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외곽의 조그만 마을인 콜헨. 한 때 보물을 찾아 크게 성공하겠다는 트레져 헌터들로 가득했으나 


지금은 다 빠져나가고 마을을 지키는 용병단만이 남아있는 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작은 마을에 불과했


다. 아니, 분명 그래야 했을 콜헨 근처의 종탑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그 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신참, 정신 차려.”



 팍, 하며 투박하게 생긴 투구에 용병단 튜닉을 걸친 마렉의 손바닥이 리시타의 등을 강타한다.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것 치고는 다소 과하게 힘이 들어간 탓에 리시타는 하마터면 앞으로 쏠려 넘어질 뻔 했지


만, 용병단의 신입이라는 입장 탓에 감히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과도한 긴장은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되니까.”



 마렉은 리시타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덧붙였다.



‘긴장하지 말라고 해도…….’



 속으로 되뇌며 리시타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질 듯 어둑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야에 


들어오는 커다란 종탑. 그리고 그 종탑에는 익히 알고 있는 거미와는 차원이 다른, 한 점의 과장도 포함


하지 않은 표현으로 정말 집채만 한 흰 거미가 종탑을 부수다시피 올라가고 있었다. 거미의 발톱에 산


산조각이 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벽돌들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저 거미의 발톱에 제대로 맞는다면 분


명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런 걸 보고 어떻게 긴장하지 말라는 거야!’



 리시타는 혀를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17세라는 젊은 나이 - 17세면 이미 어엿한 성인이다 - , 대륙 서


북부의 고향에서 출세를 위해 이리저리 떠돌다 이곳의 용병단에 정착하게 된 리시타의 얼굴과 몸은 굉


장히 다부졌다. 튜닉으로 감추고 있는 몸 곳곳에 있는 흉터들은 지금까지의 그의 여행이 마냥 편하지만


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짧게 친 금발이었지만, 지금은 투구를 뒤집어


쓴 탓에 다소 머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정지. 발리스타를 장전하라!”



 칼브람 용병단의 단장, 아이단의 명에 용병단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퀴를 장착한 거대한 발리스


타에 마찬가지로 성인의 키와 맞먹는 길이의 화살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병기가 10기 이상. 아마


도 이 이상 거미가 흉폭하게 날뛰어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확실하게 사살하려는 것이리라.



“대장님, 지금 거미를 향해 쏜다면 종탑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 종탑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목숨은 다시 살릴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단의 명령에 의해 발리스타의 장전이 완료되었다. 이윽고 발리스타들은 화살의 끝을 거대


거미를 향해갔다.



“발사 준비!”


“기다려요!!”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인영이 발리스타의 앞을 가로막았다. 긴 금발에 푸른 눈, 흰 피부를 가진 소녀


였다. 가까이서 본 적은 없지만 흰 무녀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법황청에서 파견한 무녀일 것이


다. 날씬한 몸에 비해 볼륨감이 넘치는 가슴은 상체가 달라붙도록 제작된 무녀복에 의해 더욱 도드라


져 보였다.



“티이, 여긴 위험해! 어서 비켜!”


“사격 중지! …티이. 무슨 짓이냐!”



  티이라 불린 무녀가 다칠까 티이를 비키게 하는 마렉과 재빨리 장전을 중지시켜 행여나 있을 불의의 


사고를 막는 아이단이었지만, 그럼에도 티이는 그 자리에서 가로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


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신념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집이 가득했다.



“아이단 아저씨,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얘기해볼게요. 저 아이는 원래 저렇게 난폭하지 않아요.”


“티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저건 더 이상 마을의 수호신이 아니야, 그저 괴물일 뿐이다.”



 아이단의 말을 들은 리시타는 저게 수호신…? 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을 덮은 투구 탓에 그 표


정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번엔 우리에게 맡겨라. 다시 장전해라!”



 아이단의 명령에 용병단이 다시 분주히 움직이려 했으나, 티이는 재차 발리스타의 앞을 가로막았다.



“티이, 시간이 없어. 이대로라면 종탑이 그냥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더 위험해져.”



 티이를 만류하는 마렉이었지만, 티이의 고집은 확고했다.



“마렉, 나를 믿지 못하는 거야? 내가 올라가겠어. 저 아이는 두려워하고 있어, 무서워하고 있다고! …나


한텐 그 목소리가 들려.”



 티이는 간절한 표정으로 아이단과 마렉을 번갈아 보았다. 서로 눈빛을 공유한 아이단과 마렉. 아이단


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후…알았다. 대신 내가 함께 가마. 마렉, 소대원을 이끌고 나를 따라라.”


“예! 대장님을 따라라!”



 리시타가 속해있는 마렉의 소대는 아이단의 뒤를 따라 무너지고 있는 종탑의 문을 향했다. 아직 거대 


거미가 기어오르고 있는 탓에 머리 위에서는 탑의 잔해가 쉴 새 없이 떨어졌고, 아이단은 방패를 들어 


잔해로부터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티이를 보호하며 나무로 된 낡은 문 앞에 도착했다.


 문에 얼굴을 대어 안쪽에 적이 있는지를 파악한 아이단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진입했다. 주변을 경


계하며 소대원을 이끌고 조금씩 진입하던 아이단은 한 손으로 수신호를 사용해 정지를 명령했다. 리시


타는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을 움켜쥐었다. 뭔가 불길함을 느낀 탓이었다.



“이건…마족의 징표. 이게 왜 여기에….”


“꺄아앗!”



 티이의 비명에 의해 소대원의 적막이 깨지고,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아이단의 브레스트 갑옷을 꿰뚫


었다. 아이단이 바닥에 쓰러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소대원들의 몸에 하나 둘씩 화살이 박히기 시작했


다. 마렉 역시 예외 없이 오른팔에 화살을 맞고 무릎을 꿇었다. 항상 불길한 예감은 잘 들어맞는다며 욕


지거리와 함께 듀얼 소드를 마구 휘둘러 자신과 함께 티이를 보호한 리시타만이 상처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장식 갑옷을 입은, 마치 늑대나 개 등과 비슷한 외형이지만 직립보행을 하는 놀


(Gnoll) 종족의 아처(Archer) 무리가 등장했다.


 주위 소대원을 둘러보았지만 정상적인 전투가 가능한 것은 아마도 자신뿐임을 깨달은 리시타는 무녀


에게 외치며 뛰어들었다.



“내 뒤의 기둥에 숨어있어! 거치적대지 말라고!!”



 순식간에 놀 아처의 품으로 뛰어든 리시타는 듀얼 소드를 휘둘러 눈 앞에 보이는 한 마리를 제거했다. 


소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든 것이 그저 운은 아니라는 듯이 리시타를 향해 화살을 쏘는 또 다른 놀 아처


였지만, 놀 아처는 자신의 화살을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듯이 몸을 움직여 피한 리시타의 움직임에 놀


랐고 그 표정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이 층에 더 이상 적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 리시타는 티이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


해 기둥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의 교전으로 공포에 몸을 떠는 티이였지만, 그럼에도 굳게 입을 다물고 


앞장서라는 듯 리시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보고 리시타는 티이를 정말 굳센 아가씨라 생각했


다.



“조심히 따라와. 내가 신호하면 뒤에 숨어있고.”



 그렇게 리시타는 티이와 단 둘이 종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장식 갑옷을 입은 놀 워리


어와 마주쳤으나, 장소가 좁고 매복기습을 위해 숨어있던 녀석들이니만큼 수는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수많은 포워르(마족)와의 전투로 위기를 겪었던 리시타이기에 수가 많지 않은 놀 워리어


는 리시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티이와 함께 무사히 종탑의 꼭대기까지 도착해가며 현재 장소


에 놀 종족이 없음을 확신한 리시타가 살짝 긴장을 푼 순간이었다.


우지끈!!



“꺄악!!”



 리시타의 뒤를 따르던 티이의 발이 꺼지며 티이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거대 거미가 


날뛴 충격으로 목재가 티이를 향해 낙하했다.



“제기랄!!”



 리시타는 재빨리 뛰어들어 티이를 끌어안고 목재로부터 티이를 보호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리시타는 몸으로 목재를 막아냈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리시타의 몸에 전해졌다. 온 


몸을 타고 도는 고통 때문에 순간 아찔하며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들어 잡은 리


시타는 티이의 안전을 살폈다.



“크읍……. 이봐, 무녀! 괜찮아!?”



 다행히 티이의 몸에서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듯 했


다. 리시타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투덜대며 티이를 번쩍 안아 들어올렸다.



“대체, 이 무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위험한 곳에 오겠다고 했던 거야.”



 아무리 수많은 전장과 전투로 단련된 리시타였지만, 그라도 성인 여자 한 명을 양 손에 안은 채로는 자


유롭게 싸울 수 없다. 다행히 계단을 올라 통로를 지날 때 까지는 놀 전사를 마주치지 못했지만….



“후우, 후우, 지금, 나랑, 장난, 하는거냐!!”



 리시타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부정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까마득한 5층 높


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에 처한 상황이 현실임을 부각시켰다. 종탑의 꼭대기로 향하기 위한 통


로. 


 지금까지의 통로와는 다르게 건물 외벽을 타고 지나가야 한다. 거기에 원래부터 없던 것인지, 아니면 


거대 거미에 의해 파괴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난간 역시 없다. 실수로 발이라도 헛딛으면 그 순간 무녀


와 자신의 목숨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다.


 리시타는 어깨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발밑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까는 그렇게도 크게 느껴졌던 발리스


타가 너무나도 작게 느껴진다. 아래에서 아이단 일행을 부축하여 물러나 있는 용병들도 조약돌보다 작


게 보였다. 발 끝에 채인 돌멩이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본 리시타는 저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


을 삼켰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설 수도 없는 상황. 리시타는 이윽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한 걸음씩 조심히 내딛었


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길게 느껴졌고,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중간쯤 갔을까.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에 리시타의 시야는 정면을 향했고, 눈 앞의 존재를 확인한 리시


타의 안색은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메인 스토리 위주로 집필 시작합니다.


부디 재밌게 감상해주시길.


퍼갈때 퍼가더라도 출처 정도는 괜찮잖아?


블로그 : http://blog.naver.com/llbir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