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대표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17. 구출



“쥐새끼들이 들어왔나 본데.”


세이튼이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발밑은 주교를 비롯한 사제와 기사들의 피로 흥건했다. 세이튼의 어깨 위에서 쿠크가 어딘가를 주시했다.


“계승자와 라제니스. 그리고 가디언? 역시 그 가디언도 보통 녀석은 아니었군.”


세이튼은 지팡이를 휘휘 돌리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기사의 등을 내리찍었다.


“이 바보들이 끌고 온 배에 섞여 들어온 모양이야.”


단말마와 함께 기사의 숨이 끊어졌다. 기사의 피가 나무뿌리로 된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세이튼은 과장된 몸짓으로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뭐, 괜찮아. 꼬마 가디언이 친구까지 끌고 왔으니 멘켄트가 좋아할 거야. 알케스도 그쪽으로 합류할 테고. 맡겨두자고.”


세이튼은 사제와 기사들의 시체를 둘러보며 웃었다.


“이건 놈들 탓으로 돌리면 되고.”


어깨 위에서 쿠크가 장단을 맞췄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성물을 하나 더 빌릴 명분도 되겠군.”

“그래. 계승자와 그 라제니스 계집이 우리의 의식을 방해한 거야.”


쿠크가 제단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며 웃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저 힘을 먼저 써야 했고.”

“그래서 우리의 계획이 먼저 완성된…다?”


쿠크와 세이튼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소리는 온통 주위를 둘러싼 나무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



거대한 나무뿌리로 뒤덮인 제단과 달리 구속장이 있는 공간은 차가운 기계와 성물의 오묘한 빛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알케스는 안경을 닦아내고는 눈 위로 올렸다. 붉은 구속장 안에서 소녀가 눈을 떴다. 이 귀찮은 생물은 눈만 뜨면 시끄럽게 울며 누누와 아저씨를 찾아댔다.


“아저씨…케이브 아저씨. 살아 있죠? 누누. 아저씨.”


검에 찔린 아저씨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그걸 부정하고픈 마음이 소녀를 더욱 파리하게 만들었다. 알케스가 다가서자 소녀는 반대편으로 기대며 몸을 움츠렸다.


“정말 시끄럽군. 카멘은 대체 널 무엇에 쓰려고 했던 거지?”

“…아저씨, 그런 무서운 악마 아냐. 케이브…아저씨야.”


울먹이면서도 당돌한 대답에 알케스는 웃음을 흘렸다.


“이거, 재미있군. 몰랐던 건가.”


알케스는 소녀가 갇힌 크리스탈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룬이 크리스탈과 함께 옅게 빛났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알케스는 소녀가 두 손을 모아 잡은 가슴을 가리켰다.


“너를 이렇게 죽어가게 만든 그 ‘악마’를 말이야.”


소녀의 덩그런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케스는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하-이거 대면이라도 시켜주고 싶군. 녀석의 표정도 정말 볼만하겠는데.”

“아니…아니야.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 케이브 아저씨. 누누. 아저…씨.”


소녀는 쓰러지면서도 계속 울어댔다.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더 두었다간 위험했기에 알케스는 소녀를 잠들게 했다. 쇠약해진 인간 꼬마였지만 아직은 더 연명시킬 필요가 있었다.


알케스는 곧 손님을 맞이했다. 입구로 들어온 계승자와 라제니스, 그리고 놓쳐 버린 가디언. 알케스는 환영한다는 듯 팔을 펼쳐 보였다.


“이거 처음 뵙는군. 그 유명한 영웅님들이 아니신가. 나는 잠시 아이 좀 재우느라. 손님맞이는 다른 형제에게 맡기지.”


알케스는 싱긋 웃었다.


“멘켄트.”


멘켄트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모험가와 니나브, 루는 온몸을 날려 피해야 했다. 바닥이 갈라지고 움푹 파였다. 의수에 케이블을 꽂고 어둠의 힘을 끌어 쓰는 그의 공격은 더 위력적이고 무자비했다.

다행히 멘켄트의 작은 욕망이 그들의 전투를 수월하게 도와주었다.


“작은. 가디언. 내 거다!”


루가 시선을 끌며 외곽으로 내달렸다. 멘켄트가 그 뒤를 따랐다.

니나브가 틈을 놓치지 않고 날개를 펼치며 뛰어올랐다. 그녀의 손에서 천벌의 활, 파르쿠나스가 번쩍였다. 케이블이 끊어졌다. 멘켄트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거렸지만, 다시 루를 쫓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저놈을 쓰러뜨리게.]


루는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멘켄트가 뒤따르는 동안 모험가와 니나브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루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계속 뛰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을 구해야 했다.

소녀와 그를.


“작은. 가디언…멈춰.”


멘켄트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다. 모험가의 한 방이 결정타를 날렸다.


“…작은…가디언….”


멘켄트가 무릎을 꿇으며 멈췄다. 그때야 루도 멈췄다. 멘켄트의 몸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수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내 온몸의 틈새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연기가 흩어지며 거구의 몸도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남은 건 짓이겨진 그림자뿐이었다.



***



어둠의 힘을 모으고 있는 제단 아래, 제멋대로 생긴 석재기둥과 나무의 뿌리가 뒤엉킨 공간이 있었다. 어찌 보면, 진정한 제단은 이곳이기도 했다.

쿠크세이튼은 발을 들이자마자 이질감을 느꼈다.


“쥐새끼가 하나 더 남아있었군.”

“후후-후.”


익숙한 웃음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카마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말버릇이 고약해졌군. 쿠크세이튼. 힘을 좀 얻었다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가.”


카마인의 입은 웃고 있지만, 붉은 눈자위 안의 금빛 눈동자에는 깊은 노기가 담겨있었다.



***



멘켄트가 쓰러지고 알케스의 공간이 열렸다.

알케스는 루와 모험가 일행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롭게 안경을 고쳐 썼다.


“그 멍청이가 이것들 하나 처리도 못 했나.”


루의 눈에는 붉은 구속장이 먼저 들어왔다. 소녀가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얘야!]


루가 달려들었지만, 갑자기 치솟은 검은 사슬에 차단당했다. 알케스 또한 어둠의 힘을 끌어 썼고 사슬은 더 굵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모험가와 니나브에게도 더욱 까다롭고 위협적이었다. 모험가가 알케스의 공격을 막아서는 동안 니나브는 배리어를 향해 수많은 화살을 날렸다.

배리어 하나가 부서졌다. 알케스는 입술을 비죽거리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이거, 귀찮게 하는군.”


알케스가 양팔을 내뻗었다. 모험가와 니나브의 발밑에서 동시에 사슬이 튀어 올랐다. 둘은 몸을 굴려 피했지만 작은 빛줄기에 맞아버렸다. 따끔했다.

그 사이 알케스는 구속장과 연결된 콘솔들의 버튼을 눌러댔다.


“뭐, 어둠의 힘은 빼낼 만큼 빼냈으니. 슬슬 너희들에게 파장을 맞춰도 괜찮겠지.”

[뭐?]


루는 안 좋은 기분을 느꼈다.


[계승자, 니나브. 놈의 룬 색에 주의하게. 자칫 잘못했다간 저 아이에게 피해가 갈게야.]


니나브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모험가와 니나브의 목덜미에 각각 노란색, 초록색의 룬의 새겨졌다. 알케스는 그들을 보며 손등을 슬쩍 비틀었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룬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모험가가 알케스를 상대하는 동안, 니나브가 남은 배리어를 공격했다. 알케스의 룬이 노란색으로 바뀌자 둘의 역할도 바뀌었다. 같은 색의 룬을 가진 자가 알케스를 공격하면, 충격이 소녀에게 전이될 터였다. 이번에는 니나브가 알케스를 상대했고, 그동안 모험가가 구속장의 배리어를 깼다.

루는 사슬을 피해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알케스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룬의 대상을 바꾼 후, 어둠의 힘을 끌어 쓰면 쓸수록 그의 사슬에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세이튼은 힘껏 지팡이를 내리쳤다. 카마인은 스틱으로 가볍게 튕겨내었다. 세이튼이 뒤로 밀려나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는 섬뜩한 웃음 위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그 힘은.”

“벌써 잊었나? 원래 내 것이잖은가. 아직 일부일 뿐이지만.”

“일부라고?”


카마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카제로스가 너희들에게도 망각의 저주를 걸었나. 아니면 그새 잊어버린 건가. 역시 어쩔 수가 없군. 그림자들은.”

“뭣이?”


세이튼이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카마인에 닿기도 전에 붉은 마검, 벨크루제가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다시 한번 세이튼이 뒤로 튕겨 나가며 쭉 미끄러졌다.

카마인은 태연하게 벨크루제를 잡았다.


“어둠의 권능은 애초에 너희 그림자 따위가 넘볼 힘이 아니야. 어리석게도 여태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헤-헹. 이미 한번 뺏긴 주제에 허세는.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말과 달리 세이튼은 긴장하며 턱을 닦아내었다. 알 바 아니지만 카마인 녀석이 꽤 언짢아 보였다.



***



알케스가 쓰러지며 망가진 의족이 떨어졌다. 의족 아래 바닥이 그림자로 물들었다. 이내 그림자는 스르륵 사라져갔다. 루와 일행의 목덜미에 남은 룬의 흔적도 지워졌다.


모험가와 니나브, 그리고 루까지 합심하여 남은 구속장의 배리어를 공격했다. 별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루는 온 힘을 다했다. 남은 배리어가 깨지고, 구속장의 크리스탈까지 한동안의 사투 끝에 겨우 깨졌다.

모험가가 크리스탈을 치우며 조심스럽게 소녀를 꺼내주었다. 소녀를 바닥에 눕히고 일단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소녀가 눈을 떴다.


[오, 얘야. 정신이 드느냐.]


루와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눈물과 반가움이 교차한 표정이 되었다.

소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루를 끌어안았다.


“누누…보고 싶었어. 괜찮아?”


루는 초췌한 얼굴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소녀의 말에 괜스레 코를 훌쩍였다.


[그래, 괜찮다. 걱정 말거라. 너야말로 괜찮으냐?]


모험가는 루의 말을 소녀에게 전해주었다.

소녀의 눈빛이 슬프게 젖어 들며 입술이 일그러졌다.


“누누, 아저씨가…아저씨가.”


루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모험가가 걱정 섞인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이곳은 위험하니, 빨리 나가자.

[하지만, 그전에 한 명 더 구해야 하네.]

누구를?

[카…ㅁ….]


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계승자와 니나브에게 카멘을 구해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모험가가 되물었다.


카…?

[어, 뭐, 그러니까…그런 악마 아니, 존재가 있는데.]

검에 찔리고 사라져버린 그 동굴 아저씨?

[그, 그래.]


루의 의견을 모험가는 니나브에게 전해주었다. 니나브는 걱정스럽고 슬픈 표정으로 타일렀다.


“루, 가슴에 검이 찔리고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는 없어. 누군가가 마법으로 운명이라도 묶어두지 않은 이상은.”


니나브는 오래전 친구가 떠올라 더 마음이 아팠다.


[그게, 실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루는 식은땀이 났다. 그때, 소녀가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힘없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떼와 부탁이 섞인 사정을 했다.


“케이브 아저씬 엄청 센 마법 기사니까…살아있을지도 몰라요.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그래. 살아 있을 게야. 분명 살아 있긴 할 게다. 그냥 우리가 무사하다고 알려만 주면 된다네.]


소녀의 울음과 루의 간절한 눈빛에 모험가는 난감했다.

소녀를 구한 지금, 루와 소녀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소녀는 쇠약해지고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게다가 아크라시아와 연결되어 있다지만 이곳은 그림자들의 이공간이었다. 포탈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가겠다니.

소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부탁했다.


“제발 우리 아저씨…살려주세요. 네? 왕의 기사님. 언니. 제발요…제발.”

[부탁일세.]


곧 모험가와 니나브는 서로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루의 판단을 믿고 더 진입하기로 했다.



***



카마인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게다가 이건 무슨 장난이지. 어둠의 아크라도 만들 생각이었나?”


세이튼이 눈을 부릅뜨며 발끈했다.


“장난? 너야말로 힘 좀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녀석을 잡은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네가 그렇게 찾고자 하는 그 ‘힘’ 말이야.”


쿠크도 거들었다.


“우리야. 바로 우리 그림자들.”


세이튼은 한껏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잡았으니, 우리 거야.”


갑자기 세이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넌 그 껍데기일 뿐이고.”


쿠크도 굵고 낮은 목소리로 더했다.


“버려진 껍데기.”

“…….”


카마인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세이튼이 두 팔을 활짝 펴고, 쿠크와 함께 미친 듯이 웃어댔다.


“후하-하하하. 이제 구닥다리 혼돈의 시대는 끝났어. 우리 그림자들에 의한 새로운 혼돈의 시대가 열릴 거다.”


카마인은 예의 비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도 나를 껍데기로밖에 볼 줄 모르다니. 그게 너희들의 한계란 거다. 힘의 노예들.”

세이튼이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입조심해. 카마인.”


쿠크도 발끈했다.


“점점 막 나가는군. 세이튼. 이번엔 진짜 끝장을 내버려.”


세이튼의 미소가 더 길게 찢어졌다.


“헤-헷. 그래. 더 이상 카멘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으니.”


세이튼의 뒤로 그림자가 더욱 길어졌다.



***






초기에 설정할 땐, 루의 역할이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쓰다보니 소녀와 엇비슷한 비중이 되어가더라.

루가 원래는 위엄있고 어찌보면 조금 꼰대 기질도 있어보였는데.

만일 새끼사슴 형태로 되살아난다면 어떨까 막연한 추측만 있었죠.


박서림님 방송 볼 때, 아기사슴 언급도 있어서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닌가보다 했더랐죠.

어쩌다보니 루가 좀 개그 캐릭이 되어버렸네요.




팬픽션 쓰기 전에 구상하면서

AI로 만든 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