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령은 저 멀리 보이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눈이 침침한지 오래라 보이지 않을 줄 알았건만, 초목에 싸질러져 활활 타오르는 저 불길은 노안인 전령의 눈에 선명히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또... 네팔렘인가."

 전령은 안쓰럽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탄하듯 씨부렸다.  하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휙하니 돌았다. 

  화마는 곧 진정되고, 고통에 울부림치는 저 악마 동료의 목소리는 잦아들리라.  그런 생각으로 머리를 온통 채울 셈이었다. 

 그래서 전령은 참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시뻘건 피를 흘렸다. 
 그럼에도 전령은 참았다. 앙다문 입술은 오므라져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전령은 참았다. 눈을 감고 여전히 들려오는 동족의 비명에 귀를 찢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령은 참았다. 

 그러다가 문뜩 몰락자 영매가 팔이 한짝 없는 채로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헐떡였고, 언제라도 눈을 감을 듯 퀭해진 눈으로 전령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참을 셈이오."

 울음기 섞인 몰락자 영매의 목소리는 이미 늙어버려 쉰소리가 났고, 거기에 더해 심각한 부상은 쇳소리를 더하게 만들었다. 

 "나는..."

 하마터면 전령도 눈물이 왈칵하고 나올 뻔하였다. 하지만 가까스로 침을 삼키며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참을 셈이오."

 몰락자 영매는 끝내 그렇게 말하는 전령이 한심하여 실소를 내질렀다. 그리곤 재밌다는 듯이 말을 씨부렸다. 

 "그것 아오? 내 여덣 자식들이 방금 죽었오."

 전령이 모를리 없었다. 네팔렘은 지나가는 길에 생명을 남기지 않는다. 

 "첫째는... 불에 타 죽었오."

 전령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둘째는.... 사슬에 목이 졸려 죽었오."

 전령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세째는.... 던져진 미늘창에 반이 갈라졌오. 네째는!!!"

 전령은 그렇게 울부짖는 몰락자 영매를 두려움에 찬체 힐끔 바라 보았다. 

 "네째는... 해골들 수십이 실컷 욕보이다 사지가 찢겨 죽었오."

 "그...그만...."

 전령은 더 들을 수 없었다. 너무나 끔찍했고, 대단히 혐오스러웠다. 그리하여 아득히 슬퍼져왔다. 

 "더 들으시오... 어차피 할 수 있는건 들으며 참는 것 뿐이지 않소. 다섯째는 벼락이 떨어져...."

 "제발 그만... 제발 그만..."

 급기야 전령은 주저앉아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며 구걸하듯 사정했다. 

 "그리한데 대체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 참는 것이오! 도와주시오. 저들을 막아주시오. 분노하여 저들을 막아주시오. 당신이라면.... 허나 당신이라면...."

 몰락자 영매도 전령앞에 무릎꿇고 그렇게 외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정하며 절규했다. 보기 힘들 정도로 안타깝고 절절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을 것이오."

 전령이 다 울었다는 듯 허탈하게 말했다. 

 "대체...대체 왜... 왜!!!"

 몰락자 영매가 지팡이로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눈은 충혈되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저들이... 저 잔혹한 네팔렘들이 내 파괴참을 노리고 있오. 그것을 뺏긴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나는 분노하지 않을 것이오. 내 동족 백이 죽는 걸 바라보는 한이 있어도 나머지 천을 지킬것이오. 그러니 참을 것이오. 그것이 나의 싸움이오."

 그리하여 전령은 참았다. 공역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전령은 참았다. 분노하지 않았다. 
 
 저 멀리 마지막 몰락자가 죽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끝내 전령은 참았다. 분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