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독이빨은 이유모를 원인에 의해 방향이 빗나간 채 땅에 박혔다. 거미는 그 이후로 두번다시 카사딘을 해하려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통제권을 잃어가는듯한 괴로움을 공중으로 발산해내느라 다른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ㄴ무슨 짓이냐... 너가 저 남자를 죽이고싶어했던건 너였을텐데...! 그보다... 어떻게 나를 거스를만한 힘이...!!!ㄱ

 현란한 발걸음은 이 거미의 혼란스러움을 의미했고, 시간이 흘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저항은 사그라져갔다. 창백하고 푸른 흰색의 피부색과 갑옷들은 그동안의 거미 여왕이 선보였던 검은색과 붉은색의 조화로 돌아갔다. 검은색 거미로 바뀌었다해도 이미지상 갖고있는 위험함과 날카로움은 줄지 않았으나 거미에게 눌려있는 카사딘이나, 멀리서 바라보고있는 마오카이에겐 친숙한 외양으로 돌아왔을 뿐. 창백한 흰색 갑옷과 피부를 이뤘던 요소들은 한 줌의 가루가되어 공중으로 흩날렸다. 본래의 외양으로 돌아온 거대 거미의 모양은 모두가 많이 본 모습을 하고있는 인간으로 변했다. 자신의 밑에 쓰러진 사람이 누군지 알면서도 여자는 조심스레 말했다.

"카사딘...?"
"돌아왔군, 다행이다."

 그리고 카사딘은 힘이 빠져가는 자신의 몸과 함께 잠들었다.

"카사딘? 말 좀 해봐! 카사딘!"
 새끼거미들의 포위가 풀어진 덕분에 마오카이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들을... 너는 싫어했군."
"아니, 아니야. 나는...!"
"결국 이런 일까지 벌어졌다 엘리스.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정신차려서 다행이긴하지만, 이제 네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마오카이는 오른손 장갑에 있는 주황색 망토모양의 물건을 엘리스에게 보여줬다. 망토를 축소시킨걸로도, 각진 종으로 보이기도하지만 전장에서 몇 년동안 활동한 그녀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있었다. 지금상태에 제시해준걸 보면 사용효과가 어떤건지도 유추해낼 수 있기도하고.

"이대로 방관한다면 너는 네 남은 삶이 조금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걸 쓴다면 너는 다시 이 사람의 독설을 들어야만 하겠지. 하지만 선택은 네가하는거다. 편해질지, 다시 불편해질지."

'네 손으로 그를 깨워라'는 말대신 그녀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대사를 하면서 엘리스에게 건넸다.

"..."
 


 무거운 눈꺼풀을 위로 떠올리니 본래의 모습보다 노랗게 묘사된 그림자 군도의 풍경이 카사딘에게 다가왔다. 투구속에 가려진 그의 세계는 현실보다 더욱 누르스름했다. 눅눅한 공기가 투구를 뚫고 그의 코로 들어왔다. 마스크로 호흡하는 공기보다도 훨씬 지독한 냄새였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무에 기댄채 앉아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기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여자에게 당했음에도 정신이 돌아온걸 보아, 눈앞에 보이는 저 여자가 자기에게 뭔가를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는 두 다리를 끌어안은채 카사딘의 상태를 예의주시해왔다. 그녀는 자신이 불편해지는 방안을 택했다.

'내가 마오카이와 카사딘을 공격한 것은 해로윙과 그림자 군도의 기운에 지배당한 것도 있지만 저 둘을 싫어하는 마음 한구석도 이유가 될테지. 특히 카사단에겐 더욱...'

 어쩐일인지 몇 백 수를 싸워도 이길 수 없을것만같은 카사딘을 이기는데 성공했으나, 거짓말같이 그의 말 몇 마디에 그녀는 각성을 풀고 썩은 아귀의 통제권을 뺐어냈다.

 처음으로 카사딘이 자신을 칭찬했다. 생존을 위해 입바른 소리를 했을수도있지만, 상대는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릴줄 모르는 엘리스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는 거미의 신이었다. 그런 존재마저도, 카사딘의 말 속에 숨겨져있는 진실성을 인정하고있었다.

"으...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라. 움츠려있지만 말고."
 엘리스는 그의 말에 순간 어깨를 떨었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위해 마오카이도 일부러 자리를 비워준 상황.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크게 움직이지 못한채 우물우물거리고있었다. 그러다 용케 꺼낸 한 마디는...

"미안해..."
였다.

 카사딘은 자세뿐만 아니라 말에서도 자신감이 사라진 그녀를 보고 할말을 잃었다는듯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린채 말했다.

"네녀석, 왜 그런 표정을 짓고있는거냐. 그리고 왜 내가 할 말을 네가하는건지..."

"?"

 엘리스는 지금껏 카사딘에게 짓지않은 표정을 하고있었다. 카사딘은 엘리스에게 퍼부었던 수많은 독설들을 떠올렸다. 이번엔 그가 말했다.

"네녀... 엘리스." 



 카사딘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 세상이 네게 바라는건 회개가 아니라, 네가 사회에서 외면당하는걸 모르고 있나보군. 몇 명, 몇십명을 죽여버린 연쇄살인범에게 회개를 요구하면서 징역형을 내리는게 아니라, 그 시간동안 사회에서 격리당해서 사람들에게 불안거리가 되지 않게하는거랑 같은 원리다.'

'감정을 되찾아서 감성팔이나 하려는 악녀는 필요없다구.'

'다시 그림자 군도로 돌아가라.'


 그런 카사딘에게 리신이 말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어째서 계속 여기남아있는거요? 그대가 엘리스를 향해 내뿜는 증오나 적대시하는 감정이 마오카이의 약속보다 결코 작지않을텐데!'

'그 '마녀'에게 감정을 평가절하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아니꼽게 여기면서도, 정작 당신이 그녀를 대할때는 '증오'와 '분노'라는 감정에 휘둘리고있다는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군.'


'과연 이성을 잃은 그녀 앞에서 잘도 지껄일 수 있는지, 기대되는군.'

 썩은 아귀는 그의 논증에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여자아이였던 블루머의 말조차도 이런 때에 떠올랐다.

'아저씨는 그래서 무엇을 하셨어요?'



"네가 저지른 짓이 최악의 죄인것도 맞고, 기운을 잃은 후에 그동안과는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보이는것도 가증스럽기도했지만... 너자신을 찾아나가는 행동은, 틀리지 않다. 그것을 편협적인 시각에 갇혀서 부정해왔던 내가 더 미안하군..."

 그는 엘리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동시에 그녀를 인정했다. 가까이 생활해온 기간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늦은 변화였다. 하지만 없는것보다는 더 나았다.

 엘리스는 카사딘의 앞으로 다가갔다. 카사딘이 했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사실하나가 오늘의 이런 사태까지 일으켰다. 그녀도 더이상 그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서로가 그토록 싫어했던 한 남자에게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럼 서로가 잘못했으니, 가볍게 퉁치고 넘어갈까?"
 엘리스는 그의 상체를 일으키는데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빈사상태까지 만든것까지 감안하면 그러기는 어렵지 않을까."

 카사딘의 손이 엘리스의 팔을 잡기위해 팔을 올렸다.



파악-

"크윽!"
 엘리스의 오른쪽 윗팔에 연두색 창이 박혔다. 그 창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그녀뿐만 아니라 카사딘도 알고있었다. 둘은 일제히 창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칼리스타가 천천히 걸어오고있음을 주시했다.

"썩은 아귀... 분명 그놈이 이 여자를 조종하겠다고했는데, 어째서 그 잘난 거미의 신의 계획이 실패되고 그림자 군도를 벗어나려하는 년만 있는거지?"
"칼리스타..."
 그녀는 청문회 직후에 칼리스타를 노려보던 그 때의 눈매를 재현하면서 상대를 바라봤다.

"기억을 되찾고 비밀을 알아서 이곳이 싫은거같은데. 하지만 너는 이 곳의 소속을 버릴 수 없어."
"..."
 엘리스는 자신의 오른팔에 힘을 뺀 채 천천히 일어섰다. '복수귀' 칼리스타. 그림자 군도의 소속을 포기하는걸 배신으로 여기는 챔피언. 창을 먼저 날린만큼 지금은 논리적인 반박보다 육체적인 제압이 필요했다. 그녀와 칼리스타의 사이는 아직 가깝지 않았다.

"구체적인 근거도없이 나를 이 곳에 붙잡으려는것도, 자의없이 속해있는 소속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배신'으로 여기는 행위도 이해가 안돼는데."
"그렇다면 너를 제압하기전에 몇 마디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는 얘기군."
 엘리스는 자신의 윗팔에 박힌 창을 뽑아냈다. 통증을 호소할수도, 아파한다는 사실을 드러낼수도없었기에 그녀의 얼굴은 표정을 감추기위한 온갖 힘들이 가해졌다. 칼리스타의 말이 끝나자마자 더이상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이 앞으로 질주했다.

'근거리로 접근해 녀석이 창을 못쓰게 고치로 제압시킨다!'

 칼리스타가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를리 없었다. 칼리스타는 자신의 창을 여러개 뽑아낸다음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주어 창의 날카로움을 강하게 만들어서, 전방을 향해 날렸다.

"'꿰뚫는 창'!!"
'여러개지만, 피할 수 있어! 수련을 통해서 얻은 실력이라면... 윽!'

 유감스럽게도 엘리스의 몸은 자신감에비해 기능이 따라오지 못했다. 오른팔의 상처가 변수였다. 오히려 그녀는 주춤거린나머지 피할 태세도 갖추지 못했다.

'아차...!'

 그런 그녀의 눈앞에 수많은 가시들이 등장했다. 검붉은 색 가시들이 교차되어서 순차적으로 칼리스타를 향해 솟아난 것이다. 수많은 장애물에 의해 창들은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했고 가시들은 방패막이의 역할이 아닌 칼리스타에게 한 방먹이는 공격까지 가했다. 잠시 주저앉은 엘리스의 앞에 누군가가 은신을 풀고 나타났다. 그녀는 알고있었다. 이블린만이 이런 스킬을 구사할 수 있다고.



 이블린은 복부를 관통한 칼리스타를 할퀸다음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어째서? 저 여자의 편을!!!"
"지금이야 엘리스! 칼리스타를 속박시켜!"
 이블린이 길을 터주자 엘리스는 바로 고치를 날렸다. 한 손으로만 시전했기에 위력의 감소를 예상했으나 거미줄은 칼리스타를 적중한 것을 넘어서 뒤에 있는 나무에게까지 고정될 정도로 넉백을 해냈다.

"?!"


 위력에 감탄하는 것도잠시, 엘리스는 이유모를 아군에게 말을 걸었다.

"이블린... 어째서 날 도와준거지?"

 이블린은 즉답했으나 그 속에는 고뇌도 섞여있었다.

"의문이 들어서라고할까... 나는 언데드와 관련없음에도 그림자 군도에 소속되어있잖아? 그런데 왜 그림자 군도에 소속되어있는지 궁금했기에, 너의 방황을 이해할 수 있었어. 너는 너자신에 대한 또다른 진실이 있음을 알았기에 군도를 박차고 나갈 수 있었지. 나는 그런 적이 없기에 이대로 살아가는거지만."
"작위적이지만, 틀린 말은 아닌것 같네. 고마워. 이블린."
 엘리스는 어떻게보면 생명의 은인이자 아군일수도있는 이블린에게 간단한 고마움만 표했다.

"둘이 같은 편일줄은 몰랐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칼리스타가 분위기를 깨서 그런걸 수도 있다.

"용케 날 제압했지만 다른 곳을 갈 순 없을걸? 이 근방엔 너를 반길 사람이 없다고? 특히 아이오니아로 가면... 거기에 있는 나머지 동료들에게 처참한 꼴을 볼거다."
"뭐라고?!"
"우리가 왜 올해 해로윙을 일주일 앞당긴지 알아? 바로 너를 그림자 군도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군도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제공해준 아이오니아에 손대지않고 너만 끌고온거라고. 하지만 굳이 이곳을 벗어나겠다면, 상관안해. 그 순간부터 아이오니아에 해로윙이 일어날테니까."
"칼리스타...!"
 쉽게 말하자면 이번 해로윙의 목적은 아이오니아를 인질로 삼아서 엘리스를 그림자 군도로 끌고오는 것이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아... 지각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