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대표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20. 동굴에 남은 조각



애쉬튼은 마을에서 이름난 사냥꾼이었다.

그의 꿈은 루테란의 기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기사의 검 대신 활을 잡았고,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자경단이 되기도 했다. 결혼하고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는 나무를 심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흑단나무였다.


씨앗 할멈으로부터 이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흑단나무의 묘목을 구했을 때, 아내는 크게 기뻐하며 그의 뺨에 키스해 주었다. 비록 꿈과 멀어진 삶이었고 왕성이 아닌 산 중턱의 오두막에서 살았지만, 그는 행복했다.


그러다 진정한 왕자를 만났다.

애쉬튼은 딸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왕의 진정한 후계자를 위해 영주를 따라 선뜻 전쟁에 나섰다. 왕자는 왕이 되었고, 뜻을 같이한 덕분에 꿈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와 딸은 말을 탄 그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애쉬튼은 악마들과의 싸움에서 선두에 섰고, 악착같이 살아 돌아왔다.


모든 바람이 멈춘 어느 날, 붉은 달이 뜨던 밤이었다.

수많은 악마와 싸워봤지만 그런 악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공포와 절망 그 자체인 악마를.


밀려드는 어둠으로부터 애쉬튼은 도망쳤다. 도망쳐도 부끄럽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는 왕의 명령이기도 했다. 그때, 다리 부상으로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병사가 보였다. 이제 겨우 소년티를 벗은 젊은 병사였다. 애쉬튼은 망설일 것 없이 말에서 내렸고, 재빨리 병사를 태웠다.


병사를 태운 말을 먼저 보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는 어둠은 바로 코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애쉬튼은 아내를 떠올렸다. 어린 딸의 이름도 불러보았다.

에보니.

그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건, 저 붉은 달 위에 홀로 떠 있는 악마였다.


증오스러운 저 악마가,

저주스러운 그 악마가,

이상하게도 외로워 보였다.


어둠이 모든 것을 가렸다.

애쉬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은 비가 내렸다.

붉은 달 위에 떠 있던 악마는 홀로 동굴에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 가디언도 소녀도 없었다. 남은 것은 공허하게 뚫린 천장과 그 아래 흑단나무뿐.

카멘은 계속 바라만 보았다.

어린 흑단나무는 비를 맞고 있었다. 아직 작은 나무였다. 소녀보다도 작은.

그것을 달갑지 않은 자가 가려갔다.


“결국, 다시 이곳인가. 네 기준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카마인이었다.


“그래도 그 모습을 다시 보니 반갑군.”

“…….”


어둠의 검이 주인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주인의 피를 먹고 독기를 품은 듯, 검은 기운을 자욱이 뿜어내었다.

카마인은 여유롭게 다가섰다.


“하지만 이제는 카제로스의 흔적도 지울 때가 되지 않았나.”

“…….”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카마인의 걸음이 멈췄다.


“돌아가자. 카멘. 페트라니아로. 이제 진정한 모습을 찾을 때다.”


목소리도 낮게 깔려있었다.


“우리가 최후를 맞았던 심연처럼, 어둡고 음습한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전에는 그렇게 어두운 곳이 아니었다. 천장의 구멍으로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작은 가디언이 노닐며,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가 울리던 곳이었다.

카멘, 그와 전혀 인연이 없을 것들이 이곳에 가득했었다.


“더 기다릴 필요도 없지 않나. 어차피 그 소녀의 명줄도 금방….”


쿵-

카마인의 몸이 뒤로 밀리며 벽에 부딪혔다. 둔탁한 통증이 등으로 전해졌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카마인의 목 바로 옆을 스쳤다. 어둠의 검이 벽에 박혔다. 어느새 카멘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투구에서 파란 눈이 번뜩였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쩌-적 소리를 내며 동굴의 벽이 갈라졌을 뿐이었다.

다시 고요해졌다.


카멘은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했다. 그는 아직 자신을 벨 수 없다.

카마인은 곧 미소를 되찾았다.


“이거 곤란하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가?”


여유로운 웃음 앞에서, 투구 밖으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카멘이 삭이고 있는 분노를 카마인이 모르진 않았다.


“그림자들과 황혼 녀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 마당에.”

“…가라. 카마인.”


낮게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경고했지만 카마인은 그의 분노를 외면했다. 곧, 그 분노가 필요할 것이다.


“카멘. 상황 파악이 안 되나? 하긴 여태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 그 힘을 가졌으니. 그래. 카제로스도, 루페온도 없는 세상에서는 너 혼자서 충분할지도 모르지.”


녀석도 상황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카마인은 흑단나무를 슬쩍 곁눈으로 보고는 다시 카멘의 시선과 마주했다. 투구에서 새어 나온 파란 안광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라. 그림자들과 황혼이 루페온의 성물을 들고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계승자와 카단, 루테란의 왕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모든 아크라시아가….”

“나는….”


카마인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말한 ‘나’가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짧은 정적.


영혼을 울릴 듯한 목소리가 다시 투구 밖으로 흘러나왔다.


“…완성되지 않는다.”


카마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

“나는, 나로 남겠다.”


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카마인의 굳었던 입이 겨우 떨어졌다.


“…그래, 그게…네 의지로군.”


카마인은 목을 스친 칼날에서 벗어나 발길을 돌렸다. 그 여유로운 미소도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눈빛만이 남았다.


이것은 최후의 통첩이었다.

그 의지의 기준은 자신이어야 했다. 혼돈의 신, 이그하람이어야 했다. 

감히 루페온의 피조물 따위가 그 기준을 흔들었다.


카마인의 앞으로 포탈이 열렸다.


“그동안의 시간이 쓸데없는 것을 남겼군. 카멘. 이제부터는…정말 재미없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카마인은 포탈로 사라졌다.

벽에 박힌 검을 잡은 채, 카멘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카마인은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나왔다.

적막한 폐가. 소녀의 집 앞이었다.

카마인은 따끔한 느낌에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검푸른 핏기가 묻어나왔다.


조금만 더 했다면 목을 찔렀을까?

카멘답지 않은 절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카마인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카마인과 카멘. 이제 두 존재의 의지가 하나로 모인 완벽한 융합은 없다. 이음새는 남을 것이지만 그 자체로도 완전할 수는 있었다. 카제로스의 저주가 남긴 흔적은 지워내면 그만이었다. 여러 가능성 중에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혼돈의 신이 돌아올 때, 카멘은…사라진다. 반드시.


때는 곧 다가올 것이다.

소녀의 집이 무너졌다. 어차피 돌아올 사람도 없는 집이었다.

카마인은 웃었다.



***



산 위로 치솟은 어둠의 장막이 며칠째 지속되었다. 인근의 마을은 더욱 뒤숭숭해졌다. 

침대에 누운 소녀도 그것을 보며 동요했다.


“저곳이 계속 왜 저러지? 정말 악마가 저기에 나타난 걸까?…설마, 아저씨가….”


이어지는 소녀의 침묵은 루를 마음 아프게 했다.


[얘야.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누누, 너는…알고 있었니?”


소녀의 질문에 루는 잠시 생각했다.

저 산의 상황보다도, 카멘의 정체를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래서 나를 말렸구나.”


소녀는 힘없이 팔을 내밀어 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누누. 네가 날 지켜주려 했구나.”

[그건 맞다만, 그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느냐.]


소녀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의견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 사제가 들어왔다. 소녀를 치유해주던 전담 치유사였다. 그의 뒤로 왕의 기사가 들어왔다.

간만에 소녀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와-. 왕의 기사님.”

[어서 오게나, 계승자, 그리고….]


모험가의 뒤로 카단도 들어왔다.

소녀는 낯선 사람을 보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왕의 기사님은 친절하게도 그를 직접 소개해주었다. 에스더 카단이라고. 소녀는 조금 더 밝은 표정이 되었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 둘이나 찾아오다니.

하지만 두 영웅의 용건은 루에게 있었다. 카단이 루를 보며 말했다.


“루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무엇을 말이냐.]


루가 나서며 그를 올려보았다.

카단은 동굴에 무엇이 있느냐 물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평범한 동굴일 뿐인데. 무슨 일인가?]


루의 말을 모험가가 카단에게 전해주었다. 복잡한 의사소통은 조용히 이뤄졌다. 카단은 동굴 앞에서 카멘과 만난 일을 간략히 알려주었다.

동굴에 카멘이 노릴만한 거창한 것 따윈 없었다. 애초에 그가 그곳에 나타난 이유부터가 의문이긴 했지만, 그것은 루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간의 시간을 돌이켜보자면 음모 같은 건 없었다. 그는 그저 고요를 원했을 뿐.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가 소녀를 바라보았다.

카단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덩그런 눈으로 올려보는 소녀를 향해 카단은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와 모험가는 그가 그런 표정이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네 이름이 에보니인가?”


전혀 그렇지 못한 말투에 루와 모험가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소녀는 에스더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기쁜 표정이 되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카…아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소녀는 그가 말을 조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영웅이 자신을 알아줬다는 설렘도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를 보자니, 동굴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했다. 왠지 분위기가 닮았다.


“아저씨는…아, 악마 아니죠?”


의문이었지만 억양이 점점 내려가며 끝말은 흐려지다시피 했다. 소녀의 질문에 루는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다. 카단은 침착하게 “그래.”라고만 답했다. 소녀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어깨를 떨었다. 카단은 기다려 주었다.

소녀는 눈물을 훔치고 겨우 입을 열었다.


“숨기지 않아도 돼요. 내 이름, 카, 카멘이란…악마가 알려줬어요?”

[……?]


루도 옆에서 놀란 눈이 되었다.


“역시 그 악마…아저씨는…케이브 아저씨가 내 이름…알고 있었어.”


의외의 호칭에 카단은 눈을 깜빡이며 당황했지만, 곧 차분하게 답해주었다.


“그래.”

“아저씨가…동굴에 있어요?”

“…그렇다.”


소녀의 입술이 떨리며 눈물을 훔치는 손이 빨라졌다.


“왜요?”

“모르겠다. 그래서 물어본 거다. 그가 왜 그곳을 찾았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소녀는 계속 훌쩍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 몰라요. 그냥 나무만 있어요. 누누와 함께 심은…흑단나무.”


그것이 전부였다. 카멘의 목적과 황혼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한 단서는 얻을 수 없었다. 카단은 작게 한숨을 쉬며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녀는 조그맣게 울고 있었다. 그는 베른 남부에 있을 어린 친구 ‘신디’를 떠올렸다. 신디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소녀처럼 작고 어렸다.


소녀와 루, 그리고 카멘.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존재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동굴에 남은 것은 그 시간이 남긴 추억 한 조각뿐일지도 모른다.

카단은 그렇게 짐작했다.



***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게, 카단이 의외로 사회성이 좋다는 거였죠.

은근히 경조사 잘 챙기고 다니는...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잘 챙기는 것 같더랐죠.

으르신들 말을 잘 듣는 (모름)청년...


20화 내외로 잡았는데 총 25개로 나뉘네요.

(다 쓰고 보닌 한글 문서 기준, 공백포함 12만 3천 자가 넘어가네요. ㅋ)

다음 업로드는 토요일에 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분이 계시다면... 

https://blog.naver.com/lafa  에서 조금 빨리 보실 수 있습니다.

(역시나 폐가 광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