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시즌이 시작됐을 때, 아니, 2017 서머 시즌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만 하더라도 삼성이 롤드컵을 우승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심지어 이 팀이 롤드컵에 진출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2016년 강팀으로 거듭나 롤드컵 준우승까지 했음에도 항상 삼성에게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화려하지 않은 팀 색깔, 때로는 단단했지만 또 때로는 한 없이 답답하기만 했던 수비적인 전술, 최고라 부르기에는 다소 부족한 팀원들까지.

  

항상 팬들은 삼성을 SKTROX, KT의 아래로 평가해왔고, 어쩌면 실제로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삼성은 항상 다른 팀보다 더 노력하고 있으며 발전해오고 있다.” 

 

 

LCK의 해설가인 이현우와 김동준은 항상 삼성의 경기 때마다 무시무시한 연습량을 언급하곤 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번 롤드컵에서 삼성은 마침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조별리그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여전히 크라운은 서머 시즌 이후로 계속해서 헤매고 있었고, 엠비션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기복이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엠비션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페네르바흐체전에서 출전했던 하루는 초반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중후반 운영에서 약점을 보이며 팀 컬러와 자신의 스타일이 맞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을 뿐이었다.

롤드컵 바로 전 솔로랭크에서 1등을 찍으며 기대를 모았던 룰러는 적응 문제였는지 다소 기대 이하의 폼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큐베와 코어장전만이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간과했던 사실은 삼성이 노력의 팀이라는 것이었다. 삼성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롱주전부터 여러 가지 새로운 전략을 도입했다.

 

 

그 중 첫번째는 바로 큐베를 구속하고 있던 굴레를 벗겨주는 것이었다.

 

큐베가 2017 서머 시즌에서 클레드와 카밀, 자르반4세 등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그 안정적인 폼은 롤드컵에까지 이어져오고 있었으나 조별리그에서 큐베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픽보다는 초가스(3번 픽), 마오카이(2번 픽)같이 탱커를 주로 플레이해야 했다.

이것은 삼성의 가장 강한 라인이 수동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드가 부진하고, 봇이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때문에 삼성은 롱주전부터 과감한 변화를 주었다. 먼저 큐베는 라인전에서부터 자신이 확실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챔피언들을 더 많이 선택하게 되었다. 8강부터 결승까지 총 10경기 중에서 큐베는 케넨을 3, 나르를 3번 픽했다. 케넨과 나르는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도 조건에 따라 한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챔피언들이었고, 이런 변화는 다소 불리한 국면이 오더라도 언제든지 큐베가 한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경기를 뒤집거나 뒤집을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쉔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크라운이 탈리야, 리산드라를 픽하고 엠비션이 돌진해 들어갈 수 있는 세주아니나 그라가스를 픽하게 하여 라인전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게임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결승전 3세트에서 큐베가 초가스를 픽했을 때 삼성은 다소 힘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뱅의 이해할 수 없는 몇 번의 플레이가 겹치며 주도권을 겨우 다시 가져왔고, 초가스는 마침내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8강에서 고삐가 풀린 큐베는 프레이에게 기절 외에는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두 번째 변화는 크라운의 말자하 픽과 변화다.

 

크라운은 2016 시즌 이후 엄청난 연습을 통해 여러 챔피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으나 말자하는 그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다.

2016년 롤드컵 선발전 당시 아프리카전에서 꺼낸 것이 전부였고 2017 롤드컵 이전까지 공식 대회에서는 한 번도 플레이 한 적이 없었다. 조별리그에서도 페네르바흐체 전에서 한 번 플레이한 것이 전부였다.

예민하며 승부욕 강한 성격으로 유명한 크라운은 자신의 폼을 2017스프링 때의 압도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조별리그 이후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인정했으며 현재 메타에서 미드가 캐리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크라운은 바로 변화를 받아들였다. 롱주전에서부터 크라운은 라인전에서 아무리 밀리더라도 끝끝내 버티는 대신 아군에게 아주 강력한 CC기라는 무기를 추가했다. 또한 무리해서 황천의 손아귀를 굳이 상대 원딜이나 미드에게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상황에 따라 원딜을 막거나 룰러를 지키는데 집중했다.

 

크라운은 상대가 틈을 보이면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빠르든 늦든...

 

탈리야를 가져가고도 급하게 운영을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 얻어갈 수 있을 때는 확실히 얻어갈 수 있도록 크라운은 옆에서 팀을 도왔다.

크라운은 더 이상 미드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가 자신감을 되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 번째 변화는 엠비션의 변화였다.

 

다소 우왕좌왕했던 엠비션은 다른 라인을 믿고 크라운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크라운이 위험할 때는 그의 뒤를 확실히 봐줬고,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을 때는 크라운과 함께 맵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롱주는 엠비션 때문에 1경기에서 미드를 박살내지 못했고, 2경기-3경기에서는 세주아니와 리산드라의 돌격을 막지 못했다.

힘을 되찾은 두 사람에게 큐베가 쉔과 나르를 통해 힘을 보탰고, 결국 이 과정은 바텀에게 큰 힘을 실어주면서 게임을 이길 수 있었다.

 

주도권을 잡은 후로는 계속 같이 다닌다. 한 명을 몽둥이를 들고 한 명은 돌을 겁나게 던지면서

 

네 번째는 삼성이 팀 색깔을 확실하게 정했다는 것이다.

 

삼성의 코치진은 많은 분석을 통해 한 경기, 한 경기 약점이 없는 조합을 짰다. 다소 실수를 하거나 주도권을 잃더라도 역전을 가능하게 하는 조합을 구성했다. 8강부터 삼성의 모든 조합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확실하게 전투를 열 수 있는 이니시에이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케넨+자크, 나르+자르반과 달리 3세트에서는 확실한 이니시에티어가 세주 한 명... 결국 삼성은 고전했다.

 

주로 탑과 정글이 그런 챔피언을 뽑았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맡았다. 81경기에서는 케넨과 세주아니가, 2경기에서는 쉔과 세주아니, 3경기에서도 쉔과 세주아니가 돌격대장 역할을 맡았다. 42경기에서는 나르와 그라가스가 3경기는 쉔과 그라가스가 4경기에서는 리신과 갈리오, 라칸이 그 역할을 맡았다. 전투를 연다는 것은 곧 변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삼성은 정확한 판단을 통해 전투를 열어야 할 때 반드시 전투를 시작했고, 피해야 할 때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불리했던 경기들을 계속 뒤집었다.

그렇다면 삼성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무엇을 이용했을까? 그것은 바로 정보였다. 다음은 삼성팀원들의 제어 와드 설치 및 제거 개수를 나타낸 표이다. 각각 제어와드설치(빨간색)- 투명와드제거(검은색)/불투명와드제거(빨간색)이다.

 

구분

큐베

엠비션

크라운

룰러

코어장전

G2(27min)

4-1/2

8-8/7

4-1/5

5-3/4

4-4/2

RNG(27min)

4-1/4

4-4/4

5-2

4-7/4

5-5/5

FB(48min)

9-3/13

-

11-6/2

11-23/9

19-15/5

FB(33min)

5-1/5

8-8/6

11-5/6

12-8/2

11-7/2

G2(44min)

14-6/10

12-14/6

7-1/6

12-9/6

17-15/8

RNG(32min)

7-1/3

11-3/2

9-1/1

12-7/6

9-10/2

LZ1(44min)

11-3/8

13-10/6

12-5/7

14-19/12

12-9/10

LZ2(29min)

3-2/6

6-6/4

9-5/1

10-5/6

10-12/6

LZ3(33min)

7-4

13-10/5

9-2/3

10-9/9

6-6/6

WE1(27min)

5-2

7-3/6

5-1/1

4-10/3

9-1

WE2(28min)

5-1/4

9-4/5

10-2/3

7-4/1

6-3/2

WE3(36min)

11-2/4

13-11/2

8-3/6

8-7/6

12-4/9

WE4(32min)

10-3

8-3/4

8-7

5-8/4

9-5/4

SKT1(37min)

6-2/2

9-6/7

10-4/8

11-16/9

10-11/4

SKT2(34min)

11-3/1

9-7/10

13-2/8

9-13/4

9-4/6

SKT3(40min)

7-4/5

12-6/15

10-3/4

10-15/5

13-8/7

 

비교를 위해 결승전에서 서폿을 제외한 선수들의 제어 와드 설치 및 제거 개수를 살펴보겠다.

 

구분

1세트

2세트

3세트

합계

큐베

6-2/2

11-3/1

7-4/5

24-9/8

후니

0-1/2

1-3/4

2-5/6

3-9/12

엠비션

9-6/7

9-7/10

12-6/15

30-19/32

피넛/블랭크

9-7/6

3-5/8

17-6/6

27-19/20

크라운

10-4/8

13-2/8

10-3/4

33-9/20

페이커

2-6/4

1-1/5

3-5/2

6-12/11

룰러

11-16/9

9-13/4

10-15/5

30-44/18

3-3/2

3-5/2

2-4/8

8-12/12

 

정글을 제외한 모든 삼성 팀원들이 SKT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제어와드를 설치했다. 탑은 8, 미드는 5배 이상, 원딜도 4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삼성 경기 중에서 해설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주했다.큐베가 이상한 낌새를 잘 느끼고 스플릿 과정에서 끊기지 않는다고. 삼성이 운영을 하면서 잘 싸워주지 않고 빠져나간다고. 이 모든 것이 감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팀의 몇 배 이상 되는 제어와드 설치를 통해 정보를 얻고, 상대의 시야를 지우면서 얻어낸 결과인 것이다.

조별 리그 예선부터 삼성은 모든 팀원들이 시야 장악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이는 삼성이 내린 대부분의 판단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100%는 아니다. 그러나 삼성은 대신 어떤 행동이 실패할 때 상대팀보다 덜 잃었고, 상대가 실수할 때는 상대가 얻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팀 색깔과 조합을 확실하게 정한 후 이 힘은 그 어떤 창도 삼성의 단단함에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강력함으로 변모했다.

 

한편 완벽한 조합을 짜기 위해서 삼성은 상대가 변수로 만들어낼 만한 능력이 있다면 가차 없이 밴픽 과정에서 자르면서 타협하지 않았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삼성은 조별 예선 이후 레드 진영일 때 단 한 번도 잔나를 상대에게 주고 룰루나 다른 챔피언을 나눠 갖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WE와의 1세트 이후 2세트, 3세트, 4세트 모두 자야-라칸을 상대에게 주지 않았다.

 

우지가 진시황이 되는 것을 당한 이후 삼성은 단 한 번도 레드에서 잔나를 풀어주지 않았다.

 

SKT1, 2세트 연속으로 자야와 잔나를 준 것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그리고 엠비션이 즐겨 쓰는 픽이었고 블루 사이드였지만 변수 차단을 위해 세주아니를 1, 2세트 연속으로 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코어장전이 4강전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던 라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팀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도 반드시 준비했다.

 

롱주전에서는 1경기에서 AP케넨을 통해 잭스와의 라인전과 한타에 모두 힘을 실으면서 프레이를 철저하게 봉쇄했고, 3경기에서는 빠른 진입과 이니시에이팅이 가능한 리산드라를 가져왔다.

크라운의 말자하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라인전이 약한 초반 단계를 버텨내면 말자하는 중후반부에 엄청난 데미지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딜러들에게 수은 장식띠를 강제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결승전 1세트에서는 나르를 상대에게 주는 대신 스플릿 구도에서 절대지지 않는 AD케넨을 준비했다. 후니의 나르는 제대로 한타에 참여 하지 못하면서 힘을 잃었다.

 

짜황은 사실 AD케넨으로 그리 인상깊은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바나나를 먹은 오늘은 달랐다.

 

이처럼 삼성은 그 어떤 팀보다도 치밀하게 전술, 전략적인 면에서 준비했다. 물론 코치진의 주문에 제대로 맞춰준 선수들이 가장 큰 갈채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8강전, 4강전, 결승전 모두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던 선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삼성 코치진과 선수들의 치밀한 분석과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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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인벤 눈팅만하다가 오늘 경기 보고 그동안 생각했던거 한 번 정리해보자 해서 써봤습니당... 원래 축구관련글을 쓰는 걸 좋아했는데 직딩이 되고 30대가 되니 역시 새벽에 축구 경기보는게 참 많이 힘들어지고 대신 롤을 정말 많이 보게 되네요.

 

삼성 팬이라 오늘 승리해서 너무 기뻤네요. 한편으로는 제가 정말 페이커 선수를 싫어하는데 오늘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속좁은 마음에 오존 때부터 늘 앞을 가로막아왔던 페이커 선수가 싫기도 하고 신생팀 삼성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잘나가는 모습이 많이 얄미웠는데 오늘은 참... 마음이 복잡하더군요. 

 

갑자기 쓰자해서 삘받아서 몇시간 끄적인 것이라 다소 오타나 문맥이 이상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제 글에 대한 비판이나 다른 생각을 적어주시면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