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팬픽물 중 소설작품입니다.

내용전개에 따라 기존의 롤 세계관이 왜곡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나

글쓴이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오카이의 주먹은 엘리스의 싸움을 재개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순간이었지만 엘리스의 눈에 담겨있던 빛들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에 생기가 돌아왔을때는 붉은 눈동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깨끗한 흰자와 홍채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챔피언으로서 준 기회도 얻지 못했다 엘리스."
"..."
 방금 전에 맞은 일격의 영향으로 엘리스는 바닥에 쓰러진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뚜렷한 동작없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것이 바라본다는 표현이 부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스는 자신의 기분이 껄끄러울 정도의 불쾌함이 있다는걸 알고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결국 자신이 바랐던 것은 얻지도 못했다. 안면근육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저녁하늘의 광경은 더럽게 깨끗하다는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끝이다. 다시 시작해라 거미 여왕."
"하."
 온몸의 힘이 빠져서 말을 아껴야 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엘리스는 짧은 한마디의 말을 꺼냈다. 그 말은 상황에 전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 감탄사였다.

 

 엘리스는 힘없이,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의 웃음소리를 들어달라는듯이 오랫동안 웃기 시작했다. 마오카이는 그 웃음소리에 연연하지 않고 산을 내려갔다.

 그러면 저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작아질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웃음소리는 그와 거미 여왕의 간격에 상관없이 같은 음량을 유지하는 것이다. 떡갈나무는 더이상 참을수 없다는듯 주먹을 쥔 채 다시 자기가 걸어온길을 찾아갔다. 전장에서 들어본 엘리스의 목소리는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형식이었지만, 지금 그녀가 내지르는 웃음소리는 전과 같은 느낌을 주지 않으며 소음으로 여겨도 무방했다.

 마오카이의 시선에 쓰러져있는 챔피언이 들어오자, 그는 망설임 없이 소음의 원인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 두꺼운 왼손으로 엘리스의 잘록한 허리를 잡고 앞으로 내던졌다. 내던져진 사람은 어떠한 힘도 곁들이지 않은 채 뒤로 굴러가다가 나무에 뒷통수를 찧은 뒤 고개를 숙였다. 노출도가 높은 복장에 나뭇가지와 흙이 어지럽게 상처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침묵은 유지된듯 했다.

"하...하하하하!"

 그러나 실성한듯이 웃어제끼는듯한 목소리를 다시 듣자, 마오카이는 그녀가 주저앉은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마오카이는 다시 엘리스의 허리를 쥐어잡고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뭐가 그리 우습나?"
 그 질문을 무성의하게 넘기는듯 엘리스는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마오카이의 절제된듯한 분노가 엘리스의 몸을 나무로 밀어박았다. 통증은 감출 수 없었는지 엘리스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고, 웃음소리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 소움속에 네가 말하려는게 하나 있겠지. 단답형으로 말해라."
"웃기지 않아?"
 미묘한 장난기가 느껴졌다. 단답형으로 말했고 그녀는 나름대로 표현하고픈 심정을 드러냈으나 한문장으로 끝낼수 없는 문장이었다. 마오카이는 어쩔수 없이 다음 대화에 걸맞는 말을 골라냈다.

"뭐냐."
"뭐라고 할까, 그림자 군도의 기운을 쓰면서까지 모든걸 걸었는데도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내 처지가 좀 우스워서."
"거기서부터 문제다 엘리스. 남들과 얘기하려는 의사를 몸싸움으로 표현하나? 약자가 오히려 싸움을 걸어오는건 흔한 패턴이다. 거기서부터 넌 자기의 나약함에 굴복한거다."

"그래, 그렇지. 현재 내 처지가 좋지 않다는건 나도 알아. 그래서 그런거야. 절박함을 느끼지도 않았다면, 너에게 오지도 않았겠지."
"절박? 너는 상대방에게 어떤 예의를 갖췄기에 그런 단어를 오용하는거지? 네 주변사람들은 모두 부잣집 자식이고 행복해서 근심걱정없이 살아가는줄 아나? 이봐, 다른 사람들은 태평하고 할짓이 없어서 네딴년의 사정따위를 들어주는게 아니란 말이다! 자기 먹고살기에도 벅차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힘이 되어주기위해 기꺼이 도와주는거라고! 뭐? 기억상실? 파탄난 삶? 그게 너에게만 일어난 가혹한 처지라고 착각하지 마라. 네가 모를뿐, 그딴 처지는 지금 지구상 어딘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진 고난의 유형이라는걸 몰랐나?"

 마오카이의 말은 정확했다. 그것은 동시에 엘리스의 생각을 더 입체적으로 발전시켜주는 열쇠가 되었다.

'태평하고 할 짓이 없어서... 내 사정을 들어주는게 아니다?'

 

 엘리스는 지금껏 단 한번도 남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실에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왜 그런가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

 원래 자신에게 있어서 그런건 관심사 밖? 신에게 조종받으면서 생겼거나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생기는 안좋은 습관? 챔피언으로서 가진 자부심? 아니면... 힘들어서 남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여기와서 이유를 찾는건 무의미한 일이야. 나는 지금 핑계를 댈 근거를 만들고싶은 것일지도 몰라.'

 이 마당까지 와서 핑계를 둘 이유는 없었다. 사실 그녀가 마오카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단 하나. 전쟁 학회에 있는 도서관 자료시에서 그를 '그림자 군도의 유일한 선역'이라고 평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오카이가 했던 말을 종합해보면...

 엘리스는 마오카이가 자신을 도와주는게 가장 호의적인 챔피언일거라고 '만만하게'여겨서 그를 찾아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네녀석이 바란건 결국 동료가 아닌 '용병'이었군. 안그런가?'

 원하지 않은 타이밍에 떠오르는 마오카이의 말은 엘리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는 말할수 있다. 마오카이에게 접근해서 '대화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이 사태를 수습할수 없었기에 마오카이의 손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마저 그녀의 편이 아닌것 같다.

"하나만 물어보자, 나와 나의 관계는 같은 그림자 군도소속챔피언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왜 나를 찾아온거지?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그림자 군도의 선역'이라 평해서 온건가?"
 소환사의 재판당시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자문자답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친구만들기는 처음부터 잘못된거였군. 파티원도, 용병도 아닌 친구관계를 이렇게 시작하시겠다?"
'그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어딘가부터 크게 잘못되었어. 그것이 신때문이라 해도, 저녀석의 말대로 내 사정에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어.'

 훈계를 바탕으로 자책을 하는 와중에 그녀가 떠올린 한 사람이 있었다. 르블랑이었다. 생각하면 르블랑도 다른 검은 장미단일원 몰래 활동하면서 자신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전혀 그것에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극적인 타이밍에 나타나서 잠깐 도와줬다고 여기는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고마움에 취할 여유도 갖지 않았다.

 

'적어도 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한게 아니었다니...'

 순간 생기는 부끄러움이 엘리스의 모든 생각을 좌절로 이끌게 만들었다. 적어도 자기가 애써서 해왔다고 하는부분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해만 주었다고 생각한 순간, 엘리스는 마오카이를 찾아온 자기자신을 창피하게 여겼다. 여기까지 와서 훈계를 듣기에는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움은 너무도 강렬해서, 엘리스라고 해도 입에서 나올것 같지는 않았던 말이 나오게 했다.

"죽여줘..."
"뭐라고 했나."
"죽여줘. 더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난 도움을 요청할정도의 대단한 사람도 아니잖아. 차라리 내 목숨 하나로 죽어간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싶..."
"헛소리하지말고 내 말을 떠올려라 엘리스. 사람의 목숨 자체는 하나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수천명의 사람들을 잡아먹은죄를 네 목숨 하나로 '도피'하려는건가? 여태 죽어나간 사람들의 몫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넌 절대 죽어선 안된다. 그 '학살'은 네가 지어질 짐을 늘린 꼴이란걸 명심하란 말이다."
 정말로 하고싶지 않은 말을 했는데도 마음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나므라고 충고아닌충고를 받았다. 왜일까. 엘리스에게 있어서 살아남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보다 더한 허탈함을 주었다.

"남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무거운 짐을 얹어주는거야..."
"사회는 너같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기 때문이지."
"기회? 사회가? 나같은 사람을?"

 여태껏 쥐죽은듯이 마오카이의 말을 들어온 엘리스지만 그녀가 생각한 모순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소환사들은 내가 그림자 군도에 조용히 처박히길 원했는데, 그까짓게 기회였다고...'

 창피함과 후회 이 두가지가 가슴속에 있는 지금, 이 두 심정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낯익었다. 심판의 날 직후에도 그녀가 가장 표출하기 쉬웠던 그것이다.

'그래,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 지금 심정으로서는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리가 없잖아. 설령 몇몇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았다 해도, 그 외에 수만, 수십만의 사람들의 원성을 피할수도 없다고. 그런 나에게...'

"기회라."
 엘리스는 이 감정에 모든걸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화'라는 감정이 이 상황에서 돌파구가 되어주길 빌면서.

"모두들 이런걸 보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는구나."
 나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자 마오카이는 코웃음을 내보였다.

"그게 아니면 죄를 지은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나는 기회가 아닌 무엇을 준다고..."
"주민들이나, 너나, 세계의 창조주나. 이런걸 기회라고 한다고. 하... 고마워 마오카이. 드디어 네가 말하는 기회를 알았어.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뜨리고 혼자서 그 고차원적인 성찰을 하라는거네. 높은 분들, 아니 너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알 것 같은데. 이런 방종이나 격리가 기회일 리가 없잖아. 어떠한 도움없이 사람이 회개하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거라고."
 말하고있는 엘리스의 입술이 떨렸다. 부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사회적으로 악인이라 낙인된 사람을 다시 구원해줄 현자는 없다. 그 사실이 그녀를 서럽게 만들었다. 엘리스는 마지막으로 모든 서러움과 화를 쏟아부었다.

"이게 네가 말하는 기회야!!!"
"네녀석이 해온짓이 그렇게 구원받을 짓이라고 생각하나? 그 눈에..."
 하찮은 발악이라는듯 말을 되받아치려는 순간, 마오카이는 말을 멈췄다. 엘리스의 얼굴을 향해 초점을 맞추려 할 때 그녀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붉은색 눈동자가 아니라 흰자?'

 그동안 마오카이가 봐온 엘리스의 눈은 모두 붉은색 눈동자에 검은색 홍채였다. 그녀가 지닌 사악한 느낌의 원천은 눈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눈이 보통사람처럼 변해있었다. 고통을 못이기고 정신을 잃어가면서, 그런 주제에도 엘리스는 뭔가를 말하려하는것 같았다. 허리를 움켜잡고 나무에다가 몸을 밀어붙여도 감출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순간 마오카이는 처음으로 적대적인 눈빛을 풀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손에 잡혀있는 엘리스의 얼굴을 보기위해 그는 고개를 들어올려서 얼굴을 보았다.

"도와줘..."
 그리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듯이 정신을 잃었다.

<계속>

 

P.S : 여기에 쓰기엔 좀 길어서 아예 새 창에서 쓸게요.

 

소설에 오류가 생겼거나 스토리적 전개가 이상하다 싶을 경우 댓글로 올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자비한 비하어 표현은 자제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