가까이 스며드니 황동과 청동으로 빚은 고대 병기들이 깜깜한 동굴 속에서 아이처럼 쭈그려 앉아 침울하게 부르는 노래 속에 들리는 이름은 가이핀라시아. "이방인의 말로는 쓸쓸하기 마련이니 나 또한 이곳에서 조용히 가게 해다오." 한 고대 병기의 말에 오기에르는 조용히 웃으며 그녀를 햇빛으로 인도하여 눈을 마주하고 답했다. "강물에 비친 그대 모습은 너무 쓸쓸해 보이오. 나와 함께 있음은 여신께서 숲에 살아도 좋다 허락하신 것이니, 부디 죄인처럼 숨어 살지 마오. 내 지상에 그대들의 터를 세울 수 있도록 이빨요정에게 속삭여둘 터이니... 그대 부족의 말 못할 사연과 그 아픔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나는 더 깊어지리라."

... 아타니스가 들려준 오기에르 정령의 이야기다. 아무래도 오기에르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누구보다 겸손하고 부드럽게 흐르면 뭐 해? 모두가 그녀처럼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진 않은 걸...! 오기에르의 말을 믿은 가이핀라시아는 순진하게도 이빨요정에게 그녀의 모든 군대를 보여주었어! 그 조그맣고 툭 치면 날아갈 것 같은 이빨요정들이 그 군대를 보고 얼마나 겁먹었을까?

오기에르의 실수를 거두어... 그녀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이빨요정과의 협상을 맡았던 가이핀에게 전해야 한다고...? 흑... 내가 무서운 고대병기와?? 아타니스는 너무해. 우리 가넬은 가이핀과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했는데... 혹시 도와줄 사람은 없는걸까? 하지만 아타니스는 꼭 몰래 혼자 해내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 협상했던 가이핀이라면... 입구를 지키고 있는 투리튜아를 얘기하는 걸까? 하지만 분명 잔뜩 으름장만 놓고 나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할 텐데...


▲ 안벨리프 옆에 놓인 캐더린의 두번째 일지

일지 해독을 마친 모험가는 안벨리프에게 그 내용을 전했다. 안벨리프는 정령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모험가의 능력에 놀랐다. 그녀는 이제 성인으로서의 지위와 이름을 걸고 모험가를 돕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일지의 내용대로 가이핀라시아 문명의 수호자, 투리튜아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가이핀라시아는 카마실비아 정착에 성공한 유일한 이주민 무리였다. 그래서 영역 침범에 아주 민감한 대신 과거 오기에르 정령의 선심을 잊지 않는 종족이었다. 튜리튜아는 모험가에게 이빨요정에게 심어졌던 '이방인의 공포'를 거둘 것이라며 가이핀라시아석 두 개를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공포를 처단하라는 시험을 주었다.

모험가는 튜리튜아가 지목한 장소로 가서 가이핀라시아석을 차례차례 발동시켰다. 그러자 돌이 열리며 튜리튜아와 비슷하게 생긴 가이핀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매우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어 공격이 쉽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물질로 덮여 있어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정 시간 공격을 버텨내자 가이핀 전사들의 힘은 약해졌고, 모험가는 이 때를 이용해 그들을 처리했다.


▲ 가이핀라시아 사원을 지키는 튜리튜아

▲ 모험가가 받은 가이핀라시아석 2종

투리튜아는 과거 캐더린 공주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끝낸 모험가를 보고 흥미로움을 느꼈다. 캐더린 공주(튜리튜아는 작은 물렁살이라고 부른다)가 이 시험을 받을 땐 한여름이 가을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가이핀라시아 전사를 상대할 수 없었던 캐더린 공주는 그들에게 맞서는 대신 매일 밤 하루 한 편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기둥 뒤를 숨어다니며 소리치고, 전사가 지치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밤을 꼴딱 새고 새벽이 되어서야 사원을 나오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이 되어도 캐더린이 사원 밖을 나오지 않았다. 튜리튜아는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으나, 곧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그녀가 가이핀 전사와 친구가 되어 함께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오기에르의 노래를 손에 넣었다.


▲ 모험가는 가이핀라시아석을 이용해 이방인의 공포에 맞선다.

▲ 오기에르의 노래


플롱도르 호수, 미루목 유적지, 이아나로스의 들
캐더린의 마지막 일지, 그리고 돌아온 카마실브의 빛

오기에르의 노래까지 얻은 모험가에겐 이제 마지막 노래가 필요했다. 바로 아히브를 따라간 나크 정령의 노래. 그러나 이를 얻기 위해선 캐더린의 다음 일지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모험가는 과거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는 브롤리나 여왕을 찾아가기로 했다. 칼페온 의회의 친서도 전달할 겸.

델파드 카스틸리온의 친서를 받은 브롤리나 여왕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호위병을 불렀다. 그리고 친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침실에 둘 것을 지시했다. 그녀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는 것이었다.

사실 아히브와의 싸움이 버거운 것도, 칼페온과의 동맹이 필요한 것도, 모두 카마실브의 빛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히브의 나무 투라실은 점점 자라나고 있지만, 카마실브는 빛을 잃어 생기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모험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령의 언어를 해독하고, 고대 정령의 노래를 얻어 낸 자.

오필리아는 모험가가 사절 신분을 악용해 카마실비아의 지형과 군사를 염탐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브롤리나 여왕은 모험가를 믿어주었다. 그렇게 브롤리나는 카마실비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걸어 모험가를 설득했다. 그녀는 모험가가 과거 캐더린 공주의 놀이터였던 '플롱도르 호수'로 가길 바랐다.


▲ 브롤리나는 칼페온 친서를 열어보지 않았다. 그녀 마음 속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플롱도르 호수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캐더린의 일지는 샤이족들이 머무는 조그만 바위 위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그런데 일지를 편 모험가는 뭔가 이전과 다른 기분을 느꼈다. 전과 달리 캐더린의 글씨체에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 일지 첫장의 내용은 이랬다. '아타니스 정령이 떠났다.'

플롱도르 호수 - 가을의 일지 중
아타니스 정령이 대자연의 품으로 떠나며 내게 말했다.
나는 나크를 대신할 수 없어. 고대 정령이 아니거든. 대신 내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감으로써... 너를 샛길로 안내할 수 있을 뿐이지. 뿌리 세계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빛, 순수한 영혼을 찾아 정원의 정령 이아나로스의 들에 스미면... 두 정령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져 카마실브의 빛이 떠오를 거야.

...뿌리 세계는 뭐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거야? 어리둥절하여 슬퍼하는 내게 아타니스가 다시 속삭였다.
이 숲에 미루목을 보러 온 외지인이 있어. 그 무리에서 가장 어린아이의 머리칼에서 뿌리 향이 나. 그 아이의 이름은 오로엔이야. 오로엔... 우리 정령말로 열쇠란 뜻이지.

오로엔... 오로엔... 예쁜 이름이야. 어서 그 아이를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해야겠어.


▲ 안개가 자욱하고 적막한 느낌의 플롱도르 호수

▲ 얌전히 놓여있는 캐더린의 마지막 일지

모험가는 일지에 적힌 대로 미루목 유적지로 향했다. 미루목 유적지는 미루목으로 만들어진 고대병기들이 사원을 지키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모험가는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는데, 바로 고고학자 마르타 키옌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고대 유물을 한창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마르타 키옌은 오로엔이 어렸을 적 미루목 유적지에서 지내다 캐더린 공주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오로엔은 오랜 방랑 생활로 인해 차갑고 타인 경계가 심한 아이였다. 하지만 캐더린 공주는 그런 그녀를 오랜 친구처럼 대해주었고, 결국 오로엔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그런 캐더린은 어느날 오로엔에게 '하늘로 오르는 어여쁜 문'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곳은 바로 이아나로스의 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로엔과 캐더린이 이아나로스의 들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고, 아름다운 첫눈이 내렸다. 하지만 그날 청천벽력같은 일이 오로엔에게 벌어졌다. 그녀는 헤라웬의 손에 이끌려 카마실비아 밖으로 추방됐다. 캐더린은 차갑게 돌변한 눈으로 오로엔에게 당장 숲에서 사라지라고 명령했다. 오로엔이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캐더린 공주는 이아나로스의 들에서 매복하고 있던 아히브에게 암살당했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캐더린은 혹시 자신이 암살당할 것을 알고 오로엔을 쫓아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알면서도 왜 이아나로스로 간 것일까? 그리고 아케르 출신 여왕 아멜리아 오네트는 이 일이 벌어진 후 '기다렸다는 듯이' 아히브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한다.


▲ 미루목 유적지. 모험가는 이곳에서 마르타 키옌을 만나 단서를 얻는다.

▲ 미루목 유적지를 조사하는 고고학자 마르타 키옌

모험가는 마르타 키옌이 말한 이아나로스의 들로 가보기로 했다. 많은 의문들과 사건이 얽혀 있는 공간.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수 있는 시점에서, 왜 캐더린 공주는 죽음을 택했을까. 모험가는 이를 위해 발타라 서부 산맥을 오랜시간 헤메고 다녔다.

발타라 서부 산맥 꼭대기, 하늘로 향하는 문이 보이는 곳. 그곳은 이아나로스의 들로 향하는 입구였다. 말로만 들은 그곳엔 정말로 아름다운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들과 연보라빛 버드나무에서 향기가 흘러 넘쳤다. 모험가는 버드나무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돌 하나를 관찰했다. 그것은 이아나로스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알려진 바위였다.


▲ 캐더린이 오로엔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하늘로 향하는 문의 광경

▲ 이아나로스의 들. 이곳은 이아나로스 정령이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모험가는 본능적으로 무기를 들었고, 한 루트라곤 장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험가는 처음 보는 족속이었다. 일명 실비아의 아들이라는 족속. 모험가는 그를 경계했지만 루트라곤은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모험가에게 론의 거울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론의 거울은 캐더린 공주의 마지막 일지를 품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 루트라곤에 따르면 모험가는 정령의 비원에 마음으로 적셔든 자, 두 고대 정령의 노래를 되찾은 자, 완수되지 않은 계시를 이어가는 자로서 이 거울과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아주 오랜시간 캐더린에게 내려진 계시에 대해 고뇌했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루트라곤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커다란 론의 거울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캐더린의 일지가 살포시 놓여 있었고, 모험가는 그 일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 루트라곤 장로가 소환한 론의 거울. 이곳에 캐더린의 마지막 일지가 놓여 있었다.

이아나로스의 들 - 겨울의 일지 중
저 멀리 일리야 섬에서 왔다던 아이, 오로엔은 경계심이 참 많았다. 얼른 이아나로스의 들로 인도해야 할 텐데... 하지만 그러긴 커녕 말을 붙이는 일도 어려웠다. 나는 어머니께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첫눈이 오기 전에 제가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되게 해주세요. 아무 의심없이 내 손을 잡고 따를 수 있도록... 마지막 열쇠를 허락해주세요.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로엔의 작은 입에서 괴상한 한 마디가 나왔다.


"브후라... 카헬리악..."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일지에서 본 구절이라고 했다. 아아...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오리아나님이 이야기하시던 그자가 틀림없다. 오로엔에겐 카마실비아에 닥친 모든 혼돈의 원흉, '그 남자'의 피가 흘렀던 것이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다정했다. 늘 진심을 다했다. 어느새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고,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열쇠다. 뿌리 세계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영혼. 가을이 익고 있다. 겨울이 오기전에 거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정녕 어머니의 뜻인 걸까? 이 아무 죄 없는 아이의 영혼을... 카마실브의 빛을 위해 올려야만 하는 걸까? 피를 머금고 피어난 카마실브는 아름답긴 한 걸까?

...이미 오로엔이 열쇠란 사실은 어떤 입 가벼운 정령에 의해 그녀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소문으로 만들었다. 곧 아멜리아와 아히브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그저 피를 원하는 그녀들은 오로엔을 지우려 들지도 몰라...! 아아, 어머니. 저 불쌍하기만 한 아이를, 저 상냥하고 예쁜 아이를...! 카마실브의 빛이란 공리에 기대어, 결국 제 욕심에 제물로 삼으려 했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부디 못난 저를 벌하소서...!

모험가는 론의 거울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몽롱한 귓가에 작고 여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험가 앞에 과거의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했다.

결국 영원히 카마실비아에 돌아오지 말라며 오로엔을 쫓아냈다. 이제 카마실브를 되살릴 수 없어. 곧 이 아름답던 정령의 숲도... 바깥 세상의 숲처럼 빛을 잃어가겠지...?

하지만 어쩌면... 내가 겪었던 시련도... 가시투성이었던 궐의 삶 속에 선물 받았던 오로엔과의 추억도,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버린 고대 정령들도, 빛을 잃어갈 숲도 모두 어머니의 뜻이었을거야. 자애로운 어머니게서 누군가의 피를 원하실리 없어.

캐더린 오네트의 혼잣말. 그런데 그 사이로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 숨어있던 아히브가 뛰쳐나왔고, 깜짝 놀란 캐더린 오네트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엔 캐더린의 언니 비오렌치아 오도어가 있었다. 비오렌치아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아.. 캐더린... 이제 그만..."

뒤에서 브롤리나 오네트가 검을 쥔 채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비오렌치아의 공격이 캐더린을 관통한 것이다.

"캐더린!"
"브롤리나? 나... 나 어떡해...? 아... 브롤리나... 도와줘..."


▲ 캐더린 오네트는 언니 비오렌치아 오도어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가녀리고 작은 공주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한겨울임에도 꼿꼿하게 피어오른 꽃들 사이로 비릿한 향기가 코를 적셔왔다. 그 때 론의 거울에서 구슬픈 이중주와 함께 작은 한줄기 빛이 흘러나왔다. 순수한 영혼의 빛이었다. 아니, 그것은 캐더린 그 자체였다.

루트라곤 장로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어린 생명을 해치치 않기로 다짐했던 순간부터, 캐더린 공주는 열쇠가 된 것이다. 뿌리 세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영혼. 그것은 정령의 어머니의 시험이자 암시였다.

모험가의 손엔 어느새 캐더린의 노래가 쥐어져 있었다. 발타라, 오기에르 정령의 노래와 함께 카마실브를 되살릴 빛. 모험가는 그 세 기운이 서로 얽혀 춤추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커져 새로운 에너지, 곧 카마실브의 빛이 되었다.


▲ 캐더린의 마지막 일지를 갖고 있던 루트라곤 장로

▲ 캐더린의 노래

모험가 뒤 편엔 어느새 브롤리나 오네트가 서 있었다. 브롤리나도 그 광경을 보며 깨달았다. 오래전 그 겨울, 이아나로스의 들은 이미 캐더린의 영혼을 거두고 새로운 빛을 피워냈던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증오로 눈이 멀어 싸우기만 했던 자매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카마실브의 빛을 되찾을 방도가 바로 눈 앞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보지 못했다.

브롤리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물. 이제 카마실브의 빛을 되돌릴 차례였다. 모험가는 신단수 카마실브 가운데에 서서 빛을 풀었다. 그러자 스러져가던 나무의 생기가 되살아나며 빛의 조각들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그렇게 카마실브는 빛을 되찾았다. 숲의 정령들이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고, 어머니 실비아의 자애로운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빛을 되찾아 준 모험가는 카마실비아의 날개로서 최고 국빈 대접을 받았다. 대신 칼페온이 요청했던 군사 협정과 교류는 철회됐다. 이제 카마실비아는 힘을 되찾을 것이고 이방인의 도움도 필요 없을 것이다.

모험가는 카마실브가 빛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트렌트 마을의 칼리스 의원들에게 보고를 마쳤다. 군사 대표 델파드 카스틸리온은 협정을 더 생각해보겠다는 의외의 답장을 받고 당혹감을 느꼈다. 이제 칼페온의 꿍꿍이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아마 칼페온은 절대로 이 땅을 점령할 수 없을 것이다.


▲ 카마실브의 빛이 돌아오고, 나무는 생기를 되찾았다.


킥킥. 근데 말이야 좀 이상하지 않아? 파트너, 이 숲에서 늙은 가넬을 본 적이 있어? 그런데...스스로를 실비아의 아들이라고 부른 그 루트라곤 장로는 왜 늙어 보이지?
- 모험가의 흑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