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 뿐만 아니라 어제 올라온 밸패 코멘트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아 개발자들은 철저히 내부 데이터에 기반해서 밸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정 컨텐츠에서 파티 선호도가 낮다던가, 최상위 컨텐츠에서 고점이 낮다던가, 의도된 것보다 부족한 성능을 모든 구간에서 발휘한다던가, 그 코멘트의 진실성을 신뢰한다는 기준에서는 객관적 지표를 정해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아예 건들지 않은 직업을 제외하고 이번 밸패에 포함된 직업 중에서 인파가 가장 푸대접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개발자들이 딱히 특정 직업을 편애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인파만 유독 신경 안쓸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쪽이 이성적으로 맞다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개발자 코멘트를 다시 한번 보죠. "준수"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번 개발자 노트에서 타 직업들에 대해서는 너프된 직업들에 대해서 "가장 높은" "매우 우수한" "다소 과도한"
크게 건들지 않은 직업들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우수한"
상향한 직업들에 대해서는 "불합리" "다소 낮은"
등의 수사를 사용하였습니다.  즉 이 패치노트를 최종적으로 한 사람이 검수했다고 볼 때 스마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준은 평균보다 약간 더 좋은, 즉 중상 정도의 평가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평이한" 같은 아주 중립적인 표현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한 직업 내에서 어느 한 분야가 우수하면 나머지 한 분야에 불리한 것이 스마게가 생각하는 평균인데, 한 쪽이 너무 튀어 나오거나 너무 푹 꺼지면 맞춰 주는것이 밸패의 기조로 추정됩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분야에서 평균적이거나 약간 좋은 인파는 지금까지 건들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직업에 가까웠을 겁니다.

즉 인파이터에 대한 2가지 수사를 보면 그놈의 육각형 지표(생존, 유틸, 딜)가 "준수"하지만 최상위권, 고점에서 "다소 낮은" 피해량을 보인다는 점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한 걸 왜 정리했나 싶으실 겁니다. 문제는 개발자가 공언했듯이 인파이터가 최상위권에서 피해량이 낮아진 이유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결과에 대한 응급 처방만을 내렸다는 겁니다.

응급 처방이 정답인 경우는 버서커와 홀나 경우처럼 카운터 스킬쿨이 너무 길면 카운터 기술을 추가하고 카운터 기술 판정이 구리면 판정을 상향하는 케이스입니다.  왜냐하면 카운터는 이제 최하위 육성구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컨텐츠에서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체 구간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 피해량이 줄었다는 내부 데이터를 인지하였다면 일반적 성능을 조절하기에 앞서 결과가 도출된 그 환경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패치가 아브렐슈드 노말 오픈 이후 핫픽스로 박혔다면 그 상황에서 적절한 패치가 맞습니다. 당장 크게 바꾸자니 고려할 것도 많고 추가로 낼 업무량도 쌓여있으니 일단 급한 불만 끄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밸패는 아브렐슈드 칼엘리고스에 대한 지표가 충분히 축적되었고 하드 난이도를 내는 시점에서 나온 밸패입니다. 주변 환경까지 고려하고 깊숙히 건드릴 만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직각 자체를 개편하거나 이펙트를 변경하거나 수치를 크게 건드린 직업들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인파의 고점딜이 떨어진 이유는 인파가 너프를 먹어서가 아니라 최근 과밀하게 추가되어 온 최상위 컨텐츠들이 인파를 포함한 백어택 사멸딜러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았던 것이 큽니다. 여기에다 허수아비 DPS가 높게 나오는 지속딜러들 입장에서 실전 총 피해량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패턴파훼후 딜몰기 메타가 정착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쿠크아브 이전과 이후 딜러 게시판 온도차를 보면 메타에 따라 도태되는 딜러와 빛을 본 딜러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캐릭터 성능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성능을 발휘할 환경이 바뀐 케이스입니다.

즉 이 환경을 개선하여 리스크-리턴을 맞춰줘야 (백 잡기 쉬운 네임드와 어려운 네임드를 한 관문에 섞어서 낸다던가, 어그로 탐색 시간이 짧은 넴드와 긴 넴드를 비슷한 비율로 낸다던가) 캐릭터 밸런스 조정 없이 이 불합리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약속한 개발 로드맵 지키기도 바빴던 스마게 입장에선 힘들게 내놓은 컨텐츠를 수정함으로써 또다시 일어날 큰 파동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레이드 구조와 네임드 스탯을 바꾸면 캐릭터 스킬 수치 하나 바꾸는 것보다 훨씬 전체적인 파문이 일어납니다. 개발자 입장에선 지금도 크런치 상태인데 일을 더 크게 벌리고 싶지 않았겠죠.

그런데, 어떤 직업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불합리함의 근원을 잘 짚고 약간 더 수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오랫동안 패치가 없던 인파이터만 미봉책으로 퉁 치고 넘어가려 했는지, 그 이유가 명확치 않습니다. 뇌피셜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인파이터는 1시즌 직각 대변동 이후로 딱히 바뀐게 없습니다. 상향도, 하향도 괄목할 정도로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변동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직업군 대비 별 변화가 없었죠. 그래서 한 때 황밸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서 인파이터 유저들의 여론이 대폭발한 이유는 축적된 불편함 때문입니다. 일조일석에 생겨난 여론이 아니라 황밸 육각형 캐릭터의 그림자 속에서 가끔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금새 찍어눌러지는 불만 여론들이 너무 많이 쌓인 것입니다.

이 불만이 여태 크게 터지지 않은 이유는 유저가 생각하기에도 딱히 크게 후달리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밈의 상징이 되었던 몇몇 직업들처럼 바닥에 깔렸다던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1티어 물몸 딜러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평가가 명확했겠지만, 인파는 비교적 강점과 약점이 명확하게 구분된 직업이 아닙니다. 명확한 단점은 극단적으로 짧은 사거리 정도고, 지금은 욕먹는 아덴도 처음 나왔을 때는 나름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짧은 사거리는 인파만의 단점이 아니기도 했구요.

하지만 스마게의 밸패 기조는 캐릭터의 약점과 강점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보다 최상위 컨텐츠에서 거부되는 직업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직업들을 육각형에 가깝게 두드려 맞추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육각형 모양이 좀더 정육각형에 가깝느냐 찌그러진 육각형이라도 평균값은 동일하냐 사이에서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뭐래도 최고의 딜을 내지만 짤패턴 몇대면 사경을 헤매는 건슬같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단순히 캐릭터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컨텐츠에 대한 진입장벽의 일종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유저들이야 의견이 분분했지만 내부 데이터를 취고 있는 스마게의 오피셜에 따르면 일부 딜러들은 실제로 파티 거절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리스크 / 리턴이 뚜렷했던 직업은 너프량이 적고 오히려 리스크를 완화시켜 주었지만 다방면에서 빠지는 부분 없이 우수한 지표를 보인 직업은 크게 너프했습니다. 스마게의 밸런싱 지표는 여기서 뚜렷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모든 직업의 인파화가 현 시점에서는 스마게의 밸런싱 목표가 아닌가 하는 음모론을 꾸며 봅니다. 적당히 장단점을 혼재해서 보유한, 파티에서 잘 걸러지지 않는 무난한 직업 말이죠. 당연히 고생해서 새로 내는 신캐는 신규 유입을 위해 좀 튀게 설계했다가 나중에 고칠 가능성도 있구요.

즉, 육각형의 크기와 상관없이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적은 인파이터는 스마게 밸런싱팀에게 깊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육각형을 키우면 대규모 너프 대상이 되고, 계속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최상위 컨텐츠에서 도태되고, 그래서 살짝살짝만 건드려 주면 무난히 평균은 하는, 그런 취급하게 편한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떼어 놓고 단순히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이 기조에 불만을 품기 어렵습니다만, 인파이터의 리스크 리턴을 단순 내부지표 이외에 직업을 깊숙히 고찰한 열성 유저 입장에서 구분하면 현재 인파이터는 불합리한 상황에 가깝습니다.

Pros : 우수한 이동기(스페2번), 준수한 체방, 준수한 누적무력

변화한 환경에 의해 장점이 아니게 된 것들짧은 스킬 쿨을 활용한 지속딜, 마나 대신 소모되는 아덴 게이지, 백어택 위주의 스킬 셋

Cons : 극단적으로 짧은 사거리, 치적 패시브 부재, 둔부 근육량, 오래된 몹뚫기 현상

원래는 장/단점이 균형을 이루었어야 한 인파이터가, 지금은 환경적 변화와 노화된 아덴 시스템에 의해 단점 쪽이 부각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는 개발진이 QA팀과 협력하여 오랫동안 분석해야 파악 가능한 부분이며, 파티 거절률과 총 피해량 같은 지표로는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즉, 이제 유저들이 개발진으로 하여금 황밸이었던 인파이터란 직업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나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