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면 반공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는 젊은 세대 중에서 의외로 '한국이 곧 공산화된다'는 말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음.


솔직히 좀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함.

예전 세대야 실제 전쟁을 겪었거나 학교에서 강한 반공 교육을 받았으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음. 그런데 지금 20~30대가 북한이나 공산주의를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데 '공산화'라는 말을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건 단순히 옛날 세대의 경험을 물려받았다고 설명하기 어려움.

오히려 지금의 정보 환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함.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한번 특정 정치 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영상과 글이 계속 따라옴. 처음에는 그냥 하나의 정치적 주장으로 접했는데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같은 사람들이 서로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점점 확신으로 굳어짐.


이른바 메아리방 효과임.

문제는 여기서부터라고 봄.

같은 주장을 계속 듣다 보면 '많이 들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으로 바뀌어버림. 알고리즘까지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보여주면 자기가 보고 있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정부가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주장과 정부 안에 친북 세력이 있다는 주장, 제도를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 국민들의 안보 의식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주장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함.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한국이 공산화된다는 결론까지 가는 거임.

그런데 여기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음.

앞에 있는 주장들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게 곧바로 '한국이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는 결론까지 증명해주는 건 아님.


특히 마지막 단계가 중요함.

대한민국이 실제로 공산주의 국가로 전환된다는 주장을 하려면 단순히 정치인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는 정도로는 부족함.

실제로 기존의 헌정질서와 법률, 정치제도, 경제체제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경로가 있어야 함.

그런데 이런 경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누가 이런 말을 했다거나, 교수가 공산화를 경고했다거나, 유튜브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거나, 북한이 좋아하는 정책이라는 식의 이야기만 계속 가져오는 경우가 있음.

나는 이게 상당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고 봄.

'공산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공산화될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

가능성이 0이 아닌 사건은 세상에 엄청나게 많음.


그렇다고 그 모든 사건을 현실적인 위험이라고 부르지는 않음.

현실적인 위험이라고 주장하려면 왜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함.

그런데 '0%는 아니잖아'라는 말 하나로 여기까지 검증하는 과정을 전부 건너뛰면 결국 가능성 자체를 증거처럼 사용하는 셈임.

이건 다른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

누군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0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주장임.


그런데 정치 이야기에만 들어오면 이상하게 이 구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사람이 불안할수록 이런 단순한 설명에 끌리기 쉬운 것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봄.

취업이나 집값, 경제 문제처럼 원인이 복잡한 현실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보다 '나라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저 세력이 나라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면 훨씬 간단함.

무엇보다 적이 명확해짐.


우리와 저들이 생기고,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도 만들어짐.

여기에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느낌까지 붙으면 그 믿음은 더 강해질 수 있음.

그래서 반공주의가 단순히 과거의 교육 내용으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특정 정치집단의 정체성과 결속을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다고 봄.

물론 모든 반공주의자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다른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곧 공산화된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

내가 문제 삼는 건 후자임.


한국이 공산화된다는 주장을 하려면 누가 빨갱이냐를 찾을 게 아니라 실제로 대한민국의 체제가 어떻게 공산주의로 바뀐다는 것인지 설명해야 함.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공산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 하나 했다고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님.


특정 교수가 공산화를 경고했다고 해서 그 예측이 자동으로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남는 건 증거와 경로라고 생각함.

정말 한국이 공산화될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걸 가져오면 됨.

그런데 그걸 보여주지 못하면서 계속 '공산화될 수도 있다', '가능성이 0은 아니다', '전문가도 그렇게 말했다'만 반복한다면 나는 오히려 공산화라는 결론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뒤에 근거를 끼워 맞추는 과정에 가까워 보임.

그리고 이걸 단순히 저 사람들은 멍청해서 저런 걸 믿는다고 끝낼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함.

오히려 왜 그렇게 믿게 됐는지를 보면 지금의 정보 환경이 사람의 판단을 어떻게 바꾸는지 더 선명하게 보임.

메아리방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확증편향으로 반대되는 정보는 걸러내고, 불안감을 적을 향한 이야기로 단순화하고, 집단 안에서 그 믿음을 서로 강화하다 보면 처음에는 정치적 주장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 순간 의심하기 어려운 사실처럼 굳어질 수 있음.


그래서 나는 '한국 공산화'라는 말을 들으면 그 주장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봄.

누가 말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증명됐는지가 중요한 거임.

그리고 한국이 공산화된다는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이것부터 설명해야 함.


결국 '한국이 공산화된다'는 주장을 하려면 공산화된다는 결론부터 말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제도가 어떻게 무너지고 무엇으로 대체되는지부터 설명해야 함.

그게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쉽게 표현하면 개소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