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가 오픈베타를 시작했을때가 2004년 11월 12일. 그리고 얼마안가 바로 상용화했었죠?

당시 잘 나가던 경쟁사 게임의 한달 정액이 3만원이었으니 2만원이란 가격은 상당한

메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용화에 불만 가진 분들이 많아서 꽤나 시끄러웠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틈만나면 야자튀고 야자튄거 걸린 날엔 오리걸음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고딩이었습니다.

 

 

중2때 미친듯이 했었던 디아블로2 빼고는 블리자드 게임 쪽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워크래프트도 잘 알리 없었고 스타도 더럽게 못할 때라 친구들이 모두 카오스니 뭐니

할 때도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 와우가 나오던말던 신경을 썼을리가.....

 

 

와우를 하진 않았지만 등교길 버스안에서 또는 야자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와우에 흠뻑빠진 주변 애들이 얘기하는걸 귀동냥으로 듣곤 했습니다.

 

'오늘 성기사 몇렙 찍었네. '사냥꾼 하나 새로 키우기 시작했네'

 

자꾸 듣다보니 대체 어떤 게임인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기존에 하던 게임 냅두고 새 게임을 시작하긴 쉽지 않더라구요.

 

 

 

 

수능이 끝나고 하릴없이 잉여돋던 저는 드루이드를 키우고 있던 친구가

딱 한번만 해보라는 끝없는 구애를 펼치면서 와우를 접하게 됩니다.

무슨 게임을 하던 누구나 가장 공들인다는 캐릭터 만들기와 가장 어려워한다는 캐릭터명 정하기.

 

캐릭터 생성부터 저하고 왜이리 안맞던지요... 아니 뭐가 좀 예쁘고 해야

할 맛이 나지 호드 쪽은 볼 것도 없고 얼라이언스쪽 인간이니 노옴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트엘프마저 참... 지금처럼 일부러 웃기게 만든다던지 기억에 남는 캐릭터명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무조건 예쁜거, 멋있는거만 찾다보니 썽에 찰리가 없었어요.

 

성기사가 가장 무난하고 할만하다던데 인간은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나이트엘프 사제를 하기로 하고 어찌어찌 생성.

역시나 스페이스바를 통한 점프는 매우 신선했습니다ㅋㅋㅋ

하지만 그걸 빼면 실망의 연속이었죠.

 

 

그래픽은 그냥 화려한게 좋은데 와우는

(어디까지나 제 기준) 아기자기한 맛이 더 강했습니다.

 

레벨업도 무조건 사냥하는게 좋은데 철저하게 퀘스트 보상을 통한 레벨업 시스템.

 

공격 시에 손맛 같은게 느껴져야 하는데

크리티컬 백날 터져봐야 눈으로만 보이는 두껍고 노란 글씨체.

 

 

제대로 해보겠다고 5시간 정액을 넣었는데 이러한 시스템들에 1시간도 못가

질리더라구요. 친구에게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나 도저히 못하겠다. 대체 어디서 재미를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니 뭔놈의 가방은 또 따로 모아야 하냐;;"

 

친구도 만렙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를 확실하게 밀어준다거나 할 것도 없었고,

딜러계열을 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사제를 해서 더 재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액 넣은건 다 써야겠고, 하는둥 마는둥 꾸역꾸역 하다보니

느려서 그렇지 레벨이 올라가는게 보이긴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피시방에서 처음 밤을 샌 게임도 와우네요.

친구가 탄력붙었을 때(어딜 봐서??) 계속 해야 한다며 야간 정액 넣어놓고

저는 졸다 깨다 반복하다 아예 기절했는데 나중에 눈떠보니

친구는 제꺼까지 컨트롤 하면서 키워주던;;

대체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까지 절 데리고 다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ㅋㅋ

 

 

 

게임을 시작한지 한달 반. 여전히 영혼 없는 표정으로 게임을 하던 저는 터닝 포인트를

겪게 됩니다. 퀘스트 진행 중 길을 헤매다 분쟁지역에 들어섰는데

어디서 왔는지 어디서 때리는지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와서 욕하면서 놀리는 양반을 보니 못-_-생-_-긴 호드 트롤.

 

빡쳐서 어디서 들은건 있어가지고 만렙찍고 레이드 돌아서 장비 다 맞추고

호드놈들 털러간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친구에게 전했더니

뭐라 말은 안하는데 '니가 되겠냐?' 하는 표정이 가관-_-

 

 

컴도 바꾸고 정액도 넣고, 레이드를 가려면 일단 만렙부터 찍어야 하니

재미가 없어도 그 초록괴물 망할 트롤놈 하나 잡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렸습니다. 한달 정액이 끝나갈즈음 만렙을 찍더군요.

당시 60레벨이 만렙이었는데 게임 시작부터 3달 가까이 걸린걸 보면

저도 어지간하네요. (그냥 와우에 재능이 없는지도...)

 

문제는 만렙만 찍으면 되는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필드몹 잡듯이 혼자라도 가서 쿵짝쿵짝 잡을 수 있는게 아니라 5인팟이나

공대가 있는데 거기에 속해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

 

인던과 레이드란 개념이 와우때 처음 도입된거라 잘 알지도 못한데다

회복을 담당하는 사제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데 받아줄리 만무했죠.

 

 

친구의 친구를 통하거나 다리 건너 건너 건너 경험 쌓는 식으로 낑겼는데

전 제가 그렇게 발컨인줄 몰랐어요... 가는 파티마다 족족 전멸시키는 일이

늘어나자 서버에 소문이 나더라구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받아보고

그게 아니면 받아주지 말라고.

 

 

여러 온라인 게임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개똥취급 받으며

서버 전체에 소문나 본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인듯 ㅠㅠ

이 꼴이니 당연히 템을 맞추기는커녕 길드도 못 들어갔고, 분명 온라인 게임인데

있지도 않은 싱글모드를 하는 것 마냥 점점 혼자하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실망스러움에 학을 뗐을법도 한데 신기하게 혼자라도 계속하게 되더군요.

 

 

 

뭣 모를 때(지금이라고 딱히 잘 아는건 아니잖아?) 당했던 트롤 아저씨에 대한

감정도 사그라든지 오래고 어차피 남들 다 예쁘다고 하는거 내 눈엔 그게 그거니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템이야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고

세뇌시키다보니 쉽게 쉽게 체념과 포기가 되구요.

 

캐릭터는 만렙인데 할게 없으니

귀여운 맛에 노옴 도적과 흑마법사도 키워보고 그 좋다는 인간 성기사도 키우고

그냥 캐릭터를 늘려가는 재미에 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대학도 입학만 해놓고 바로 군대를 가면서 와우하곤

접점이 없었어요. 휴가 나와서도 생각나면 피시방가서 한시간 정도 둘러보고만 나올 정도라

첫 확장팩이었던 불타는 성전. 그리고 리치왕의 분노쪽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고

전역 후 대격변이 나왔을때도 플레이 스타일은 그대로니 패치에 대해 호평이나 악평을

말 할 정도로 잘 알지도 못했고 깊게 파고들지도 않았었어요.

 

재작년 판다리아의 안개가 나오고나서 "오 판다 개귀여웤ㅋㅋㅋㅋㅋㅋ 이건 해줘야해"

하면서 키웠지만 정작 키우는데 공을 들였던건 나이트엘프나 드레나이보다 예쁜

블러드엘프ㅋㅋ 했다 안했다 반복하면서 휴면계정일 때 진행됐던 친구초대 이벤트는

허무할 정도로 정말 금방금방 크더군요. 쉽고 빠르게 키울수 있을수 좋긴 했어요ㅋㅋ

 

 

 

 

와우를 했던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번 쯤은 하드하게 플레이 해봤다고 하는데

전 그런 기억이 없고, 어떤 게임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득템이라던지 사건 등이 하나도

없다는게 참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참여한 인던팟마다 전멸시킨거야 기억에 남긴 하지만

어디다 말도 못할만큼 창피하죠...ㅋㅋ

남들처럼 한 적이 없어서인지 쉬었다가 돌아가도

항상 돌아갈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 같은, 와우는 그런 게임이었어요.

 

 

업데이트에 발 빠르게 정신없이 적응하지 않아도 되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게임 자체에 큰 애착은 안가도 와우를 계속 붙잡고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구요.

이제는 무작정 예쁘기만한 종족을 고집하지도 않고 종족 특성이나 능력치에 따라

트롤이나 언데드도 서슴없이 고르는걸 보면 저도 순수(?)하게 외모만 보던

10대 소년이 아닌 20대라는걸 여과없이 증명하고 있네요. ㅠㅠ

 

 

있는듯 없는듯 지금까지 플레이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항상 익숙하고 편안하게

놀러 갈 수 있는 모습으로 남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처럼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없어 공감할만한 추억거리가 없을지라도

날마다 일기쓰듯 평범하기만한 일상들 모두가 특별해서

저에겐 매일이 특별했다고 한다면 나름 변명이 되려나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