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딘은 자기자신에게조차도 별로 쓰지않았던 사비로 블루머의 부상을 치료하는데 주저없이 사용했다. 의사는 낯선 보호자를 보고 수없이 확인질문을 해왔지만 그의 결정은 변함없었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하는게 좋다. 방치해버린탓에 더욱 심하게 부어올랐다고하는데, 왜 숨기고있었니?"

 나이에비해 너무나도 어린아이의 호기가 몸을 상하게 만들었기에 카사딘은 블루머를 처음 봤을때보다 훨씬 걱정해했다. 평소에 이런것에 흔들리지 않던 그에게 너무나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블루머는 다친손을 등 뒤로 숨기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문제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하잖아요. 그래서 혼자서 참고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블루머의 말에는 자기자신의 미성숙함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빠져있었다. 카사딘은 소녀의 행동이 왜 그러했는지 나름의 추리를 통해 알아냈다.

'남을 생각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는 알고있다. 하지만 그 행동에는 자의적인 요소가 하나도 들어있지않아. 그래. 너무 감추려고만 하고있어. 마치... 나처럼...'

'아저씨는 그래서 뭘 하셨어요?'

 옳은 행동을 내리지만, 정작 자기자신을 속이는 행동. 그것을 카사딘은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있다.

 

 어느덧 블루머는 자신이 머물고있는 숙소에 들어가길 원했고, 카사딘은 해당 장소까지 바래다주었다. 가족단위로 왔을터인데 어째서 이렇게 어린아이를 홀로 냅두는지에 대한  블루머가 카사딘을 향해 흔드는손길은 오늘 이 아이가 보여준 조숙한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지만 정작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갈길을 가는 카사딘의 속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밤이네. 아줌마, 더 물어볼 것은 없어?"

"...딱히 없어."
 없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하고있는 질문거리가 과연 10대 소년에게 물어볼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너무 강했기에, 엘리스는 말을 아낀채 이 허세덩어리 소년과 헤어져야할 시간까지 보냈다.

"거의 다왔어. 이제 안따라와도 돼, 아줌마."

"결국 아줌마라고 부른채 가는거니... 뭐 됐어. 전직 챔피언 삥뜯으면서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는것 자체가 보통 깡은 아니었지만말이지."
"칭찬 고마워. 헤헷."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듣냐.'

 필트오버에서 마오카이의 '박수쳐주지'라는 말을 그대로 알아들은 그녀가 할말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회상을 하면서까지 소년을 보내줘야할 이유는 없었다. 두사람의 정없지만 깔끔하기 그지없는 헤어짐이었다.


 

'콰광-'


'이제 뭐하지.'

 사람들이 엘리스의 등 뒤를 지나치면서 어딘가로 달려간다.

'오늘 밤만큼은 다른 호텔이나 여관에서 지내고싶을정도로 수도원으로 돌아가고싶지 않은걸.'

"저기말야 저기!"
'그렇게 할까. 그동안 나는 나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 얻어터질정도로 혼난다고해도 이런 것도 한번쯤은 해보고싶어.'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에 치중한 그녀가 달려가던 사람과 어깨를 크게 부딪혀 쓰러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고있을것이다.

"아으.... 똑바로 좀 보고다녀요!"
"죄송합니다... 가 아니라 잠깐, 실례하지만 당신 혹시 저쪽에서 오시는길입니까? 그보다 이름이 엘리스 맞죠?"

"그렇습니다만?"
"그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는데 어떻게 못들은척 그대로 올 수 있는거죠? 저기 있는 숙소에서 화재가 났다는데!"
 자신에게 사과를 구해야하는 사람이 오히려 나무라고 다그치는 상황이었지만 맥락상 엘리스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같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달려서 되돌아가야만했다.

 

"아...! 아줌마!"
"에지? 네가 여긴 왜?"
"모르겠어. 여기로 오는 도중에 굉장한 폭발음이 들리고 불이 났는데, 그 위치가 우리 가족이 묵고있는 숙소였어! 좀 도와줘! 내 부모님과 여동생이 저기있을텐데!"

 경제 특구에 세워진 숙소였지만 근대화된 건물자재나 소재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으로 건축된 숙소는 이미 자신의 몸에 붙은 불길을 늦출수도 없이 죽어가고있었다. 저 안에서 사람이 한명도 나오지않았다면, 에지의 말대로라면 저 건물안에서 3명의 사람들은 그대로 질식해죽거나 숙소와 같은 꼴을 당하고있을테다.

'어떻게하지?'

 엘리스를 이곳으로 부추긴 사람은 이 사소하지만 불행하게 터져버린 위기를 타파해낼 존재를 찾아왔다고 다른 사람들의 혼란을 잠재우고 있었다. 그녀를 희망으로 여기는 최초의 순간이었지만, 정작 그 기대를 받고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한없이 움츠려져있었다.

'고치를 던져서... 아니야, 거미줄을 쏘아봤자 불길을 끄지는 못해. 그보다 나는 고치를 쏴서 무엇을 하려고했던거지?'

"엘리스! 어떻게 좀 해봐라!"
"넌 이래봬도 마법사아냐?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줘!"
"..."
 사람들은 점점 엘리스의 무력함을 탓하기 시작했고, 에지는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묵묵함은 정작 사고의 당사자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사람치고는 가공할만한 침착함이었다.

 

 

 엘리스는 일단 숙소의 문앞으로 달려가서 손과 발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육체의 힘을 빌려서 밀폐된 공간을 뚫어내려했다. 그러나 데마시아에 소속되었던 병사도 아니고 수도승도 아니며, 하물며 거대한 덩치를 가진 떡갈나무도 아니었기에 효과는 전무했다.

 

 신경독의 위력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새끼거미들을 소환시켜서 힘이 되어달라고하기에는 불길이 너무나도 거셌다. 거미 형태로 변하면 어떻게든 신체력 능력이 강화되겠지만 그걸로 문을 뚫어도 자신이 들어갈수는 없다. 위에 올라가면 그냥 불판 위로 기어올라간 거미나 다름없었다. 이정도쯤 망설이니 달궈진 손잡이를 잡을 용기도, 차오르는 불길속으로 뛰어들기는커녕 발길질한번 시도해보지도 못하겠다. 저 문고리는 잡으면 뜨겁다, 발차기를해도 저 문은 열리지 않을것이다. 그럼 어쩔것인가. 아무것도 하지않는다면 이 건물은 불타서 무너질것이다. 이미 지붕을 장식했던 건축재는 떨어지고있었다. 이곳에서 물러나야한다. 두렵다. 그리고 잘못하면 죽는다.


"뭐하는거야 저 마녀자식은!"
"다른 사람을 불러와! 물통에 물을 길어온 사람은 얼른 불을 끄고!"

"..."
 순식간에 그녀는 희망에서 무능력한 사람으로,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서 다시 손가락질을 받는 마녀로 되돌아갔다. 에지는 그저 바라보기만했다. 그의 침묵은 함성과 아우성에 묻혔지만 여기있는 누구보다 절제하고있었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수없이 많은 작은 공간을 뛰어넘어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보라색빛이 가득차있는 주머니처럼 보여지게 만드는 광경, 그리고 그 속에서 등장하는 챔피언은 사람들이 정말로 원했던 구세주에 근접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만든만큼 위엄있게 등장해서 불타는 건물속으로 뛰어드는 카사딘의 모습은 그를 단 한번도 마음에 둔적없던 엘리스에게조차도 자신의 구세주라고, 일순간 여겼다.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