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사막의 21번째 클래스, 노바가 출시된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노바는 사막에서 죽음을 맞은 칼페온의 왕, 다하드 세릭의 잃어버린 왕녀라는 컨셉을 가지고 출시됐죠. 하지만 이후 'S의 초대장'이라는 각성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이 이미지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그 어떤 검은사막 스토리보다 자극적이고 놀라운 비밀을 담은 노바 각성 스토리는 오딜리타의 아히브들과 연관되며 더욱 몰입감 있는 서사를 제공합니다. 특히 각성 스토리 마지막 부분에서 얻는 아이템, '왕의 열쇠'의 툴팁에는 아직 노바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나와있어 많은 유저들을 흥분시켰죠.

그렇다면 노바는 어떻게 '가시의 여제'라는 현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칼페온의 왕좌를 되찾겠다는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칼페온의 왕녀인 그녀와 아히브는 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천천히 파헤쳐봅시다.


*본 스토리 기사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메인퀘스트, NPC 대화, 지식 등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분기란 게임 내 유저의 선택에 따라 에피소드가 달라지는 부분을 뜻합니다.
*약간의 각색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나 게임 내 설정 및 컨셉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 노바 각성 - S의 초대장

타리프 마을
의문의 아히브를 만나다

"오, 이것 봐! 누군가 우리에게 초대장을 보냈어! S의 초대장? 이게 뭐지, 한번 읽어볼까?"

잔뜩 흥분한 눈빛으로 흑정령이 건넨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S의 초대장
비겁함에 스려졌던 별이
칼페온의 청명한 하늘로
다시 떠오를 그 자리에
그대를 초대하노라.

비록 우리는 숨결을 맞대고
서로 마주할 수 없을 것이나
그대는 시공을 뛰어넘어 차갑고 어두운 별이
열어젖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라.

노바는 이 S의 초대장에 적힌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편지 뒤에는 전혀 다른 필체로 적힌 글 하나가 있었다. 현재 칼페온의 칼리스 의회는 이 초대장을 보낸 S의 정체가 노바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은 걸 알고 있으니 타리프 마을을 찾아오라는 이야기였다.

S의 초대장 뒷면
칼페온 전복을 담은 S의 초대장.
칼페온 지배계층을 뒤흔든 초대장이지.
S를 너라고 보는 눈이 있던데, 넌 이 사실을 알려나?
뭐, 네가 칼리스 의회를 갔다 왔으면 알겠지.
한 번도 간 적 없으면 수감 생활을 할 수도 있는데
억울하지 않겠어? 이런 별 볼 일 없는 초대장...
난 알아, 네가 S의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거.
내가 누구냐고? 알고 싶으면 타리프 마을로 와보든지.

노바는 말을 몰아 타리프 마을로 향했다. 지금 당장 칼리스 의회에 가면 어떤 죄를 물어 잡혀가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타리프 마을에 도착한 노바는 어렵지 않게 자신을 불러 낸 장본인을 찾을 수 있었다. 먼 이국의 땅, 오딜리타에 있어야 할 아히브족이 소서러의 고향인 타리프 마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 타리프 마을에서 노바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아히브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오딜리타의 에키드나 수도원 소속이라고 밝히며 그동안 줄곧 노바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노바는 자신이 섬기는 여왕이 예전에 미완성으로 썩어 죽어 가던 것을 완성해 길러낸 전사이니, 이제 오딜리타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바는 그런 아히브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비록 그녀가 그동안 기억을 잃고 흑정령을 만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갑자기 처음 만난 아히브가 하는 여왕이니 전사니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자 아히브의 한쪽 입고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녀는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이제 진실을 마주할 때라고 했다. 그녀는 어차피 다가올 그림자, '하둠'에 맞설 최고의 전사만 찾으면 된다면서, 노바를 S로 모함한 장본인인 S에게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히브에게는 그런 S에게 노바를 보내 그녀의 힘을 시험해보려는 목적도 있었다.


▲ 어떤 진실에 마주하라는 것일까

노바는 이 아히브가 어떻게 자신을 모함한 S의 정체를 알고있는지 미심쩍었지만, 이미 S의 초대장이 온 칼페온에 퍼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그 실상을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우선 아히브가 내 준 첫번째 과제인 갈기족 소굴의 갈기족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만약 노바가 이런 간단한 일조차 수행하지 못하면 S에게 맞설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아히브의 설명이었다.

그동안 칼페온부터 발렌시아까지 온 대륙을 횡단하며 흑정령과 모험을 했던 노바에게 그까짓 갈기족 몇십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노바는 손쉽게 갈기족을 토벌한 뒤, 아히브를 만나기로 한 병사의 무덤으로 향했다.

아히브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엔 웬 거대한 비석이 하나 있었다. 그 비석은 겉보기에도 다른 것들보다 화려했지만, 무엇보다 차가운 한기가 주변을 끝없이 멤돌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아히브는 이 비석이 바로 S의 흔적이라면서, 노바가 사용하는 한기의 힘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만약 노바가 S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 한기를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 S의 흔적이 서려있는 비석

노바는 한기가 서린 비석에 손을 뻗었다. 아히브의 말대로 그 힘은 노바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노바의 손이 닿자 그 한기는 마치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춤을 추며 노바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기운은 이내 노바에게 완전히 흡수되었다.

아히브는 매우 흡족하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별 탈 없이 한기가 흡수되었다는 것은 노바의 힘이 S만큼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녀는 최근 이 '한기의 표식'이 메디아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S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증거이고, 본래 마녀 일레즈라의 땅이었던 메디아를 점령함으로써 그녀의 잔존 병력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드려는 수작이었기 때문이다.

아히브는 S의 한기를 흡수한 노바에게 병사의 무덤 해골들을 쓰러뜨리도록 했다. 자신의 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S가 느낀다면, 분명 화가 나서 모습을 나타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의 무덤 해골들을 깔끔히 처리한 노바를 보고 아히브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한기의 힘으로 S의 병사를 처치하는 노바

"이제 S가 누구인지 알려줄 차례가 되었군. 그녀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세릭. 칼페온 왕국의 숨겨진 마지막 왕녀야. 아, 그 이름이 네가 기억을 잃기 전 네 진짜 이름이라고 한 사람이 있다고? 뭐... 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 하지만 넌 프란세츠카 세릭이 아니야."

노바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한 때 칼페온 왕국에 대한 기억과 모래폭풍처럼 이유없이 몰려오는 분노와 복수의 감정들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자기 자신을 칼페온의 기억을 잃은 왕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 이 아히브가 꺼낸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넌 프란체스카 세릭의 오넬이야."

하지만 아히브는 여기까지만 설명했을 뿐, 정작 그 '오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노바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히브가 오딜리타에 자리하기 전부터 있던 '고대 오르제카 왕국'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왕국의 지식이 담긴 생각이 잠든 묘에서 일하던 드워프 노예 몇 명이 지식 일부를 훔쳐 고대의 틈으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아히브는 바로 그 드워프 노예들이 노바의 정체를 밝혀줄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노바에게 '자비의 불꽃'을 건넸다. 자비의 불꽃은 그 드워프 노예들의 족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서, 그 대가로 잃어버린 지식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 노바는 프란체스카 세릭의 오넬이라고 한다. 오넬이 대체 무엇이길래?


고대의 틈
호문쿨루스와 에키드나의 방패

고대의 틈은 일전에 노바가 드워프 족장 아인 그레이드를 만났을 때 들렀던 곳이었다. 그때만해도 아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곳에 이런 비밀을 가진 드워프가 있었다니. 그녀는 급히 말을 몰아 고대의 틈으로 내달렸다.

노바는 고대의 틈으로 가서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대화를 나누는 드워프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족쇄를 차고 있는 드워프들은 없었다...가 아니라 있었다! 유적 동굴 깊숙한 곳, 족장 아인 그레이드의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엔 붉은 문양이 새겨진 족쇄를 찬 드워프 3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바는 다짜고짜 그 드워프 앞에 자비의 불꽃을 들이밀었다. 노바의 거래는 간단했다. 자비의 불꽃으로 족쇄를 풀어줄테니, 훔친 지식을 보여달라는 것. 드워프들은 갑자기 들어온 인간 여자의 거래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으나, 족쇄가 있는 한 영원히 아히브들에게 쫓길 것이었기에 순순히 노바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드워프들의 말에 따르면 그 지식은 고대 왕국 오르제카의 중심 중 하나인 에키드나 수도원에 관한 지식이며, 대제사장 에키드나가 만든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고, 현재 오딜리타의 주인인 아히브 여왕 역시 그 수도원을 발견한 뒤로 하둠에 대항할 전사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짓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것으로 비극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고, 이미 그 과정에 희생된 자들과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의 고통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드워프들은 에다나의 힘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이곳 고대의 틈을 찾아온 것이었다.


▲ 자비의 불꽃으로 드워프 노예가 훔친 지식을 보는데 성공했다.

오르제카의 기록 1장 : 에키드나 수도원
가시나무 신수를 지키는 오르제카 왕국 크투란교의 수도원. 불멸의 대제사장 에키드나가 오르제카력 301년에 건설하였다. 에키드나는 빛의 신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을 거두어 수도원에서 보살폈다. 아이들은 수도원에서 에키드나의 훈육에 따라 기도하고 노동하며 하루에 일곱 번씩 제사를 지냈다.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평소 훈련하던 방패와 철퇴를 들고 앞장서서 싸우기도 하였다. 아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에키드나에게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오딜리타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에키드나는 크투란의 뿌리가 약속의 땅, 오딜리타로 떠나는 유일한 문이라고 했다. 에키드나는 매해 가장 밝은 달이 뜨는 날 그해 가장 착한 아이들을 데리고 크투란의 뿌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달이 뜨는 날, 에키드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나왔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오르제카의 기록 2장 : 에키드나의 아이들
빛의 신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은 사실 대제사장 에키드나의 창조물, 호문쿨루스. 크자카의 현신과 오르제카 정복 전쟁은 에키드나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로 그녀는 수많은 연구와 실험 끝에 오르제카의 신단수 크투란의 힘을 이용하여 인조인간을 배양해냈다. 크투란이 집어삼킨 죽은 전사들의 육신에 에키드나가 자신의 씨앗을 덧대어 뿌리를 태 삼아 생명을 피워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보통 사람과 똑같았으며 저마다 다른 외모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키드나는 수도원을 건설하고 아이들을 훈육시켰다. 이 중 재능을 피워낸 아이는 다시 크투란의 뿌리로 데려가 크투란의 뿌리를 태운 재를 코에 흘려넣어 수도원에서의 기억과 감정을 지우고 오직 에키드나의 말에 복종하며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전사로 재탄생시켰다. 이들은 팔에 크투란의 가시를 두르고 그로부터 발현되는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적들을 학살했다. 이들이 전장에서 흘린 피는 크투란의 자양분이 되어 훗날 악신 크자카를 피워냈다... 재능을 피워내지 못한 아이는 성년이 된 후, 오르제카의 백성이 되었으나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그리고 에키드나의 수도원은 크자카의 폭주로 오르제카가 멸망하던 날 왕국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

오르제카의 기록 3장 : 에키드나의 방패
완벽한 잠재력을 갖춘, 단 하나의 호문쿨루스를 위하여 에키드나가 제작한 방패로 일그러진 여신의 힘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방패와 접촉하는 순간 창조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그러진 여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되며 능력에 따라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 에키드나의 기록에 따르면, 이 방패는 자신의 의지로 오직 하나로 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계약자를 찾는다고 한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에키드나는 지하실에 방패를 봉인했고 오랫동안 문을 걸어 잠가두었다.

"그래서... 방패는 지하실에 영원히 봉인된 건가요?"

오르제카의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던 노바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물었다. 그러자 모든 드워프들이 화들짝 놀랐다. 오르제카의 언어는 오직 그 피가 흐르는 후예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은 당혹스러움을 애써 숨기며 오딜리타의 주인이 아히브로 바뀐 후에 방패가 다시 깨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히브들은 오르제카의 신목이었던 죽은 크투란에 카마실브의 가지를 꽂아 '투라실'로 재탄생시켰는데, 그 기운이 지하실에 방패에 닿아 자아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오딜리타의 여왕은 죽은 겨울을 연상시키는 한기가 수도를 덮쳤을 때 이를 뒤쫓다 그 지하실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에키드나의 방패를 찾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방패가 에키드나의 호문쿨루스에게만 반응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그 드워프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방패가 없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곧 여왕도 모르는 호문쿨루스가 숨어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여왕은 이전에 산사태로 드러난 에키드나 수도원을 처음 발견했을 때, 수많은 미완성의 호문쿨루스들이 크투란의 뿌리 아래 엉켜있었던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드워프 노예들에게 오르제카의 기록을 해석하도록 했다. 그렇게 내려진 결론은 그 크투란의 뿌리 아래 엉켜있던 미완성 호문쿨루스들이, 최초로 방패에 반응한 호문쿨루스의 복제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오딜리타는 오르제카 멸망 후 아히브들이 정착할 때까지 수많은 세력이 거쳐간 곳이었다. 그중 누군가 죽어가는 신목 크투란에 방패와 계약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호문쿨루스를 만들었고, 크투란은 의지를 가지고 이를 양산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계속 복제를 시도한 것 같았다. 오르제카의 언어로 복제인간을 뜻하는 말이 바로 '오넬'이었고, 현재 아히브도 그들을 오넬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히브들은 '도대체 누가 에키드나의 씨앗을 이용한 것인가?'라는 의문에 휩싸였고, 그를 찾으려했으나 돌아온 것은 구겨버린 델로티아 꽃에 꽂힌 독수리의 깃털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병사의 무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엘릭 사원에서도 그 한기의 흔적이 느껴지고 있었다.


▲ 호문쿨루스의 복제인간, 그것이 바로 오넬이었다.


엘릭 사원
드러나는 노바의 정체

"이게 무슨..."

노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의 복제인간, 오넬. 분명 타리프 마을에서 만난 아히브는 노바의 정체가 프란체스카 세릭의 '오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노바 자신은 그저 크투란의 수많은 복제인간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돌아볼 것은 없었다. 한기의 흔적이 나타난 마지막 장소, 엘릭 사원으로 찾아가 담판을 지어야만 했다. 노바는 정체성의 혼란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엘릭 사원을 지키는 S의 병사들을 단숨에 해치워버리고, 사원의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곳엔 역시, 한기가 서려있는 이교도의 표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공터엔 낯익은 모습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 둘, 셋... 수없이 쓰러져있는 시체들. 놀랍게도 그것들은 노바 자신이었다. 아니, 노바와 같은 모습을 한 수많은 복제인간들이었다.

노바는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자신과 똑닮은 시체들을 보며 흐느꼈다. 이제 더 이상 뭐가 중요한 것인가? 그동안 노바가 느꼈던 모든 감정과 기억, 생각들은 가짜였다. 아니, 진짜의 복제품일 뿐이었던 것이다.


▲ 노바와 똑같은 모습을 한 자들이 널려있다.

흑정령은 그런 노바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아주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현재 노바는, 진짜 프란체스카 세릭과 똑같은 외모와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녀 자체가 프란체스카 세릭이라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진짜를 죽여버리고 노바가 진짜가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프란체스카 세릭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제인간과 자기 자신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S의 초대장으로 노바를 모함해 없애려 했던 것이고,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다른 오넬들도 그녀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 아히브가 말했던 시험이 이것이구나. 단지 최초의 프란체스카 세릭을 이기는 강력한 전사를 찾는 것 뿐이었어. 나의 생존과는 상관없이."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프란체스카 세릭은 없었다. 오직 노바와 똑같이 생긴 시체 무더기만 있을 뿐. 그녀는 자리를 비운걸까, 아니면 이미 다른 오넬에게 당해 그 오넬이 프란체스카 세릭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일까?

노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까의 분노는 사라지고 죽은 겨울처럼 차가운 한기만이 그녀의 가슴에 멤돌고 있었다. 그녀는 근처에 프란체스카 세릭의 일지로 추정되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자신의 복제인간들을 모두 없애고, 칼페온 왕좌를 되찾겠다는 프란체스카의 의지가 담겨있는 글이었다.

프란체스카 세릭의 일지
재능을 꽃피운 아이들을 에키드나는 다시 크투란의 뿌리로 데려갔다. 그들은 팔에 크투란의 가시를 두르고 그로부터 발현되는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재능은... 일그러진 여신의 산물이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면 얻을 수 있는 선물. 나의 모습과 나의 기억을 가진 자들이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철퇴를 빼들고 덤벼든다. 미친 것 같은 이 상황에,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 피로 물들지 않은 왕좌는 없다"

그래... 이들은 여신이 내게 내린 시련에 불과하다. 이게 바로 재능을 얻을 수 있는 시련임에 틀림없다. 이겨야 한다, 나의 존재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며 나는 오로지 온전한 나로서, 홀로 존재해야 한다. 칼페온 왕국의 적법한 후계자는 바로 나다. 이 시련의 끝, 진정한 가시의 여제가 되어 내 왕국을 되찾으리라.


▲ 모든 것이 같다면, 진짜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진짜가 되자는 흑정령


고대인의 석실
어린 크투란의 탄생과 가시나무의 여제

"뻔뻔하게 남의 일지를 엿보다니, 넌 다른 애들보다 더 역겹구나?"

노바는 '헉' 소리와 함께 철퇴를 빼들어 뒤를 돌아봤다. 프란체스카 세릭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모습을 한 다른 오넬일지도 몰랐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이제 셀 수도 없지만...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아무도 날 이기지 못했거든. 너희는 그저 내 모습과 기억을 가진 껍데기일 뿐이야. 내가 진짜 프란체스카 세릭이라는 걸 난 증명할 수 있어. 네가 S의 초대장을 칼리스 의회에 보냈나? 아니면 왕의 열쇠라도 가지고 있나?"

프란체스카 세릭은 한껏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노바는 프란체스카 세릭의 아버지 다하드 세릭이 준 왕의 열쇠가 없다. S의 초대장을 보내지도 않았다. 일그러진 여신의 힘을 받아들이고 일레즈라의 땅에서 군대를 만든 것도 프란체스카 세릭이지, 노바가 아니다. 하지만... 흑정령이 말했다. 노바는 충분히 그녀가 될 수 있다.


▲ 노바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프란체스카 세릭이 나타났다.

"너와 내가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첫 번째 경계에서 난 널 죽이고, 일그러진 여신의 인정을 받을 것이다!"

프란체스카 세릭의 외침과 함께 노바는 순간적으로 몸이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곳은 고대인의 석실이었는데, 눈 앞에는 멸망한 오르제카의 고대수이자 검은 가시나무, 어린 크투란이 있었다. 노바는 본능적으로 그 나무에 손을 뻗어 대제사장 에키드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사들이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들의 피와 영혼이 크투란을 되살릴 것이니..."

이 어린 크투란은 그동안 프란체스카에게 죽은 오넬들의 피를 마시고 자라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순간, 등 뒤에서 프란체스카 세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전투의 승자는 언제나 나였어. 네 피만 있으면, 크투란은 이제 완벽해진다. 살아남는 오직 한 명, 곧 나만이 진정한 가시의 주인이 되어 칼페온 왕국을 되찾을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할 것은 없었다. 노바는 괴성을 지르며 프란체스카에게 돌진해 사정없이 철퇴를 내리쳤다. 하지만 노바와 같은 한기의 힘을 사용하는 프란체스카 역시 만만치 않았고, 그 둘은 온 날이 저물도록 쉼없는 혈투를 계속했다.

"...나와 함께라면 겁먹을 필요 없다고 했잖아. 킥킥. 우리가 프란체스카 세릭을 죽였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노바의 발 아래에는 무표정한 프란체스카 세릭, 아니, 가짜 오넬 껍데기가 누워있었다. 이제 진짜 프란체스카 세릭은 바로 노바였다. 프란체스카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흐르고 흘러 어린 크투란의 뿌리를 적셨다. 그러자 피를 흡수한 어린 크투란은 붉은 빛을 뿜어내며 노바를 불렀다.

노바가 어린 크투란에게 다가가자 검은 가시가 그녀의 팔을 타고 감싸올랐다. 그것은 가시나무 여신의 선물이었다. 노바의 머릿 속에 에키드나의 아이들에 관한 기록들이 떠올랐다. '재능을 피워낸 아이는 팔에 크투란의 가시를 휘감고 그로부터 발현되는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적들을 학살했다...'

에키드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크투란의 가시를 두른 전사들이여, 너희가 곧 살아있는 크투란이다. 너희들이 살아있는 한 오르제카는 영원하다. 가시의 무기는 그 영원을 조건으로 크투란을 창조하신 가시나무 여신께서 내리시는 선물이니라."

여신의 선물을 받은 노바는 누워있는 프란체스카 세릭에게 다가가 그녀의 소지품을 뒤졌다. 그러자 손 끝에 차갑고 뭉툭한 것이 느껴졌다. 바로 다하드 세릭의 '왕의 열쇠'였다. 그 열쇠를 거머쥔 노바의 얼굴에는 이제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내가... 가시의 여제, 프란체스카 세릭이다."


▲ 가시의 주인이 되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프란체스카와 노바

▲ 프란체스카의 피를 먹고 성장한 어린 크투란

▲ 왕의 열쇠를 손에 넣은 노바. 그녀의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아아, 아버지 이렇게 저를 버리시나이까! 너도 나처럼 수많은 자신과 싸움을 치러야 할 것이다. 네 숨이 멎을 때까지 영원히..." - 프란체스카 세릭이 남긴 마지막 말


▣ 검은사막 스토리 시리즈
▶검은사막 스토리 #1 - 연대기 상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2 - 연대기 하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3 - 발레노스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4 - 세렌디아 상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5 - 세렌디아 하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6 - 칼페온 분기1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7 - 칼페온 분기2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8 - 칼페온 분기3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9 - 칼페온 마지막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0 - 메디아 프롤로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1 - 메디아 분기1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2 - 메디아 분기2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3 - 메디아 마지막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4 - 발렌시아 상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5 - 발렌시아 하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6 - 카마실비아 상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7 - 카마실비아 하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8 - 드리간 상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19 - 드리간 하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20 - 별무덤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21 - 오딜리타 1편 바로가기
▶검은사막 스토리 #22 - 오딜리타 2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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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1 - 훔쳐야 산다, 도굴왕
▷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2 - 매화가 지던 날
▷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3 - 워리어, 고옌 용병단의 형제
▷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4 - 레인저, 정령검의 계승자
▷ 검은사막 스토리 외전 #5 - 위대한 소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