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맑게 빛나는 어느 여름날의 오후
여행자 차림을한 사람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챙이 넓은 가죽모자를 눌러쓰고 울퉁불퉁한 나무지팡이를 찬찬히 짚어가며 걷는 모양새가 한가로워 보여
주변의 느긋한 분위기와 잘어울린다.



옅은 갈색머리는 어깨선 정도에서 단정하게 정리 되어 있었고
고개 너머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건강한 녹음의 빛을 띄고 있다.
얼굴선이 고운것으로 보아 미녀같기도 했지만
앞섶이 납작한것까지 보자면 미소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외모였다.


하지만 생김새와는 달리 그는 상당히 노련한 여행자인 모양이었다.
그가 지나온 길을 따라 가장 가까운 마을이 반나절 거리에 있으니,
왠종일 쉬지않고 걸어 왔으련만
얼굴에선 약간의 피로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여름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채 가신것도 아닌 지금,
산길을 타고 오르고 있으면서도 얼굴에선 땀한방울마저 비치지 않는다.


덤덤한 표정 그대로 평생 앞으로 걸어나갈것 같이 보이던 그의 얼굴에서 이채가 서린것은,
산고개를 막 넘어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산길 옆, 무성한 수풀사이로 향한 그의 시선에는 딱히 특별하다고 할만한것은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가 있다는것을 확신하듯 발길을 돌려 길을 벗어 나기 시작했다.
수풀과 나뭇가지를 해치며 채 열걸음도 걷기 전에 그는 거대한 가시나무 군락지를 맞딱뜨렸다.
빽빽하게 자라난 그것들은 마치 가시로된 벽과 같아서 더이상 앞으로 나갈수 없다는듯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서는 것도 저어될만큼 흉측한 가시들이 잔뜩 돋아난 그곳에서 왠 팔하나가 비죽히 튀어나와있었다.


'뭐지?'


기가 약한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질겁을할만한 모습일것이다.
저런곳에 파묻혀 있는게 인간이라면 이미 몸이 넝마가 되었을테니까.
하지만 여행자는 별거 아니라는양 그 손을 척 하고 잡더니 그대로 힘차게 당겼다. 신경줄이 보통 굵은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조금 놀란 얼굴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잡아당긴 손바닥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팔뚝과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것이다.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끔찍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의 팔다리가 아니었으니까
금속빛을 띈 표면, 곳곳의 이음매에 보이는 나사머리들, 바로 인간의 모습을 본딴
상당히 정교한 모양새로 만들어진 기계였던것이다.


뽑아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행자가 서쪽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늘의 여행은 이쯤해야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얼마되지 않는 짐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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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들자 보인것은 가죽 장화였다.
마감이 잘된 고급품. 먼지가 좀 앉아있긴 했지만 닦아내면 금새 새것처럼 될것같았다.
그 장화 너머로 모닥불이 보였다.
작은 공만한 크기로 피어오르는 불길은 미약한 빛을 뿌리며 주위 수걸음가량의 사물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가시덤불에서 산길로 옮겨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볼을 붙인채 엎어진 상태였다.


내가 정신을 차린것을 알아차린건지 장화를 신은 사람은 모닥불 너머로 건너가더니 풀썩 주저 앉았다.
미소를 지은건지 무표정한건지 모호한 표정을 한 그자는 불쏘시개를 집어들고서 모닥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누구시죠?"
"루시라고 합니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이쪽이 기억하기 편할꺼예요."


그것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의 이름을 물어 볼것이라 여겼지만 그는 물음에 답하는것 이상의 다른 말을 할 기미가 없었다.


"오리아나라고 합니다."


내가 이름을 밝히자 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뒤 다시 말이 없었다.
나는 자게를 고쳐 앉은뒤 등을 더듬어보았다. 태엽키가 돌아가고 있었다. 등에 쇠막대가 꽂힌자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인간을 나는 처음 보았다.


"누구시죠?"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는듯 하던 그가 말했다.


"혹시 머리 다치셨습니까?"


비웃는 기색은 보이질 않으니 그저 순수히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바보가된듯한 느낌을 떨칠수 없었다.


"아니오. 당신의 정체를 묻고 있는 거예요."
"여행자입니다."


당연한것을 말하듯 그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더더욱 내가 바보가 된것같았다.


"제가 무섭지 않나요?"
"안 무서워요."
"전 말하는 기계인데요?"
"그렇습니까?"
"이런 무기도 몸속에 품고 있는데요?"
"그렇군요."
"등에 태엽 키가 꽂혀있는데요?"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더군요.
"전 심장이 없어요."
"뇌는 있더군요."


몸속 어딘가가 덜컥 거린듯 했다. 놀란다라는 느낌이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절 해체 해보셨나요?"
"아니오."
"그럼 뇌가 있는건 어떻게 아셨죠?"
"그냥요."


난 완전히 바보가 되었다. 저자의 되는대로 지껄이는 이야기에 놀아나버렸다. 애초에 내 머릿속 역시 금속으로 가득차있다.


"당신은 뭘하는 사람입니까?"
"여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만들고 싶은게 있는데 재료가 없어서 찾으러 다니는 중입니다."
"무엇을 만들지요?"
"동면장치입니다."
"왜 그걸 만들려 하지요?"
"동면하려구요."


난 더이상 묻는것을 포기하였다. 제대로된 대답을 들을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가시덤불속에 있었습니까?"


지금까지의 대화중 그가 처음으로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묻는것 이외엔 입을 다물고 있을줄 알았는데 예상외였다.


"심장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왜지요?"
"심장이 없으니까요."


할말이 막힌 모양인지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몸의 어딘가가 덜컥였다. 이것이 아마 인간들이 말하는 통쾌함이라는 것일 것이다. 이쯤이면 그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것인지 인지 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세요. 당신은 누구죠?"
"의심하고 있군요?"
"예"
"어떻게 하면 의심을 풀꺼죠?"
"본명을 말하세요."
"2057846319번"
"...개체 번호입니까?"
"예."
"당신도 기계입니까?"
"아니오."
"인간은 번호를 이름으로 갖지 않습니다. 기계나 사물이 그런 번호로 불리지요."
"어째서 인간은 번호를 이름으로 갖지 않지요?"
"인간의 부모는 자식의 이름에도 애정을 담아 붙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닥불을 들쑤시는 불쏘시개의 움직임에따라 작은 빛 입자들이 튀어 올랐다. 이내 생각이 정리된것인지 그가 말했다.


"당신은 아까 스스로를 기계라 하셧지요?"
"예."
"그건 거짓말이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에겐 오리아나라는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번호가 아니라."


그말에 나는 가슴한켠이 또다시 덜컥 거렸다. 하지만 이번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인간들은 아마 이 감정을 분노라고 부를것이다.


"그 이름은 제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어떻든 억양은 변치 않는다. 표정또한 변하지 않는다. 가슴이든 얼굴이든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분노라는 감정역시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언가의 영향이다. 말이 많아지는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이다.


"오리아나라는 이름은 절 창조하신분의 딸이 가지고 있던것입니다. 그 여자아니는 춤을 잘추었고 모험을 동경했다고 합니다. 제가 춤을 추기 좋은 몸을 가진것도, 모험을 위한 호신용 무기를 가진것도 그런 딸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 입니다. 따라서 오리아나라는 이름은 제것이 아닙니다."


자꾸만 어딘가가 덜컥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이 되었든 그것은 내것이 아니다. 오리아나 라는 여자아이의 마음을 닮은, 오리아나를 위한 감정이다. 이것은 내가 느끼는것이 아니라 오리아나라는 소녀가 느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겐 이름이 없으며 제가 기계라는 사실을 부정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다시 입을 다물고선 잠시 멈추었던 불쏘시개를 다시 움직였다. 그러다 곁에 쌓여있던 나뭇가지 몇개를 불에 던져넣었다. 머리위에 날벼락이라도 맞은것마냥 불의 기세가 크게 꺾인다. 하지만 이내 지나지 않아 불이 옮겨붙으며 본래의 화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만히 불을 지켜보고 있자니 덜컥거림이 수그러들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는 그런 나를 흘낏 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심장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지요."
"예"
"그 심장을 찾으러 가는것도 창조자께서 내린 명령입니까?"
"아니오."
"아니면 명령에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하고 실행한 일입니까?"
"아니오."


그는 나의 대답에 무엇을 느낀건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는 그 이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필요를 느끼지 못해 모닥불만 계속 바라보았다. 불꽃은 때때로 빛의 입자를 토해내었다. 그것이 마치 어둠속을 수놓는것같아, '오리아나 라고 불린 소녀'가 이것을 봣다면 틀림없이 아름답다고 여겼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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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기 전에 습작겸 연습겸 하루에 하나,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편을 올려볼까 생각중입니당.


하지만 의지박약인 나는 안될꺼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