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우리이거 한 번 해봐요!"
 소녀가 카사딘에게 제안한것은 다름아닌 펀치머신이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소녀와 그 기계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아무리봐도 아직은 할만한 나이가 아닌데.'

"걱정마세요. 저 할 수 있다니까요? 왜 그렇게 바라보는거에요? 저 제 친구들중에선 제법 힘쎄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블루머는 이미 기계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고 카사딘은 별 생각없이 따라갔다.

'몇 분의 1의 힘만 내면서 적당히 어울려주지. 저 귀여운 얼굴에 그 나이대 체격을 가졌는데 세다면 얼마나 세다고...'


 카사딘은 자신의 예상이 얼마지나지않아 한쪽 주먹을 다른손으로 움켜쥐면서 부르르 떨고있는 블루머의 모습을 보면서 예언에 가까울 정도의 적중력을 가졌음에 감탄아닌 감탄을했다. 도움의 의도로 손을 내밀었지만 블루머는 그 손을 사양하면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저는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니까. 이까짓 통증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고 학교에서 배웠거든요?"
 도무지 쾌유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정도로 부어오른 오른손 주먹이지만 여자아이의 태도는 자신의 꾸민 성숙한 말투의 나이대인 인물이 가질마큼 매우 침착했다.

'조금은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되지않을까. 왜 굳이 안그런척, 대담한 척을 하는거지.'

 오히려 나이에 맞지않는 모습을 보고 속마음이 일순간 흐트러진쪽은 카사딘이었다.


 

 카사딘이 조우하고있는 소녀와는 다르게 유치하고 허세기가 흘러넘치는 소년과있는 엘리스역시 착잡한 마음을 가진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그 소년이 그녀의 저기압을 이겨내지못하고 다운된 텐션으로 다니고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특성이 바뀌지는않듯이, 그저그런 상황으로 다니고있었다.

"어이 아줌마."
"왜."
"날씨가 흐린데, 우산이라도 사야되는거 아니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려보니 정말로 심상치않은 조짐이 구름속에 담겨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소년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엘리스의 답은 '아니'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엘리스에게는 해가 오히려 성가신 존재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작정 걷고있는 그녀에게 잠시 후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장신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어둠속에 스며들어가고있는 희미한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이 아줌마, 돈아까워서 그런건 아닌거같은데, 내가 사비로 샀으니까 쓰는게 어때?"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엘리스는 엄한 걱정을 그만두었다.

"적어도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나이정도는 되고싶단 말이지."

"그럼 내 심정이 어떤지 말해볼래?"
 로망이나 분위기잡는대사없이 찌른 그 한마디는 에지의 허세를 또 한 번 제압했다.

"칫... 아니 아줌마도 여자잖아?! 그리고 그 정도의 외모면... 아니 좀 쳐졌는데, 일러스트에 있던 그 모습은 보정인가? 잠깐, 그러니까 내 말은 너도 이성으로서 누군가에게 관심받고싶지않아?"

 뭔가 그럴싸한 말이었지만 지금의 엘리스에게 그것을 언급하는것은 정말로 잘못된 때였다.
'그런 감정을 사전적으로는 알고있지만 그럴 여유도없고 대상도 없는걸. 하나같이 다들 너무 옳은소리만 하고있어. 그래서그럴까. 그런 말을 듣고 분발해야하는데 이제는 그럴 힘도없어. 하나도 정이가지않아.'

"그럼 말이지, 날씨는 확인하고 우산을 펼쳐야하는거아니야? 지금 우산쓰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데."

 이제서야 허세부리면서 분위기를 잡았던 자신의 처지를 알고 에지는 우산을 거두려했다. 그 때, 엘리스가 갑자기 소년의 등뒤로 숨으면서 우산을 접으려는 그의 팔을 저지했다.

"에지? 잠깐만, 우산을 펴고있어줘. 보고싶지않은 사람이 나타나서말이지, 시야를 가린상태에서 천천히 어딘가로 가자. 알았지?"
"어이 아줌마? 그 장신으로 내 몸과 우산뒤편에 어떻게 숨는다는거야!"
 

 

"카사딘 아저씨, 저 제 오빠 본거같아요!"

"그런가. 어느쪽인가."
"저기... 어?"

 블루머가 가리킨 곳에는 비도오지않은 날씨에 우산을 펼친채 작위적으로 시야를 차단한듯한 두명의 사람이 있었다. 블루머가 자신의 오빠를 봤다는 그 곳으로 걸어가자 그 우산이 잠시 움직이더니, 어디론가 빠른 발걸음을 숨긴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애애엑?!"
 어린아이의 눈에는 우산에 발이생겨서 움직이는것처럼 인식했는지, 지금까지의 소녀의 어른스러움은 어디가고 겁에 질린 비명이 터져나왔다. 카사딘은 그런 여자아이의 겁을 없애느라 우산에 대한 의문은 풀지못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봤던 정보로만 짜맞춰봐도 누군지 감이 벌써 잡혔기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소년이 쓴것치고는 높이 들려있던 우산, 그리고 상체를 가리기에 급급하느라 어색하게 드러난 검은색 다리...

'네가 왜 거기있는거지 엘리스...'
"아저씨..."
 이제 진정한듯한 블루머의 목소리에 돌아본 카사딘의 시선이 멈췄다. 펀칭머신에 내질렀던 손이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이제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여름부터 밀린 연재 정말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