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이비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눈 앞의 상대를 지팡이로 후려치고픈 충동이 일었다.

정말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수많은 마족들을 물리쳐가며 겨우 얻은 재료를 들고,

바쁘다며 거절하는 재봉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 사정하여 손에 넣은 장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마법의 힘을 부여하기 위한 인챈트 스크롤을 얻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다.

돈이 많다면 직접 골드로 사는 방법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비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해가며 모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그게 고작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모두 사라지고 희미한 마력을 머금은 가루만이 남아버렸다.


"…저기, 브린?"

"말씀하시죠."

"원래 인챈트라는 작업이 이렇게 많이 실패하는 건가요…?"

"어쩌겠습니까, 제 실력이 이런 것을. 아니면 잡화점의 늙은이나 로체스트의 자레스에게 찾아가 보시던지요."


 이비의 이마에 잠깐 굵은 핏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남자 ,뻔뻔하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기 그지 없다.

싫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는 줄 아냐!!'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시도를 안해봤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리엘은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댔고, 자레스는 로체스트 마법 길드에 속해있어 개인적인 의뢰는 받지 않는다며

단 칼에 거절당해 버렸다.

그러다보니 부탁할 사람이 브린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인데, 이미 브린은 무려 세 번이나 자신의 장비를

한 줌의 마법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아뇨, 왠지 모르게 그들보다 브린 당신이 더 신뢰가 가니까요.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요. 그럼 이만."


 입에 발린 말을 뱉고 이비는 힘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브린은 그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으로 부수어 버린 저 소녀의 장비는 총 세 벌.

첫 번째 실패때는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어댔다. 

두 번째 실패에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목적지 없는 원성이 담긴 고함을 마구 질러댔다.

그런 소녀도 시간이 지나며 성장했나보다.

하긴, 저 소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용병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큰 실수로 마렉에게 잔뜩 혼나고 난 후 이 곳에서 티이의 부탁으로 자신이 타준 홍차를 마시며,

재미없는 농담도 받아주던 착한 소녀였다.

그러던 소녀가 지금은 마렉, 게렌, 케아라와 어깨를 같이 하는 어엿한 한 조의 조장이 되었다.

실력도, 속도 많이 성장했다고 브린이 홍차를 한 모금 홀쩍이며 생각하는 순간,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브린은 방금 한 생각을 접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저 괴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비.

자신의 실수이지만 역시 소녀는 조금 더 성장할 필요가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브린은 홍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적거렸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네베레스는 늘 그랬듯 아무 말 없이 브린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며칠 전의 브린에 의한 대참사로 인해 조금 의욕이 사라진 이비는 여관 앞 탁상에 앉아 강아지들과 놀고 있었다.

퍼거스의 말로는 검은 질풍 주니어 3세라던가. 물론 전혀 다른, 테오라는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아, 이비!"

"어머. 안녕하세요, 티이. 신전에서 지금 오시는 길인가요?"

"후후, 네. 오늘 날씨가 참 좋아서 신전을 청소하고 오는 참이에요. 참, 브린이 이비를 찾았어요."

"네? 브린이요?"


 티이의 말에 이비는 조금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티이는 그런 이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서 가보세요. 브린은 누군가를 초대할 때 항상 홍차를 대접한답니다."


 이비는 마법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의 퀴퀴한 책 냄새에 달콤한 향이 섞여들어왔다.

브린의 책상은 늘 온갖 문서와 책들로 어지러웠지만 항상 홍차를 두기 위한 테이블만은 깨끗히 정리해두었다.


"왔군요. 홍차가 식기 전에 와서 다행입니다. 식으면 향이 떨어지거든요."

"아,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이비는 테이블에 앉아 브린이 내어 준 홍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처음에 티이의 부탁으로 브린이 대접한 홍차도 맛있었지만, 지금은 맛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어쩌면 브린이 농담삼아 얘기했던, 느는건 홍차맛 뿐이라는건 의외로 농담이 아닐수도 있다고 이비는 생각했다.


"흠, 이비. 다음에 제게 인챈트를 의뢰할 때는 조금 더 양질의 인챈트 스크롤과 장비를 가져오도록 하세요."

"…네?"


 이비는 잠깐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렸다.

이 사람이 지금 홍차를 대접하고 나서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진심으로 자신을 도발하려거나, 혹은 조롱하는 것인가 하고 표정이 조금 굳었다.

브린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인챈트 스크롤의 질과 아이템의 질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릴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그 말을 제게 하는 의도가 뭔가요?"

"말 그대로일 뿐입니다. 다음엔 좀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브린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으로 가더니 옷 한 벌을 꺼내어 올려놨다.

며칠 전 이비가 의뢰한 옷과 같은 물건이었지만 대충 봐도 이비가 의뢰한 물건보다 더 양질이다.

거기다 옷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이 마나의 기운.

바로 자신이 의뢰를 했던 그 인챈트임에 틀림없다.


"이걸 보고 나니 아시겠습니까?"

"네, 너무 잘 알았어요. 그럼 전 이만!"


 이비는 굉장히 기분이 불쾌해졌다.

즉 자신의 노력을 헛고생으로 치부한 것이 아닌가.

일부러 자신을 불러내면서까지 조롱하고 싶었을까.

정말이지 이 남자는 최악이다.


"잠깐! 기다리세요, 이비."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잘 있어…."

"이거, 안가져갑니까?"


 브린의 말에 이비는 더 신경질이 났다.

자신을 제대로 조롱한 주제에 심부름까지? 정말 진심으로 한 대 후려패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가 왜 그 물건을 가져가야 하죠? 또 누군가에게 가져다 주라는 심부름인가요? 그런 심부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아뇨, 당신의 옷입니다. 이비."


 오늘처럼 감정 기복이 심한 날이 있었을까.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이비는 한순간 멍해졌다.

브린이 드디어 리엘을 따라 실성이라도 한 것일까. 지금 뭐라고…?

브린은 옷을 곱게 접더니 이비에게로 들고 와서 자신의 말을 반복했다.


"당신의 옷입니다. 이비. 가져가세요."

"하, 하지만 왜…."

"당신의 의뢰를 세 번이나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저로써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따로 인챈트를 했죠."


 여전히 이비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브린은 옷을 도로 들고 가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뭐, 이비 당신이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비싸게 연습한 셈 치고 버리는 수 밖에요."

"네, 뭐, 네? 버린다고요?"

"제가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딱히 줄 사람도 없고, 팔려고 해도 전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이비는 깜짝 놀라 브린의 손에서 빼앗듯이 옷을 낚아챘다.

그리고 옷을 한 번 펼쳐 보더니, 방금까지의 표정은 어디갔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멋대로 가지고 놀다니, 이 남자는 역시 너무 최악이야!!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브린! 잘 입을게요!!"


 머릿속에 든 생각과는 정 반대로 신이 난 채 문을 나서는 이비를 보며 브린은 알게 모르게 조그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네베레스는 조용히 브린에게 말했다.


"…괜찮은가?"

"괜찮다니? 뭐가 말인가?"

"저 옷, 그리고 인챈트 스크롤. 전에 저 소녀가 가져온 옷과 스크롤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최상위급이었을텐데.

브린 네 돈으로 산 물건이 아닌가?"


 네베레스의 말에 브린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덕분에 지갑이 텅텅 비어버렸어. 당분간은 열심히 일해야겠군."


 하는 말과는 달리 브린의 표정은 전혀 기분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네베레스는 그런 브린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조금 변했군, 너도."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걸."







죄송합니다.

개강한 이후로 도저히...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요즘 마영전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ㅜㅜ

연재하던 스토리 기반 소설은 조만간 재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브린은 1500% 미화된 모습입니다.

실제로는 브린은 개객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