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타는 계속해서 폐허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몇몇 놀 병사를 마주쳤지만, 큰 어려움 없이 


물리칠 수 있었다. 애초에, 종탑에서 당할 뻔했던 것은 누군가를 특정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니. 자신의 몸만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결코 리시타의 실력이 모자라지 않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며 모퉁이를 돌자, 지금까지 봐왔던 놀들과는 조금 생김새가 다른 놀이


리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르르릉…….”



 주위의 놀들과 다르게 몸집이 좀 더 크고, 검은 털을 가지고 있으며 한 쪽 뿐이지만 가죽 재질의 어깨 


보호대를 두르고 있었다. 대장……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녀석들의 행동대장급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놈 같았다. 이미 자신의 수하들이 당했다는 정보를 들었는지 녀석은 리시타를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이빨을 드러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나 역시 너희들 놀 종족 덕분에 모리안 여신을 만날 뻔했단 말이다!”



 리시타는 적대감을 피하지 않고 맞불을 태우며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게 듀얼 소드를 움켜쥐었다. 


어차피 어깨 보호대를 두르고 있더라도 지금까지 상대했던 비무장의 놀들에 비해 조금 더 단단해진 


정도…, 까지 생각하다 리시타는 의문을 품었다. 아니, 아직 그 의문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이상한 것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뭐가 잘못된거지…….’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놀 행동대장이 다른 녀석들의 것보다 커다란 나무 메이스를 


휘두르며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리시타는 여유 있게 피하며 반격을 준비했다.



‘그럼 그렇지. 어차피 놀들의 공격 패턴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



 리시타는 거기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메이스가 자신의 몸통을 노리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리시타는 재빨리 듀얼 소드를 가로로 눕힌 후 교차시켜 메이스를 방어했다. 약간은 불안정한 


자세였기에 공격을 방어하면서 그 충격으로 몸이 살짝 뒤로 튕겨졌다. 막아낸 소드가 웅웅거리며 


떨려대고 충격이 아직도 팔에 남아있는걸 보니 지금까지 상대한 놀보다 더 강한 녀석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공격 패턴도, 힘도 지금까지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다르다. 과연, 행동대장이란 것인가……!’



 하지만 큰 공격 후에는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 리시타는 녀석이 자신을 노리며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켜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을 몸을 살짝 뒤로 날려 피했다. 그 직후 발이 땅에 닿자마자 몸을 


다시 앞으로 살짝 미끄러뜨려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크악!!”



 공격은 적중했다. 리시타의 듀얼 소드는 빈틈이 생긴 놀 행동대장의 옆구리를 두 번 베어 제법 큰 


상처를 남겼다. 놀 행동대장은 데미지 때문에 한손은 메이스를 땅에 짚고, 다른 한손은 허벅지를 짚어


쓰러지지 않도록 몸을 지탱했다. 큰 데미지를 받은 놀 행동대장을 지키기 위해 다른 놀들이 리시타의 


앞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시타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리시타는 앞을 가로막는 놀들의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한 후 놀 행동대장의 몸통을 사선으로 올려베었다.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놀 행동대장의 어깨 보호대를 고정하는 가죽 끈이 끊어졌다.



“크륵…….”



 곧 검은 털의 놀 행동대장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리시타는 듀얼 소드를 쥔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



“네놈들의 대장은 쓰러졌다! 자, 더 와볼테냐!!”



 리시타의 패기 어린 태도와 자신들의 행동대장이 쓰러졌다는 사실에 놀 잔당은 크게 흔들렸고, 곧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버렸다. 리시타는 녀석들이 완전히 물러갔는지 확인한 후 자신이 쓰러뜨린 


행동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때, 리시타의 시선을 잡는 물건이 있었다.



“음? 저건……?”



 그 물건은 다름 아닌 놀 행동대장의 어깨 보호대. 착용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 보니 외피, 즉 


털이 안쪽으로 향하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털이 지금껏 보아온 검은색, 갈색이 아닌 윤기가 


살아있는 황금색이었다. 제대로 가공하면 꽤나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한 리시타는 놀 


행동대장에게서 어깨 보호대를 벗겨낸 후 자신의 배낭에 넣었다.



“이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 전리품 정도는 챙겨야지. 그렇지 않나?”



 대답이 있을 리 없는 놀 행동대장에게 멋대로 말을 던지고 리시타는 발을 돌렸다. 그 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와 리시타의 발치에 꽂혔다. 리시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고 


한참을 경계했지만, 그 화살을 끝으로 더 이상의 공격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다는 것인가……. 두고 보지.”



 리시타는 용병단으로 돌아왔다. 용병단으로 돌아온 리시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묘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렉이었다.



“아, 다녀왔어? 리시타. 미안한데 보고는 조금 있다가 듣기로 할게. 대장님이 깨어나셨다고 하거든. 


방 다녀올게!”



 바쁘게 제 할 말만 하고 쏜살같이 나가버린 마렉. 리시타는 용병단 안에 남아있던 케아라와 함께 


멍하니 마렉이 나간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병단 내에 흐르는 적막. 케아라는 어색하게 흐르는 


공기를 떨쳐내려는 듯 말을 걸었다.



“아, 하하……, 뻘쭘하네. 그치?”



 그리고는 다시 벌컥 열리는 용병단의 문. 주인공은 방금 나갔던 마렉이었다.



“왜 이렇게 금방 왔어? 대장님은?”


“내가 갔을 때는 주무시고 계시더라고. 조금만 더 쉬시면 괜찮아지실거래. 옷이랑 이것저것 챙겨서 


조금 있다가 다시 갈거야.”


“다행이다…….”



 마렉의 말에 케아라는 안도한 듯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다. 마렉 역시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그러게말야. 아마 대장님이 돌아오시면 용병단도 제대로 돌아갈거야. 자, 그럼 리시타. 아까 받지 


못했던 보고를 받아보기로 할까. 북쪽 폐허는 어땠어?”


“몇몇 놀 무리와 함께 검은 털을 가진 녀석과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녀석들의 행동대장으로 


보였는데, 녀석을 쓰러뜨리자 다른 졸개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기 전, 절 노린 것으로 


보이는 화살이 한 발 날아왔습니다.”



 리시타의 보고에 헬름 속 마렉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흠……, 놀과 전투를 벌였다? 점점 어려워지는군. 우리 용병단 훈련장이 북쪽 폐허에 있는 건 알고 


있지? 그 말은, 우리들과 놀 종족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는거야. 그냥 서로 신경을 안쓰는 관계 


정도가 맞겠군. 그런데 정찰을 나가 전투가 있었다……. 큰일이군, 내 권한을 넘어선 일이야.”


“……그렇게 일이 심각해진 겁니까?”



 리시타는 뜨끔하며 물었다. 분명, 녀석들은 선제공격을 취하지 않았다. 먼저 공격한건 리시타 자신. 


어쩌면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리시타는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큰일이라도 


나겠어, 라며 자기 스스로 안도하고 싶었지만,



“잘못하면 놀 종족, 아니 마족들과의 전면전까지 이어질 수도 있어.”



 라는 마렉의 말에 리시타의 표정은 순식간에 돌이라도 씹은듯한 표정으로 어둡게 바뀌었다. 리시타의


표정을 보고 마렉은 안심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리시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에 해당되니까 말야. 일단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대장님이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려보자. 수고했어, 리시타. 오늘은 이만 여관에 가서 


쉬는게 좋겠다.”


“그래, 전투도 치뤘다고 했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럼 내일보자!”



 자신을 배웅해주는 마렉과 케아라에게 목례로 답하고, 리시타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티이는 신전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에른와스 역시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여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시타는 함정 


탓인지, 아니면 꽤 큰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지 급피로해짐을 느꼈다. 어쨌든 


빨리 침대에 몸을 맡기고 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걸 느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장비를 풀어놓은 리시타의 몸은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맡겨지고, 의문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대로 곤히 잠들고 말았다.






눈피부 떡밥 투척!!


전 이만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