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대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 




3. 황혼의 음모



여느 날처럼, 소녀는 양 볼을 주먹으로 받치고 루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당근을 잘라주지 않아도 우적우적 잘 씹어먹었다.


누누, 이제 보니까 좀 자란 거 같지 않아? 아기라서 빨리 자라나?”


루는 당근을 씹다 말고 제 몸을 둘러보았다. 덩치가 조금 커진 것도 같았다

여전히 새끼염소 같은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누누는 소녀가 루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일전에 소녀가 루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물론, 동굴 속에서 답은 없었다. 루는 또 소녀의 치맛자락을 물고 내빼기에 바빴다. 동굴에서 멀어진 뒤에야 루는 이렇게 답했다.


[내 이름은 루다. 다시는 그에게 쓸데없는 질문 말거라. 되도록 동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소녀에겐 누우-메에-’라고만 들렸다.


이름이 뭐라고?”

[-란다. .]

누메누? 동굴 아저씨가 널 그렇게 불러?”


소녀가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루는 다급하게 소녀의 치맛자락을 물었다.


[아니야. 아니,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소녀는 이제 루의 반응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소녀는 자리에 앉으며 루를 안심시켰다.


그럼, 누누라고 부를게. 나는 에보니야. 에보니. 엄마가 흑단 나무를 좋아해서 그렇게 붙여줬어. 잘 부탁해, 누누.”

[그게 아니야. 내 이름은.]


새끼 염소의 투레질을 보면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소녀는 누누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녀는 당근 하나를 더 내주며 마침 해야 할 말을 떠올렸다.


, 누누. 나 한동안 못 올 거야. 내 병을 치료하려면 큰 마을로 가야 한대. 내일 사제님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잘 됐구나. 아이야.]

그런데 좀 억울해. 왜 하필 내일이야. 두 밤만 더 자면 실리안 폐하가 우리 마을에 오신단 말이야. 우릴 치료해주러 멀리서 오신 사제님들께 감사하다고.”

[실리안이라면루테란의 국왕 말이냐?]


루는 오도독 씹던 것을 멈추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소녀는 그의 의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루테란의 왕에게 저 동굴 속 위험을 알려야 하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걸 알릴 방도가 없었다. 한편으론 자신이 왜 루테란에서 깨어났는지도 의문이었다. 가디언에게는 없는 이런 유생의 형태로 말이다.

루의 고민을 알 리 없는 소녀는 그를 꾹 끌어안았다.


분명 멋진 행사일 텐데. 그걸 못 보는 것도 억울하지만, 너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게 더 슬퍼.”

[그래도 치료는 잘 받아야지.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게 아니아니다. 이곳에는 얼씬도 말아라. 위험하니까.]


오독오독 씹어먹다 말고, ‘메에-’우는 새끼염소의 소리가 귀여워 소녀는 까르르 웃었다. 루가 당근을 다 먹고 난 뒤에야 소녀는 흙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집 텃밭에 있는 것들은 먹어도 좋아. 하지만 하루에 하나씩만 먹어야 해. 그때처럼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그러마. 걱정하지 말거라.]

나중에 씨앗 할머니를 만나면 내가 더 많이 심어줄게. 할머니가 베른에서 마법 씨앗을 구해준다고 했어.”

[허허. 기특하구나. 아이야.]

그럼 나, 가볼게. 또 만나.”

[꼭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꾸나.]


그런데 뭔가 좀석연찮구나.

소녀는 똘똘하게 대답해주는 작은 친구를 쓰다듬고는 암벽으로 내달렸다

작별 인사를 했지만, 뭔지 모를 불안감에 루는 소녀를 따라갔다. 암벽 사이의 통로까지 따라온 루를 보며 소녀는 한껏 끌어안고는 다시 놓아주었다.


이젠 안돼. 해가 다 떨어지기 전에 가야 해. 돌아가.”

[, 그래야지. 그런데.]


루는 돌아서다 말고, 소녀의 집을 지나 비탈길까지 또 따라갔다.


넌 너의 집에 못 들어가게 하면서 왜 계속 따라오니?”


말은 그렇게 해도, 소녀는 웃으며 루를 쓰다듬었다.


[그건 재앙의 동굴이라서 그런 거란다. 하지만 이건 왠지.]

히히. 농담이야. 우리 집엔 언제든 가도 좋아. 근데 지금 난 보육원으로 가야 해서 널 데려갈 수 없어. 나 꼭 다 나아서 올게.”

[그래. 다녀오려무나.]


아니, 다 나으면 오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일이었다. 저 동굴 속 어둠을 생각하면.

그런데도 루는 비탈길로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뭔지 모를 이 불길함이 기우이길 바랐다. 하긴 저 동굴 속 어둠보다 더 불길한 것이 있으랴.

 


소녀는 여느 때처럼 보육원에서 일과를 마쳤다. 또래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소녀는 갑자기 눈을 떴다.

, 동굴 아저씨한텐 인사 안 했는데. 누누가 말을 전해줄 수도 없잖아. 하긴, 아저씨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야.’

소녀는 뒤척였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못 볼지도 모르는데

소녀는 또 뒤척였다

밤길은 위험했지만 마침 달도 밝았다

소녀는 다시 뒤척였다

동굴이 있는 산은 얼마 전부터인가 위험한 짐승도 사라졌다고 했다이러한 생각 끝에 소녀는 부스스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보육원 원장의 방이 나왔다. 분명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다행히 원장은 누군가와 이야기 중인 듯했다.


갑자기 변경된 이유가 있는지요? 이 한밤중에 이동해야 한다니.”

본국의 배가 일정이 바뀌었답니다.”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소녀에겐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녀의 치료를 위해 자주 방문하던 사제 중 하나였다.


배요? 그렇게 멀리 가야 하나요? 저는 그런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증세가 날로 악화하고 있습니다. 본국의 사제들로부터 집중 치유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울한 내용이었다.

소녀는 벽에 기대어 우물거리다 다시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몰래 담을 넘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담 너머에 누군가 있는 듯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의 기척이었다. 이번엔 모르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왕의 기사가 먼저 움직였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남성의 목소리는 익숙하기도 했다. 여사제와 함께 자주 방문하던 치유 사제였다.


루테란 국왕의 방문은 단순 행사가 아니다. 그들은 의심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을 충분히 치료해주었습니다. 이송했던 사망자들 대부분은 중증 발병자들이었고, 아직 이곳에서의 평판도 좋은 편입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본국의 교황이 알게라도 되면 순식간이야. 최대한 빨리 많은 실험체를 확보해야 한다. 밀정들은 어찌 되었나?”

국왕과 왕의 기사에게 붙인 밀정은 그 이후로 소식이 없습니다.”


왕의 기사님이라니. .

음험한 대화 내용보다도, 세상을 구한 구원자가 이곳에 방문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녀는 더욱 떠나기 싫어졌다. 아저씨의 동굴에서 하룻밤만 숨겨 달라고 할까? 소녀가 담벼락을 따라 이동하는 중에도 저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상관없다. 실험체들의 이송을 서두른다. 다른 준비는 다 마쳤겠지?”

, 이제 이곳에 있는 실험체만 남았습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실험체 중 하나이지만, 너무 어린아이라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라. 혹여라도 꼬리가 잡힌다면 즉시 처분하는 것도 잊지 말도록.”

? 하지만 어린아이들도 많은데.”

우린 질서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소녀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보육원 아이들만 아는 개구멍이 있었다. 소녀는 거친 풀을 헤치며 엎드려 기어 나왔다. 하지만 운이 없게 그곳에도 사제들이 즐비해 있었다.


누구냐!”


걸렸다

소녀는 안절부절못하다 겨우 일어섰다.


, 저는 그냥 도, 동굴 아저씨랑 누누한테인사만 하, 하려고요.”


소녀는 오늘따라 왠지 사제님들의 표정이 차가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 밤, 사제들이 인솔하는 마차 몇 대가 마을을 떠났다. 그들의 이동을 왕의 기사이자, 아크의 계승자, 세상을 구한 영웅인 모험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소녀는 불안에 떨었다. 크게 혼이 날 것이 틀림없었다. 사제님들은 매우 화가 난 듯 보였고, 짐 쌀 틈도 주지 않고 거칠게 마차에 태웠다. 그나마 보육원에서 보던 치유 사제님이 있어 안심했지만, 오늘따라 치유 사제님의 표정도 차가웠다.


, 저는 그냥 도, 동굴 아저씨한테 인사만 하려고 한 것뿐인데.”


치유 사제가 손가락을 들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소녀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제발, 안 혼나게 해주세요,

마차는 마을 밖을 지나 동굴이 있을 산을 지나갔다. 소녀는 그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안녕, 누누, 동굴 아저씨. 또 봐.”


소녀가 산을 보며 혼자만의 인사를 하는 사이, 치유 사제에게 다른 사제가 뭐라 귓속말을 건넸다. 치유 사제는 눈을 크게 뜨는 듯하더니, 마부에게 또 무슨 말을 건넸다. 밤바람이 찼다. 소녀는 서늘한 몸을 웅크렸다. 기댈 어른의 품은 없었다. 친절하던 치유 사제님도 오늘은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을 듯 보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수선스러워졌다. 마차가 앞 마차와 다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치유 사제가 손을 들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진정하십시오. 별일 아닙니다. 목적지가 다른 것뿐입니다.”


노인 하나가 따지듯 물었다.

목적지가 다르다뇨? 앞선 마차에는 내 아들이 타고 있소. 분명 함께 지낼 거라 하지 않았소?”


다른 사제가 대신 답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제는 옅게 웃었다.

 


숲길로 마차의 행방을 쫓던 모험가는 난감했다. 뒤에 있던 마차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모험가는 선택해야 했다. 우선은 앞서가던 마차부터 따르기로 했다.

 


소녀가 탄 마차는 점점 어둡고 깊은 길로 향했다

굳이 험한 산길로 가는 이유를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곧 사람들은 내려서 걸어야 했다. 소녀를 포함한 그들은 여사제의 인도에 따라 산 위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여러 사제와 신성 기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자신들을 지켜줄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하지만 그 안도가 비명이 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루는 동굴의 끄트머리에서 달을 보며 앉아 있었다. 등을 보이는 것도 이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둠 속의 존재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침묵만을 원했다. 게다가 오늘은 소녀에 대한 걱정이 앞선 까닭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 미동도 없던 존재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비명이 들리는군.”


루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일어섰다. 루도 급하게 일어섰다.


[, 어디를 가려는 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게야!]

의문이 든다.”

[, 무슨. 그대가 나가면 사람들에겐 더 해가 될 거다. 더 큰 혼돈이 몰아칠게야.]

…….”


그는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루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안 돼. 그대를 보낼 순 없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


루의 저항을 그는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았다.


[너를 이 이상 밖으로 보낼 수는 없.]


루는 말을 멈췄다

그는 이미 하찮은 저항을 지나치고 있었다. 자색 연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곧 후드 망토가 그의 전신을 가렸다. 그리고는 비명이 들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후드 망토의 뒷모습을 보며 루는 빌었다. 제발 저 모습은 어둠의 주인이 세상과 조금은 타협해주겠다는 신호이길.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또 공포와 절망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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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캐릭터의 역할과 이름을 짓고 ,

스토리 라인을 완성하고 난 뒤, 팬픽을 중간쯤 썼을 때

카다룸 제도 스토리가 나왔었습니다.

검은 나무에 대한 언급이 나와서 '으잉?'했었죠.

물론 검은 나무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앞으로 스토리를 봐야 알겠지만.

에보니는 흑단나무를 뜻하기도 합니다.