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사리아


 잭스가 쓰러졌다. 


 베사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이 가슴 속에서 치달아 올랐지만, 베사리아는 울며 주저앉는 대신에 더욱 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아직 그는 죽은게 아니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긴 했지만, 이곳의 일을 처리하고 회랑으로 사람들을 보낸다는 선택지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지를 허투루 돌리지 않기 위해선, 이곳에서의 일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야만 했다. 

  

 “…콜록.”


 이제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오지 않는 쪽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베사리아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애써  만든 술식 위에 피가 튀지 않도록 했다. 이제 곧 완성될 터였다. 그녀는 눈을 들어 소환실 중앙에서 기괴하게 웅웅거리고 있는 예의 그 수정구를 노려봤다. 시커멓게 변색된 수정구 위로 붉은 마법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예의 그 마력 폭탄이었다. 


 “정말 이런 일은 좀 대충 하란 말이에요, 멘드레이크으으으으…….”


 베사리아는 이를 득득 갈며 볼멘소리를 했다. 참으로 빌어먹게도 멘드레이크에게 걸린 세뇌가 완벽했던 모양인지 그는 이 폭탄에 (그의 성격답게 꽉 막힌)이중 삼중의 장치를 해놨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폭 명령으로만 터지는 폭탄인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멘드레이크가 기폭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내부에 걸린 시간 가속 마법으로 인해 자동으로 터지게 만들어진 폭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치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나무 블록처럼 주문식 자체를 엄청나게 불안정하게 만들어놔서 지식이 없는 사람이 건드리기라도 했다간 그 즉시 폭발하게끔 되어있었기에 베사리아는 작업하는 내내 살얼음을 위를 걷는 심정이었다. 잭스의 말을 들어서 서로의 목적지를 바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도 오지 못했으리라.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베사리아는 신의 한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완벽하게 커팅한 정십이면체의 다이아몬드를 제자리에 놓고 마법진을 마저 그리자, 그녀는 주문을 시동하기 전 마지막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이다…이곳을 통째로 얼려버릴 마법이. 베사리아의 눈에 소환실의 전경이 들어왔다. 


 “비장의 보석들을 쓸어 담아 오길 잘 했네요. 뭐, 이 정도면 요긴하게 쓰고도 남은거지…….”


 그것은 구리 반지에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은 것처럼 이질적이면서도 멋들어진 광경이었다. 중력을 거스른 채 소환실 이곳저곳에 둥둥 떠 있는 보석 주위로 마법 문자들이 위성처럼 천천히 돌고 있었다. 멘드레이크가 흔히들 생각하는 정통 마법의 대가라면 베사리아는 광물 마법, 그 중에서도 보석 마법계의 대가였다. 그녀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상임의원이란 자리를 딱지치기로 딴 위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학명은커녕 발표조차 하지 않은 이 새로운 마법진의 형태는 베사리아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신개념 마법진이었다. 정확히는, 보석 자체만 따진다면 마법진의 핵에 해당했다.


 “엘 나스 카…….” 


 베사리아가 고대 룬(Rune) 언어로 된 주문을 읊조리며 다이아몬드에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다이아몬드 열두 개의 면에서 열두 줄기의 가느다란 마력의 빛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환실 곳곳에 떠 있는 보석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보석들에 튕겨 다른 보석으로, 또 다른 보석으로 빛은 쉴 새 없이 퍼져나가다가, 마침내 맨 처음 빛줄기가 시작되었던 다이아몬드로 돌아오면서 그 끝을 맺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소환실 내부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놀랍게도 소환실 안에는 빛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최소 열 명의 인원이 일주일 이상 끙끙거리며 매달려야 할 대규모 마법의 술식을 단 10여 초 만에 구성해 낸 것이다! 베사리아가 괜히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게 아니었다. 주문이 계속될수록 보석들이 마치 타오르듯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고 보석 주위의 마법 문자들은 점점 더 빨리 회전해 거의 빛으로 된 고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마법의 거의 실현 직전이라는 뜻이었기에, 그녀는 서둘러 시간 동결의 시작 좌표를 소환실 중심에 있는 수정구로 고정시키고 소환실 밖으로 빠져나가…….


 쿵!


 …지 못했다. 뭔가가 소환실의 단단한 석문을 세게 쳤다. 소환실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베사리아는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놀라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보석의 위치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보석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마력선의 굴절이 빗나갈 터였고 한 군데가 어긋나면 죄다 어긋날 터였다. 재수 없이 빗나간 마력선이 폭탄 주위의 마법진에 닿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끝장이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마법진이 헝클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여분의 시간이나 보석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베사리아는 충격의 원인을 확인해 볼 엄두도 못낸 채 마법진을 구성하는 보석들의 각도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충격의 원흉은 구태여 그녀가 확인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했다.


 쿵!


 또 한 번 충격이 문을 강타했다. 이번엔 종전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석문에 금이 가자 베사리아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 부서지겠지? 저거 엄청 단단하게 만든 문…….”


 콰쾅!


 인데, 라고 베사리아는 말을 채 끝맺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크 세 번으로 문이 작살났기 때문이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어둠 사이로 뭔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자 베사리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기이하게 윙 소리를 내며 소환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베사리아의 눈동자가 의외라는 듯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베사리아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조각상이 여기 있다는 점 따위가 아니었다.


 ‘뭐야, 방어형 골렘……? 외적 침입 방지용 결계를 가동시킬 때나 작동할 물건이 왜…….’


 학회가 괜히 돈이 썩어 넘쳐서 저런 조각상을 지천에 세워둔 것이 아니었다. 저 조각상의 정체는 바로 외적 침입 방지용 자동 보행 골렘. 크기도 2미터에 달하거니와 겉은 대리석으로 감쌌지만 속은 마강(魔鋼) 처리를 한 강철로 만든 물건이라 어지간한 보병 한 부대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나름의 결전 병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병기라 전시 상황이 아닌 이상 절대 기동이 안 되도록 설정해놨을 터였다. 그런데 왜…….


 [생명체 확인. 스캔 중.]


 근육질의 청년 형상을 한 조각상에서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오자 베사리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고장이나 다른 이유로 날뛰는 물건이었음 정말 큰일 날 뻔 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결계를 가동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잠깐만.”

 [확인 완료. 전쟁학회, 형평…지직…, 자료 소거, 베사리아 콜민예.]


 베사리아의 얼굴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료 소거라니? 뭔가 이상했다. 외적 침입 방지용 결계는 전시에나 쓸 법한 결계였다. 그 정도 결계라면 상임의원급 소환사의 직접 명령 없이는 가동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짝에 쓸모도 없이 널브러져 있을 헤이완 렐리바쉬를 제외하면 이 결계를 작동시킬만한 권한을 인물은 멘드레이크밖에 없었다. 


 그런데 멘드레이크는 세뇌된 상태 아닌가.


 [명령 검색 중…검색 완료. 명령자, 형평성의 대의회 상임의원, 키얼스타 멘드레이크. 자신이 쓰러진다면 2구역 제 13 소환실의 수정구를 파괴해라.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행위는 전쟁학회에 대한 무력 침공입니다. 두 손을 들고 물러나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크흑! 일할 때도 이 정도 투철한 모습은 보여주지도 않는 주제에……!” 베사리아는 이를 득득 갈며 외쳤다. “코드 304! 명령권자와…콜록, 으……. 동급의 위치에 있는 상임의원 베사리아 콜민예가 명한다! 그것은 잘못된 명령이다. 지금 즉시 행동을 멈추고 복귀하도록!”

 [코드 304. 명령자의 신원 확인, 확인 중……소환…지직, 자료 소거 상태, 신원 불명, 베사리아 콜민예. 코드 001에 따라 명령을 수행합니다. 당신의 행위는…….]

 “코드 001? 그런 넘버링 따위 한 적 없어!”

 [코드 001, 명령권자 키얼스타 멘드레이크의 명령을 최우선시 할 것. 코드 입력자 키얼스타 멘드레이크, 입력 시기, 6시간 11분 38초 전…….]

 “아으으, 멘드레이크으으으으으…! 좀 봐달라구요, 나 지금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세상에 자기가 쓰러졌을 때를 대비한 최후의 수단까지 생각해뒀다니 베사리아 입장에선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베사리아는 골렘에게 등을 돌린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흔들리는 소환실 내부의 움직임에 맞춰 진을 이루는 보석들의 각도를 실시간으로 변경하고 있었으니까. 극도로 세밀한 작업이었다. 고열로 뇌가 타버릴 것만 같은 두통이 밀려오는 판국에, 온전한 몸상태로도 힘든 세밀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움직일 수 있다는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 손이라도 쓸 수 있다면 원격으로 명령 코드를 바꾸기라도 할텐데, 지금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드 001에 따라 명령 수행. 2구역 제 13 소환실의 수정구 파괴 명령을 실시합니다.]

 “안돼!”


 경악하는 베사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렘은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 팔을 쑥 하고 예리한 송곳처럼 변형시켰다. 골렘이 몸을 굽히기까지의 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느껴지는 그녀였다. 저것의 출력을 생각하면 5초도 안 되어 수정구에 다다를 판이었다. 생각해라. 베사리아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잭스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 준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법 발동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정확히 7초. 하지만 골렘의 칼날이 더 빠를 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 심지어 골렘을 등진 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1초, 골렘이 왼쪽 발을 내딛었다. 송곳처럼 변한 한쪽 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2초, 골렘이 오른쪽 발을 내딛었다. 도약하려는 모양이었다. 골렘의 동체가 공중에 떴다.

 3초, 베사리아는 결심했다.


 그리고 4초.


 푸욱


 “…….”


 베사리아는 자기 배를 비집고 쑥 솟아있는 골렘의 송곳(팔)을 볼 수 있었다. 발이 제멋대로 풀려 쓰러질 판이었지만 꿰뚫린 덕택에 쓰러지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사리아의 행위로 2초라는 귀중한 시간을 번 마법진은 새겨진 주문을 시행하며 안부터 차근차근 시간을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콜록.”


 시뻘건 피에 살점 덩어리가 섞여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방패로 쓸만한 건 이 몸뚱이 말고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궈진 것처럼 미친 듯이 회전하던 수정구의 마법진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젤라틴 용액에 넣은 것처럼 느려지던 수정구의 마법진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딱 하고 멈췄다. 성공이었다. 시간이 동결되고 있었다. 한 번 발동된 마법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정한 영역은 정확히 이 소환실 전체였다. 


 아직, 여기서, 멈춰서선 안 되는데.


 베사리아는 다가오는 시간 동결의 여파를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겨우 급한 불을 끈 참이었고, 진짜 문제는 뒤처리였다. 지금 여기서 그녀마저 무너지면 누가 그 지휘를 하겠는가? 하지만 이성과 달리 본능은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팔다리에서 힘이 빠졌고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운 것처럼 자꾸 감겼다. 시간 동결 속에 빠져드는게 빠른지 죽는게 더 빠른지 베사리아는 알 수 없었다. 뻗은 손에 차가운 감촉이 들었다. 어느새 동결의 여파는 그녀의 팔목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베사리아와 그녀를 덮친 골렘까지 덮어버리며 그들을 정지된 시간 속에 가둬버렸다. 떨어지던 핏방울도, 쓰라린 아픔도 모두 멈춰버렸다.


 바라건대 신이 있다면 부디 기적을 베풀어주시길.


 그게 베사리아가 정지된 시간에 잠기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소나



 소나는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 주변에서 그녀가 화를 낼 정도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소나 자신도 화를 내봤자 주변 사람들만 안절부절 못하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집안의 모두가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약간 소나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끔 정도가 지나쳐 뭔가 속에서 욱 달아오르는 적이 몇 번 있었던 소나였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잘 다독이며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이성이 분노를 제압하는 데 실패한 모양이었다.  


 쨍그랑!


 “꺅!”


 비싼 유리 세공품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확 수그린 소나의 ‘전속 하녀’ 조이 켐벨의 머리 위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후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세공품을 던진 장본인은 소나였다. 방으로 간신히 데리고 오는 데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조이는 소나의 무시무시한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하필 하녀장이 그녀에게 소나에 대한 걸 일임하고선 아래층으로 서둘러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가씨, 잠깐만…꺅!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가씨!”


 만약 소나에게 목소리가 있었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조이를 향해 당장 나가라고 방이 떠나가라 소리쳤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목소리가 없었고, 그래서 남들처럼 화가 났을 때 고함은커녕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녀를 더 난폭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조이는 결국 영문도 모른 채 소나가 던진 봉제 인형에 맞고 나서야 처량하게 울며 나갔다. 나갔다 해도 지엄하신 마님과 하녀장님의 분부가 분부인지라 문 바로 밖에서 훌쩍이고 있었지만. 딴에야 소리 죽여 훌쩍인다 해도 소나의 귀에 그게 안 들릴 리가 없었다. 소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선 몸을 말았다. 지독한 자괴감이 그녀의 심장을 마구 쑤시고 있었다.


 조이에게 미안했다. 당연히 괜한 화풀이일 뿐이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터질 듯한 감정을 풀어버리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소나는 베개를 쥐어뜯으며 자괴감과 후회의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자기도 왜 자기가 이러는지 몰랐다. 분명 화가 난 것은 맞는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마치 상처도 없는데 욱신거리는 것만 같은 답답한 느낌이 소나를 괴롭혔다.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소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잭스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와의 연결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심장 소리가,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가 어지러이 섞여 그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너무나 연약해서,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촛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상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감정의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불안감과 미안함. 그 들려오는 소리를 소나는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더 안타깝고, 더 화가 났다. 왜냐하면 들려오는 감정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따윈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을 걱정한다. 죽기 싫어한다. 그건 사람으로서, 아니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을 가진 개체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잭스는 달랐다.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건 책임감이나 그런 부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뭐랄까 좀 더 깊고 어두운 부분에서 ‘어긋나’있는 것만 같았다.  


 협곡에서의 일을 돌아봐도 그랬다. 그는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항상 최전선, 가장 위험한 곳에 서있었다. 소나는 그가 싸우는 모습을 잠깐이긴 하지만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게 그가 겪었던 삶일 터였다. 전쟁터에서의 삶. 한 끝만 잘못하면 목숨이 틀어지는,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그런 장소. 소나는 전술적 지식이라든지 그런 건 하나도 몰랐지만, 그녀에게는 마치 그가 죽을 자리를 찾는 사자처럼 보였다. 살기 위해 싸우는게 아니라 죽기 위해 싸우는 것만 같았다. 싸우다 죽어버리면 ‘그래,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군.’ 하며 담담하게 죽을 것만 같았다. 그게 어긋난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소나는 동정했고, 싫어했고, 그리고……. 


 그리고 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나는 저도 모르게 양 볼에 손을 갖다 대었다. 깜짝 놀랄 만큼 뜨거웠다. 도대체 가슴 속에서 고동치는 이 감정은 뭘까? 소나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엄밀히 따져본다면 잭스라는 남성과는 요 며칠 이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서 고생을 같이 한 것일 뿐, 그 이전에는 협곡 내부에서 만나는 걸 제외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어릴 때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동경도 겨우 그것으로 그쳤을 뿐 지금에 와서 대단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가 신경 쓰이는 걸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좋은 싫든 그에 대한 생각만 가슴 속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상냥하게 자신을 감싸던 거친 손을 떠올리면 가슴이 사르르 따스해졌고 계약의 보수라는 걸 명목으로 그녀에게 챔피언 탈퇴를 요구했던 걸 떠올리면 분통이 터졌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다가간 자였다.


 귀를 막아도 소나는 상대방의 감정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몸짓, 표정 따위보다도 그 상대의 내면을 훨씬 더 드러내 보였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억지로 봐야 하는 소나에게 그것은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했다. 하지만 그만은 달랐다. 잭스만은 달랐다. 그의 소리는 메마른 황무지를 연상하게 하면서도 맑고 고요한 호수를 연상하게 했다. 어쩔 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서 소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의 내면은 거칠면서도 이질적이었고, 난폭하면서도 슬펐고, 상처투성이면서도…아름다웠다. 


 그래, 아름다웠다. 아름다웠기에 동경하는 것이었다.  


 ‘만나고 싶어, 그를…….’


 소나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생각했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생각의 종착지는 그것뿐이었다. 만나고 싶었다. 구하고 싶었다. 이대로 그가 죽게 놔둘 수 없었다. 그의 목숨을 다 타버린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었고, 지금 그걸 아는 사람은 학회 바깥에선 오직 소나밖에 없었다. 신이 있다면 신에게 제물이라도 바치고 싶었고 악마가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바치고 싶었다. 지금 당장 그에게 갈 수만 있다면.


 [정말?]

 ‘……?’


 귓가에서 속삭이는 소리일까, 아니면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일까. 상냥했지만 날이 선 듯 서늘한 그 목소리에 소나는 깜짝 놀라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섰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특이한 음색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못 들을 수 있겠는가.


 [여기야, 소나. 어딜 보고 있는거야?]


 어린아이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라고 했지만, 소리에 방위는 없었다. 소나는 잔뜩 긴장했다. 어쩌면 협곡 내에 있던 그 수상한 무리와 한패인지도 몰랐다. 조이를 불러야할까? 소나가 탁자 위에 있는 호출용 핸드벨에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 다가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


 쿠당탕!


 인기척 따윈 없었는데. 소나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대로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하하하…이쪽이라니까, 정말. 네 침대 옆을 보라고. 바로 옆에 있는데 어떻게 모르는거야?]


 예의 그 목소리가 킥킥거리며 소나를 부르자 소나는 가슴에 얼음덩어리라도 들어온 듯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침대 옆엔 그녀의 반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에뜨왈이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 일어나 에뜨왈이 있는 상자를 바라보는 소나는 그 자리에서 훨씬 더 굳어버리고 말았다. 에뜨왈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말 늘 나에게 말을 걸어줬으면서 뭘 그렇게 놀래?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준 것뿐이야.]


 에뜨왈 위에, 조그마한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소나가 늘 입는 드레스와 비슷했고 머리카락도 그녀와 똑같이 청록빛 머리에 끝 부분이 은은한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머리는 목 언저리에 닿을락말락 짧았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 외모의 아이였다. 이질감이라고 한다면 아이의 몸이 약간 빛난다는 것과, 그 나이 또래가 지을 수 없는…마치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이와 소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반가워, 소나.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모습을 보아하니 넌 잊어버린 것 같지만 말이야.]

 ‘…누구?’


 소나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다가 아이가 어깨를 으쓱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인가? 


 [그럼 들리고말고. 어휴, 할 수 없지. 그럼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해볼까? 도대체 난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에뜨왈 위에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섰다는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아이는 마치 풍선이라도 된 것 마냥 부드럽게 둥 떠서 소나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거의 코끝이 닿을 정도였다.


 [네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렇게 ‘나왔어’, 소나.]


 아이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서늘했다. 마치 상냥한 척 가장하며 목덜미에 칼을 가져다 대는 것 같은 그 느낌에 소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에뜨왈이야.]


 그런 소나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아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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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어-예! 21화! 이 맘에 안드는 부분을 재탄생시키다니 기분이 굉장히 좋다. 음 아주 조쏘


1. 베사리아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편입니다.


2. 원래 어제 올릴라 노력했는데 안되더라고. 새해 선물입니다.


3. .....그나저나 대체 언제 시즌1 끝내냐. 2년 넘었는데 허허


4. 허허헣허허허ㅓㅎ허ㅓ허헣허허허 빨리 끝내버려야 시즌2를 쓰는데 허허허허헣


5. 그래도 한발짝씩 계속 나가는거 보니 뿌듯하다


6. 재밌게 봐주시고 추천 댓글 감사 이번편 나름 꽤 공들였음...


7. 덧붙여서 소나 편에도 좀 개작이 있었으니 재밌게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