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모두에게 있어서 단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엘리스의 마음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피폐해져있었다.

'내 과거가 순탄치 않다는걸 자세히 전했음에도 셋 모두가 나를 이해해준다거나 동정하는듯한 기색이 없었어. 마치 먼 과거에 겪었던 일들이 최근까지 행해온 짓들을 무마시켜주지 않는다는것처럼...'

 엘리스가 감정을 잃은채 4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고있지 기본도덕관념을 잊은건 아니었다. 거미교 활동을 할 때에도, 청문회 이후의 순간부터도 자신이 행하고있는 활동이 도덕적으로 옳지않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그러기에 자기자신에대한 평가가 후할수없었다. 이전에 세 챔피언에게 자신이 뭘 하면서 살지 의논할 때 들떠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창피할 정도였다.


 10월 9일 이후부터 경제 특구에서도 엘리스의 존재를 꺼림찍하게 여기는 시선이 늘어나 수련이 끝나도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끝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할 시간밖에 없었다.

 매일 밤 그녀가 꾸는 꿈은 그녀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었다. 알게되어서 더욱 불편한 과거사의 강제적인 회상이라든가, 자신의 거미에게 잡아먹혔던 신도의 관점에서 당하는 일들은 밤이라는 단어 자체마저도 무서워하게 만들만큼 끔찍했다.

 

 리신과의 수련은 평소와 다를바없이 계속 진행되었다. 다만 그동안에 비해서 가라앉은 분위기와, 육체적인 수련이 끝난 이후에도 명상이라는 수련이 추가되었다는 변화가 있었다. '그대의 과거가 어찌했든 이 수련의 과정에 계산되었던건 사실이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위한 수련의 마지막 단계요'라고 말했던 리신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필요 이상의 힘이 근육에 가해지는 것을 절제하지 못했다.

 그래도 리신은 남은 두 챔피언에 비하면 성인군자라고 여길 수 있는데, 마오카이는 과묵해졌고 카사딘은 전과 크게 다름없이 엘리스를 깎아내렸다.


 지나치다 생각할 정도로 말을 아끼는 마오카이에게 하다못해 엘리스가 소리쳤다.

"마오카이, 어째서 내 과거를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않는거야? 나에게... 적어도 네 생각을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에게 답변을 전하는 마오카이는 태도뿐만아니라 목소리조차도 고뇌에 빠져있었다.
"모르겠다... 너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알고나니까 모르고 지내던 시기보다 훨씬 너를 대할 방법이 생각나지가 않는군."

 그 이후로 엘리스는 마오카이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과묵하게 변한 마오카이보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지닌 카사딘에게 더 충격을 받았다. 일부러 비를 맞으며 서있던 그 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카사딘과의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의 카사딘이 전과는 다른 말을 할줄 알았다. 그러나 둘이 마주친 순간에 카사딘에게서 나온 말은...

"네 과거가 어땠는지 알았으니 확실히 결정해라. 참고로 어설프게 교화하느니, 차라리 악인이 되는게 낫다."

 남모르게 기대했던 그녀의 속마음을 부숴버린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쩜 그렇게 모질게 대할 수 있니, 너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설마 너는 네 고난한 과거를 들려줌으로써 너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나? 그 정도로 네가 싫지만 떠날 수 없기에 그렇다."

 카사딘은 그녀의 속사정을 알고있음에도 전과같이 도덕성에 충실하고 논리적인 말로 그녀를 훈계하고 대했다. 그렇다. 리신이든, 마오카이든, 카사딘이든 저들은 옳은 행동을 보이고있다. 다만, 그 올바름이 너무나도 자신에게 무겁게 다가오는게 싫었을 뿐이다.

'나도 내가 했던 짓이 무슨 짓이었는지는 알아. 그러니까 한 순간만이라도, 내 맘을 이해해줬으면...'

"누군가에 의해 여기서 묶여있다는거야? 그거 많이 기분 나쁘겠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지난 날 저리 가라고 말했는데도 왜 내 뒤에 서서 같이 비를맞은건데?"
 엘리스의 말 속에는 증오와 원망이 둘 다 담겨졌다. 그녀가 복합적인 마음을 가지며 카사딘을 노려봤을 때, 일순간 카사딘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작은 변화가 일어난 뒤에 카사딘은 엘리스를 향해 답했지만 투구속에 씌어진 그의 표정을 읽을수는 없었고, 뚜렷하지않게 나오는 목소리에서 특별한 감정이나 말투가 실려있음을 찾아내긴 어려웠다. 

"...너 때문에 서있었다고 생각하는것만큼 자기중심적인 생각도 없군."

 그리고 카사딘은 엘리스를 피했다. 


 

 과연 카사딘은 엘리스의 생각처럼 변한게 하나도 없는걸까? 그 답은 리신과 얘기한 다음 대화에서 판단할 수 있다.

"카사딘, 그대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것 같소만."
"무슨 말인가 리신."
"지금의 엘리스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고, 수련과 대련에 집중하지 못하고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그녀와의 대련에서 전처럼 압도적인 일격을 가하거나 승리를 얻지 못하고있소."

 엘리스와의 대면이 끝난 직후의 어느 날 리신이 카사딘에게 말했다. 카사딘은 차분히 대답했다.
"... 컨디션에 의한 기량차이다. 그 정도로 남을 평가하다니, 아이오니아의 뛰어난 수도승이라고해도 얕은 구석이 있군."
"애써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만 하는거요, 카사딘? 엘리스가 소인의 수련을 열심히 따라오고있다고해도 소인역시 그녀를 좋게여기거나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소. 4개월 동안의 그녀는, 아니 적어도 아이오니아에 있는 지금의 그녀는 그동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고있소. 그런 작은 차이가 단순한 악녀로 인식했던 그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거요."
"그녀는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일 뿐이다!"

 언제나 엘리스에 대한 얘기가 나올때면 카사딘의 언성은 커져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녀는 끔찍한 일을 행해온 '마녀'이자 '거미 인간'이오. 그녀가 진정으로 괴물이 되려했다면 거미 여왕이 아닌 거미 괴수로 변했을 터, 우리는 그녀 안에있는 가능성을 믿어야하오."
"가능성이라... 훗, 헛소리는 그만 지껄이는게 좋을것이다 리신."


 10월 18일 오후.

 엘리스는 아이오니아의 장로들에게 부름을 받았다. 아마도 1달마다 써서 보고했던 활동보고서에 만족하지 못했던건지 비자를 만드는 절차인양 면접을 보러는듯 했. 최근동안 방황을 했던 엘리스는 장로들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카르마가 리신과 마오카이와 카사딘에게 전한바에 의하면, 그녀는 아이오니아로부터의 영구추방을 당했다. 그녀가 아이오니아에 머무르고있다는 사실이 전 지역의 사람들에게 알려진것도 컸지만, 그림자 군도의 기운을 가진 챔피언의 존재때문에 자국의 땅에서 해로윙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기위해서이기도했다. 엘리스는 해로윙의 일주일 전 날짜인 10월 24일까지 아이오니아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라, 리신. 나 지금 수련해야하는거 아니야?"
"... 엘리스. 당신의 수련은 끝났소."

 리신은 그녀가 아이오니아에서 영구추방당했다는 말대신 수련의 중단을 통보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되찾은 그대가 어떻게 행동하고 지내는지가 수련의 마지막 관문이었소. 하지만 그대는 너무나도 방황하였소. 명상에도 집중하지못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찰을 하지못했소. 이곳에서 당장 나가시오 엘리스. 이 땅을 다시는 밟을 생각조차 하지마시오."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엘리스 下


원작 : 34화에 적어놨습니다. *참고 : http://blog.naver.com/darkkhan2012/220958581127

팬픽(현 작품) : 엘리스는 과거 녹서스에서 잘나갔던 키테라 가문의 딸 '프리실라'였습니다. 녹서스의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있지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외모로 별탈없이 살 수 있었고, 그로인해 그녀외에 자녀가 없었던 키테라 가문의 중흥을 이끌 핵심인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거미의 강한 독성으로인해 찬란했던 미모를 잃게되었고, 이는 곧 키테라 가문의 몰락과 그녀의 정략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젊었을 적엔 갖은 성폭행과 유산을 겪고, 나이가 들었을 땐 남편의 잦은 외도로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그녀의 인생. 프리실라는 남편의 비자금을 모두 빼돌려서 가출을 시도합니다. 그녀는 연금술사에게 전재산을 투자해 거미인간으로 연성되어 챔피언이 되려했으나 실패했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르블랑이 접근, '검은 장미단'에 들어갔으나 챔피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하고 르블랑에게 목숨을 담보로 건 약속을 건 채 탈퇴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챔피언이 될 리 만무했던 그녀는 삶의 목표를 잃고 그림자 군도로 향하는 탐험가일행에 몸을 맏겨 자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림자 군도에서 죽기를 기다리던 그 때, 프리실라는 거미의 신인 '썩은 아귀'를 발견했습니다. 썩은 아귀에게 평생을 모시는 대가로 부여받은 마법으로인해 프리실라는 한 차례의 환골탈태를 겪고 미모와 힘을 얻게됩니다. 이후 썩은 아귀가 하사해준 이름인 '엘리스'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신을 섬기기위해 '거미교'를 만들어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두게 되죠. 하지만 썩은 아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건(부모님을 다시는 찾아뵙지 말라고 당부했음에도 녹서스로 찾아가 만나뵈려했던 것)과 그것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가는걸 알아차린 썩은 아귀는 보다 강력하고 입체적인 지배를 위해 '정신 기생'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의 행적은 본편의 줄거리대로...

 

<글쓴이의 말>

드디어 주인공의 최종 설명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턴 클라이막스에 돌입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