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확장팩의 메인을 장식한 건 일리단이었습니다.

예전에 시네미틱 티저 트레일러에서 일리단 그림자 나오는 장면 생벙송으로 볼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죠.

제가 불성시절에 게임을 하진 않았었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일리단의 스토리는 불성시절에 정말 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리단이 살아난다고 했을때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환영했죠.

이제야 일리단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거라고 생각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부분 제라의 세탁에 대해서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그점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일리단이 아르거스를 바로 앞에 불러왔을때도 오히려 저는 납득을 했습니다.

제라의 목표는 불타는 성전을 빠르게 끝내는 것이었지만 어떤 빛의 용사도 자기 모성에 군단의 모성을 가져오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태니까요.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은 일리단 밖에 없죠. 그렇기에 일리단을 살려내야한다고 플레이어들을 설득했던 겁니다.

그리고 제라가 딱히 진실을 왜곡하진 않았죠.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었습니다. 몇마디 첨언을 붙이긴 했지만.

7.3패치를 보니 제라는 나루 중에서도 조금 독선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딘과 마찬가지로 조금 문제가 있는 아군이지만 저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삼고 싶은건 다른 부분입니다.

 

 

일단 비중이 적습니다.

군단에서 일리단은 우리들의 조력자를 맡았습니다. 이 위치는 대격변의 스랄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중을 차지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리단은 죽었고 부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시점은 밤의요새가 끝나고 나서입니다. 7.1 패치가 되어서야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블리자드의 한 확장팩에서 첫번째 티어 레이드가 끝나는 시점에서 스토리의 80%는 지나갔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지역을 탐험하고 그 지역의 npc의 부탁을 들어주는 활동으로 대부분의 서사가 흘러갑니다.

이후 패치로 추가되는 퀘스트들은 대부분 짤막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일리단은 활약할 무대부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비중이 있었을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7.2패치의 군단척결대장정은 스토리가 없습니다.

대성당에서 마이에브랑 만담을 조금 했고, 설게라스의 무덤을 돌파해서 아르거스를 우리 앞에 불러왔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제가 확인한 바로는 7.3패치에서도 하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투랄리온과 알레리아, 그리고 벨렌이 각각 비중을 다 차지한 덕에 현재까지 일리단의 비중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한번 스랄과 비교를 해 봅시다. 스랄의 경우 요새 그린지자스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뭔가 비중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번 확인해봅시다.

4.0패치 : 고블린 시작퀘스트에서 짤막하게 출현했고, 이후 대지고리회는 많이 등장했지만 스랄이 한 활동은 없음.

4.1패치 : 잔달라부족이야기로 볼진이 활약함.

4.2패치 : 시네마틱에서는 라그랑 대화했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말퓨리온이 활약 다함. 다만 스랄의 결혼식 관련 짤막한 퀘스트가 있음

4.3패치 : 용의 영혼을 가져와서 데스윙을 쓰러트림.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랄의 비중은 그리 높진 않았습니다.

사실 와우에 캐릭터가 워낙 많다보니 한 캐릭터가 아무리 비중이 많아도 모아보면 별로 없습니다.

 

그럼 이 비중을 군단에 가져와봅시다.

군단에서 스랄과 가장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누구일까요?

바로 벨렌입니다.

자기 아들은 라키시를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 묘사도 보여주었고요.

살게라스의 무덤에서도 킬제덴과의 악연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리고 7.3패치에서 아르거스 스토리라인이 공개되고 있는데 여기서도 벨렌이 종황무진합니다.

 

반면 일리단은 어떨까요?

물론 살게라이트 쐐기석을 이용해서 아르거스를 불러들여왔죠.

하지만 벨렌과 일리단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심리묘사입니다.

벨렌의 경우 친아들이었지만 타락한 라키시, 한때 최고의 친구였던 킬제덴, 가장 신임했던 부하였던 탈가스와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벨렌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은 우리가 벨렌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편 일리단은 밤의 요새에서 부활한 이후 군단의 선봉장으로써 활약하긴 하지만 그 깊이가 너무 얕습니다.

아이기스를 배치해라! 악마들을 처치해라! 같이 양산형 npc들이나 줄 법한 퀘스트를 주는 걸로는 어떤 감정이입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일리단이 이렇게 깊이가 없어졌을까요?

왜냐하면 일리단은 나이트엘프거든요. 그리고 일리단을 매력적으로 만든 건 일리단과 군단과의 갈등이 아니라 티란데와 말퓨리온, 마이에브와의 갈등입니다.

벨렌과 군단의 이야기가 몰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유죠. 벨렌은 군단의 탄생과 정말 깊은 관계를 가진 인물이니까요.

즉, 일리단은 군단 확장팩의 주인공으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역할은 벨렌이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잘할 수 있거든요.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일리단이 살게라스의 간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제 스토리라인에서 이탈한다는 말인데, 아직 일리단은 말퓨리온이나 티란데랑 한마디도 안 해 봤습니다.

마이에브하고도 딱히 갈등을 푼 묘사도 없었습니다.

기껏 살려냈더니 아무것도 못한 채로 퇴장하게 된겁니다.

이건 블리자드에서도 일리단을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처분해 버린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겠죠. 일리단은 티리온처럼 하스글렌에서 짱박혀있을 사람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럴거면 살려내질 말았어야죠.

 

 

 

마무리하면서 한마디 하자면 저는 군단 스토리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부서진 섬의 다섯지역 모두 정말 멋있는 스토리라인을 갖추었고, 역대급으로 많은 직업별 스토리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고, 유튜브로 찾아보고 있는 아르거스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제가 안타까운건 군단의 스토리는 일리단 이야기를 빼버려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아니, 빼버려야 더 좋아집니다.

군단을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들을 일리단의 그림을 보고서 많은 기대를 하고 게임을 결제했습니다.

하지만 받게 된 건 너무 다른 이야기였죠. 말하자면 만화책 표지랑 내용이 전혀 딴판인 상황이죠.

내용물이 만족스럽다는 점을 떠나서 사기당했다는 느낌은 사라지질 않습니다.

그는 좋은 표지모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