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로 히어ㄹ...아니 세계관을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 어차피 메인퀘 안해도 만렙 찍는 테라니까 스토리보기 귀찮으시면 이 글을 봅시다.(데헷☆)

※ 추측성 내용이 들어있고, 조금 양념을 뿌렸습니다...기본적인 뼈대는 게임 내 자료를 따르지만 소설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글은 북미 테라의 바뀐 세계관까지 합해서 완전판의 개념으로 세계관을 통합하고 있습니다. 한국 테라에는 나오지 않거나 근거가 없는 부분을 북미테라에서 따왔습니다.

※ 틀린 내용에 대한 지적은 매우 감사합니다.

 

※ 참조 사이트 :

 

http://akspw.tistory.com/184

http://prologue.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b8666&logNo=10102576162&parentCategoryNo=25&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http://tera.inven.co.kr/dataninfo/guide/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18166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48&name=subject&keyword=%EA%B3%A0%EB%8C%80%EC%8B%A0&l=65149

http://tera.wikia.com/wiki/Lore

 http://m.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19025

 

※전편 보기

 

[창세편]

01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09

02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10

 

[성전편]

03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11

04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17

05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61

06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83

07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0994

 

[종족시대 편]

08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1049

09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1072

10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1131

11편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152&l=2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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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시대 편]

~ 2장. 신성제국(神聖帝國)과 불의 날 (2) ~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이 딱 그러네요.

한 편 만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신성제국 파트를 쓰다가

‘예상외로 기네...이러다가 두 편으로 늘어나는 거 아냐? ㄲㄲㄲ‘

이러고 있었더니...진짜로 신성제국 파트가 두 편으로 나눠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편으로 신성제국에 대한 역사도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유저들이 알고 있는 각 종족들의 기틀이 잡힙니다.

11편에서는 신성제국의 최후와 자유를 되찾은 아르보레아의 종족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신성제국이 건국되고 수백 년 동안 아르보레아는 거인들의 지배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거인들은 지금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로 발전된 도시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지금도 비아 아우레움 가드에 있는 고대 거인의 유적지에서는 방대한 마력이 흘러나와

주변에 사는 동물이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신성제국 당시 만들어졌던 기계들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거인들은 도시를 지탱하기 위한 자금과 자원을 다른 종족들에게서 빼앗았고

이 때문에 다른 종족들의 도시와 거인족의 도시 사이에 극심한 빈부격차가 발생했습니다.

노예가 된 종족들은 여기저기에 팔려 뿔뿔이 흩어졌고,

속국의 형태로 예속된 연합의 종족들은 잘해봐야 이등 국민으로 취급받아

참정권도 얻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여러 제약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거인들은 스스로를 신으로 칭함과 동시에 정복한 종족들에게

그들의 신을 믿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금배령(禁拜令)’을 내리는 등,

각 종족들의 창조신에 대한 숭배까지 탄압하여 남아있는 신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의 세계를 재패한 신성제국에 함부로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성제국의 통치는 이어졌고 아르보레아는 어떻게 보면 평화롭다고 할 수 있었지만

속으로는 종족에 대한 차별, 불평등으로 인해 고름이 썩어 들어가듯 위태로운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괴로운 종족은 아만이었습니다.

그들은 전 아르보레아를 통틀어 가장 격렬하게 거인들에게 저항한 종족이었고

그 때문에 본보기로 종족 전체가 노예가 되었고, 신체에 복속의 인장이라는

절대 복종의 저주를 새겨 거인들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신성제국이 아르보레아를 통일하고 그들에게 거스르는 세력이 사라지자

거인들은 각각의 가문으로 나뉘어 힘겨루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국의 황제와, 의회의 신료들은 강력한 가문들에게 순차적으로 돌아갔으므로

거인들 사이에서는 더 발전된 기술, 더 많은 병력을 가진 가문이 더 강한 권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성제국 건국 초기에는 위계질서가 명확하여 다툼이 많지 않았지만

제국이 안정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후대에 나타난 거인 가문들과

기존의 거인 가문들 사이에서 권력다툼이 심해졌습니다.

구 가문 세력과 신 가문 세력은 날이면 날마다 전쟁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이 힘겨루기에서 아만은 전쟁의 소모품이 되어 동족끼리 칼을 겨누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이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단적으로 살펴보면,

한 아만 가정이 노예 시장에서 서로 다른 주인에게 팔려나가 흩어진 후,

거인 가문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 노예로 살다가

우연히 죽인 병사를 자세히 보니 장성한 자신의 아들 이었다던가 하는 식의 사건이

전쟁터에서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노예가 된 다른 종족들 역시 똑같은 비극을 겪었고, 절망과 두려움에 떨며

전쟁터에서 소중한 사람과 적군으로 만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한 때는 오만했던 아만족이지만, 신성제국의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에는

그 어느 종족보다도 자유와 명예를 중시하는 종족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반’은 그런 비극을 잘 느끼지 못한 아만이었습니다.

그는 갓난아기 때 가족과 떨어져 홀로 다른 가문의 전쟁 노예가 되었습니다.

같은 아만족인 노예 전사장의 손에 거둬져, 유년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다반은

수많은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다반은 비록 노예였지만 무술이 뛰어나고 호기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 노예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많은 노예들이 그와 한 조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다반은 공적을 인정받아 노예 전사장으로 인정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인장(千人長)으로 임명 받았습니다.

 

비록 같은 노예로 이루어진 군대의 천인장이었지만 그의 출세는 노예들에게 있어서 유례가 없었고

다반은 곧 노예들의 영웅이 되어 존경과 선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다반의 주인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흥 거인 가문의 가주였습니다.

노예를 대하는데 있어서 인식의 한계는 있었지만,

출신 보다는 능력을 더 중시하고 나름대로 공평하게 공적을 계산할 줄 아는 자였기 때문에

다반은 공적을 쌓을수록 그의 신임을 받아 한 개의 군단장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노예출신 군단장이라는 지위는 노예들에게는 희망의 별이 되었습니다.

군단장이 된 다반은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며 전장을 승리로 이끌었고

거인을 제외한 아르보레아의 다른 종족들에게 ‘수호자 다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거인들은 호기심의 눈으로, 시기의 눈으로 그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어떤 거인도 다반에게

복속의 인장을 발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그를 함부로 대하는 거인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다반은 여느 때처럼 전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던 중

소속 불명의 군대에 기습을 받아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반나절 이상 기절해 있던 다반은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계곡을 빠져나오려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부상당한 다른 아만 병사와 마주쳤습니다.

그 아만 병사는 다반을 습격한 군대에 소속된 자였고 다반은 그를 경계했습니다.

 

아만 병사는 다반을 적대하거나 습격하지 않고 절벽을 빠져나갈 동안만 협력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다반은 반신반의하며 그 병사와 함께 길을 재촉했습니다.

꽤 깊은 계곡 속에서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고 가끔 보이는 쥐와 풀을 뜯어 먹으며

다반과 아만 병사는 며칠 동안이나 야영을 하며 계곡을 헤맸습니다.

 

그러는 동안 다반은 아만 병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복속의 인장의 효과 때문인지 아만 병사는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했고

다반은 그가 구 가문 세력의 병사일거라고 짐작할 뿐 이었습니다.

 

아만 병사는 자신의 이름을 ‘사하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사하란은 예전부터 노예 출신으로 군단장의 지위까지 오른 다반의 명성을 들었고

실제로 다반을 보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잠시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그들의 대화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 다반과 사하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더 효과적이겠죠.

 

  *

 

「‘아만은 입이 가뭄이라 아첨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노옹(老翁)의 입은 가뭄이 들지 않고 홍수가 나는가 보군.」

 

「전쟁터에 나오는 이들 중에 다반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소.

그리고 다반의 이름을 아는 이들 중에 그를 존경하지 않는 자도 없고. 당신의 이름 앞에서는 적도 아군도 없지.」

 

「글쎄, 거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

 

「벼락출세한 노예들의 왕.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빈정대는지 들어봤소.」

 

「난 왕도 아니고 벼락출세 하지도 않았어! 날 이곳까지 이끌어준 것은 나의 힘과 나의 실력이지.

이 세상은 그런 곳이오. 몸을 움직이면 그만한 보상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설령 그게 거인들이 하사하는 은총이더라도 말이오?」

 

「누구에게서 나오건 마찬가지지. 부, 명예, 권력, 모든 것이 마찬가지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런 것들이 생겨나진 않소.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가진 재화를 나의 피와 뼈와 바꿔오는 것이지. 그게 지금의 세계를 살아가는 법칙이오.

거인에게서 바꿔오건, 다른 누구에게서 바꿔오건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부럽구려.」

 

「노옹도 체험해보면 알 수 있을 거요. 뭣하면 내 부하가 되지 않겠소?

내가 섬기는 주인은 공적을 쌓는다면,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그만큼의 대가를 인정해주는 분이요.

당신 같이 나이 든 아만이라도 얼마든지 사람답게,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거요.」

 

「사람답게라……. 하하…….」

 

「무엇이 이상하오?」

 

「노예가 사람답게 살려고 한다는 게 이상하오.」

 

「그게 무슨 말인가? 노예는 사람답게 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소?」

 

「온 몸에 종놈의 낙인을 찍고, 춤추라는 대로 춤추고, 노래하라는 대로 노래하고,

죽이라는 대로 죽이는 게 무슨 사람이 된단 말이오?」

 

「그러니 말하지 않았소. 나의 주인은 성과에 따라…….」

 

「그럼 말해보시오, ‘노예왕 다반’.」

 

「……한번만 더 그 호칭으로 날 부르면 그나마 머리에 붙어있는 볼품없는 뿔을 머리 째로 뽑아버릴 거요.」

 

「당신은 나와 다른가?」

 

「모욕 다음에는 노망끼를 과시하는가? 왜 그런 것을 묻는 거요?」

 

「대답해보게. 노예들에게 영웅으로 추앙 받는 다반과 낙오된 노병 사하란은 다른가?」

 

「다른 것이 당연하지 않소. 당신은 젊은 시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늙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 승리를 손에 거머쥐고,

나의 군단을 거느리고 나의 인장이 그려진 휘장을 들고 당당하게 성문을 드나듭니다.」

 

「노예의 병정놀이겠지. 그저 다른 이들보다 더 빛나고 무거운 족쇄를 찼을 뿐, 다반과 사하란은 똑같은 노예일 뿐이야.」

 

「죽고 싶어서 실성한 거라면, 괜한 사람에게 화풀이 하지 말고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것이 훨씬 빠르지 않소!

이런 곳에서 왜 굳이 그렇게 못된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거요!」

 

「…….」

 

「사하란.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관심 없소. 그래, 나 역시 군단장이지만 여전히 내 주인의 노예요.

하지만 신분은 노예이더라도, 나에게는 자부심이 있소!

전장에 나갈 때마다 나의 병사들을,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의 시선을 볼 때마다,

그들의 삶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지오.

죽음의 그림자가 목 아래에 드리웠는데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투기가 풍겨오지.

그런가 하면, 저 거인들은 어떤가! 그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심장에 불이 붙는 듯했소.

저 거대한 괴물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며 살고 싶었소, 지고 싶지 않았소!

언제까지고 패배자로 남기 싫었소! 그리고 난 이렇게 손에 넣었소.

그들의 시기를! 질투를! 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명예를 빼앗아왔소!

이 감정을 거짓이라고 말해보시오!

저기 거인들의 아래에서 핍박받고 멸시받는 자들이, 나를 보며 얻는 희망을 부정해보시오!

내가 그들 중 어느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이 지위를 부정해보시오! 말로는 얼마든지 부정 할 수 있지만,

당신이 신이 아니고서야 말 한 마디만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꺼뜨릴 순 없겠지.」

 

「…….」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아만이 아닌 것 같소.

어느 전장에 있더라도 용맹함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 우리 동족 아니었소?

말이 아니라 칼과 창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만이 아닌가 말이오.

시간이 당신의 안에서 아만의 혼을 빼앗아가기라도 한 거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대답해주게.」

 

「……한 가지 뿐이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군인에게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들게 하려고 물어본 거라면, 난 이만 입 다물겠소.」

 

「사람답게……. 그래.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움직인 만큼, 노력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면,

노예가 사람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일세, 전쟁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이 죽인다는 것 아닌가?

내가 사람처럼 살겠다고 눈앞에 선 자들을 죽이고……. 밟고 올라서고.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람이 되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결국 보이는 것은

동족의 시체로 이루어진 산이 아닌가…….」

 

「사하란, 전쟁터에서는…….」

 

「병사로써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누가 병사가 되고 싶다고 했나?

누가 그렇게까지 해서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다고 했나?

다른 이들이 가진 부를 빼앗아 나의 것으로 삼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라지만,

‘사람’처럼 살려면 그렇게까지 죽고 죽여야 하는 겐가?

그렇다면 서로 죽이지 않고도 사람답게 사는 저 거인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 눈에는 말일세, 다반.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차갑게 보이지 않아.

이렇게 늙고 볼품없어질 정도로 오랜 세월을 노예로 살았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세.

까마득하긴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이들의 온기를 느꼈던 때가 있었어.

그게 나를 더 힘들고 괴롭게 한다네. 그렇게 따듯한 순간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빌어먹게 가난하더라도

난 분명히 사람처럼 살던 때가 있었단 말일세. 누굴 밟고 죽이고 빼앗지 않아도 웃으면서 살 수 있었단 말이야.」

 

「…….」

 

「대답해주게, 다반. 자네는 얼마나 죽였나?

얼마나 죽이면 이 사람 같지도 않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난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동족들을 죽여야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도 나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가? 그런 게야?

사람이 되겠다고, 살아 보겠다고, 동족들을 찔러죽인 나도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

  

사하란의 고해에 다반은 입을 다물었고

그 후 사하란도 계곡을 빠져나갈 때까지 필요한 말을 할 때 빼고는 한 마디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해가 저물어 석양이 질 때 쯤 그들은 계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하란은 안도하는 다반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다반은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순간 어디에선가 화살이 날아와 사하란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

다반은 황급히 쓰러진 사하란에게 달려가 그를 살폈습니다.

화살촉을 뺀 다반은 그것이 자신의 군단이 쏜 화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다반은 자신의 군단을 인솔하고 있는 거인을 발견했습니다.

평소에 다반을 껄끄럽게 보며 무시하던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다반의 주인의 조카였고 다반이 아니었다면 군단장의 지위에 오를 예정 이었습니다.

 

그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다반에게 괜찮냐는 말을 건넸습니다. 순간 다반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부대 역시 그의 군단과 똑같은 화살촉을 사용했고

쓰러진 사하란의 품에서도 그의 군단의 견장이 보였습니다.

 

거인은 계곡 출구에서 몰래 대기하고 있다가 탈출한 다반을 죽이려 했고

실수로 사하란이 대신 죽은 것이었습니다.

진상을 깨달은 다반은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문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 습격의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다반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군단장의 지위에서 해임시켰고

처벌을 가장한 고문이 끝나면 일반 노예병으로 강등하여 다시 전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고문을 받는 동안 다반은 사하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자신을 우러러 보던 다른 노예들의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다반으로써는 어느 쪽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고문이 계속되던 중, 지하 감옥에 한 케스타닉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고문에 사용되는 도구들을 점검하러 온 수리공이었고

거인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다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거인들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라고 소개했고

몰래 다반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케스타닉 소녀는 다반에게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기를 청했지만

다반은 동족의 생명과 맞바꿔 영웅 놀음을 한 자신은 싸울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케스타닉 소녀와 함께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반은 몇 년 동안이나 전 아르보레아를 걸어 다녔고

그 사이에 지금껏 자신이 보지 못했던 세계의 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핍박받는 동족들과 다른 종족들을 보며 다반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슬픔, 무엇보다도 죄책감이 점점 커졌습니다.

다반과 케스타닉 소녀가 인적이 드문 숲 속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다반의 마음은 치유되지 못하고 몸은 쇠약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극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그의 자랑이던 근육은 사라져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고

비늘은 생기를 잃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습니다.

케스타닉 소녀는 그 때까지도 다반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케스타닉 소녀가 물을 구하러 간 사이, 다반은 기둥처럼 생긴 돌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이제 숨 쉬는 것도 힘들어했고 눈꺼풀이 자꾸 감겨왔습니다.

순간 그는 눈이 멀 듯 한 빛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느꼈습니다.

다반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는 이끼로 뒤덮인 사원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대어 쉬던 곳은 예전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어느 종족의 사원이었습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원 안으로 들어갔고 그 곳에 은신해 있는 한 신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한때 전신이라고 불렸던 여신 ‘카이아’가 제단에 잠들어있었습니다.

다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카이아의 존재를 느꼈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담아둔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카이아에게 털어놓았고

그녀에게 부디 고통 받는 피조물들을 굽어 살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아는 다반에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카이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반은 사원 안에 안치된 횃대에서 기름을 찾아

자신의 몸에 끼얹고 부싯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카이아의 제단에 다시 찾아가 같은 기도를 올리고는

그대로 부싯돌을 비늘에 부딪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타 죽는 고통 속에서도 다반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그의 공양으로 인한 열기가 제단을 빨갛게 달궜습니다.

얼마 후 불이 꺼지고 그곳에는 까맣게 탄 다반의 육체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육신 위로 열기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윽고 카이아가 모습을 드러내어

불탄 다반의 몸에서 그의 영혼을 꺼내어 승천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반의 영혼은 아룬과 샤라의 무의식 속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케스타닉 소녀는 돌아오자마자 불타 죽은 다반의 시신과 그 앞에 서 있는 여신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실신할 지경이었습니다.

카이아는 케스타닉 소녀에게 다반의 희생과 마지막 염원을 들려주고

레지스탕스를 도와 거인들에게서 아르보레아를 해방시키고

오만한 거인들에게 심판을 내릴 것을 선언했습니다.

 

먼저 카이아는 아르보레아 곳곳에 숨어있는 신들,

세렌이나 벨릭 같은 신들을 찾아, 그들의 종족들을 비밀리에 규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케스타닉 장인들을 불러 거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만족의 몸에 새겨진 복속의 인장을 조금씩 해제해 갔습니다.

 

레지스탕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활동이 사그라졌지만

뒤로는 점점 규모가 커져, 세레니티 연합과 벨릭의 아래에 있던 휴먼족,

밤피르 가문 등등 거인을 제외한 아르보레아의 대부분의 종족들이

저항 세력이 되어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모으던 저항 세력은 한 날, 일시에, 한꺼번에 봉기하여 거인들의 도시 내외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거인들은 또 다시 기계병사들과 고도의 마법을 이용해 반란을 제압하려 했지만

전신 카이아를 비롯한 신들이 참전하자 예전처럼 쉽게 다른 종족들을 상대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바라카 가문이 사전에 저항세력을 도와

거인들의 전법과 기술 등을 몰래 가르쳐주어, 기계 병사들과 마법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아르보레아는 자유를 찾으려는 종족들과 거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 휘말려

피로 피를 씻는 대 전쟁을 벌였고 결국 신들과 저항 세력이 승리하여

거인들의 신성제국으로부터 아르보레아를 해방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신들은 패배한 거인들이 다시는 아르보레아를 넘볼 수 없도록

그들의 도시와 문명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거인들의 힘과 지혜를 빼앗았습니다.

 

결국 거인들은 다른 종족들의 희생 위에 쌓은 문명을 파괴당했고

그들의 후예와 생존자들은 현재 아르보레아 곳곳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거나

깊은 던전 속에 숨어서 약탈과 수렵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르보레아의 종족들과 아만족은 이 날을 ‘불의 날’이라고 칭하며

신성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축복했습니다.

이후 해방 전쟁 도중 얼음 거인들에 의해 샤라 대륙 북방으로 끌려간 아만들이

그곳에서 전신 카이아를 모시며 도시를 세웠고 이름을 카이아도르 라고 짓습니다.

 

 

(아만을 해방한 전신 카이아를 기리며 지은 카이아도르.

카이아도르는 아만의 슬픈 역사를 딛고 새 출발을 한 기념적인 도시 입니다.)

 

종족들이 거인들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아르보레아에 마냥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성제국 아래에서 강제라고는 해도 서로 창칼을 겨누던 종족들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남아있었고, 신성제국 이전부터 해결되지 않던 문제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르보레아의 종족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하나의 진정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되찾은 것은

아르보레아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어지러운 전쟁이 계속 되었지만 아주 잠시

다반을 비롯한 희생자들을 위해서인지 평화로운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이후 각 종족에 있었던 일들과 새로운 연합의 결성, 그리고 미지의 세력의 침략에 대해서는

다음 에피소드 [연합시대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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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번 편은 글만 주구장창 나오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다들 아시겠지만 다반은 실제로 있었던 영웅이고

사하란 이라던가, 그의 자세한 행적은 그저 창작일 뿐입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저항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리즈를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게임 속의 설정이나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게임 시나리오의 생명력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건 진짜 어떤 분 말마따나 블루홀이 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렇다고 창작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더 이상 '팁'이라고 부를 수 없겠죠.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번 편으로 종족시대 편은 끝나고, 다음 편부터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각 연합의 탄생배경과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그들’!

또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