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나의 세상은 세 개의 시디키 속에 다 들어있었다.
잠을 줄여가며 엑트를 돌고, 아이템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던 시절.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내일보다는 오늘의 모험이 더 중요했다.
어느덧 치열한 사회생활의 파도에 몸을 싣다 보니
마우스 대신 서류 뭉치를 잡는 날들이 쌓여갔고,
나의 열정은 그렇게 현실이라는 창고에 잠시 보관되었다.
마흔의 문턱에서 다시 마주한 디아블로.
화면 속 풍경은 더욱 선명해졌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건 그때 그 시절 나의 모습이다.
이제는 하루에 허락된 시간은 단 3시간뿐.
화려한 랭커가 될 수도, 밤을 새울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 짧은 몰입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20대의 나를 만난다.
이 3시간은 몬스터를 잡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며
치열하게 살아온 40대의 나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보상이다.
조금 느리면 어떠한가.
추억을 이정표 삼아 천천히 걷는 이 길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가장 값진 '득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